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마음
관심에서 기억과 연대로 이어진 공지순례
2026 서울공익활동박람회의 ‘공지순례’는 평소 지나치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수리와 순환에서 시작된 시선은 자신의 마음을 지나 다른 사람의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다시 우리가 살아가는 거리와 사회를 향했을 때,
그동안 곁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우려고 하니까 그제야 보였어요”
관심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한다
토요일 오전, 삼각지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손에는 집게와 봉투가 들려 있었다.
한 시간의 플로깅을 마치자 100리터 봉투 두 개가 쓰레기로 가득 찼다.
“평소에 이 길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주우려고 보니까 쓰레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쓰레기가 갑자기 많아진 것은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이 달라졌을 뿐이다.
삼각지 거리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삼각지 플로깅이날 박람회에서 여러 번 반복된 변화도 바로 그것이었다.
계단은 어제도 있었고, 버려진 비닐도 어제부터 있었다.
외로운 사람도 있었고, 고장 난 물건도 있었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공익활동은 어쩌면 없던 문제를 새로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들의 일인지도 모른다.
놀이에서 시작된 질문도 세상을 향한다
이로운 한켠 '제주4.3범국민위원회’ 부스에서는
사람들이 제주4·3을 책과 필사, 동백꽃 만들기, 보드게임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날 사람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동백꽃은 작은 장식품이면서
동시에 다음 사람에게 기억을 건네는 방법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유난히 많이 들린 자리도 있었다.
성평등 놀이터에서는 뽑기와 컬링 같은 게임을 통해 성평등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만났다.
공익은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었다.
박람회 한편에는 공익활동을 하는 사람을 돕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바보의나눔, 아름다운재단, 인권재단 사람,
한국여성재단은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자원과 기반을 지원하고,
카카오같이가치와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은 모금과 디지털 역량으로 공익의 뒤를 받쳤다.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지원 프로그램도 그 연결을 이어갔다.
좋은 마음만으로 좋은 일을 오래 이어가기는 어렵다.
사람을 돕는 사람에게도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최요한 매니저의 표현처럼 ‘돕는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있을 때,
좋은 일은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일이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지나 ‘우리’에게 가는 길
이틀 동안 박람회장을 돌아보며 가장 많이 만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었다.
공지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겉으로 보면 어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고쳐 쓴 물건의 시간을 생각해 본 사람은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망설일 수 있다.
눈을 가리고 길을 걸어본 사람은 보도 위에 놓인 킥보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외로움에 이름을 붙여본 사람은 누군가의 외로움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평소 아무렇지 않게 오르던 계단 앞에서 누군가는 잠깐 멈춰 다른 사람의 길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변화는 그렇게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습으로 일상에 남는다.
어쩌면 공익활동은 세상을 구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작은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이 ‘나’에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 취향은 비로소 가치가 된다.
그리고 그 작은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길을 내기 시작할 때,
‘나’의 취향은 ‘우리’의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