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과 12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2026 서울공익활동박람회의 올해 메시지는 ‘취향이 가치가 되는 곳’이었다.
시민들은 ‘공지순례’를 통해 환경과 돌봄, 접근성, 연대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직접 경험했다.
취향은 어디까지 우리를 데려갈 수 있을까
세 사람이 말한 ‘취향의 힘’
박람회의 여러 장면을 조금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간 것은 모이다 강당에서 열린 강연 ‘취향의 힘’이었다.
세 연사의 이야기는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
관계와 단절, 공동체 문제를 연구해온 『손절사회』를 쓴 사회학 연구자 이승연은
소비사회와 알고리즘 속에서 취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물었다.
독립출판사 도서출판 이김의 김미선 편집자는 작은 출판사들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북페어 ‘디스 이즈 텍스트’를 기획한 경험에서 ‘굳이 비효율을 선택하는 힘’을 이야기했다.
SK브로드밴드 Web플랫폼개발팀 최요한 매니저는 IPTV 콘텐츠 추천 시스템을 기획·분석하는 회사원이자,
자신의 데이터 분석 능력으로 비영리단체와 공익활동가를 돕는 자원활동가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세상과 나누기 시작한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능력이 누군가의 좋은 일을 돕는 힘이 되는 순간’을 이야기했다.
사회학, 책, 데이터.
세 사람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달랐지만 이야기는 묘하게 한곳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나’의 것으로만 남아 있어야 할까.
좋아하는 것만 남은 세계는 충분할까
이승연 연구자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취향’을 소비사회의 풍경 속에서 다시 바라봤다.
유행은 빠르게 바뀌고, 새로운 것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무언가에 오래 애착을 갖기보다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 다시 다음 것으로 이동하는 속도는
물건뿐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관계에까지 스며든다.
알고리즘은 이 세계를 더욱 편안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비슷한 음악을 권하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준다.
나와 취미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불편한 것을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세계다.
하지만 이승연은 바로 그 편안함에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더 넓은 세계와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좋아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 안에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가.
취향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열정을 갖는 힘은 소중하다.
다만 그 열정이 소비하는 데에서만 끝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고,
타인과 만나고, 공동체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취향이 우리를 더 넓은 세계로 데려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 이승연 연구자취향은 세상과 나 사이에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벽에 작은 문 하나를 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가끔은 ‘굳이’ 돌아가도 괜찮다는 것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에 대해 김미선 편집자는 조금 엉뚱한 단어를 꺼냈다.
‘굳이’ 익숙한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힘을 이야기한 김미선 편집자비효율.
인터넷서점에서 클릭 몇 번이면 책이 집으로 오는 시대에 그는 굳이 사람들이 직접 찾아오는 북페어를 만들었다.
16개 팀만 모으고, 입장 시간까지 정했다.
화려한 굿즈 대신 편집자와 독자가 책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대화카드를 만들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그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플레이리스트와 기록을 남겼다.
효율만 따지면 이상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 속에서 사람들은 검색하지 않았던 책을 만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예정에 없던 대화를 나눴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아주 영리하게 찾아준다.
하지만 우연히 좋아하게 될 무언가까지 미리 알려주지는 못한다.
새로운 발견에는 때때로 ‘굳이’가 필요하다.
굳이 찾아가고, 굳이 말을 걸고,
굳이 내가 알던 세계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일.
김미선 편집자가 마지막에 건넨 제안도 결국 ‘선을 넘어보라’는 것이었다.
안전한 것은 익숙하지만, 익숙한 자리에서는 좀처럼 새로운 일이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
최요한 매니저의 이야기는 그 질문에 아주 개인적인 답을 보탰다.
어머니가 생전에 “나중에 회사 그만두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때 그는 무심코 대답했다고 한다.
“돕는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시에는 자신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어머니와 갑작스럽게 이별한 뒤 그 말은 마음에 남았다.
지나가듯 했던 말이 어쩌면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방법으로 그가 꺼낸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었다.
데이터.
대학생들에게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고, 비영리조직의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농부시장 마르쉐의 방문과 매출 흐름을 분석했다. 아름다운가게와도 데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 공익활동이 아니었다.
이미 잘하는 것을 다른 방향으로 한번 사용해보는 것.
회사에서는 콘텐츠를 더 잘 추천하기 위해 쓰던 능력이
다른 곳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됐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타인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은 다시 그 자신에게 돌아왔다.
상실 뒤에 시작한 활동을 돌아보며 그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 결국 자신을 돕는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익활동을 거대한 것을 새로 세우는 ‘건설’보다 막힌 것을 걷어내고 다시 흐르게 하는 ‘준설 작업’에 비유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 앞에서 우리는 쉽게 거대한 변화를 상상한다.
하지만 어쩌면 변화는 막힌 곳 하나를 뚫고, 새는 곳 하나를 메우고,
누군가가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뒤에서 받쳐주는 모습으로도 존재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돕는 사람을 돕는’ 방법을 이야기한 최요한 매니저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좋아한다는 말 다음에, ‘함께’를 붙여본다면
세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승연 연구자는 취향이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김미선 편집자는 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가끔은 효율을 내려놓고 낯선 경험 쪽으로 선을 넘어보자고 했다.
최요한 매니저는 그렇게 만난 세계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을 보여주었다.
좋아하는 마음 →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 → 타인과의 연결 → 행동.
그 사이 어디쯤에서 취향은 가치가 된다.
그러므로 ‘취향의 힘’은 얼마나 특별한 것을 좋아하느냐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아한다는 말 다음에 ‘함께’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힘.
그것이 이날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한곳에서 만난 지점이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취향의 힘’을 이야기한 최요한, 김미선, 이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