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보물이 반짝이는 곳,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
‘우리’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어쩌면 가족, 친구, 동료, 혹은 가까운 이웃까지가 흔히 생각하는 ‘우리’의 범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 그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면 어떨까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익숙한 틀을 넘어 상상하며,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2025 서울공익활동 박람회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어요. 지난 6월 20일부터 21일까지 박람회 현장에서 마주했던, 훨씬 더 큰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전해드릴게요.
박람회 안내부스에서 등록 중인 참가자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풍경이 펼쳐졌어요. 유아차에 탄 아이들부터, 청년과 중장년 세대, 삼삼오오 함께 오신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친구, 가족과 함께 공익활동 체험을 즐기는 모습이었어요.
박람회 첫 날인 6월 20일,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음료를 마실 개인컵과 교환하거나 수선할 옷, 리필할 용기, 수리할 우산을 챙겨서 방문한 많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인상적이었어요. 다음 날인 6월 21일에는 밤사이 비바람은 지나가고 야외 프로그램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며 또 다른 진풍경이 전개되었습니다.
야외 1층에서 열린 행동도구 체험
새롭게 감각하는 오늘
낯선 누군가와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것만큼 나의 세계가 극적으로 확장되는 일이 또 있을까요?
“보도블록 틈에 어떤 식물들이 사는지 모르기도 하고, 그냥 뽑아도 되는 잡초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번에 이름도 알게 되면서 식물들의 생명력을 느끼게 됐어요.”
_ 오늘의행동 워크숍 <너의 이름은?> 참가자
도시 야생초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모습
보도블록이나 아스팔트 틈 사이에 피어있는 풀들을 흔히 ‘잡초’라고 부르죠. 하지만 오늘은 작은 도시 식물들에게 제 이름을 찾아주었어요. 걷다가 이름 모를 풀을 만나면 참여자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그리고 손에 든 야생화 엽서에서 풀 이름을 찾고, 친환경 분필로 적어봅니다. 작은 풀의 이름을 듣고 적는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도 한 마디쯤 자라납니다.
호호호두 키링 공방에서는 참여자들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보드라운 천에 폭신폭신한 솜을 넣어 단단한 호두 껍질에 덧대, 작고 귀여운 호두 쿠션 키링을 만드는 중이거든요. 서툴지만 한땀 한땀 정성을 다해 완성한 키링은 한 손에 쏙 들어와 따뜻한 위로를 전합니다. 나만의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볼이 생긴겁니다.
완성된 호두 쿠션 키링
자신만의 이야기를 빈 종이 위에 온전히 풀어놓은 적이 있나요? 나의 고유한 생각과 일상을 잘 담아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어려운 적이 있었을 거예요. 아마도 이러한 점 때문일까요? 나라는 잡지 만들기 워크숍은 신청 모집이 조기에 마감될 정도로 많은 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상반기를 돌아보며 하반기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 정리도 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_니트생활자 워크숍 <나라는 잡지 만들기> 참가자
어릴 적 우리는 그림책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어른이 되면 모든 답을 알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어떤 문제들 앞에서는 무기력해지기도 해요. 이지현 그림책 작가와 함께한 어른들을 위한 힐링테라피는 이처럼 복잡한 현실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작은 쉼표를 만들고, 그림책 속에서 발견한 지혜와 여유를 통해 위안을 얻는 시간이었어요.
그림책 ‘축하합니다’를 읽고 자신에게 축하 엽서를 쓰는 참가자
지나쳐버린 존재들을 소환하는 마법 같은 꿀팁
이번 박람회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존재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많았어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꿀팁들이 많이 소개되었거든요.
공덕동 식물유치원이 전수한 꿀팁은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작은 초록 친구들을 구조하고 돌보는 방법이었어요. 이끼 테라리움 체험은 구조한 이끼와 쓸모를 다한 유리병이 만나 저마다의 새로운 초록 생태계 100개가 탄생했고, 분양 신청 코너에서는 건강하게 되살린 구조 식물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한 참가자들이 150명이나 있었습니다.
이끼 테라리움 만들기 체험
펜스는 흔히 ‘경계’를 의미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어요. 펜스아트체험은 길거리 펜스(울타리)를 모두를 위한 캔버스로 변신시켰습니다. 폐플라스틱을 리사이클한 클립을 사용해서 참가자들은 하나씩 빈 칸을 채우며 펜스에 색과 모양을 더해갔어요.
참여 방법은 간단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했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삭막한 울타리를 공공예술의 도구로 활용하고, 누구나 함께 아트 벽화로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었으니까요. 이번 펜스아트체험은 640명의 참여로 TOGERTHER(함께), 네잎클러버(행운을 만들자) 메시지가 완성되었습니다.
펜스의 빈 칸을 채우며 드러나고 있는 네잎클로버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어떤 말은 서로를 고립시키기거나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또 어떤 말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강한 연결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요. 니트생활자가 준비한 고립의 말, 연결의 말 전시는 이러한 말의 힘에 주목했어요.
이 전시는 고립 청년들의 인터뷰에서 길어 올린 낱말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참가자들은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어 전시하고, 고립과 연결이라는 감정의 스펙트럼 속에서 자신의 마음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어요. 또 각자가 발견한 ‘말’들을 함께 모아가는 과정은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응원하는 시작점이 되어주었습니다.
참여형 전시 ‘고립의 말, 연결의 말’
어떤 상황과 입장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더욱 그렇죠. 이러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희희랑독은 입체낭독극과 다시 체험하는 감각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이번 프로그램은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을 체험하고 알아갈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손으로 읽는 점자를 직접 만들어 보고, 오디오북에 집중하며 소리로 세상을 읽습니다. 입체낭독극에서는 모두 안대를 착용하고 시각을 제외한 청각, 촉각, 후각 등 다른 감각들을 활용해 공연을 즐깁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리를 함께한 참가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시각장애가 있어요. 입체낭독극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오늘 아이들과 처음으로 공연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었어요.”
_희희랑독 <입체낭독극> 참가자
입체낭독극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관객들
여러분의 옷장에는 사놓고 입지 않는 옷이 얼마나 되나요? 옷장 깊숙이 잠자고 있는 그 옷들이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다시입다연구소가 의류와 잡화를 교환하는 특별한 21%파티를 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더 이상 입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할 옷, 신발, 가방을 가져왔고, 나에게 필요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교환했습니다.
“21%파티는 다양한 곳에서 열리고, 어떤 자리는 저희가 단독으로 진행해요. 그것도 좋지만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는 같은 뜻을 가진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하는 자리라서 준비하는 내내 ‘으쌰으쌰’ 힘이 났습니다.”
_ 다시입다연구소 활동가
옷, 가방 등을 수선하는 재봉틀 체험
수리상점 곰손은 물건을 고치기 전에, 먼저 ‘고쳐 쓰고 싶은 마음’을 되살리고자 했어요. 리페어 팝업존에 들어서자마자, 수리 문화를 알리는 여러 전시물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중앙에서는 참가자들이 가져온 옷과 가방에 수리 메시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고장난 우산을 수리하고, 벗겨진 전선과 고장난 멀티탭을 수리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고, 그 옆에서는 유해 물질 없는 모기 퇴치제 만들기, 전통 한약재로 만드는 자운고밤 체험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건을 쉽게 사고 버리는 요즘 시대에,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고쳐 쓰는 경험은 참가자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티셔츠에 실크스크린 인쇄하는 모습
함께 만드는 이로운 한 켠
박람회장 한 켠에서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역사적 순간들, 함께 기억해야 할 삶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제가 처음 간 작은박물관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이었는데 가보니까 기대했던 것보다 볼 것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한 군데만 가고 말기가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작은박물관 여덟 곳을 모두 완주하게 됐고, 오늘은 완주증을 받으러 왔어요.”
_ 작은박물관 스탬프 투어 참여자
서울의 작은박물관 8곳은 민주주의, 평화, 인권의 가치와 역사를 알리는 작은박물관 스탬프 투어 부스를 열었어요. 근현대사기념관, 김근태기념도서관, 문익환 통일의집, 박종철센터, 식민지역사박물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이한열기념관, 그리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함께하는 연합 부스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작은박물관 스탬프 투어를 진행 중인 ‘이로운 한 켠3’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응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통합봉사회는 심폐소생술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는 생활 기술임을 알려주었어요. 보건의료계 전공 대학생과 전문 의료진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보건의료통합봉사회는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보건, 의료, 사회복지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켠에서는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운동화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이 운동화들은 맨발로 생활하는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보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새 운동화를 그대로 보내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새 운동화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시장에서 판매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은 운동화가 아이들에게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귀여운 그림과 응원의 메시지를 운동화에 담아서 보내는 힐링슈즈 날개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보낼 힐링슈즈
원더스인터내셔널 부스를 찾은 참가자들은 라오스에서 온 커피를 맛보며, 그 한 잔에 담긴 라오스 농가의 삶, 생산 방식, 유통과 판매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커피를 내리고, 천천히 음미하고, 이야기 나누는 커피 한 잔의 경험 속에서 지속가능한 가치 소비와 연결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되짚어 보게 됩니다.
나의 마음 건강 상태는 사랑해 부스에서 간단한 척도 검사를 통해 진단해 볼 수 있었어요. 사랑해는 자살 생존자가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단순히 자살을 막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박람회는 이들의 뜻깊은 활동을 널리 알리는 자리였습니다.
접시는 농부의 밭에서, 컵은 우리 집에서 왔어요
올해도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의 먹거리는 자연과 사람 간의 깊은 연결을 보여주었어요.
“박람회를 위해서 1800인분을 준비했는데 저희가 전문 케이터링 업체가 아니라 한 번도 안 해본 규모였어요. 준비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농사 지으며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 모습을 잘 담아낼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해요.”
_ 마르쉐X팀화요 활동가
건강한 제철 식재료로 준비한 핑거푸드
농부시장 마르쉐와 농사공동체 팀화요가 준비한 푸드존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어요. 밭에서 직접 수확한 제철 채소로 만든 비건 주먹밥, 채소 크루디테, 완두콩 크림 도넛을 정성껏 차리고 있었거든요.
박람회 참가자들에게 제공할 이들의 음식은 접시마저 자연을 담아냈어요. 양배추잎, 개머루잎을 깨끗이 씻어 접시로 사용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접시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퇴비가 되는 친환경적인 순환을 보여주었어요. 팀화요는 이번 박람회를 위해 봉금의 뜰을 비롯한 농부, 요리사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 준비했기에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습니다.
푸드존을 이용 중인 참가자들
여름의 문턱, 6월의 박람회장에 시원한 음료가 빠질 수 없겠죠? 야외 공간에 마련된 일회용 없다방에서는 개인 컵을 가져온 누구나 맛있는 비건 음료 4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전기 트럭을 개조해 만든 이동식 비건 카페라니, 그 자체로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알맹상점은 지하 1층 행사장에서는 리필스테이션을, 지상 1층 야외 공간에서는 일회용 없다방을 운영하며 쉽고 재밌는 제로웨이스트 생활 실천을 독려했습니다.
1층 야외에서 운영 중인 일회용 없다방
당신의 빛나는 한 걸음
이번 박람회에서 마주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크고 작은 저마다의 움직임으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밝히는 ‘우리’ 라는 보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매일 걷고 움직이는 일상 속에서 공익활동은 늘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발걸음이 더해져 이번 서울 공익활동 박람회를 더욱 다채롭게 물들였습니다. 함께 발견하고 새롭게 감각했던 이번 박람회의 경험을 통해 ‘우리’ 라는 소중한 보물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빛나기를 기대합니다.

글. 정연선
사진. 김화경, 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