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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사례

[변화사례 아카이브 #01] 그 회사에서는 몇 명이 죽었나

작성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등록일 2026-09-19 조회수 1799
활동직무 조직운영 활동분야 노동
자료출처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자료형태 기타

 

산재 정보가 구직자의 권리가 되기까지


2024년 한 해 동안 14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었습니다. 하루에 390명이 넘고, 한 시간에 16명꼴입니다. 하지만 “이 회사, 위험한 곳 아니야?”라는 물음에는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는 이 답 없는 물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5년 동안 데이터를 모으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정보공개 소송과 입법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쉽게 확인하기 어려웠던 산재 정보는 기업별로 검색하고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었고, 마침내 구직자가 일터의 위험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도 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의 안전한 일자리를 위한 작은 물음이,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터를 선택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권리가 된 것입니다.

 

 

채용 공고에 없는 것


이 정보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정부는 매년 사망율이 높거나 2인 이상이 사망하는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명단을 산업안전법에 따라 공표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점입니다. 이 명단은 형이 확정된 뒤에야 공표되는데, 사고 발생부터 형 확정까지 보통 2~4년, 소규모 사업장은 6~7년까지 걸립니다. 고 김용균 씨의 사고 역시 3년이 지나서야 공표됐습니다. 정보는 '존재'하지만 아무도 제때 '접근'할 수 없는, 이상하고도 흔한 상태로 오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용도 너무 부실했습니다. 공표되는 산재다발사업장 명단에는 사업장명과 재해율, 발생 건수 정도가 PDF 표 형태로 담길 뿐입니다. 어떤 사고였는지,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어떤 의무를 어겼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원래 이 공표 제도는 사업주의 명예와 신용에 심리적 압박을 줘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형이 확정된 뒤에야, PDF 파일로, 홈페이지 구석에 올리는 방식이 굳어지면서 그 압박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 부담이 없는 제도가 된 셈입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정보인데도, 고용노동부에게 산재 정보는 지금 당장 알려 예방에 써야 할 안전정보라기보다는 사후 행정 절차의 결과물에 가까웠습니다. 위험은 감춰질수록 기업에 유리하고, 정보의 비대칭은 스스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5년 전, 그 '누구도 나서지 않던 일'에 나선 곳이 있습니다.


질문을 놓지 않은 사람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업이 구인공고를 올릴 때, 산재 발생 정보도 함께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2021년, 정보공개센터가 쓴 칼럼 한 편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진 것과 그 질문을 5년간 붙들고 사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건 정보공개센터의 김예찬 활동가였습니다. 그는 2022년 한 해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는 산업재해 소식을 매일 모으는, 누가 봐도 지루하고 티도 안 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언론 보도, 노동건강연대가 쌓아온 자료를 붙잡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화려한 캠페인 영상이나 감동적인 발언 대신, 스프레드시트와 데이터가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2008년 창립 이래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를 사명으로 걸고, 권력이 감추는 정보와 싸워온 조직입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 기록, 검찰 특수활동비, 이태원참사 정보공개운동까지, 이들의 활동 목록을 보면 하나같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거 원래 공개돼야 하는 거 아니야?”


산재 정보 공개 역시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소송까지


보통 시민단체 활동이라고 하면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감정에 호소하고, 정의를 부르짖을 것이라 예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활동의 무게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데이터’에 있었습니다.


2022년, 정보공개센터는 중대재해를 취재해 온 언론사들과 노동건강연대의 도움을 받아 과거 수년치 중대재해 발생 데이터 수천 건을 긁어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nosanjae.kr)입니다.

 

 

기업명을 검색하면 그 회사의 산재 이력이 바로 뜨고, 워크넷에 새로 올라오는 구인공고와 산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보여주는 기능까지 붙였습니다. 말로만 “공개하라”고 외치는 대신, “봐, 이렇게 하면 되잖아”를 직접 보여준 셈입니다.


물론 웹사이트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개별 기업의 민망함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제도 자체를 흔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단계는 시민과 함께 나서는 일이었습니다.


2023년, 산재 다발 사업장의 산업재해 내역을 구직자에게 알리자는 직업안정법 개정 서명에 시민 2,500명이 이름을 보탰습니다. 이 서명은 국회 입법청원으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해, 정보공개센터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도 걸었습니다. 노동부가 매년 공표하는 산재 사업장 명단은 재판이 모두 끝난 사건만, 그것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사업장 이름과 통계로만 간략히 알려줍니다. 정보공개센터가 청구한 건 그보다 훨씬 앞 단계의 자료, 사고가 접수된 직후부터 노동부가 집계해 온 '중대산업재해 발생현황'이었습니다. 어느 원청의 어느 하청에서 어떤 사고로 몇 명이 죽었는지, 사건 하나하나가 담긴 자료였습니다. 노동부는 사고 발생일과 장소는 순순히 공개하면서도, 정작 핵심인 원청과 하청의 이름만 가린 채 자료를 내놨습니다.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같은 논리로 노동부는 국회의원의 자료 요구까지 거부해온 터였습니다. 이번에도 시민들은 탄원서로 힘을 보탰습니다.

 

 

2025년 봄에는 국회의원실과 손잡고 법안까지 발의했습니다. 직업정보제공사업자에게 산재 내역공개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업정보제공사업자에게 산재 다발 기업 명단 공개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발의 기자회견 자리에는 뜻밖의, 그러나 이 활동의 무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함께했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이사장인 김미숙 씨였습니다. 그는 구직자가 일자리의 위험성을 미리 알아야 한다고 직접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결국 정보공개 소송은 1심과 2심 모두 승소로 끝났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상고를 포기하고, 원청과 하청의 이름이 담긴  3년 치 '중대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를 넘겨주었습니다.

 

증거가 주장을 이긴 방식


세상에 무언가를 주장하는 일은 비교적 쉽지만, 그 일을 제도화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따릅니다. 활동가들은 변하지 않는 세상의 단단함에 실망하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활동가들에게 이번 사례는 반짝거리는 희망을 줍니다. 이 활동이 캠페인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진짜 제도 변화까지 뚫고 나간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주장하기 전에 먼저 만드는 일입니다.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만 하는 대신, 스스로 데이터를 모아 웹사이트로 만들어 냈습니다. 무엇이 부족한지를 말이 아니라 눈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주장에 앞서 증거를 내세우는 전략은 시민 사회에서는 새로운 접근법이었습니다. 숫자 앞에서 회사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둘째, 여러 트랙을 동시에 운영했습니다. 데이터 공개, 서명운동, 소송, 입법 발의. 네 가지를 겹쳐서 밀어붙였습니다. 어느 한쪽에서 막혀도 다른 쪽에서 진전이 생겼고, 그 진전들이 서로를 밀어주며 5년을 버텨냈습니다. ‘스텝 바이 스텝’이라는 공식을 뒤집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법이 된 질문


그 결과, “이 회사, 얼마나 위험한가”를 묻는 일이 법적 권리가 되었습니다.

 

 

정보공개센터가 노동안전 단체들과 협력하고 고용노동부와 소송을 진행하며 중대재해 데이터를 모으고 사이트를 만들면서, 산재 정보가 실제로 구직자가 일자리를 선택할 때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5월 7일, 구직자들에게 산재 위험 사업장을 알리도록 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오는 12월 10일부터는 잡코리아, 사람인 같은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구인광고를 게시할 때 해당 기업이 산재 발생건수 등이 공표된 사업장인지 구직자에게 알리거나 게재해야 합니다.

 

이제 산재 정보는 단순히 공개된 데이터에 머무르지 않고, 구직자가 일터의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정보가 됐습니다. 상장사의 중대재해 공시,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500인 이상 기업의 안전보건 현황 공시도 이어지면서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된 정보가 공개되는 범위 역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넘긴 3년 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중대재해의 60% 이상이 하청업체에 몰려 있었고, 사고가 잦은 상위 10% 기업 73개사가 전체 중대재해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산재가 많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서 위험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정보공개센터가 만든 변화는 하나의 질문을 공개된 정보로 바꾸고, 그 정보를 구직자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로 연결했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기업과 사업장에서 위험이 반복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노동자가 일터를 선택할 때 안전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고 기업의 안전관리와 책임을 사회적으로 묻는 기반도 마련됐습니다.

 

법 통과, 그 다음


법이 통과됐다고 여기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닙니다. 채용 플랫폼들이 이 정보를 실제로 얼마나 성실하게 구직자에게 알릴지는 지금부터 지켜봐야 할 숙제입니다. 법에 “알려야 한다”고 적혀 있는 것과, 그게 실제로 눈에 잘 띄는 방식으로 지켜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번 제도 개선은 ‘산업재해가 이미 발생한 이후’의 정보를 알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즉 위험한 회사를 걸러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애초에 산업재해 자체를 줄이는 예방 효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현장으로 가는 방법


이 사례에서 건질 수 있는 건 ‘방법론’입니다. 공공기관이 이미 갖고 있지만 아무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방치된 정보를, 시민이 직접 데이터로 재구성해서 세상에 꺼내놓고, 그걸 근거로 서명과 소송과 입법을 동시에 밀어붙이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노동안전 말고 다른 곳에도 응용해볼 수 있습니다. 환경, 소비자 안전, 식품, 주거처럼 “정보는 분명 있는데 아무도 볼 수 없는” 영역이라면 어디든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정보공개센터는 법이 통과된 지금도 손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채용 플랫폼들이 이 의무를 실제로 잘 지키는지 계속 지켜보겠다고 밝히고 있으니, 정보공개센터가 만들어갈 다음 변화의 장은 아직 쓰이는 중입니다.

 

[단체 소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08년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오직 시민의 후원만으로 활동한다는 재정 원칙을 18년 넘게 지키고 있습니다. 권력의 정보 은폐와 싸우는 일, 시민에게 유익한 공공데이터를 공유하는 일, 시민과 함께 필요한 데이터를 직접 만드는 일. 이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산업재해뿐 아니라 국회 의정기록, 검찰 특수활동비, 재난 정보공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건 원래 공개돼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법제화 주요 연혁]

시기

주요 내용

2021.

칼럼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을 찾을 권리」에서 '구직자가 기업의 산업재해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는 문제 제기로 프로젝트 시작

2021.12.~2022.12.

중대재해 데이터 수집·정리. 경향신문·한국일보 등 언론사, 노동건강연대, 국회의원실의 자료 협조

2022.12.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nosanjae.kr) 공개 — 2017년 1월~2021년 5월 중대재해 3,752건을 기업별로 검색할 수 있게 공개. 직업안정법 개정 서명 캠페인 동시 진행(누적 4,500여 명)

2023.3.22.

고용노동부에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현황' 정보공개 청구 → 원·하청 기업명 비공개

2023.8.11.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 정보를 구직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직업안정법 개정 입법청원 국회 제출 —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

2023.10.16.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제기(2023구합81534). 시민 탄원서 캠페인 진행

2024.10.17.

1심 승소 — 서울행정법원, 원·하청 기업명 비공개 처분 취소

2025.2.12.

구인정보에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제공하도록 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안 발의(대표발의 김태선). 

2025.10.2.

2심 승소 — 서울고등법원, 고용노동부 항소 기각(2024누68158). 노동부 상고 포기

2025.10.20.

한국거래소 공시규정 개정 시행 — 상장사는 중대재해를 노동부에 보고한 당일 공시.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열람

2025.11.14.

고용노동부, 정보공개청구 2년 8개월 만에 2022~2024년 중대산업재해 현황 전면 공개 — 원·하청 기업명이 모두 포함된 정부 자료 공개 최초 사례(730개 기업, 887건, 943명 사망)

2026.1.28.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의무화, 안전보건 현황 공시 신설

2026.5.7.

직업안정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산업재해 발생건수 공표 대상 사업장임을 구직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

2026.6.1.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제도 시행. 조사 범위도 화재·폭발·붕괴 등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까지 확대

2026.8.1.

안전보건 현황 공시 의무 시행 — 상시 500인 이상 기업(건설업 연간 공사금액 1,200억 원 이상)과 모든 공공기관·지방공사·공단이 산업재해 발생 현황, 안전보건관리체제, 안전보건 투자 내역, 재발방지 대책 등을 매년 공시

2026.12.10. 예정

개정 직업안정법 시행 — 유료직업소개사업자·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산재 발생건수 공표 대상 사업장임을 구직자에게 고지·게재


[관련 정보]

 

cfoi.or.kr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
nosanjae.kr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찾기 웹사이트)  


#산업재해정보공개 #알권리 #직업안정법개정 #시민참여입법 #정보공개소송

 

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X변화사례 아카이브 기획위원회
글 : 딴짓
사진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