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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사례

[변화사례 아카이브 #14]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

작성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등록일 2026-10-28 조회수 65
활동직무 조직운영 활동분야 도시/재생/주거
자료출처 기관/단체 자료형태 기타


 공간 지키기가 시민 주권을 지키는 일이 되기까지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문을 연 단관극장입니다. 멀티플렉스가 퍼지면서 2015년부터 문을 닫았죠. 하지만 문화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지키고자 이곳에 대한 보존 논의가 계속되었습니다.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포럼을 열고, 단관극장 역사를 담은 자료집도 냈죠.

 

그러던 중 2023년 10월, 단관극장은 시민과의 논의도 없이 원주시에 의해 철거당했습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극장을 지켜 온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지키던 극장이 사라졌으니 이제 해산해야 할까?” 


토론 끝에 이들이 낸 답은 달랐습니다. 처음 모인 이유는 극장이었지만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시민의 몫으로 남아야 할 것을 누가 결정하는가’였으니까요.

 

 

아카데미의 친구들(이하 아친)은 아카데미극장 철거 이후에도 문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시민 공론장과 함께 사회 변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민교육 및 지역의 공공재를 지키기 위한 연대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철거에 맞선 시민들은 업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공간을 잃은 싸움이 어떻게 지역 운동으로 넓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줍니다.

 

시민의 공간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결정하나요?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원주 원도심에서 성업하던 단관극장 다섯 곳 중 마지막으로 남은 건물이었죠. 이 공간은 문화뿐 아니라 시대의 역사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극장으로서의 의미보다 더 큰 상징성을 가진 아카데미극장이었기에, 극장이 문을 닫은 후에도 보존 논의는 계속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에서 문화재청장상을 받았습니다. 2022년 1월 원주시가 극장을 사들이면서, 극장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했죠.

 

 

하지만 2023년부터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당시 원주 시장은 극장을 철거하고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은 극장을 일방적으로 철거하기 전에 토론을 통해 결정하자며 시정정책토론을 요청했지만 반려당했죠. 문제는 ‘공간이 철거되었다’가 아니라 ‘의미 있는 공간의 철거가 시민들과의 논의 없이 결정되었다’였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철거를 반대하는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그리고 '좋은 어른들'

 

신동화 사무국장은 아카데미의친구들 활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로 ‘청년 활동가’들과 ‘좋은 어른들’이 어우러진 것을 꼽습니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원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 온 청년들과 창작자, 영화를 만드는 이들, 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지하고 함께 누려 온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서 극장 앞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청년들 뒤에는 여러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지역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신 국장은 이들이 나이와 경력을 앞세우지 않고 청년의 선택을 존중하며 든든하게 활동을 뒷받침해 줬다고 합니다.


변화는 시민의 활동으로부터


아카데미의친구들은 극장을 지키려는 노력이 원주 시민들의 활동으로 보이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행진하고, 공연하고, 노란 텐트 앞에서 문화행사를 열었죠. 지역 맘카페에 알려 아이들을 위한 비눗방울 공연도 했습니다. 풍물시장 상인 300명의 서명을 받고, 정치인과 기관에 손편지를 보내고, 문화재청 앞에서 피켓을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친의 활동이 ‘데모꾼들의 시위’가 아니라 ‘시민들의 활동’이 되자 참여를 꺼리던 맘카페 회원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나와 이야기를 듣고, 행진에 함께 나서기도 했죠. 직접 나서지 못한 이웃들은 여기저기 소문을 내 지지하는 여론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평온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시에서 극장 철거를 밀어붙이면서 철거 용역이 들이닥쳤으니까요. 신 국장은 2023년 8월 29일 새벽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친 날이 그가 활동하면서 가장 무서웠던 날이라고 회고합니다. 온몸이 떨렸지만 비를 맞으며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이웃이고 친구다, 제발 다치게 하지 말라"


10월에는 고공농성이 이어졌고 외벽 철거 날에는 팔짱을 낀 시민들이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극장은 철거됐습니다. 11월 12일 거리 행진에서 사람들은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날 철거에 반대한 시민 중 일부는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싶었는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모인 건 극장 보존을 위해서였지만 결국 지키고 싶은 건 '시민의 주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 말에서 '커먼즈'라는 활동의 핵심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연대 범위는 점점 넓어졌습니다. 치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포럼을 열고,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단위와 전국 케이블카 건설 반대 연대를 만나고,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에 힘을 보탰습니다. 극장 투쟁에서 인연이 닿은 동두천 성병관리소 보존 투쟁과도 연대했습니다.

 

활동도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우리, 다음 정치’ 강연과 소모임을 지원하는 ‘다양성 실험실’,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함께 논의하는 시민공론장 ‘로컬커넥트’를 열고, 지역 현안에 연대하며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극장탐사대’를 통해 우리만의 공간을 꿈꾸고, 원주 곳곳에서 커먼즈를 주제로 한 상영회 ‘커먼즈 시네마’를 열며 극장문화 애호가들과 만났습니다.


재판 결과도 이들의 승리였습니다. 원주시가 고발한 시민 가운데 24명이 업무방해와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2025년 8월 11일 1심이 24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2026년 4월 10일 2심도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검찰이 4월 17일까지 상고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재판부는 시민에게 공적 관심사인 철거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투쟁은 단판승부가 아닌 장기전


긴 싸움은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신 국장은 자신이 소진되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투쟁 기간에는 경제활동이 어려우니까요. 활동가 사이에서는 '존버가 답'이라는 말도 오가는데, 그는 존버보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걸 한번에 다 해내려 하면 스스로가 불타 없어져요."


싸워 보니 투쟁은 단판승부가 아니라 장기전이었습니다. 그는 세상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가 꼽은 또 하나는 자기에게 맞는 운동 방식을 찾는 일입니다. 남과 다른 방식을 택해도 운동을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동료를 믿고, 모든 걸 책임지려 하기보다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아카데미의친구들에서 활동하는 백송희 씨는 쉬지 않고 달릴 필요도, 혼자 짊어질 필요도 없다며 '거리두기 안의 마음두기'를 다짐으로 삼습니다. 최은지 대표는 출근해서 공간을 정돈하고, 퇴근 뒤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고, 활동가들과 밥을 먹습니다. 김소혜 씨는 아친이라는 존재가 그대로 인정되고, 실패가 실패로만 남지 않는 '안전한 실패'의 공간이라서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간을 지키는 활동에서 시민사회의 주체성 확장으로 


활동은 제도적 변화로도 이어졌습니다. 시장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 시정정책토론 조례를 바꾸었고,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 관련 법률 개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 국장은 이를 통해 시민사회의 활동이 실제 제도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사회의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아친이 공공재와 생태계의 연결성을 꾸준히 이야기하자, 지역 문화예술계의 비위나 고충처럼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알리는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 국장은 시민들이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할 때 힘을 얻습니다.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시민들이 찾아오면서 아친은 원주의 ‘대나무 숲’이 되었습니다. 어려울 때 서로 지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마음에는, 정작 자신들이 막막했을 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시민 주권을 위한 싸움은 기록으로 남아 새로운 활동의 참고 자료가 되었습니다. 극장 투쟁을 담은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무너지지 않는다》는 202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데 이어 2026년 3월 일본 다카사키영화제에서도 상영됐습니다. 한솔미 씨의 애니메이션 《환상극장》이 제작되었고,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도 만들어졌습니다.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과제들


극장이 철거된 자리에는 지붕 없는 작은 야외공연장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시의 응답은 확인되지 않았고, 2026년 9월 원주시가 전임 시장의 소송비 2천만 원을 공금으로 지원하기로 하자 아친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활동을 지속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공공이 독점해 온 결정권과 자원을 시민과 어떻게 나눌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조직 내부에서도 연대와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활동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함께 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원주만의 역사와 서사를 써 가기


신 국장은 극장을 잃은 자리에서 원주의 다음 모습을 떠올립니다. 원주에는 지역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극장을 사랑한 시민들이 모였으며, 이 싸움에 전국의 영화인들이 연대했다는 서사가 있습니다.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원주 옥상영화제 같은 행사가 그 위에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광주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있듯, 도시마다 고유한 역사와 서사를 만들어야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파트뿐인 신도시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합니다.

 

"스토리 없는 도시는 놀러 가고 싶지 않다"


원주라면 협동조합, 저항, 생명 존중의 역사를 원도심의 서사로 삼자는 제안입니다.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환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출생지를 따지기보다 지역에 진정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지역의 지속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죠.

 

비슷한 싸움을 하는 다른 지역 활동가들에게도 당부합니다. 운동에는 저마다 맞는 방식이 있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오래 활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단체 소개]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1963년에 문을 연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을 위해 모인 시민단체입니다. 문화민주주의와 다양성이 존중받는 지역과 공동체이고, 지역의 문화민주주의와 커먼즈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공공 예산에만 기대지 않는 자립적 플랫폼, 주민이 참여하는 정책과 시스템을 연구하는 일도 과제로 꼽습니다. 


[주요 연혁]   

 

시기

주요 내용

1963

원주 아카데미극장 개관

2015.11

문화극장 철거, 아카데미극장이 마지막 단관극장 건물로 남음

2016

보존 논의 시작: 시민 설문조사, 포럼, '아카데미로의 초대'

2020.04

원주시와 토지매매 협약 체결

2020.05~11

재생 시범사업 <안녕 아카데미>

2021

전국 54개 영화문화단체 보존 지지 성명, 문화재청장상 수상

2022.01

원주시가 극장 매입

2022.04~12

원탁회의 100인 토크, 정원 만들기, 기억교환소, 시민기록가, 아카데미 포럼 등 시민 프로그램

2023.02~03

시민들이 '아카데미의 친구들' 결성, 시정정책토론 청구 (반려)

2023.05~08

범시민연대 발족, 시민 대행진, 노란 텐트,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요청, 8월 8일 철거 현장 충돌, 8월 29일 새벽 용역 투입

2023.09

시청 앞 무기한 단식·노숙 농성, 개관 60주년 기념행사

2023.10

고공농성, 외벽 철거 날 팔짱 낀 시민들 연행, 극장 철거 (이후 24명 기소)

2023.11

11월 12일 거리 행진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

2024.01

후원의 날 '아카데미 너머', '올해의 독립영화인' 선정 (강원도민일보 보도)

2024.02~04

고소·고발당한 시민 지지 온라인 탄원 1,020명, 공동대표 체제 해산, 운영위원회 출범,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어워드 대상 (단체 게시)

2024.05

국민고발단 475명이 원주시장 고발(5.16), 다큐 <무너지지 않는다> 전주국제영화제 첫 상영

2024.07~10

임의단체 등록, 공식 발대식과 제1회 아카데미 예술제, 아름다운재단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선정

2025

'지금 우리, 다음 정치', 다양성 실험실, 극장탐사대 운영, 치악산 케이블카 포럼 등 커먼즈 연대

2025.08

철거 반대 시민 24명 1심 전원 무죄(8.11), 검찰 항소(8.18)

2026.03

일본 다카사키영화제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상영, 웹진 [아.친.소] 활동가 인터뷰와 커먼즈 칼럼 연재

2026.04

2심 무죄(4.10), 검찰 상고 포기로 무죄 확정(4.17), 시 사과 요구 성명(4.28)

2026.05~06

진상조사 요구 기자회견(5.27),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 공개(6.16)

2026.09

전임 시장 소송비 공금 지원 결정에 반발 성명 (9.15)

[관련 정보]   


academyfriends.kr (아카데미의친구들 공식 홈페이지) 
few-offer-626.notion.site/archive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 

academyfriend2023@gmail.com (아카데미의친구들 대표메일) 


#아카데미극장 #원주 #커먼즈 #시민주권 #지역운동 #문화민주주의

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X변화사례 아카이브 기획위원회
글 : 딴짓
사진 : 아카데미의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