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들은 모르는 방
매주 일요일 밤, 청소년만 아는 디스코드 서버에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도, 답장을 쓰는 사람도 모두 청소년입니다. 이렇게 쌓인 편지 461통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해와 자살, 학교폭력과 성범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디스코드 친목 서버 이용자 10명 중 6명이 최근 1년간 우울감이나 불안, 무기력을 겪었다고 답할 만큼 디스코드는 위태로운 공간이지만, 어른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누리안심다리는 두 청소년의 장난스러운 대화에서 출발해, 바로 이 '어른들이 모르는 방'에 청소년 스스로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스로 위기를 감당하는 청소년들
디스코드는 채팅과 음성통화, 화면공유가 가능한 SNS입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네이버 카페, 슬랙을 합쳐놓은 형태에 가깝습니다. 이 안에는 수많은 '서버'가 있고, 그 서버 대부분을 청소년과 청년이 직접 만들고 운영합니다. 기존의 다른 온라인 문화와 무슨 차이가 있냐고요?
기존의 상담기관과 청소년 구제기관은 대부분 오프라인이나, 흔히 알려진 '양지'의 SNS에서 활동합니다. 반면 디스코드의 청소년 커뮤니티는 어른들과 사회가 존재조차 잘 모르는, 청소년들만의 온라인 문화입니다. 언뜻 보면 자치적이어 바람직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벌어집니다. 온라인 괴롭힘부터 온라인 성범죄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N번방 사건과 최근의 스와팅(SWATting)* 사건입니다. 디스코드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이런 문제에 시달릴 뿐 아니라, 다양한 정서적 문제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내에서 형성된 가상국가와 같은 폐쇄적 권력 구조를 이용하여 허위 신고를 통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현실 세계에 피해를 주는 조직적 사이버 범죄

누리안심다리가 2025년 4월 디스코드 청소년 이용자 39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9%가 최근 1년간 우울감과 불안, 무기력감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습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청소년 우울감 경험률(27.7%)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기존의 상담·보호 체계가 닿지 않는 곳에서, 청소년들은 위기를 스스로 감당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회 청소년 구제기관과 청소년 커뮤니티를 잇는 ‘다리’
2025년 4월, 두 청소년이 누리안심다리를 만들었습니다. 가상관계중독 청소년 문제가 사이버 생태계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고, 그 문제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도 결국 청소년 당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해결해보자'는 단순한 의지가 단체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성인 상담사나 기관이 접근하기 어려운 디스코드라는 공간을, 그 공간을 매일 쓰는 청소년들이 직접 들여다보기로 한 것입니다. 단체명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누리소통망(SNS)에서 안심할 수 있도록, 사회의 청소년 구제기관과 청소년 커뮤니티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대표이사를 맡은 한승우 님을 중심으로, 지금은 2명의 청소년이 단체를 운영하고 12명의 청소년 자원봉사자와 7명의 전문 상담사가 함께하는 조직으로 자랐습니다. 성년의 전문성이 필요한 전문상담사 자리를 빼면, 나머지 구성원은 모두 만 9세에서 24세 사이 청소년입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 안다"는 슬로건을 조직 구조로 그대로 실현한 것이죠.
편지로, 뉴스레터로 다가가기
누리안심다리는 2025년 7월 13일 첫 호를 시작으로, 매주 일요일 디스코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세이프노트'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해왔습니다. 사이버 범죄 예방, 정서 회복, 사이버 활동과 관련된 콘텐츠를 다룹니다. 현재까지 62편을 발행했고, 지금까지 누적 조회수 6,600회(중복 제외), 구독자 133명을 모았습니다.
또 하나의 축은 2025년 10월 10일 시작한 '고민편지'입니다. 청소년들이 대면 상담이나 실시간 채팅 상담을 꺼린다는 점에 착안해, 고민을 편지 형태로 작성해 보내면 또래상담사나 전문상담사가 답장을 보내주는 방식입니다. 상담사는 시즌제로 모집합니다. 2026년 4월 제3기 누리상담사를 모집했고, 인원이 부족해 5월에 추가 모집까지 진행했습니다. 지원 조건은 만 14세부터 24세 사이 청소년으로, 성별과 학력은 보지 않습니다.
시스템도 세심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누리안심다리는 장난글 판별, 고위험군 판별, 상담사 배정과 같은 다양한 부분에 AI를 융합하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상담사의 관심 분야와 내담자의 고민글 내용을 비교 분석하여 가장 적절한 상담사에게 상담을 배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민편지 제출이 완료되면 뜨는 안내 메시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청소년과 청년이 이 고민편지를 이용해왔습니다.
낮은 문턱, 같은 눈높이
이들의 활동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부스트업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청소년이 청소년을 상담한다는 구조입니다. 또래상담사는 상담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겪어본' 사람입니다. 성인 전문가 중심의 기존 상담 체계가 닿지 못했던 눈높이를, 또래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 실시간 대화가 아니라 편지라는 형식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청소년들이 대면이나 실시간 채팅 상담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고, 그 부담을 없애는 형식으로 설계했습니다. 급하지 않게, 원할 때 쓰고 원할 때 받아볼 수 있는 편지는 고위험군 청소년들조차 마음을 열게 만드는 낮은 문턱이 됐습니다.
157건에서 461건이 되기까지
2025년 한 해 동안 고민편지에 답장한 건수는 157건, 이 중 58%인 91명이 고위험군 청소년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흐름은 2026년에도 이어져, 8월 15일 기준 누적 고민편지 접수는 461건으로 늘었고, 이 중 53%인 246건이 자해·자살·학교폭력·가정폭력·사이버폭력·성범죄와 관련된 고위험군 상담이었습니다. 자해 관련 키워드만 담긴 편지도 38건에 달했습니다.
누리안심다리 내부 상담 관리 대시보드에 표시된 상담 진행 통계
숫자 뒤에는 실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한 이용 청소년은 고민 편지에 대한 후기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글이 중구난방인데도 정성스럽게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털어내니 후련해요."
지금까지 500명이 넘는 청소년이 도움을 받았고, 고민편지 만족도는 4.6점(5점 만점), 상담을 받은 뒤 심리적 부담이 긍정적으로 전환됐다고 답한 비율은 80.7%, 고민 해결률은 82.7%, 다시 이용하고 싶다는 재이용 의향률은 90.4%에 달합니다.
청소년으로만 이루어진 조직이라는 것
이 단체의 강점은 곧 과제이기도 합니다. 전문상담사를 제외한 전 구성원이 만 9세에서 24세 사이 청소년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은 "청소년은 청소년이 안다"는 슬로건을 가장 정직하게 구현하는 방식이지만, 운영진과 자원봉사자가 성장하며 학업이나 진로를 이유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함께 안고 있는 구조입니다. 세이프노트의 완독률과 오픈율이 아직 20~30%대에 머무르는 것도, 콘텐츠가 실제로 얼마나 가닿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할 지점입니다. 무엇보다, 접수 편지의 절반 이상이 고위험군이라는 사실은 이 단체가 감당하기 무거울 수 있습니다.

발굴에서 연계로, 무게중심을 옮기다
누리안심다리가 보여준 접근은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청소년들이 실제로 모이는 공간이 어디인지 먼저 찾고, 그 공간의 언어와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 이 방식은 디스코드를 넘어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음지'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 모델입니다.

단체는 2026년을 '발굴'의 해로 정하고, AI 기술을 활용해 고위험군뿐 아니라 잠재적 위험군 청소년까지 먼저 찾아 나서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발굴한 청소년을 상위 지원기관으로 잇는 '연계'로 무게중심을 옮길 계획입니다.
[단체 소개]
누리안심다리는 "청소년은 청소년이 안다"는 슬로건 아래, 디스코드 등 가상관계 중심 SNS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주도 비영리단체입니다. '가상관계중독 청소년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상'을 비전으로, 이들을 발굴해 사회와 연결하고 안전한 보호와 성장을 지원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안전, 투명성, 존중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며,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가진 채 방치되는 아동·청소년·청년을 구제하고 각종 사이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사이버아웃리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연혁]
시기 | 주요 내용 |
2025.4 | 디스코드 청소년 이용자 대상 자체 설문조사 실시 (n=390) |
2025.4 | 청소년 2명의 대화에서 출발, 단체 결성 |
2025.7.13 | '세이프노트' 뉴스레터 첫 발행 |
2025.10.10 | '고민편지' 사업 시작 |
2025년 하반기 | 아산나눔재단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도전트랙 선정 |
2026.1.26 | 2025년 연차보고서 발행 |
2026.4~5 | 제3기 누리상담사 모집·추가모집 |
2026.8.15 | 누적 고민편지 461건 접수, 수혜 청소년 500명 돌파 |
[관련 정보]
nurisafe.org (누리안심다리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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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X변화사례 기획위원회 글 : 딴짓 사진 : 누리안심다리, 오픈 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