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립을 개인의 문제로 모는 사회
고민정거장은 2025년에 만들어진 비영리단체입니다. 고립을 겪어 본 안예슬 대표와 고립 청년을 현장에서 지원해 온 박지예 이사가 함께 시작했죠. 고립 청년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밖으로 안 나와?”
고민정거장은 이 질문의 방향성을 개인에서 사회로, 제도로 바꾸려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시기, 가족과 한집에서 떠날 수 없는 형편, 의지할 곳을 찾기 어려운 동네, 몇 달짜리 사업으로 끊기는 지원 같은 조건이 겹치면 누구든 고립에 처할 수 있으니까요. 고민정거장은 서울연결처방, 서울청년센터 성북, 서울청년기지개센터 등 다양한 기관과 고립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기록을 모아 고립청년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청년 54만 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19~34세 청년은 약 54만 명입니다. 같은 연령대의 5% 정도입니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쉬었음' 청년은 2024년 기준 46만 명입니다. 고립청년과 쉬었음 청년의 문제는 ‘일하기 싫어하는 애들’로 치부되기 쉽지만 고립 청년 열 명 중 여덟 명은 일을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인 거죠.

하지만 사회로 나서는 길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신고도 상담도 일어나지 않아서 지원 체계가 이 청년들을 먼저 찾기가 어렵습니다. 안예슬 대표는 말합니다.
“특히 여성 청년들은 더 눈에 띄지 않아요. 고립이라고 하면 방에 틀어박힌 남성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요. 또 여성은 집안일과 돌봄을 맡고 있어서 '집에서 뭔가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해요. 같은 상태여도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갈리는 거죠.”
안 대표도 보이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2년 가까이 집에서 낮밤이 바뀐 생활을 했습니다. 무기력할 때면 하루 종일 TV를 켜 두었습니다. 이후 취업을 했지만 일하던 조직을 나오게 되면서 두 번째 고립이 왔습니다.
첫 번째 고립은 가족과 함께 살 때 왔지만, 두 번째 고립은 혼자 지낼 때 오며 좀 더 심각해졌습니다. 식사와 수면 시간이 불규칙해지면서 몸도 상했죠. 그는 고립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정거장 단체는 말합니다.
“고립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어요.”

고립은 나약한 개인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그런 위치에 있게 만드는 사회와 시스템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민정거장은 이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립을 겪은 사람과 지원하던 사람
안예슬 대표는 고립을 겪은 청년 당사자입니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엮어 에세이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를 쓰기도 했죠. 그러나 그는 당사자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지원하는 활동가이기도 했으니까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팀장으로 일하며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책 제목에 대한 답이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냐고요. 저는 ‘당장은 괜찮다’라고 말합니다. 이후에 세상의 생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면 되니까요.”
머무는 곳이 아니라 거쳐 가는 곳
정거장은 머무르는 공간이 아닌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임시 휴식처입니다. 그래서 이들도 이름을 ‘고민정거장’으로 지었습니다. 청년들이 잠깐 들러 쉬고 다음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도록요. 안대표는 청년을 위한 안전한 공간은 필요하지만, 편안한 공간에만 너무 오래 있으면 오히려 발이 묶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복 그 자체보다 삶의 방향을 고민할 시간과 계기를 만드는 것이 이 단체의 목표가 됐습니다.

이들은 주로 고립 청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이들은 독립을 물리적, 정서적, 관계적, 일상적. 이 네 영역으로 나눠 지원합니다. 서울시복지재단의 서울연결처방 공모사업으로 '고립 청년 자기목적 찾기 프로젝트'를 운영할 때는 고립 청년이 심리적으로 자신만의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프로그램 ‘사회생활연습실’에서는 오랜 고립 끝에 사회로 나오는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계단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문턱 낮추기’에 있습니다. 지원 사업이지만 참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임의 규칙도 주최측에서 정하는 게 아니라 참여자들이 정하죠.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함께 정한 '우리들의 약속'에는 나이를 묻지 않고 서로 존댓말을 쓰기도 들어 있습니다. 문턱을 낮추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성북구 '동네생활연구소 한평'에서 운영하는 '커피 한잔 할래요?'도 그렇죠. 예약 없이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가는 방식입니다. 어떤 날은 아무도 오지 않고, 또 어떤 날은 많은 청년들이 오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몇 명이 왔는가’하는 성과가 아니라 ‘언제든 와도 되는 공간이 열려 있다’라는 걸 고립 청년들에게 알려 심리적 안정을 주고 아침에 일어날 가벼운 동기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립 청년이 사회로 나왔을 때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실용적인 부분도 지원합니다. 임대차계약서를 같이 읽어보고,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함께 탐방하고, 사회에서 겪을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연습도 해 봅니다.
개인의 속도에 맞추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기
고민정거장의 활동에서 눈여겨 볼 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하는 기획입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흔히 ‘참여자 몇 명’, ‘만족도 몇 점’ 따위의 성과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고립 청년에게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거나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맞지 않습니다. 하여 고민정거장은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늦더라도 참여하면 환영해주고, 답변이 짧아도 다음 말이 이어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말로 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프로그램 중 워크시트를 쓰게 만들고, 좁은 공간에만 머물던 청년을 위해 외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기획합니다. 독립연습실은 센터 안에만 머물지 않고 미술관, 도서관, 작은도서관을 돌기도 합니다. 방에서 나오는 연습이 곧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또한 방에서 나온 사람이 쉬고 갈 장소가 동네에 있는지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둘째는 현실의 장벽을 프로그램 안으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독립연습실의 제목은 "독립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어!"였습니다. 청년들이 의지가 있어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곤란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를 정서적 독립과 물리적 독립으로 나누어 지원했죠. 가족과의 정서적 거리두기를 연습해 보기도 하고, 혼자 요리를 해보는 과정을 통해 식생활 독립을 훈련해 보기도 했습니다. 임대차 계약서를 살펴보는 방법을 배우거나, 다양한 주거의 형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죠.

셋째는 운영하는 사람의 위치입니다. 고립을 겪은 당사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진행한다는 것이 단체의 방식입니다. 안 대표는 대학원 수업 한 번을 들으면 회복에 이틀에서 사흘이 걸리던 시기를 겪었고, 일주일에 대여섯 번 누워 있으면서 하루 한 시간 글을 쓴 경험도 있었습니다. 저녁 8시에 놀아 달라고 조르는 고양이가 하루를 구분해 주었을 뿐이죠. 안 대표는 참여자의 지각과 결석이 이해된다고 말합니다. 겪어본 사람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숫자가 아니라 사례로 보는 결과
고민정거장이 만든 변화는 가시적이지 않지만 구체적입니다. 한 번은 첫 세 회차 내내 한 시간 넘게 늦던 참여자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내용도 잘 따라오지 못했죠.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지각이 줄었고, 태도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에 단어 하나로만 답하던 참여자도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사람과 친해지며 더 적극적 활동가로 변했습니다.

서울연결처방 프로그램에서는 첫 만남에서 눈을 거의 맞추지 못하던 참여자가 다른 사람의 발언에 반응하고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그램 후 상담을 받아 보겠다는 뜻을 비춘 참여자도 많았습니다. 재단을 통해 연결된 한 청년은 프로그램의 다른 참여자와 이야기하는 사이 눈맞춤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후 지역 종합사회복지관 담당자와 연결되어 새로운 네트워크를 찾게 되기도 했죠.
프로그램 한 번으로는 풀리지 않는 구조
고민정거장은 고립 청년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로 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립과 은둔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고립의 문제는 청년에서 끊이지 않는데 이제까지의 고립 지원은 주로 중년 남성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고민정거장은 1:1에서 소규모, 중규모로 넓혀 가는 단계 설계, 낮은 강도에서 중간 강도로의 이동, 운영자 모임과 사례 공유, 사후 모임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확장
고민정거장은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같은 일을 다른 기관이 할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핵심 가치에 '체계화'가 들어 있는 이유입니다. 2026년에 낸 '고민정거장 프로그램 매뉴얼'에는 현장에서 확인한 프로그램 여섯 가지(커피 한 잔 할래요?, 소소약속, 사회생활 로그인, 내일쓰기, 독립연습실, 사회생활 연습실)가 담겨 있고, 고립 청년 사업을 준비하는 기관과 실무자를 대상으로 교육도 합니다. 서울청년기지개센터, 경기도북부청년센터, 평택지역자활센터 등이 그 대상이었죠.

자문도 같은 맥락입니다. 안 대표는 대통령 비서실 청년미래자문단(2025~2026)과 경기도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운영위원으로 현장에서 본 빈틈을 정책 쪽에 전합니다.
다른 단체로 고민정거장의 방식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과정 중심의 문화가 단순히 ‘결과 없어도 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고립 청년의 문제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 오는 사람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작은 문, 일정한 모임,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이 필수적으로 함께 되어야 합니다.
[단체 소개]
고민정거장은 2025년 2월 25일 설립된 비영리 임의단체입니다. 슬로건은 '고립을 지나, 다음 고민으로 나아가는 정거장'이고, 비전은 고립 청년이 스스로를 지지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전환의 기회를 얻는 사회입니다. 현장 기반, 체계화, 주체적 전환을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주요 연혁]
시기 | 주요 내용 |
2016~2021 | 안예슬 대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사업2팀장(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사업 등) |
2023.10 | 안예슬 대표 에세이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 출간 |
2025.02 | 비영리 임의단체 고민정거장 설립 |
2025.04~11 | 서울연결처방 '고립 청년 자기목적 찾기 프로젝트': 소소약속, 내일쓰기, 커피 한잔 할래요?, 사회생활연습실 운영 |
2025 07~08 | 서울청년센터 성북 '성북청년 사회생활 로그인' 운영 |
2025.10~11 | 서울청년기지개센터 '독립연습실' 10회 운영(노원) |
2025~2026 | 안예슬 대표, 대통령 비서실 청년미래자문단 자문위원 |
2026 06 | 프로그램 매뉴얼 발행(프로그램 6종), 경계선 지능 청년 지원 포럼 관련 활동(서울청년센터 성북과 공동 주관) |
2026.07~08 | 서울청년센터 성북 '청년센터로 출근' 강의, 서울청년기지개센터 실무자 기초교육 |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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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X변화사례 아카이브 기획위원회 글 : 딴짓 사진 : 고민정거장, 오픈 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