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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작성자 서울공익활동지원센터 등록일 2025-11-25 조회수 45
활동직무 사업운영 활동분야 경제/정치/행정
자료출처 개인 자료형태 문서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신 명 호(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우리 각자가 사는 일상의 세계는 미시(微視), 즉 아주 작은 영역의 세계다. 여기서 우리는 ‘집’이나 ‘동네’ 같은 구체적 장소의 공간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간다. 관계 맺고 교류하는 사람들도 김아무개, 최아무개 등 특정한 인물들이며, 그들로 이루어지는 공동체 역시 매우 구체적이다. 이곳의 시간 흐름은 비교적 빠르다. 


반면, 그보다 훨씬 큰 단위의 ‘사회’, ‘국가’, ‘지구촌’ 등을 거시(巨視) 세계라 하는데, 이는 개인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추상적 영역이다. 시간의 단위도 시대, 세기 등으로 몹시 길 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변화도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만큼 더디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사회’를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그 존재를 확인한 적이 없다. 그냥 ‘사회’란 개인보다 엄청 높은 차원에서 실재(實在)한다고 막연히 가정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미시 세계에서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벌이는 조직적 행동들이 마침내 거시 세계의 웅장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미시 세계에서의 주관적 활동들이 거시 세계의 구조적 변화와 연결되리라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220여 년 전에 로버트 오언(R. Owen)도 협동촌을 건설하는 미시적 활동을 통해, 영국 사회 전체가 “새로운 도덕 세계”로 바뀌는 거시적 변화를 도모했던 거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빈곤에 대한 대책을 묻는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그는 ‘내가 뉴라나크에서 한 것처럼 전국에 협동촌을 많이 만들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가 협동촌을 건설하면서 한 일은 그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의 원리와 가치를 작은 공동체 마을에 담아 실천하는 것이었다. 뉴라나크의 노동자들은 공동소유의 공장에서 함께 생산하면서 노동의 주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그들은 깨끗하고 위생적인 주거와 편의시설을 누렸으며 공동소비 시스템을 통해 소비의 평등을 이룩했다. 아동의 강제노동이 만연하던 시절에 뉴라나크의 아이들은 무료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오언이 꿈꾸었던 “새로운 도덕 세계”의 원리들이 작은 협동촌 안에서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  


그러나 협동촌 건설이라는 미시적 운동을 통해서 영국 사회 전체가 바뀌는 거시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언의 생각은 지나치게 이상적(혹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일부 그의 제자들은 노선을 이탈했다. 그렇게 해서 협동촌 운동은 협동조합 운동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으려 했던 운동은 자본제적 시장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생존하는 활동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미시 세계에서의 운동이 거시 세계의 거대한 변화를 불러오리라는 기대는 그 후에도 번번이 좌절되었다. 대표적 변혁운동 이론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Marxism)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에서 노동자를 의식화하고 조직화해서 계급 투쟁이 고양되면 대규모 혁명 주체가 형성되고 마침내 자본주의의 붕괴와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이라는 거대한 변혁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대체로 이런 예측은 빗나갔다. 


이 같은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된다. 미시 세계에서의 목적의식적인 운동이 확산되고 거세져서 그 결과로 거시 세계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대안적인 경제체제를 만들자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고 해서, 그 운동의 의도와 목표대로 자본주의 사회가 모습을 바꾸어간 예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오늘날의 복잡계 이론1)은 ‘세계의 구성 요소들은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상호작용을 주고받은 결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거시적인 새로운 질서와 현상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또 ‘사회’란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세상 만물들의 네트워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라투르(B. Latour) 같은 학자는, 설사 어떤 인간 행위자의 의도와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다른 인간 및 비인간 행위자들과 불가피하게 네트워크로 얽혀 있기 때문에 오롯이 자기의 의도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흔히 실증주의 과학관에서 당연시하는 자연과 사회, 주체와 객체, 미시와 거시, 구조와 행위 등의 이분법적 인식론이 잘못됐다며 부정한다. 


그리하여 이상의 이론과 사상들을 종합해 보면, 어떤 경우에도 미래 사회는 예측할 수 없으며 결코 인간 행위자들이 의지와 목표를 가지고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글의 첫머리를 세상을 ‘미시’와 ‘거시’로 나누는 이분법으로 시작했지만, 만약 이런 이분법적 개념이 사람들이 머리로 생각해 낸 허구에 불과하다면 ‘미시 세계의 움직임이 거시 세계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사회운동론은 실재하지 않는 관념의 산물들을 가지고 우리의 희망을 섞어 일방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인 셈이다. 

 


장황하게 과학철학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벌이는 사회적경제 활동이 언젠가 자본주의 체제를 새로운 경제체제로 환골탈태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마치 과학적 사실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회적경제는 신자유주의의, 혹은 시장자본주의의 대안체제”라거나, “실업과 빈곤,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정책”이라는 등의 언설은 미시 세계의 활동이 거시 세계의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기초한 근거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오언의 협동촌 운동을 다시 생각해 보자. 오언은 작은 협동촌 안에 그가 꿈꾸는 새로운 세계의 철학과 운영 원리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 협동촌의 구성원들은 우애와 평등의 정신으로 작동하는 공동체 안에서 보다 행복해진 삶을 구가했다. 그것을 본 많은 이들이 오언을 따라 이상적인 공동체 실험을 계속했다. 그런 공동체들이 새로이 생겨난 만큼, 그곳에서 변화된 삶을 누리는 이들이 늘어난 만큼, 세상은 과거에 비해 더 좋게 변화하고 발전한 것이다. 비록 오언이 애초에 소망했던 것처럼 온 세상이, 또는 영국 사회 전체가 단박에, 혁명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지만, 협동촌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경험한 변화만큼, 그리고 그 운동의 세례를 받아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 사람들의 숫자만큼 세상은 바뀐 것이다. 


사회적경제 운동 역시 하나의 작은 사회적경제 조직 안에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의 원리와 원칙을 담으려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큰 변화에 기여하게 된다. 사회적경제 기업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고, 평등과 호혜를 존중하는 원칙이 그 조직의 작동 원리가 되도록 애쓴다. 모두가 평등한 민주 세상을 소망하기 때문에 작은 사회적경제 기업은 철저히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창시자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협동조합의 공약에서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추구한다는 목표가 한시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 이 목적을 위해서는 단위 협동조합들이 이룩한 성과가 크건 작건, 협동조합주의자들은 전체 경제적 ․ 사회적 질서가 노동자들의 위엄과 노동에 따른 요구에 기초하여 조직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반(反)보수주의자로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2)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된다. ‘우리가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서 추구하는 목표는 전체 사회가 노동자의 권익과 평등이 보장되는 새로운 질서의 체제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협동조합 안에 그런 질서가 구현되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전체 사회의 그런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수가 증가하기만 하면 새로운 사회 질서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협동조합 안에서 그 새 질서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부단히 경주돼야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협동조합’을 ‘사회적경제’란 단어로 바꾸어도 똑같이 성립한다. 사회적경제 조직이 늘어난다고 약탈적인 자본주의의 체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새로운 대안 체제의 원리를, 바로 우리가 운영하는 작은 조직 안에서 실현했을 때, 세상의 좌표는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한 발짝 더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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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라질 열대우림에 사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회오리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소위 ‘나비 효과’의 비유는 흔히 복잡계 이론의 설명 예시로 유명하다. 초기 조건의 미세한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증폭의 과정을 거쳐 엄청난 파급 효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2) 화이트 & 화이트(2012),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역사비평사, 3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