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로고

정보·자료

[사회적경제] 왜 사회적경제에서 협동과 연대가 잘 안 일어날까?

작성자 서울공익활동지원센터 등록일 2025-09-23 조회수 386
활동직무 사업운영 활동분야 경제/정치/행정
자료출처 기관/단체 자료형태 문서

요즘 '사회적 경제'라는 말을 자주 접하지만,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신명호 소장이 사회적경제의 개념부터 역사, 현황을 연재합니다.

 

1.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l): 개념 세우기
2.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ll): 2000년 이전까지의 협동조합 또는 사회적경제
3.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lll): 2000년 이후의 사회적경제
4.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사회적경제 이야기
5. 왜 사회적경제에서 협동과 연대가 잘 안 일어날까?
6.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왜 사회적경제에서 협동과 연대가 잘 안 일어날까?

 

신 명 호(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사회적경제는 다른 말로 하면 협동과 연대의 경제다. 19세기 유럽에서 싹이 틀 때부터 그것은 호혜의 공동체적 질서가 무너져 가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 운동이었다. 그래서 협력과 연대성은 사회적경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그런데 ‘정작 사회적경제에 협동과 연대가 없다’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들린다. 물론, 이건 다소 과장된 언사다. 약간의 과장을 걷어내고 다시금 해석하면, 우리가 사회적경제에 대해서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기대하는 협동과 연대가 실제로는 원활하지 않다는 고백이다. 


지자체 단위의 “○○사회적경제협의회” 같은 네트워크 조직들이 적잖이 존재하지만, 행정기관 상대로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느슨한 회의체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다. 네트워크답게 참여 기업들이 상호거래를 하거나 공동사업 또는 협업을 통해서 연대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왜 그럴까?


그래서 잘되는 네트워크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시 광진구의 “(사회적협동조합)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이하 “광사넷”)에 대해 사례연구1)를 했다. 성공적인 운영의 비결 혹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 홈페이지 ⓒhttp://www.gwang4.net/

 

1) 집합행동의 딜레마와 신뢰 


일찍이 집합행동의 딜레마를 다룬 경제학자들2)은, ‘합리적 개인들에게는 협력과 연대의 결과로 미래에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올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공동의 집단적 목표를 위해 행동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라고 단언하였다. 다시 말해서, 상부상조하고 협동하자는 제안이 논리적으로는 모두에게 유익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돌아올 편익은 미래의 막연하고 불확실한 약속인 반면, 현재 지불해야 할 네트워크의 회비와 시간의 지출, 회원 기업의 제품을 사줘야 하는 비용 등은 당장 높은 거래비용을 발생시키는 불리한 거래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자신이 베푸는 호혜성(reciprocity)이 장차 언제, 누구로부터 보상받게 될지 불확실한 속에서는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협동하고 연대하기 위해 모인 사회적경제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호혜의 규칙과 약속을 안 지키거나 게을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네트워크를 결성하면서 연대를 위한 규정과 규칙 같은 ‘제도’를 만들었지만,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도 자체가 이행되지 않고 헛도는 국면에 처하는 것이다.

 

 

2) 광사넷의 성공적 작동 원리 


광사넷은 그 네트워크를 특징짓는 여러 가지 제도3)들을 갖고 있다. ①민주적 논의를 위한 회의 체계 및 조직 기구, ②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각종 규정, ③상호거래 제도, ④협동기금 제도, ⑤공동사업의 관행, ⑥공동이용 서비스의 공급 체계, ⑦다양한 비공식 모임의 운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이 처음부터 원활하게 작동했던 건 아니다. 예컨대, 광사넷의 출범과 함께 회원사끼리 서로의 재화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구매해 주는 상호거래제를 도입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실적이 없다가 2015년에 첫 거래가 일어났고, 현재는 35개 회원사 간에 4억 원이 넘는 거래가 일어난다.


광사넷 사례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협동과 연대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신뢰’라는 요소가 선행적으로 구축되어야 하고, 또한 신뢰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업되고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루만(N. Luhmann)의 신뢰 이론에 따르면 신뢰는 크게 개인적 신뢰(personal trust)와 시스템적 신뢰(system trust)로 구분되는데, 광사넷의 사례에서는 개인적 신뢰가 충분히 쌓이고 깊어지면 더 이상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계산하지 않는 비타산적(非打算的) 국면으로의 전환, 즉 이해타산의 논리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한 약속을 믿어보는 쪽으로의 태도 변화가 일어남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뢰는 인지적 기반뿐 아니라 감정적 기반 위에 구축되는데, 친밀함이라는 감정적 요소는 신뢰 형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광사넷이 남다르게 꾸려온 각종 비공식 모임과 대화는 대면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매우 의도적인 집합적 노력이었다. 


네트워크의 회원들이 개인적 정체성을 벗고 타산적 생각을 지양하게 되자 그들이 실질적으로 제도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그럼으로써 제도는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다. 조직가 P씨는 말한다.

 

 

“그 (개인 간의) 신뢰가 그룹의 신뢰로 확산되는 건 시간이 좀 걸렸던 거 같아요. 저는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만나고 얘기 들어주고 하니까 … 관계 형성이나 신뢰는 어느 정도 됐는데 기업 간의 신뢰는 조금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우리가 매달 모여서 회의하고 끝나고 나서 꼭 술 먹고 하는데 … 안면을 트고 그때부터 상호거래가 조금씩 되기 시작했어요. … 저는 그게 친밀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Designed by rawpixel.com ⓒ Freepik

 

상호거래는 설사 회원사의 물건 품질이 조금 떨어지거나 가격이 싸지 않더라도 무조건 구매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해관계를 따지게 되면 결코 참여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손해를 보더라도 물건을 사준다’라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이 제도는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비타산적 국면으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광사넷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해서 회원사들의 컨소시엄이 사업을 공동 수주하는 관행이 만들어지면서, 회원사들은 이것이 단독으로 응찰하는 것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고 수행 품질도 좋아지는 매우 이로운 방식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네트워크의 제도들은 광사넷에 배태된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서 광사넷 회원사만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한 자원인 것이다. 


이제 광사넷의 회원 기업들은 네트워크 제도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 협동과 연대라는 이념적 가치를 위해서 억지로 행하는 의무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실현되는 과정임을 경험한다. 
광사넷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조직과 자신을 일체화하는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회의 출석률과 제도에의 참여율이 높아지는데, 이런 과정에서는 네트워크 자원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경제적 효과와 더불어, 공동체에의 소속감과 ‘우리(we) 의식’이 한층 더 강화되는 사회적 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광사넷에는 광사넷만의 특징적인 조직 문화가 형성되었다. 광사넷 조직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요 구성원 간의 대면적 상호작용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계는 조직과 사업이 커지면서 생기기 마련인 불화와 갈등의 소지를 완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상의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 광사넷의 성공적 작동 원리  


협력을 위한 장치인 사회적경제 네트워크에서 함께 약속하고 만든 규범과 제도들이 작동하지 않고 멈춰 서 있는 경우가 많다. ‘협동을 택했을 때 따르는 장기적인 순이익이 단기적인 지배적 전략을 따랐을 경우 기대되는 순이익보다 크다’라는 확신, 즉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참여자들에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는 협동과 연대를 위한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신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작업을 통해서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

1) 보다 자세한 내용은 졸고 “사회적경제가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는 법”, 「동향과전망」 통권 124호(2025년 여름호), 289-322쪽을 참조하시라. 

2) Mancur Olson(1965),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등.

3) 여기서 제도란 명문화된 규칙이나 규정, 규범 등의 형식적 제도와 조직 문화나 사회적 관습 등의 비형식적 제도를 아우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