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회적경제는 이따금씩 민주적 운영에 실패하는가?
신 명 호(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
사회적경제의 본질은 ‘돈의 조직’이 아니라 ‘사람의 조직’이라는 데 있다. 사람의 가치를 가장 우선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관계는 평등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는다’가 아니라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해야 옳다. 평등과 공정이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평등 ⓒfreepik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 더 나아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의 주인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부른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회적경제 조직이라면 마땅히 이 같은 원리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따금 사회적경제 조직은 민주적 운영에 실패한다. 조직의 중요한 결정이 한두 사람의 유력한 인물에 의해 좌우되고, 민주주의를 위한 각종 회의체는 그냥 들러리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진다. 분명 협동조합 그룹인데 지역 조직을 해산하고 조합의 자산을 다른 데로 넘기는 중차대한 결정이 창립자 한 사람에 의해 내려진다. 평소 운영에 관여하지 못했던 조합원들이 뒤늦게 항의하고 소송도 걸어보지만 이미 기차가 떠난 뒤다. 실무자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고 직원에게 불리한 인사 결정이 일방적으로 경영진에 의해 내려지기도 한다.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사회적경제 기업이라고 해서, 영리 회사와는 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입사했던 청년들이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실망해서 조직을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적경제가 추구해야 할 민주적 운영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막스 베버(Max Weber)는 실제 현실에서는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지만, 다양한 현상들 가운데 핵심적인 특징을 뽑아내 이상적으로 조합한 것을 ‘이상형’(혹은 ‘이념형’, ideal type)이라 불렀다. 이상적인 기독교인은 ‘교회에 열심히 나갈 뿐 아니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를 정도로 겸손하게 선행을 베푸는 착한 사람’이다. 우리는 교회에 열심인 기독교인을 보면 이 같은 유형의 착한 사람일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의 기독교인 개개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사회적경제 조직이 철저히 따를 것으로 기대하는 민주주의 원칙이란 것도 일종의 이상형이다.
사회적경제에 관해서 착각을 불러오는 사실 한 가지는, ‘사회적경제는 조직이 생겨나는 순간부터 인간 존중과 민주주의의 원칙이 저절로 작동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조직이 채택하고 있는 이상적인 원리가 그대로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 이런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현실의 결과는 조직의 원리나 이념이 아니라 바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칭 협동조합 전문가라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인이고 주식회사처럼 주주의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므로 구조적으로 노동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노조)도 필요 없다.”
과연 사실일까?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틀린 얘기다. 노동자협동조합 안에 노조가 설립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고, 노조가 필요해지는 구체적인 이유도 여러 가지다.
첫째, 노동자협동조합도 자본제 시장에서 생존하는 기업인지라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등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경영진이 내리는 결정이 노동자 조합원들의 이익과 상충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수 있다.
둘째, 같은 노동자라도 관리직 경영자와 평조합원 사이에는 권한, 보상, 정보의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지위와 보수 등에서 노동자 조합원들 사이에 계층적 간극이 벌어짐으로써 평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필요해진다.
셋째, 비공식적 권력자를 용인하는 조직문화가 싹트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카리스마를 가진 창업자나 조합원 그룹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제 사례들이 있다.
넷째, 평조합원을 대표하는 대의 제도가 잘 운영되지 않으면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조합원들이 생길 수 있다.
이상의 이유 등으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협동조합에도 더러 노조가 필요해진다.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불가피한, 긍정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사회적경제의 원리상, 이론적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제도를 맹신할 게 아니다. 현실에서 그 원리와 이론들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협동조합처럼 이론적으로는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구조에서도 현실에서는 실패를 일으키는 변수와 상황, 조건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사회적경제 조직이 예외 없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역시 이론적으로 처방하자면,
①조합원 참여 활성화, ②투명한 정보 공개와 의사소통, ③의사결정 과정의 민주화, ④리더십과 권한의 균형, ⑤갈등 해결 메커니즘 마련 등을 얼마든지 길게 나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중요함을 몰라서 실패가 일어나는 게 아니다. 평소 이런 운영 원칙들이 지켜지고 잘 이행되고 있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성찰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과연 내가 좋은 부모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라는 말이 있다. “나는 좋은 부모”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방심하는 순간, 좋은 부모의 모습으로부터 천리만리 멀어지니 조심하라는 경구다.
“우리는 사회적경제 조직이니까 당연히 사람을 존중하고 평등과 공정의 정신으로 운영하므로 문제가 없다”라고 자신하지 말라. 조직 내외의 이해관계자들 면면을 살피면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과연 그러한지를 항상 되돌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