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CSR’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많은 질문과 제안, 의견들 속에서 CSR의 의미는 지금도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쟁점을 가로지르며, 답하기에도 무척 어려운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의 생각들이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어떤 CSR’ 캠페인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접하던 중, 한 질문에 눈이 갔습니다.
“기업에서 하는 사회공익적 활동(ESG, CSR, CSV, 사회공헌 등)의 대상(수행 주체)이 꼭 비영리단체이거나 개인이어야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기업의 공익활동을 ‘기부’에 한정할 필요가 있는가? 공익활동의 대상이 꼭 비영리단체일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 설명도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공익활동을 하는 것이라면, 그 방식은 기부이든 투자이든 모두 가능한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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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제 해결과 기업활동
여러 가지 차원의 쟁점이 있는 질문입니다. 우선 ‘사회문제 해결’의 개념부터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은 대기업이 된 여러 기업이 태동하던 시기, 한국의 창업가들은 창업의 취지를 ‘사업보국(사업을 통해 나라에 기여한다)’이라 표현하곤 했습니다. 사업을 일으키고, 잘 경영하는 것이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는 인식입니다.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순환시키며, 세금을 잘 내는 모든 활동이 일종의 공헌이라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연구개발도 일상화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 이 당시의 창업가들은 이제 막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나라의 상황에서 기업 활동의 유지 존속 그 자체가 사회문제 해결이라고 인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라면 기업활동 그 자체가 사회공헌입니다. 이런 생각과 CSV(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는 다른 걸까요? 혹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와 대기업은 사실상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기업인 걸까요?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어디에서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pixaby.com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고려해 봐야 할 것 중 하나는, 어디에 서서 이 생각을 하느냐입니다. 같은 대상을 관찰하더라도 우리의 눈높이가 서울 어느 골목길에 있을 때, 산 위에 있을 때, 달에 있을 때 보게 되는 풍경들이 확연히 다르고, 우리의 생각도 달라집니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더 넓은 세계가 조망되게 마련이고, 작은 차이는 점점 발견하기 어려워집니다.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아주 높은 곳에 올라선다면, 정부나 기업이나 국민이 모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이 경우 GDP를 통해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총량의 증가 속에서 발견되는 항목 간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GDP는 증가하고 있지만 특정 산업이나 지역이 도태되고 있다든가, 누군가는 소득이 줄어들어 고통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다시 새로운 풍경이 보입니다. 한 지역에서도 빈곤과 부가 동시에 대물림되고, 같은 연령에서 다양한 차이로 인한 적대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질서가 사실은 갈등과 혼돈의 현상 유지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문제와 기업활동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어디에 서서 생각해야 할 것인가가 여러 사람의 고민입니다. 어디에 설 것인가를 쉽게 ‘세계관’이라고 통칭해 보겠습니다.
■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계관
기업을 설명하는 다양한 세계관 중,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라는 세계관이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기업의 경영은 재무적 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재무적 흐름과 함께 다양한 영향 관계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기업 활동입니다. 당장 원재료를 소싱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결정 사항이나 활동은 원재료의 생산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원재료인 광물을 얻기 위해 분쟁 지역 무장 세력의 자금원이 될 수 있는 구매를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행히 국제사회에서는 분쟁광물의 사용을 제한하고, 책임 있는 광물 소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 역시 이러한 노력에 함께 할 책임이 있습니다. 원재료 소싱만이 아닙니다.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 유통하는 전 과정에서 영향과 책임이 발생합니다.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의사결정이나 활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영향을 식별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모두를 인정하며 긍정적인 영향은 키우고, 부정적인 영향은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이 어렵습니다.
사회적책임의 세계관 ⓒ저자 작성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고용을 증대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는 세계관에서는, 이 모든 활동은 기업의 매출이라는 지표에 의해 설명됩니다. 일반적으로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면 기업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계관 안에서는 좋은 제품이 왜 좋은 제품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이 우수하다든가 가격이 저렴하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이 제품의 밸류체인 전반에서 어떤 우려와 위험들이 상존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개선되고 있는지가 모두 설명되어야 합니다.
소비자에게 제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건전한 판단을 무력화하거나 기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는지, 기업이 실제 활동보다 과잉된 언어를 활용해 소비자의 기대를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고용증대 못지않게 기업의 관리 영역 안에서 안전사고의 예방, 발생 시 대응, 후속 조치 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책임’입니다. 즉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기업은 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거나 절차적으로 더 많은 합의를 거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이 어렵습니다.
사회적 책임 세계관 속에서 사회공헌은 기업이 다양하게 책임이 있는 이해관계자 중 특히 지역사회에 주목합니다. 기업이 주주나 투자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책임을 사회공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기업이 주주나 투자자에게 가지는 책임은 사회공헌보다는 주주가치제고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지역사회는 기업의 사업장 입지를 포함해 제품과 서비스의 도달 범위, 기업의 전략상 선점 지역 등 기업의 영향이 발생하는 다양한 경계를 의미합니다. 기업은 지역사회에 다양한 책임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인재를 채용하고, 환경 보호에 기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활동과 함께 사회공헌도 요구받습니다. 사회공헌의 시작은 기업의 책임과 전략, 이해관계자의 기대입니다.
■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공헌
기업사회공헌이 사회문제 해결을 강조한 것은 최근의 경향입니다. 이전에는 전략적인 사회공헌이 트랜드였고, 그 이전에는 ‘불우이웃돕기’와 같은 자선이 중심이었습니다.
사회공헌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형식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자선이 중심이던 때에는 기부가 우선순위였고, 전략적인 사회공헌이 중심이던 시절에는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이 중요했습니다. 사회문제 해결이 목적으로 등장하면서 ‘협력’이 중요해졌습니다. 사회문제 해결은 기업이 단독으로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의 협력은 그 이전에 비해 더 다차원적이고 집합적입니다. 기업이나 비영리조직, 정부는 물론 다른 기업까지 협력의 대상입니다. 사회문제도 복잡하고, 그 해결은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협력의 틀 안에 성격이 다른 조직들이 다채롭게 인입되면서 사회공헌에 대한 인식도 재조정됩니다. 기업이나 비영리조직이 정의하던 사회공헌의 개념이 더 확장되거나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질문이 낯설지 않습니다.
“기업에서 하는 사회공익적 활동(ESG, CSR, CSV, 사회공헌 등)의 대상(수행 주체)이 꼭 비영리단체이거나 개인이어야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정답 없는 문제에 어서 오세요 ⓒpixabay.com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현실적인 답들은 있습니다.
-사회공헌의 대상, 수혜단체가 꼭 비영리단체여야 한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기업사회공헌은 대부분 기부금 처리 등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물론 비영리단체가 아니어도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만, 기업의 입장에서 친숙하고 효율적으로 기부금 처리를 받을 수 있는 파트너십으로 아직은 비영리단체가 가장 많은 경험과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지원은 현재에도 사회공헌의 한 부분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소셜 미션을 가진 기업에 대한 지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업 공간과 자금 지원이 있고, 공모전 등을 통한 사업비 지원, 기업의 임직원이 함께하는 프로보노 지원 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과 함께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지원도 비영리단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비영리단체는 기부금 처리도 가능하고, 공모전 등 지원사업의 운영관리도 가능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를 사회공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역시 시도되고 있습니다. 엔젤투자처럼 기업 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실패를 감수하는 투자는 오래전부터 기업의 사회공헌이 관심을 가졌던 영역입니다. 다만 ‘투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투자금의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보다는 지원에 가까운 투자가 기업에게는 더 익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슈가 있지만, 지분 취득과 관련해서는 사회공헌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기업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자’를 하더라도 이를 기부의 형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미션이 있는 기업이나 전문적으로 투자를 하는 조직에게 기부금을 제공하고, 이 조직이 투자금을 회수하면 다시 다른 기업에게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기업과 비영리조직의 목적은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과 비영리조직은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이에 따라 일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치도 다릅니다. 그래서 비영리조직과 (타)기업, 혹은 사회적기업에게 같은 효용을 기대하며 파트너십을 맺게 되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비영리조직은 기업에 비해 사회문제를 더 넓게, 구조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고, 해결에서도 기업에 비해 시민의 참여를 포함한 민주적 과정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원을 해주는 입장보다,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영리조직에 영리기업처럼 일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하거나 영리기업에게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기대한다면, 속도가 느리다거나 소통이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마치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접수(?)된 질문들을 보며, 기업의 사회공헌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심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해관계자는 변화하고 있고, 사회공헌 역시 이 흐름을 잘 알아야겠다는 문제의식도 생겼습니다. 답이 있다기보다는, 함께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원칙들을 재확인하며,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며 키워나가는 사회공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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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물음표,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어디에서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정답 없는 문제에 어서 오세요 - pixabay.com
사회책임의 세계관 - 저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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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이노소셜랩
작성 : 이노소셜랩
디자인 : 슬로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