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대체 어디 있을까
오늘도 도시 곳곳엔 수많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20층을 넘나드는 고층 아파트 한 동에 과연 몇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를 지나다 보면 새로 짓는 아파트와 이제 갓 지은 아파트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시나요?
<친절한 미분양>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청년 한 명이 아파트 벽을 기어오릅니다. 수상할 정도로 황량한 아파트 단지.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입니다. 분양이 다 되지 않은 아파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2017년 기준, 전국의 아파트는 천만 가구를 넘었습니다. 그중 빈집은 112만 채입니다. 현재 20대의 수는 400만에 못 미칩니다. 네 명이 한 채씩 공유해도 될 만하네요. 그런데 왜 지금의 청년들은 집이 아닌 곳에서 살아야 할까요?
남가좌동 민달팽이유니온
2010년에는 '청년주거협동조합 모두들'이 있었습니다. '모두들'은 "모여라 두더쥐들"의 줄임말입니다. 반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에서 살아보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모두들'은 부천에서 대안주거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3년 두더지하우스 1호를 시작으로 현재 5호까지 있습니다. 16명의 청년이 모여 집을 같이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단독주택을 빌려서 1인 1실의 쉐어하우스 형태로 운영합니다. 월세와 조합비를 포함해 한 달에 내야 할 돈은 20만 원에서 30만 원입니다. 이 비용이 가능한 것은 500만 원 이상을 출자한 연 3% 이상의 이자를 받는 공급자조합원과 '모두들'의 활동을 후원하는 후원자조합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민달팽이협동조합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주거취약 대학생을 선발해 주거보조금을 지급하는 민달팽이 주거 장학금이 첫 사업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대학 예산으로 대학 기숙사를 지어달라는 '응답하라 착한 기숙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동시에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를 발족하고 청년주거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청년의 주거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 나갔습니다.
함께주택 1호
비슷한 형태로는 마포구의 '함께주택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성미산 마을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택을 같이 공유하면서 조합원이 1인 1실을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달팽이주택과 모두하우스는 집을 빌려서 다시 구성원에게 빌려주는 형태이지만,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조합이 주택의 소유자라는 점이 다릅니다. 일반조합원과 거주조합원의 출자금, 입주자의 보증금으로 돈을 마련하고 서울시의 사회투자지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서울의 땅값과 집값은 만만치 않아서 공공지원금을 받아도 이를 어떻게 갚느냐가 관건입니다.
쉬지 않고 짓지만 계속 모자라는 집
현재 우리나라의 대안주택 실험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형태는 하나의 집을 얻어 공유하는 정도입니다. 그 역시 서울시의 경우 집값이 비싸 몇 백만 원씩 모아 영구적으로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집을 빌린다면 재개발이나 집주인의 요구에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택문제가 심각하다고 얘기한 것은 1, 2년 사이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방이래 계속되어 왔습니다. 모든 정권은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실제로 집도 많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집값은 우리의 삶 전반을 뒤흔드는 문제입니다. 부자가 아니고서야 90%의 국민들은 집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분배의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집은 계속 짓고 있고 집값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고, 누군가는 집을 수 십 채씩 가지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볕 한줌도 소중한 쪽방촌 내부 (사진 : 이하나)
주거 빈곤의 문제는 삶의 근간을 흔듭니다. 주거가 불안정하면 주민들이 한곳에서 오래 살지 못합니다.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은 지역에 정착하고 주도적인 삶을 꾸리기 어렵습니다. 정부의 수많은 복지지원정책도 집값이 들썩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주거문제로 인한 갈등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갈등부터 사회적 박탈감과 계층의 차별 등 땅을 딛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는 수두룩합니다.
주거빈곤은 집이 아닌 곳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거빈곤가구를 조사하는 항목을 보면, 전용 입식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이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201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1.6% 가구가 전용 부엌이 없는 곳에 살며, 전국의 4.5%가 전용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2009년 OECD 통계에 기준해 보면 기본위생시설이 없는 주택에 사는 가구가 많은 나라는 터키, 에스토니아, 칠레에 이어 한국입니다.
그래도 계속 가자 민달팽이들아
"왜냐하면 원룸은 현관문 밖에 나를 위한 다른 공간이 없잖아요. 쉐어하우스는 방문 밖으로 나가면 거실인 게 좋았어요. 기본적으로 주거 환경이 쾌적해졌어요. 그리고 이 동네에 나를 아는 사람이 족히 10명은 넘는다는 게 이렇게 안심되는 일인지 저도 처음 알았어요. 아는 사람이 늘고 가까이에 친한 사람이 있으니까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어요" - 쉐어하우스 달팽이집에서 생활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
2000년을 기점으로 서울의 1인 청년 가구 주거빈곤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서울의 1인 청년 가구 중 37.2%가 최저기준 미달 주택, 고시원, 옥탑방, 비닐하우스, 지하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만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민달팽이협동조합을 비롯한 청년주거를 고민하는 공익단체들은 끊임없이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처럼 계속해서 대안주택의 방향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 땅을 사는 것, 빌리는 것, 빌려서 나누는 것, 빌려서 쪼개 나누는 것,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현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청년주거를 넘어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벗어나 도시보다 넓은 땅에 집을 짓고 대 여섯 가구가 공동으로 생활하며 공동육아와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곳도 있습니다.
코멘트를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