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집을 나와 지하철로 가는 길, 5cm 짜리 턱이 있어도 휠체어 바퀴가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어찌하여 지하철역에 도착을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구는 저 멀리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2~3번 갈아타면 승강장에 도착합니다. 가득 찬 지하철 열차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없습니다. 1~2대의 열차를 그냥 보내고 나서야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일터가 있는 지하철역에 내립니다. 이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용 리프트가 있어서 버튼으로 조작하여 리프트에 휠체어를 올립니다. 리프트로 이 긴 계단을 오르는 길은 참 무섭습니다.
이동이 자유로운 비장애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가게의 턱, 다리를 올려야만 문을 열 수 있는 구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통로, 지하철의 계단, 경사로가 없는 건물의 입구, 비장애인들은 매일 다니는 곳이지만 장애인들에겐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이 허다합니다. 비단 휠체어 장애인에 대한 부분 만이 아닙니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은 여기저기 깨져 있기 마련이고요. 방향도 엉뚱하게 표시하는 곳이 많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시작
2001년 1월 22일,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합니다. 리프트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3급 장애인 여성 노인이었습니다. 리프트를 붙잡던 쇠줄이 끊어진 것입니다. 역무원들이 사고를 신고했지만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다가 두 번째 이송된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사고 현장을 급하게 수습해버려 진상 규명도 어려워졌습니다.
장애인용 리프트 추락사고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1999년 혜화역, 천호역, 영등포구청 역에서도 같은 사고가 잇달았으며 2001년 고속 터미널 환승센터에서도 같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휠체어 리프트의 노후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동일한 사건이 이어지는데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들도 동등한 이동권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2001년 사고 직후 ‘오이도역장애인수직형리프트추락참사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모인 시민단체들은 그 해 4월 ‘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출범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과정]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과 천막농성을 시작합니다. 휠체어 리프트 단 하나 때문에 수많은 장애인 단체들이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사회에 요청하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비장애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드는 시설과 길은 때론 장애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이 됩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 중인 장애인 단체 회원들
(사진제공 : 신권화정)
리프트는 구조상으로 한쪽 면에서 버튼을 눌러 역무원을 호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쪽 손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호출 자체가 어렵습니다. 역무원을 호출하면 도와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리프트 사고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2002년 발산역, 2003년 동대문운동장역, 2003년 동대문운동장역 환승통로, 2003년 송내역 등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사오니?
보건복지부, 건설교통부, 서울시, 어느 곳도 자기들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검토하겠다’는 무성의한 답변과 계속되는 사고에도 변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장애인 단체와 당사자들은 지하철 집단 승하차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약자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주로 찍던 故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를 보면 장애인들의 지하철 집단 승하차 시위 때 지하철역에 울려 퍼지던 방송이 들립니다.
“장애인 여러분의 집단 승하차로 인하여 열차가 많이 늦어져서 선량한 시민이 피해 보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시민들은 이 멘트를 듣고 용기를 얻었는지 장애인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장애인들의 시위로 자기의 일상이 깨졌다는 것에 분노합니다. 그렇다면 입장을 바꾸어, 장애인들의 일상은 어떠했을까요?
故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 스틸 컷
(출처 : 서울인권영화제)
집에서 나와 문턱을 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애물을 건너 수동휠체어로는 도저히 건널 수도 없는 짧은 신호등을 지나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계단이 펼쳐집니다. 장애인도 일을 하고 병원도 가고 외출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나올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모른 체 해왔습니다.
말과 글로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자 시민단체와 장애인 당사자들은 정부기관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정부기관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몸을 묶고, 비 오는 광화문에서 이동권을 외치고, 단식투쟁을 하고, 기어서 마포대교를 건넜습니다. 수백 명이 다치면서 얻어낸 결과, 서울시는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03년에는 ‘장애인콜택시’가 처음 운영되었고 2004년 건설교통부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을 제정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는 휠체어를 타고 탑승할 수 있도록 슬로프나 리프트가 탑재된 특수 제작 택시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인구에 대비하여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서울시에서만 이동이 어려운 지체, 뇌 병변 장애인이 22만 명이 넘습니다. 2003년부터 운영된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대수는 436대. 장애인 520명 당 1대 꼴입니다.
교통약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 통계
(서울시)
저상버스는 보도블록과 버스의 승강대 높이가 같아서 다리를 높이 올리지 않고도 편하게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 저상버스는 전국의 시내버스 중에서 19%에 불과합니다. (2016년 말), 게다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저상버스는 단 한 대도 없습니다. 저상버스 구입은 지자체 예산을 이유로 뒤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교통약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 도입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7년 또 신길역에서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늘어나면 결국 누가 혜택을 보게 될까요? 교통 약자는 장애인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무거운 짐을 든 사람, 그날따라 몸이 불편한 사람,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린아이의 보호자, 관절염이 있는 사람, 걸음이 느린 노인 등. 정작 혜택은 비장애인들에게 더 많이 돌아갑니다.
지하철 내 교통 약자 표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약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보여줍니다.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모두 함께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 커뮤니티매핑 살펴보기 : http://cmckorea.org/
▶ 장애인이동연대 : http://access.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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