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26. 마을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29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모두에게 크리스마스를


2018년 크리스마스 이브. 전국 곳곳에서 산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닙니다. 산타의 등에는 선물 보따리가 있고, 화려하게 장식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벌써 수년째 각 지역 어린이들을 찾아가는 몰래 산타들입니다. 몰래 산타가 처음 등장한 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좋은 옷을 입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기쁨을 나눠주고자 이웃들이 모여 산타 옷을 입고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1990년대쯤부터 시작되었다는 몰래 산타는 2010년을 넘기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활동을 이어가는 그 근본에는 지역아동센터가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찾아가는 몰래 산타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진 : 이하나)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자, 농사로 먹고 살 수 없는 농민들이 "말은 제주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며 봇짐을 싸 들고 서울로 왔습니다. 더 많은 일자리, 더 나은 생활이 보장될 거라는 믿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영향으로 준비되지 않은 도시에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 빈민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부모들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아이들은 방치되기 일쑤였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 수도와 화장실이 없는 집에서 다닥다닥 붙어 살던 사람들 틈에서 빈민운동이 시작됩니다. 종교단체와 대학생을 중심으로 어른이 없는 빈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모아 공부방을 운영합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밥을 먹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공부도 가르쳐주는 곳들이 생겨났습니다. 종교단체에서 아이들이 생활할 작은 공간을 내어주고 대학생들이 돌아가며 자원봉사로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마을 공부방은 가난한 동네의 작은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저 외면할 수 없어서 시작한 마을 공부방은 점차 지역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중심이 되어갔습니다.

 
1990년 3월, 성신여대 공부방 봉사 동아리

지역아동센터, 마을의 중심이 되다

치열한 사회 속에서 매일 매일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어른들에겐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경제활동이 중심이 되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소외되곤 했는데요, 게다가 그 당시에는 '될 놈은 알아서 잘 큰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등 모든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 밥그릇은 쥐고 태어난다는 인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쁜 어른들은 아이들의 하루를 방치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곳이 바로 공부방, 지금의 지역아동센터입니다.

"1988년에 처음 공부방을 시작했어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어머니들이 믿어주고, 쟤네들 뭐지?라며 신기해하면서 기대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삶을 나눠주고 하는 것들이 저를 붙들었어요. 아이들과 여름캠프 간다고 어머니들과 모이고 성탄잔치 해요, 우리 하면서 모이고, 그렇게 하니 어머니들도 덜 긴장했고요." - <'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김중미> 『김규항의 좌판』 中에서

1990년대에 1기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지역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철거지역에 영구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아파트로 주거지가 구분 되면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모여 살던 사람들이 낯선 곳으로 이동하고, 빈민운동은 악화되고 공부방의 열기도 사그라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방이 필요한 아이들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공부방을 운영하던 교육자들과 활동가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공부방연합회 활동가들은 1995년부터 3년 동안 워크숍과 연구를 통해 지역사회의 교육공동체로 거듭나기로 다짐합니다. 
 

1999년 난골공부방 모습을 담은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아파트 생활의 시작으로 공동체가 분화되고 곧이어 IMF구제금융시기의 빈곤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가족해체가 증가하면서 굶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숙제를 봐주고 잠시 돌봐주는 것뿐 아니라 밥부터 먹여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차 공부방으로 모여들었고 노동단체, 청년단체, 시민단체, 사회복지관과 종교기관, 각 계층에서 공부방을 늘려나갔습니다.

법 안으로 들어간 지역아동센터를 지켜주는 길 

할 일은 많았습니다. 서울지역은 공부방 협의회를 만들어 카톨릭공부방, 부스러기선교회, 개신교공부방연합회가 모여 전국 공부방연대모임을 만듭니다. 일부 공부방운영자들은 정부의 보조를 받게 되면 자율성과 자발성이 훼손될 것이라 우려해 참여를 미루기도 했습니다. 법제화에 찬성하고 지역 공부방 운영이 정부의 역할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지역아동센터'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법제화의 흐름]



2002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전국모임이 시작됩니다. 수차례의 걸친 토론회와 공청회를 걸쳐 드디어 법제화를 찬성하는 공부방 중심으로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를 발족합니다. 2004년 1월 29일,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시설로 정해졌고 아동복지법도 이에 맞춰 일부 변경합니다. 

지역아동센터는 법제화가 된 이후 매월 나라로부터 돈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공서비스기관이 되자 국가의 관리감독과 평가를 받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25평이상, 지하는 안되고, 아동복지시설로의 용도변경, 교사들의 자격, 안전한 시설에 전문적인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선생님들은 자기 자격증을 위해 따로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둥지를 틀었던 공부방의 월세가 올라가면 25평 이상의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한 지역아동센터는 갈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주민들에게 선보이는 아이들
(사진 : 이하나)

현재 전국에는 4천여 곳이 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습니다. 2016년 기준 약 11만명의 초중고생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월 기본운영비는 465만원. 시설장과 교사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습니다.
 
민간에서 시작된 운동이 공공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운영방안이 마련되어야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가 더욱 탄탄해질 것입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신권화정 (사단법인 시민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지역아동센터 찾아보기 : http://kko.to/qG2xy1AHo
같이툰 '센아이' : http://kko.to/g4giyQeTo
 지역아동센터 모금함 보러가기 : http://kko.to/hIHPy1eHB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29, 조회수 : 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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