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28.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은 어디서 왔을까?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23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고민 


1976년 1월, 부천의 작은 농장에서 3박 4일의 공부모임이 열렸습니다. 일본 애농회의 설립자 코타니준이치씨가 방문하여 '공해병(公害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40여 명의 사람들은 마지막 날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유기농'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입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정의가 없어 '공해'라는 말을 쓰던 때입니다.

 

이 농장은 무공해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 원경선 목사의 풀무원 농장입니다. 이 공부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1976년 생명의 농사를 실천하는 농민들의 모임 '정농회'를 시작합니다.

 

정농회는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경기도 양주에서 4만 평의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것이 어려운 농사 환경에서 척박해진 땅을 외면할 수 없던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고민, 무려 43년 전의 일입니다. 



1976년 부천 풀무원 농장에서 정농회가 탄생하던 날

(사진 : 정농회)


산업과 기술이 벅차게 발전하던 시절, 환경오염과 친환경이라는 단어도 낯설던 70년대에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는다 한들,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애써 가꾼 농작물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무농약, 유기농 재배는 더 많이 일하고 천천히 지켜보며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오염된 땅이 다시 생명력을 되찾기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3년 이상 땅을 보듬고 갈고 엎으며 땅이 되살아나길 기다렸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고 병충해를 견디고 퇴비를 만들고 토종 종자를 지키는 일까지, 쉽고 빠른 길을 포기하고 사람을 살리는 먹거리를 만드는 일은 지난했습니다. 


소비자들이 모인 생활협동조합의 출발


1980년대 들어서면서 정농회의 농사가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치면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다는 소문이 도시에 전해졌습니다. 삼삼오오 모였던 주민들이 어느덧 열 명 넘게 모여 친환경 먹거리를 구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초기에는 직접 연락을 해서 서울의 몇몇 주택가로 한꺼번에 배달을 했습니다. 새벽을 뚫고 달린 트럭이 주부들이 모인 곳에 농산물을 내려놨습니다. 택배가 없던 시절, 공동구매 방식으로 뜻이 맞는 주민들이 모여 함께 친환경 먹거리를 사며 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건강한 밥상을 위한 노력]




종교단체와 여성 단체, 농민단체와 신용협동조합을 중심으로 공동구매를 할 사람이 모였고 도시와 농촌의 직거래가 시작되었지만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규모로 살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환경 먹거리의 필요성을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공동구매를 시작한 사람들이 소비자 조직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지역별로 모여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1988년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이어서 한국여성민우회에서도 생활협동조합을 조직합니다. 강원도 원주지역의 한살림공동체 생산자들은 서울 제기동에 첫 매장을 엽니다. 이제 도시민의 밥상에도 친환경 먹거리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88년 한살림 공동체에 대한 신문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러나 초창기 생협은 빠르고 쉽게 재배하는 다른 농산물에 비해 비싸고 못생겨서 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웠습니다.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여 자란 농산물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모든 것들은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밥상이라는 인식을 같이 하지 않으면 쉽게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이 무렵, 농산물 시장은 산업화와 공장화로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기에 더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작은 생협들에 경영 적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생협은 고유의 농사법을 유지하되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물류와 유통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1997년 경기도와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꽤 성장한 생협들이 두레생협연합회를 설립합니다. 또한 수도권의 여섯 개 생협이 모여 아이쿱생협이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만들어진 작은 소비자 모임이 생활협동조합이 되고 이 생활협동조합들이 모여 더 큰 연대가 되었습니다. 작은 점들이 모여 몇 개의 선을 이루고 면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농수산물 수입이 자유로워지고 GMO유전자조작곡물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가족의 먹거리와 환경문제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 '다음을 지키는 엄마모임'을 만듭니다. '다음을 지키는 엄마모임'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에서 식품표시제 표기운동과 식품첨가물 바로 알기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밥상을 위해 

 

그동안 유기농과 친환경은 고급스럽고 비싼 것으로 오해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먹거리와 건강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자연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우는 과정입니다. 과도한 대량 생산과 생산량 증대를 위한 화학물질 살포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건강 모두를 해칩니다. 더 나아가서는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땅을 망칩니다. 결국 공장형 축산과 농약과 제초제로 오염된 농산물, 유전자를 조작한 먹거리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 한살림 조합원의 생활을 취재한 동아일보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생협은 작은 조직으로 시작했지만, 2016년 아이쿱생협의 경우 25만 명이 넘는 조합원과 5,500억 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한살림 또한 전국 22개 회원조합, 210개 매장, 58만 6천 명의 조합원이 함께 친환경 먹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생협은 초기의 목적대로 자연을 살리며, 자연이 고스란히 담기는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농부와 농업을 수호하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팥으로 만든 팥죽과 친환경 농산물로 만든 물김치 (사진 : 이하나)


우리나라의 생협운동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GMO로부터 안전한 밥상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친환경 먹거리는 비싸고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더 낮은 곳으로, 더 넓게 친환경 먹거리가 퍼져나가 먹거리로 차별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우리 농산물은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먹거리 자급률은 50% 정도입니다. 절반의 먹거리가 해외에서 들어옵니다. 생명이 살아있는 땅은 내 몸에 바로 영향을 끼칩니다. 이 땅의 먹거리를 지키고 입맛을 지키는 것은 생명의 근원과 나의 삶을 동시에 지켜줍니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은 어디서 왔나요? 나의 밥상이 먹거리불평등을 줄이고 우리의 미래를 지켜나갈 수 있는지 살펴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김순영 (환경정의 먹거리센터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한살림생협 : http://www.hansalim.or.kr/ 

바른농사 정농회 : http://cafe.daum.net/jeongnong

​두레생협 : http://dure-coop.or.kr/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3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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