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20. 안방의 비극을 멈추게 해주세요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09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원인불상의 폐 질환
2006년 5월, 정체불명의 폐 질환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슷한 형태의 폐 질환이었고 폐가 석회화되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명 정도 발생하던 질환으로, 단순 폐렴처럼 보였지만 폐렴이 아니었습니다. 항바이러스제와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환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2011년, 7명의 산모가 한꺼번에 서울아산병원에 같은 증상으로 입원하였고, 의사들이 먼저 이 문제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들은 임산부이거나, 어린아이와 그 엄마들이었습니다. 서울아산병원의 홍수종 교수는 동료 의사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상한 폐 질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다른 병원의 의사들로부터 답변이 오기 시작합니다. 홍수종 교수가 들은 것만 해도 80여 명이 넘었습니다. 의사들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기후변화와 계절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며 역학조사를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무차별공격의 시작
갓 태어난 젖먹이 아이들은 안방에서 엄마들이 품에 안고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기들을 보호하려고 난방을 하면 공기가 이내 건조해졌는데요. 이 때문에 습도 조절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를 구입했는데, 보통 가습기는 물을 자주 갈아줘도 물때가 끼는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1995년 가습기 살균제 신문광고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세균에 오염된 공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는 게 싫었던 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를 깨끗하게 쓸 수 있다는 가습기 살균제를 샀습니다. 가습기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기도 했고 마트에서는 1+1 행사도 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샀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자 폐가 딱딱해져 숨을 쉬기 어려워진 아기들과 엄마들이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판매되어 온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살균제는 갑자기 나타난 신제품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1994년 지금의 SK 케미컬의 전신인 유공에서 '가습기 메이트'라는 세계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까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계속 출시되고 판매되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의 종류는 43개로, 판매량만 해도 998만 개 이상이었습니다.
[1994년 이후 지속적으로 판매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2011년, 드디어 정부에서 뒤늦게 역학조사에 나섭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살인사건
학계의 소식이 알려지고 정부가 역학조사를 시작하면서 2012년, 드디어 가습기 살균제 판매 실태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이 사실이 공식화되기 전부터 정확한 조사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출발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 폐 질환을 환경에 의한 질병으로 규정하고 진실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정부의 계속되는 묵살과 고의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나중에서야 밝혀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모두들 책임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피해 신고자를 찾고 더 많은 시민단체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를 꾸렸습니다. 이 네트워크에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외에도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한국여성소비자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단체 '함께' 등이 함께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제품 하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죽었고 생명을 위협받았으며 생존자들은 평생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며 삶을 견뎌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도 언제 어디서 문제가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에 대한 히스토리]
모두가 함께 참여한 불매운동
많은 시민단체들은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 수 없다며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다는 불매운동이었습니다. 이 불매운동에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전국 네트워크'로 구성된 소비자단체와 환경운동단체들까지 수백 개의 단체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추궁하며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들을 펼쳤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동참한 덕분에 환경유해물질로 판명된 가습기 살균제와 화학 유해물질들이 대형마트에서 철수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 처벌 촉구 및 불매선언
(출처 : 환경운동연합)
'옥시'의 경우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미루다 결국 유엔까지 개입한 다음에야 사과를 했습니다.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거짓 연구결과를 낸 교수들도 체포되어 실형을 받았습니다. 각 대형마트들도 옥시 제품을 들여놓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시민들의 뜨거운 참여로 책임 있는 기업들이 잇달아 사과했고 제품 판매를 중단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던 옥시의 경우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유한회사를 새롭게 설립해 현재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옥시의 홈페이지에는 가습기 살균제 배상 안내 페이지가 여전히 걸려 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5년 이후에도 옥시 영국 본사 항의 방문을 비롯해 가습기 살균제 기업에 투자한 국민연금에 책임을 묻고 기업 처벌, 이를 방조한 정부 고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다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2017년 촛불시민혁명의 과정에서 가습기살군제와 416세월호 두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대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사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2018년 12월 11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개시되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의 중요한 부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자, 사망자가 발생했냐는 것입니다. 특조위는 자체적으로 피해규모의 진상조사에를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또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지원 종합포털을 운영해 건강피해를 검진하고 건강피해에 대한 지원금과 심리상담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 '2000일간의 기록' 사진전
(출처 : 환경운동연합)
이 재료를 만든 기업은 인체에 이렇게까지 악독한 해를 끼친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요? 기업 윤리 의식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비단 가습기 살균제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정의 등의 시민사회단체는 가습기 살균제뿐 아니라 치약, 생리대,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쓰는 모든 생활제품의 유해성을 밝혀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다시는 이런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여러분도 우리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활동에 함께 해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사회적참사 특조위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전화 1899-3183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09, 조회수 :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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