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27. 얼굴색으로 차별받지 않는 일터를 위해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23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사장님, 때리지 마세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배우는 말이 "때리지 마세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담처럼 들려서 개그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누군가에겐 현실입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폭행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 부당한 일을 공공연히 행하면서도 외국인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조건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렇게 불법 취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주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행위는 정당화되었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산업의 역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낮은 노동을 온몸으로 떠받치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 악순환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걸까요?
1995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5년, 네팔에서 온 산업 연수생들이 명동성당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빼앗은 여권을 돌려주고 똑같은 노동자로 대해 달라고 항의했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때리지 말고 욕하지 말라"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이주노동자들의 히스토리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며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자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일자리를 구하러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관광비자로 입국해 불법적으로 취업을 하곤 했는데, 이들이 한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렴한 노동비를 앞세운 한국 업체의 알선 덕분이었습니다.
"한국과 물가가 달라 절반의 임금만 줘도 된다. 비자를 빼앗으면 맘껏 부리고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아도 된다"
관리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노동 현장에서는 저렴한 인건비의 이주노동자를 선호했습니다.
1995년 네팔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외국인 연수생들을 관리하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는 불법 취업 외국인을 적발하기 위해 공장을 이탈한 외국인을 한 명씩 잡아오면 5만 원을 주겠다는 기상천외한 정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반면 같은 날인 1995년 2월 13일, 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정식 노동자로 인정하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사건 이후 네팔 출신 노동자들은 농성을 풀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농성을 계기로 국내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실태와 상황을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당사자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이 해결해주기보다,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노동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겨레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2000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완전쟁취와 이주, 취업의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본부'의 결성이 이뤄졌습니다. 이주노동자 중심의 리더십을 조직하고 한국 노동자와의 연대를 만들어 2002년 4월에 1천 명이 모여 최초의 대중적 이주노동자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불법 취업 알선 등의 문제를 해결하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핵심 인물들을 추방하려는 공권력의 폭압을 자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취업비자가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 의도치 않게 불법 취업과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를 제대로 단속해서 이주노동자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불법체류가 늘어나면 노동권 보호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
국제기구인 ILO와 UN에서는 한국 정부에게 이주노동자의 노조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법원은 쉽게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주노동자 노조의 간부들은 표적단속에 잡혀 추방되거나 감금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도 우리의 소중한 이웃입니다
최초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일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노동은 평등하며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산업 전반에 걸쳐 가장 악독한 노동의 현장에 배치됩니다. 사고의 위험에 가장 가까운 곳,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 성희롱과 폭행이 난무하는 곳에서 이 나라의 낮은 곳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조합 설립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시위
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약한 곳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비자의 종류, 국적과 성별, 직종과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는 일하는 행위를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십 년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허가를 차일피일 미뤄왔고, 이주노동자의 권익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적, 피부색, 성별, 비자 유무에 상관없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조합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노예의 쇠사슬이며
우리가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 이주노동조합 합법화 직후의 기자회견문 -
필요할 때는 불렀다가 필요 없어지면 내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와 상생할 수 있어야 우리도 세계와 상생할 수 있습니다. 노동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 때 자국민들의 노동권도 더 나아집니다.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는 보편적 노동의 윤리를 지켜나가는 사회를 기대합니다.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일하다 쓰러지지 않는 세상을 지켜나가는 단단한 노동연대에 힘을 보태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박진우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이주민방송 : http://www.mntv.net/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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