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까요? (1)
기획아카이브 / by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 작성일 : 2024.11.30 / 수정일 : 2024.11.30
“우리의 말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까요?” (1)
㈜모나드움 김숙희 공동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김숙희라고 합니다.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의 작은 빌라에서 20년째 살고 있으며, 남편과 스무살이 갓 넘어 입대한 아들을 하나 두고 있는 쉰 두 살의 평범한 서울시민입니다.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로부터 글을 요청 받게 된 것은 17년째 비폭력대화를 훈련하고 있고,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강사’ ‘마을기업 모나드움 공동대표’라는 역할로 비폭력대화를 통한 ‘공익’을 상상하고 추구하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담당자로부터 도착한 몇가지 질문들을 품고 무엇을 어찌 써야 할까 고민했는데, 요즘의 제 안부를 나누며 대화하듯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로부터 글을 요청 받게 된 것은 17년째 비폭력대화를 훈련하고 있고,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강사’ ‘마을기업 모나드움 공동대표’라는 역할로 비폭력대화를 통한 ‘공익’을 상상하고 추구하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담당자로부터 도착한 몇가지 질문들을 품고 무엇을 어찌 써야 할까 고민했는데, 요즘의 제 안부를 나누며 대화하듯 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제가 일상에서 하고 있는 작은 실천이 ‘따뜻한 호기심으로 안부를 듣고, 말하기’인데, 그러다 보면 도착해야 할 곳에 도착해 있더라구요.
“안녕하신가요? 지금 어떤 삶을 경험하고 계신가요?”
(출처 : 모나드움)
1. 왜 폭력 대화가 심화되고 있을까요?
비폭력대화를 공부하는 17년 동안 무수하게 저의 가족사를 돌아보았습니다. 태어나 처음 속한 첫 공동체 안에서 경험했던 상처가 결혼으로 형성된 두 번째 공동체에서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흘러가지 못한 과거의 어떤 경험들은 애도하고, 축하를 놓친 어떤 경험들은 감사하면서 매만지고 돌보다보니 이전에는 몰랐던 가슴 안쪽의 평화와 관계에서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강작가의 노벨상을 계기로 그 분의 다른 책들과 이런저런 관련 글을 보면서 제가 겪은 아픔과 고통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인류의 차원처럼 다가와 개인적 삶을 다시 뒤적이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이를 노벨상 선정 이유로 꼽았다지요.
‘역사적’ ‘트라우마’ ‘삶의 연약함’이라는 말에 이끌렸고, 제 개인의 아픔으로만 보았던 가족사를 인류의 폭력으로 인해 겪어온 고통, 그 역사적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생각을 확장해 가는 중입니다.
“저항소설로 접근하기보다 함께 아파한 소설”이라고 표현되었듯, 연민의 가치와 손잡고 인류의 슬픔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제 아버지는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전해져 지켜지고 있는 경상도 안동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광주 5·18이나 제주 4·3은 아니었지만 일제의 징용과 6.25를 겪고 살아남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을 겪었고,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만 했던 아버지 세상의 조건들을 다시 돌아보았고,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다른 시간들을 상상했습니다.
‘강해 보이기만 했던 아버지의 몸은 나의 아버지라는 역할 이전에 생명의 기본적인 욕구를 보장받지 못했을,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인 절망감, 무력감, 참담함의 고통들을 품고 있었겠구나. 그 고통이 긴 세월동안 표현되지 못한 채, 인정되거나 목격되지 못한 채 트라우마가 되어 꽁꽁 얼어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잠재되어 있던 아버지의 고통이 일상의 어떤 순간들을 만나면서 점화되어 폭발하고, 화염이 되어 타오르고, 그 불길 속에서 어린 아이였던 나의 평화도 그렇게 잠식되었구나..’
이런 생각들과 함께 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삶에 깊숙히 영향 받았던 저와 제 어머니의 삶 모두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강해 보이기만 했던 아버지의 몸은 나의 아버지라는 역할 이전에 생명의 기본적인 욕구를 보장받지 못했을,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인 절망감, 무력감, 참담함의 고통들을 품고 있었겠구나. 그 고통이 긴 세월동안 표현되지 못한 채, 인정되거나 목격되지 못한 채 트라우마가 되어 꽁꽁 얼어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잠재되어 있던 아버지의 고통이 일상의 어떤 순간들을 만나면서 점화되어 폭발하고, 화염이 되어 타오르고, 그 불길 속에서 어린 아이였던 나의 평화도 그렇게 잠식되었구나..’
이런 생각들과 함께 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삶에 깊숙히 영향 받았던 저와 제 어머니의 삶 모두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대량 폭력과 집단 학살의 심리학에 관해 연구해 온 Ervin Staub(어빈 스타우브)에 의하면 인간의 적대감과 공격성은 안전, 현실에 대한 이해, 효능감, 통제감, 긍정적 정체성, 자율성, 긍정적인 관계라는 기본적인 욕구가 좌절될 때 발달한다고 합니다.
폭력이 뭘까요?
말하다 보니 폭력은 ‘우리 깊은 인간성의 특질, 생명의 기본적인 욕구인 평화와 사랑, 존엄과 단절된 상태’로 만져지고 있는 중입니다.
왜 폭력대화가 심화되고 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습니다만, Ervin Staub(어빈 스타우브)의 말처럼 충족될 필요가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차별적 구조와 사회 문화적 조건속에서 좌절되고, 충족의 방식이 양극화되면서 자신의 고통을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말’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비폭력대화를 처음 개발한 Marshall B. Rosengerg(마셜 로젠버그)는 연민으로 서로 주고 받으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으면서, ‘무엇 때문에 우리는 본성인 연민으로부터 멀어져 서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는지, 이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 연민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연민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고 놀랐습니다.
그후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민이 우러나는 유대를 맺는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방법을 고안해 냈고, 그 접근방식을 비폭력대화라고 불렀습니다.
관계속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갈등을 낳고, 갈등은 무수히 작은 전쟁들을 불러옵니다. 국가간의 전쟁만큼은 아니어도 연민과 유대가 사라진 공동체에서 우리는 일상의 많은 것을 잃고 에너지는 소진되고, 괴롭습니다.
갈등을 확대시키고 전쟁이 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연민의 마음을 유지하며 협력의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는 새로운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언어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말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겠다”1)고 한 한강 작가의 마음에 깊이 동의하며, 폭력에서 평화로, 적대감에서 연민으로, 혐오에서 존엄으로 삶의 방향을 선회하는 저의 구체적인 실천이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고 계속 연습하는 일입니다.
2. 나로부터 시작하는 평화로운 대화하기 (1)_우리가 사용하는 폭력을 불러오는 자동적인 말을 알아차리세요
(이미지 제작 : 저자)
폭력적인 말이라고 하면 욕이나 혐오발언들이 떠오릅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폭력적인 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폭력대화라는 명칭에 고개를 갸웃하고, 배워야 할 필요에 대해 크게 동의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럼 우선 일상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는 말, 들리지 않는 혼잣말, 우리가 하고 있는 말들을 함께 펼쳐 볼까요?
오늘 아침 제가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한 말 들입니다. 어떤 말은 상대가 있었고, 어떤 말은 상대도 없는 혼잣말 입니다.
“그 사람은 인기가 많은데 나는 별로인가. 그 사람 요즘 약속도 지키지 않는데 아무래도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거야. 나에게만 이러나. 대범한 척이나 하면서 나는 내 앞가림 못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니까. 이게 바보지 뭐야. 그래서 엄마가 날더러 헛똑똑이라고 했지”
이 말을 하고 있는 내 몸에 주의를 두고 가만히 살펴보면 눈에는 힘이 들어가고, 입도 삐죽거리고, 가슴도 단단히 조여왔다가 쪼그라 들고, 어느 사이 몸은 시든 꽃처럼 쳐집니다. Marshall B. Rosengerg(마셜 로젠버그)는 이런 말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 분석하고 진단하는 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정상과 비정상, 시시비비를 구분하면서 무언가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말들입니다.
제 말들을 적어보니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어야 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하고, 무시 받으면 안되고, 자기 앞가림 잘 해야 하고, 똑똑해야 하고, 달라져야 하고..”같은 메시지가 보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어떤 ‘당연하다’가 있나요?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나요? 무엇이 맞고 무엇은 틀리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에게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요?
어떤 ‘당연하다’가 있나요?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나요? 무엇이 맞고 무엇은 틀리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에게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요?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만 하고, 지구를 지켜야만 하고 사랑해야만 하고, 친절해야만 하고, 세상을 바꿔야만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만 하고..’ 이렇게 살아야 괜찮은 삶, 정상인 삶인가요?
이 말은 한 생명에게 아픈 말입니다.
‘~이 옳으니 ~해야한다’는 말은, 불확실하고 흔들리고 유동적이고 모호하고 연약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특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옳다고 규정된 어떤 상태로 바꾸라고, 고치라고 강요하므로 폭력처럼 여겨집니다.
이 말은 한 생명에게 아픈 말입니다.
‘~이 옳으니 ~해야한다’는 말은, 불확실하고 흔들리고 유동적이고 모호하고 연약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특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옳다고 규정된 어떤 상태로 바꾸라고, 고치라고 강요하므로 폭력처럼 여겨집니다.
며칠 전 수업을 통해 듣게 된 청년의 듣기 힘든 말이 생각납니다.
“너는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야. 그래서 사회생활 제대로 하겠니. 밥을 그렇게 천천히 먹으면 어쩌냐. 빨리 고쳐라” 그렇게 타고난 것을 어떻게 하냐며 억울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공익의 공(公)은 ‘공평하다’나 ‘공변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고, ‘공변되다’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치우침 없이 존중하여 전체의 이익을 보살피는 일을 공익이라고 한다면, 삶의 어느 한 측면, 혹은 우리 자신의 어느 한 측면만을 맞거나 옳다고 하는 당신 내면의 말을 알아차리는 것도 공익의 구체적인 시작일 수 있을까요?
3. 나로부터 시작하는 평화로운 대화하기 (2)_내면의 말을 번역해 보세요.
(출처 : https://skolande.se/material/)
(출처 : VISFERA 비폭력대화 교구시리즈 – 욕구 지도 포스터)
Marshall B. Rosengerg(마셜 로젠버그)는 자신이 가진 깊은 신념들에 대해 말할 때 마다 항상 두 가지 주제를 언급했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에 기여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며, 둘째는, 영성과 사랑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더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공익활동은 내면의 깊은 영성과 사랑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많은 사람의 삶에 기여가 되어 기쁨을 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NVC(Nonviolent communication-비폭력대화)는 대화방법을 넘어서 실제로 우리의 영적인 면을 구현하려는 시도였고,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말로 영성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영성을 NVC에 통합하는 데 노력했다”는 마셜의 말에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마셜처럼, 당신처럼 저도 살고 싶은 세상이 있고 사회적 변화를 꿈꿉니다. 의식도 못하고 있는 내면화된 문화적인 조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영성에 따라 행동하고 싶어서 비폭력대화를 놓치않고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의 모습중에 제 의견에 맞지 않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보았고, 머릿속에는 이런 혼잣말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말하지 않지만 표정으로 말투로 그 에너지가 드러납니다.
‘너는 너만 생각하니. 네 마음에 안든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다른 사람들 수고하는 것 좀 보라구. 너는 그런 면이 문제야. 그만 좀 해’
판단하고 비난하고 강요하는 말과 함께 있는 동안 제 상태는 친구를 향해 열려 있기 보다 그 관계로부터 닫혀 있고 고립되어 있습니다.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진 그 친구는 순식간에 적군이 되었습니다.
친구 뿐 아니라 저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군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적군으로 대하는 저를 제 안쪽에서 자주 발견합니다.
공익을 꿈꾸는 제 본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거지요.
비폭력대화를 통해 제 말을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가로수인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털어내는 공무원들이 있었고, 그 곁을 지나가면서 이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지. ‘은행때문에 냄새나 죽겠어. 왜 이런 나무를 심어가지고. 그냥 잘라 버리지. 다른 나무 심으면 되잖아.’(관찰) 안타깝고 속상하다. (느낌)
왜냐하면 나는 한 그루의 나무에게도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거쳐왔을 시간과 수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 가치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 생명에 대해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욕구)’
비난의 말이 실제 품고 있던 숨은 진실, 제 영성은 생명, 존중, 따뜻함, 부드러움의 가치입니다.
그 가치가 뿌리가 되고, 거기로부터 피어나는 말과 행동을 고유한 예술 작품을 세상에 건네듯이 다시 창조할 수 있습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 행동하는 것을 진단하는 일에만 관심을 둘 때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삶을 의식할 수 없고,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만질 수가 없습니다. 행위만 남아 공허하고 무력한, 기계적인 삶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을지라도 분명히 우리 각자에게는 살고 싶은 삶의 가치들이 있습니다
비폭력대화는 일어난 일을 분석하거나 진단하는 대신 아주 중요한 질문을 선물로 보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느끼나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나요? 당신이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어 제안하고 싶은 행동이나 결정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나의 주의를 내면으로 초대하게 합니다.
이것이 비폭력대화의 급진적인 전환인데, 자극이 오는 곳, 밖을 향해 보내던 주의를 자기 안쪽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대화를 살펴보세요.
보이고 들리는 말과 행동을 분석하거나 진단하는 습관에 사로잡히는 대신 그 안에 담겨 있을 삶의 가치를 궁금해하며 가슴안으로 들어가세요. 당신 안의 깊은 인간성이자 영성과 연결된 일상, 내가 나로 제대로 서 있는 느낌을 갖는 일상으로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자기와 제대로 대화할 때 여유가 찾아오고 상대의 말도 번역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친구는 공무원들이 은행을 터는 모습을 볼 때 (관찰)
귀찮고 불편했나? 아니면 답답하거나 화가 났나? (느낌)
일상의 피곤함에 지쳐 있고, 이런 자신의 고단함이 배려되고 보살펴지기를 원했을까? 걸리는 것 없이 편하게 걷는 여유나 휴식을 원했을까?”
[비폭력대화를 공부할 수 있는 곳]
한국비폭력대화센터 https://www.krnvc.org/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https://www.krnvcedu.com/
모나드움 https://monadwomb.campaignus.me/
[참고]
비폭력대화, 마셜B. 로젠버그 지음 (한국NVC출판사)
비폭력대화NVC와 영성, 마셜B. 로젠버그 지음 (한국NVC출판사)
이미지 - 스웨덴 CNVC 인증트레이너 마리안고슬린 비폭력대화 교구
한국NVC출판사 감사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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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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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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