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다: 고독을 다루는 사회적 방식
현안과이슈 / by 나드 / 작성일 : 2024.09.30 / 수정일 : 2024.10.02



외로움 장관이 필요합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영국을 충격에 빠뜨리는 테러 사건이 일어난다. 영국 북부 노동자 가정 출신이자 인권활동가였던 노동당 의원 헬렌 조 콕스(Helen Jo Cox)가 자신의 선거구에서 한 극우주의자 남성에게 습격당해,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후 그가 생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던 사회적 고독 문제를 다루며 그를 기리는 조 콕스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위원회는 1년여에 걸친 조사와 연구 끝에 2017년 말 외로움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 인구 6,600만 명 중 약 900만 명에 달하는 성인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외로움의 양상이 함께 담겼다. 10대 청소년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꼈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들 10명 중 8명이 고립감을 호소했다.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이, 장애인은 절반에 달하는 사람이 고독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영국 적십자사는 영국 성인의 5분의 1 이상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이를 기반으로 조 콕스 위원회는 외로움 해소를 위한 다각적인 접근과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결국 이는 정부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보고서 발간으로부터 후 2018년 1월, 테레사 메이 전 총리의 주도로 영국 정부에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직위가 만들어졌다.

영국은 정부는 이렇게 신설된 고독부에 2,0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책정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 과정에 고독 수업을 넣을 것도 의결했다. 외로움이 단순히 지나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공의 이슈로 인식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얼마나 외로울까

고독부의 역할은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보건, 교육, 주택, 교통 등 다양한 정부 부처와 협력하여 통합적인 접근을 추진한다. 외로움의 원인과 해결책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고,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며,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과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일본은 2021년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세계 두 번째 고독 담당 장관을 세웠다. 2017년 일본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타인과의 대화 빈도가 ‘2주일에 한 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 중 15%는 65세 이상 독신 남성이었으며, 독신이자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2024년 9월, 대한민국 서울 한강의 야경

그렇다면 한국 국민들은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까? 지난 2월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가 최근 한 달 내에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월평균 소득이 낮거나 본인의 주관적 계층 인식이 ‘하’층인 경우, 1인 가구인 경우”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외로움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연결망이나 외로움을 해소할 방법에 대한 접근성은 “경제 상태와 가구 구성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외로움을 항상 또는 자주 느낀다는 응답은 성별이나 연령보다도, 돈을 비롯한 주관적 계층 인식과 가구 형태와 연관되어 있었다. 월평균 소득이 700만 원 이상인 응답자 중 상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은 15%였던 반면, 월평균 소득이 200만 원 미만인 응답자 중에서는 이러한 응답이 32%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는 특히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속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의 유무가 응답자의 외로움과 정적인 관계를 보였다.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는 94%가 감정을 나눌 사람이 있다고 답한 반면, 상시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자 중에서는 있다는 응답이 56%에 그쳤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외로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자명한 명제를 탐구해 온 심리학 연구자들은, 외로움이란 “사회적 몸에 가해지는 위협”이라고 지적한다. 타인과의 연결이 부족하거나 없다고 느낄 때 몸이 보내는 신호가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마치 영양소나 물이 부족할 때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외로움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숱하게 보고된 바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외로움은 ‘심장마비, 뇌졸중, 암, 우울증, 불안, 조기 사망’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된 소득과 사회적 관계망 또한 복잡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것이다.

✍️ 외로움 의제공론장 돌아보기 (링크)


2023년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가 주관한 시민 의제공론장의 주제는 다음의 다섯 가지였다. ‘아동권’, ‘외로움’, ‘순환경제’, ‘보행권’, ‘디지털 약자’. 이 중 직접적으로 권리와 경제를 다루는 다른 주제와 다르게, ‘외로움’은 다소 모호해 보일 수도 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공론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청년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참가자들이 각각의 테이블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털어놓고 대책을 논의했다. 감정을 개인의 영역으로 한정 짓거나, 이성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 외면할 때, 꺼내놓을 수 없는 외로움은 증폭된다.

이제 외로움을 논할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더는 의무가 아니라 한들, 마음의 거리까지 저절로 좁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절감을 넘어 연결감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시급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박민진, 김성아. (2022). 1인가구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및 정신건강 문제의 특성과 유형: 서울시 1인가구를 중심으로. 보건사회연구, 42(4), 127-141.

서영아. (2021, October 9). “외로움 인정하는 데서 고독탈출 시작”… 英, 봉사 등 구체 활동 권유[서영아의 100세 카페].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11008/109624468/1

임민경. (2019, December 19). 외로움의 의미는 알아차리기, 그리고 외로움이 시키는 것은 하지 않기. 내 삶의 심리학 mind.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08

최선아. (2024, July 7). [기획] 누가, 얼마나 외로운가? - 외로움 실태조사.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속의 여론. https://hrcopinion.co.kr/archives/29126

British Red Cross. (n.d.). How the British Red Cross is combating loneliness. Red Cross. https://www.redcross.org.uk/about-us/what-we-do/action-on-loneliness





작성자 : 나드 / 작성일 : 2024.09.30 / 수정일 : 2024.10.02 / 조회수 :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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