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어지러운 요즈음입니다. 전 세계인의 축제로 불리는 올림픽으로 고조된 분위기도 잠시, 美 글로벌 주식시장 폭락, 이스라엘-이란 전쟁 위기, 불볕더위로 대표되는 기후위기 지속 등등...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 듯합니다. 하루빨리 글로벌 위기가 진정되었으면 합니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지만, 최근 남아시아 지역의 가장 큰 화두는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이하 SAARC]" 회원국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폭력 시위 사태와 이에 따른 총리 사임-인도 도피입니다.
지난 7월 초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도로와 인터넷 등 기반 시설 운영 일시 중단은 물론, 공공기관과 일반 기업체도 임시 휴업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오후 6시 이후 야간 통행 금지령까지 내려져 사실상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황입니다.
특히 지난 4일에는 경찰과 반정부 시위대 간의 충돌이 격화하며 최소 90명이 숨졌습니다. 볼커 튀르크 UN인권최고대표사무소(UNOHCR) 대표는 "충격적인 폭력"을 중단하라며 방글라데시 정치인 및 보안군의 자제를 촉구했습니다(BBC). 결국 국제사회 및 시민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총리는 사임하고 국외로 도피하여 시위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300명 이상이 희생된 이번 시위에서 무엇이 시민들을 분노케 했고, 평화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졌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시위의 시작: 독립유공자 자녀 대상 공무원 할당제 부활
하시나 전 내각이 부활을 추진했던 공무원 할당제는 공직을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에게 30%, 여성과 소외지역 출신에게 각 10%씩 배분하는 제도입니다. 1972년 독립전쟁 이듬해 해당 제도를 도입했던 방글라데시는 공직의 56%가 할당제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는 통계와 비판이 일면서 해당 제도를 2018년 공식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6월 방글라데시 다카 고등법원이 할당제 폐지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흐릅니다. 대법원 역시 고등법원의 판결을 유지하기로 하며 시위는 시작되었습니다.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정책, 왜 학생들은 반대했을까요? 답은 방글라데시의 정치·경제 사정에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경제난 및 청년 인구 과잉으로 청년실업률이 17.5%에 달합니다(The Diplomat). 각계각층에서 취업시장 어렵다며 앞다퉈 말하는 우리나라의 24년 6월 청년실업률 6.2%인 걸 보면 방글라데시의 사정은 말 다했죠 (고용노동부). 그 때문에 매년 약 40만 명의 대학 졸업생 중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공직을 선호, 작디작은 3천 석을 놓고 경쟁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많지 않은 유공자 자녀들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는 게 무슨 말이냐는 시위대의 입장입니다.
또, 시위대는 할당제가 하시나 총리의 지지 세력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방글라데시에서 독립 유공자 후손들은 권력을 잡은 기득권입니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도 방글라데시 국부인 셰이크 무지바르 라흐만의 장녀입니다. 그녀의 정치적 측근, 참모진들 모두 아버지에게 협력한 독립운동가 친·인척 출신이고요. 하시나의 가장 큰 정적이자 제10대, 12대 총리를 역임한 칼레다 지아도 독립군 총사령관 출신, 전 대통령 지아우르 라흐만의 부인입니다. 그는 정치적 야망에서 하시나 가족을 암살한 자이기도 하고요 (조선비즈). 역사가 참 복잡하죠?
정리해 보면, 방글라데시 현대 정치를 양분하는 두 거물 모두 독립 유공자의 친·인척 출신이며, 현재 집권 중인 하시나라면 명확한 기준 없이 본인들 입맛에 맞는, 자당에 협력했던 후손들에게만 자리를 할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해당 정책에 반발한 것이죠. 부패로 가득 찬 기득권의 자리싸움이라는 겁니다.
시위의 격화: 하시나의 실언과 폭력 진압
보도에 따르면 하시나 총리는 학생들의 시위에 이들을 “반동분자,” “매국노”로 비유하며 강경 진압을 지시했습니다. 특히 7월 중순부터는 특수부대까지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했는데요. 이에 대법원은 다카고등법원의 결정 유예 및 5%로 할당제 축소를 지시하는 등 시위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JagranJosh). 하지만 총리의 사과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할당제 폐지 시위는 독재자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다카 AFP
당국은 시위대가 모이지 못하도록 야간 통행 금지령, 휴교령, 인터넷 차단까지 불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시위를 막을 순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시위를 지속하였습니다.
시위의 끝: 하시나 정권의 몰락과 도피
학생 시위가 이전에도 방글라데시에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때마다 하시나 정권은 강경 진압을 선택했습니다. 이번에도 “금방 그만두겠지”라고 계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학생들 외에 노동계와 문화계 등 각계가 시위에 동참했고, 제1야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이 시위대 지지 선언과 함께 이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Jacobin). 특히 지난달 시위에서는 정부 편에 섰던 군이 8월에 이르자“국민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하며 총리 관저 등 주요 시설을 시위대에게 열기 시작했습니다.
UN, 미 국무부 등 연이은 국제사회의 폭력 진압 규탄(한국경제)으로 압박을 느끼던 하시나 정권, 군의 시민 지지는 K.O. 선언과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8월 5일 오후 2시 30분(현지 시각) 하시나 총리는 전격 사임, 여동생과 함께 군용 헬기를 타고 도피를 선택했습니다. 총리 사임 소식 발표 직후 그간 차단되었던 인터넷망과 통행 금지령도 정상화되었죠.
이 가운데 방글라데시 육군 참모총장 와커-우즈 자만은 국영 TV를 통해 군이 임시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임시 정부 구성을 위해 대통령은 물론, 야당 및 시민사회와도 회담을 빠르게 진행하겠으며, 치안 안정화 외 군부의 직접 통치는 없을 것이라며 손을 그었습니다.
8일, 샤하부딘 대통령은 군부와 대학생 지도부와 협의해 과도정부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과도정부의 수반은 빈곤퇴치를 위한 마이크로파이낸스 개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함마드 유누스가 맡기로 했습니다. 유누스는 올해 초 노동법 위반죄로 처벌받는 등, 하시나 정권과 대립했던 인물입니다.
결론: 방글라데시는 어디로?
방글라데시는 이제 어디로 갈까요? 안타깝게도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정권 붕괴 이후 교도소 죄수 탈출, 야당 간 충돌, 하시나 정권과 밀접하다고 알려진 힌두교 소수민족 공격 등이 보고되고 있는 가운데(KBS 뉴스), 과도 정부가 어떻게 국면을 안정화하고 사안을 처리할지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국제사회와 방글라데시 시민사회의 상호 지지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정치적 혼란을 넘어 위기의 경제를 봉합하고, 선대부터 이어진 갈등 해결·사회적 화합을 위해 한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시기입니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총리의 사임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혹은 간판만 다른 또 다른 재앙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네팔에 살다 보니 같은 남아시아인 방글라데시 소식을 접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여기서는 뜨거운 감자인데, 한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관심이 적다면, 이스라엘-이란, 미국 대선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 환기하고파 금번 큐레이션을 기획했습니다.
독자분들이 이 글을 계기로 방글라데시의 미래에 관심을 두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금번 큐레이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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