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과 미니멀리즘의 상관관계, 그리고 실천방법
노션으로 보기(링크클릭)
우리는 기후위기시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곤 합니다. 채식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지요. 저는 이것이 소비자의 환경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정체성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소비하지 않는 생활양식을 들였습니다. 정크 비건과 업사이클링 제품 소비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소비가 누군가의 생계에 영향을 미치고, 나의 소비가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니 소비 사이에서 슬기롭고 싶습니다. 그동안 미니멀리즘에 관해 모은 이야기를 큐레이션 해드립니다.
1.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인가
미니멀리즘은 갖고 있는 자원을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것
2. 환경운동에서 미니멀리즘 생활양식이 필요한 이유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를 부추기는 우리의 일상적 생활패턴이 일상적 재난을 부추긴다. 우리의 일상은 재난과 연결되어 있다."
재난자본주의와 악(惡)의 일상성
"이 사태가 언제 끝날까?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역시 보통사람들, 즉 민중(생존자)의 열망이다. 수개월에 걸쳐 보기에도 흉한 마스크 얼굴, 타자를 잠재적 괴물 취급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우리는 한편으로 심신이 불쾌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K방역과 대처가 세계의 모범이라 칭송되는 바람에 일종의 사회적 정신분열을 겪었다. 그러나 아무리 칭찬과 주목을 받고 (그간 '헬조선'으로 바닥을 치던) 사회적 자존감이 회복되더라도, 우리 일상이 심하게 구겨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일상 복귀를 희구하는 것도 이해된다. 그러나 '예전처럼' 만나고,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만들고, 팔고, 사고, 쓰고 싶다? 그러나 이게 진정 뭘 뜻할까?
여기서 바로 그 '일상' 이란 결국 대량생산 - 대량유통 - 대량소비-대량폐기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의 이윤증식과 그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해온 우리의 생활패턴이다. 그리하여 어서 코로나 상황 속 사회적 거리두기나 '경제 마비'를 종식하고 또다시 대량생산 - 대량유통 - 대량소비 - 대량폐기의 경제 및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나 그린 뉴딜 같은 담론 역시 바로 이 근간을 그대로 둔 채, '디지털'로 재포장된, 자본의 새 상품이다.
그간 인류 역사는 농사를 시작한 신석기시대부터 따져도 1만 년이다. 그중 (지금처럼 자연과 인간을 대규모 파괴하는) 자본주의 삶의 양식은 길게 잡아도 600년, 짧게는 300년, 더 짧게는 100년 정도다. 1만 년 중 1% 내지 6%밖에 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시간이 수십억 년 된 지구를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했다. 악(惡)이 된 자본이다. 그러나 자본은 결코 저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한편으로 재산을 가진 부르주아들(시장과 국가권력 포함)이 자본운동을 주도하고, 다른 편으로 노동력을 팔아 먹고사는 노동계급이 고용을 통해 자본운동에 동조하기에 자본의 시스템이 영속된다. (출처: 녹색평론 173호, 한국형 뉴딜과 재난자본주의 중)
소비를 하며 삶의 능력이 퇴화된다.
-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 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 경제 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 어디서든,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공인된 전문가의 허가 없이 집을 짓거나 아픈 사람을 치료했다가는 법을 우습게 아는 겁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낼 자신감을 상실했다. (중략) 빈민가나 외진 시골에 사는 그들의 형제들은 여전히 집에서 아이를 낳을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출산 방식이 조만간 아이를 소홀히 다룬 혐의로 기소될 행위라는 걸 그들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립적인 여성에게도 현대의 전문가가 고안한 출산 방식이 손길을 뻗치면서 자율적 행위를 위한 조건, 그리고 열망과 능력은 점점 파괴되어 간다. 선진국에서 가난의 현대화는 전문가의 공언 없이는 아무리 자명한 것도 깨닫지 못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출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일리치
“자유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도록 사람을 보호하고, 권리는 상품에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
- 가격표가 붙지 않는 거래는 모조리 무시하는 산업사회는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었다. 매일매일 자신의 몸을 자동차와 전철에 가두고 자기 몸을 스스로 갉아먹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는 곳이 이 도시의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날마다 쏟아지는 물건과 명령이 내가 원치 않는 결과를 만들고, 그때마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차별과 무기력, 절망의 골이 더 깊어지는 세계이다. 주류 환경운동은 이런 추세를 더 부추겼다. 그들은 산업 기술에 있는 결함이나 기껏해야 기업이 생산 과정에서 저지른 착취에 주목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자연 자원의 고갈이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활 불편, 그리고 최종적 권력 이양이었다.
현대화된 가난이 주요하게 가난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으며 그 본성 또한 파악하기 어렵다. 일상 대화에서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발전이나 현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던 이들은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이제부터 그들은 시장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가져다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 없던 멕시코 오악사카 주 인디언이 지금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에 끌려간다. 이들에게 졸업장이란 자신들이 도시인보다 얼마나 열등한지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증서이다. 그나마 이 종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도시에 나가 빌딩 청소부 일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출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일리치)
우리의 문화에서 화석연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생활방식을 제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 요새 기후문제 때문에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 보면, 하루빨리 국가가 태양광 많이 보급하고, 풍력발전도 도입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주로 얘기하는데요,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입니까? 지금 특히 호남 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논밭에 태양광 패널들이 줄줄이 서 있습니다. 쌀농사 짓는 것보다 전기 생산해서 한전에 파는 쪽이 이익이 된다 이거죠. 우리 아까운 논밭들에 태양광 패널들이 쫙 깔려 있습니다. 그거 보면요, 저는 속이상해서 죽겠어요. 태양광 패널은 문제가 없습니까? 거기 들어가는 희토류, 독성물질이라는 걸 아셔야 됩니다. 게다가 그 자원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것도 고갈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의존한다고요? 풍력도 물론 어느 정도는 해야 되겠죠. 그렇지만 거기에다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풍력터빈으로 인한 공해도 엄청 납니다. 무수히 많은 새들이 죽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소음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해요. 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서울시를 포함해서 지금 환경도시라고 하는 도시들이, 전기차 보급이 몇 퍼센트니까 우수하다, 목표들 달성했다 이런 소리들을 합니다. 그 전기는 어디서 나옵니까. 어딘가에서 발전소를 돌려야 되잖아요. 그럼 수소차를 탈까요? 수소를 만들려고 해도 에너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답은 자동차를 버리는 거예요. 걷고, 어쩔 수 없으면 버스 타고 자전거 타고 다니라는 말이에요. 전기를 안 쓰는 생활이 해결책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전기를 안 쓰는 생활, 우리가 이미 해봤습니다. 지금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미국 다음이 우리나라예요. 미국은 전기라는 게 자연처럼 그냥 노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회입니다.
- 우리의 문화에서 화석연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생활방식을 제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계는 걷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동차, 통근 문화, 교외 주택지, 항공기, 거대한 선박운송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그리고 아마도 전기 철도를 운행할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난방, 요리, 냉장 그리고 요업(窯業)이나 금속 가공 등은 재생가능에너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가능한지 여부를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첫걸음은 우리 각자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필요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물론 이것이 궁극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교외라는 것을 없애고 중심지를 다변화하여 각 읍과 마을의 중심지가 거래와 여가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새로이 활기를 띠게 된 정착지들의 외곽에는 밭과 낙농장, 과수원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또 인간의 노동력이 석유를 대체하게 되면서 상당한 인구가 시골로 이동해야 할 것 이다. 석유의 힘으로 가능했던 대규모 농장들은 보기 좋게 인간적인 규모로 축소될 수 있고, 따라서 급진적인 토지개혁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현재 영국의 많은 소도시와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흩어져 살고 있지만, 석탄이나 철산지 인근에 건설된 산업도시들에는 그 지역에서 부양하기에는 너무 큰 인구가 몰려 있다. 그런데 그런 도시를 세우면서 만들어진 운하와 수로는 새로운, 덜 에너지 집약적인 교역의 틀을 확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은 암흑 속으로 내딛는 걸음이 아니다. 불과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이었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20세기 초까지 그리고 심지어 '선진' 경제에서도 배를 통한 교역은 사람들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다시 살려야 할 교역방식이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를 들어) 물레방아의 직접 견인형 방식이 발전용 수력 터빈보다 제조업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출처: 녹색평론 174호, 시스템에 갇힌 녹색운동)
우리는 우리의 난관을 대부분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우리의 경제생활에 이웃들의 재능, 독창성, 예술성을 다시 도입하여 보다 활기찬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다.
- 기후문제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개인이 생활방식을 바꿈으로써 해결에 기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나는 영국정부의 통계자료(2018년)를 제시하려고 한다. 이것을 보면 사실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실낱같은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은 개인과 가정이다.
기업·에너지 산업전략부(DBEIS)의 통계자료를 보면, 영국 에너지 소비의 부문별 비중은 운송 40%, 가정 24%, 산업 17%, 서비스 14%이다. 그런데 운송부문만을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가정 65%, 산업 21%, 서비스 14%이다. 이제 가정, 산업, 서비스 부문별로 각각 운송에 의한 에너지 소비를 포함시켜서 다시 계산하면, 가정 55%, 산업 25.4%, 서비스 19.6%가 된다.- 기업·에너지 산업전략부(DBEIS)의 통계자료를 보면, 영국 에너지 소비의 부문별 비중은 운송 40%, 가정 24%, 산업 17%, 서비스 14%이다. 그런데 운송부문만을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가정 65%, 산업 21%, 서비스 14%이다. 이제 가정, 산업, 서비스 부문별로 각각 운송에 의한 에너지 소비를 포함시켜서 다시 계산하면, 가정 55%, 산업 25.4%, 서비스 19.6%가 된다.
- 그러니까 각 가정이 총 에너지 소비에서 절반 이상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가정은 지출(소비)의 힘을 통해 다른 부문을 대단히 크게 통제할 수 있다. 정부나 기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통사람들(가정)에 의해서, (개인들의) 운송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개인들의) 지출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보통사람들은 전혀 무력하지 않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이 우리한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난관(우리가 소비를 통해 만들어낸 아마존, 테스코 등등)을 대부분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우리의 경제생활에 이웃들의 재능, 독창성, 예술성을 다시 도입하여 보다 활기찬 마을을 만들어갈 수 있다. 많은 경제활동은 지금도, 과거에도 항상 돈 없이 이루어졌다. 이것 역시 공동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정부, 기업, 은행은 영향력을 잃게 된다. (출처: 녹색평론 174호, 시스템에 갇힌 녹색운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 상품 의존도를 낮추는 두 번째 길은 시장이 절대적으로 지배 하는 이 시대의 막을 내리는 길이다. 사회적으로 절제의 윤리를 키워 인간이 스스로 행동하고 이를 통해 필요를 만족시키는 시대를 여는 길이다. 앞서 말한 '긴축경제'에서 긴축은 제도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그것을 개인이 받아들이도록 선포한 법령이다.
-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절제는 대중이 자신과 이웃의 만족을 위해서, 권력이 생산하는 상품의 최대 생산량을 파악하고 제한하는 사회적 차원의 미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생의 절제는 한 사회로 하여금 인간을 무력화하는 풍요로부터 개인의 사용가치를 보호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러한 사회적 보호하에서라면 비로소 현대적 도구 사용의 확산을 강조하는, 특색 있는 문화들이 다양하게 싹틀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하는 절제는 어떤 도구든 과다한 사용을 절제하기 때문에 도구의 소유자라 해도 권력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다. 자전거를 공동으로 소유하든 개인이 소유하든 본질적으로 도구로서 자전거에 깃들어 있는 공생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자전거 같은 상품이 여전히 산업 방식으로 대량 생산되어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며 다르게 평가될 것이다. 지금까지 상품은 설계자가 만든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선택에서 상품은 마치 천연자원이나 도구처럼 사람들이 저마다 속한 공동체가 자립하도록 사용가치를 만드는 데 쓰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길로 가기 위해서는 가치를 바라보는 태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현대 경제의 중심에는 일반 소비재와 전문적 서비스가 있다. 전문가는 인간의 모든 필요가 오로지 이 중심으로 연결되게 한다.
탈성장, 소유와 소비가 아닌 자족과 충분함의 생활로
- 성장은 언제나 큰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탈성장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이고, 단순한 것이 좋다고 말한다. 탈성장은 세상을 보는 또다른 시각이다. 소유와 소비, 경쟁과 독점, 효율과 이윤, 통제와 지배, 무한한 욕구가 성장을 나타낸다면, 단순과 절제, 협력과 나눔, 환대와 보존, 돌봄과 공생, 자족과 충분함은 탈성장은 가리킨다. 탈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태도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는 좌절에서 비롯된 강요된 선택이 아니다. 이러한 태도가 ‘좋은 삶’에 필수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자발적 선택이다. 탈성장은 우리 각자의 내면의 성찰과 변화를 요청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변화는 우리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출처: 녹색평론 175호)
3.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사회, 소비자 정체성
사람의 정체성이 하는 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물건으로 정의되는 것이 문제다.
- “결핍 광고”, 현재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다. 소비에는 개인의 선택의 여지가 없고 기업이 대신 선택해준다. (=알고리즘)
- “지금은 새로운 욕망 새로운 꿈이 생겼어.”라고 다짐하며 물건을 생각하는 것. 이 물건을 사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소비를 부추긴다.
- “지금 세대는 과거 세대에 비해 불만과 스트레스가 더 많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한다. 또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비교를 하는 과정이 더 많다.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 비교가 다 맞지도 않으면서.” (출처: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영화에서)
계획화된 구식화와 낭비적 소비전략
마침내 GDP로 성공을 계량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안전, 건강, 삶의 만족도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수 있다. (…)
미국이 불황으로 고통을 겪었던 1930년대에, 경제 관료들과 산업계 수장들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즉 소비주의를 창조해내어 그에 대응했다. 이후 미국 시민들은 소비자로 일컬어진다. 즉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상품을 구입하고 폐기하면서, 전반적인 고용수준과 경제규모, 투자수익과 정부 세입을 꾸준히 증가시키는 것이 이들의 의무가 되었다. 소비주의의 두 가지 핵심 전략은 계획적 구식화와 필요하지 않은 소비이다. 계획적 구식화란 일정한 기간 동안밖에 쓸 수 없도록 상품을 고안하거나, 동일한 제 품의 새로운 모델이 나와서 오로지 미학적 관점에서 기존의 것을 폐기처분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낭비적 소비 전략은 광고를 통해 사람들이 (자동차, 잔디깎이 같은) 제품을 가족, 이웃, 친구들과 함께 쓰기보다 저 마다 각자 소유하는 쪽을 선호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소비주의는 과잉생산(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인)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유효했고, 그와 함께 자원 소비를 꾸준하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그것은 사람들의 심리적 건강상태에 악영향을 미쳤다. (출처: 녹색평론 174호 p.212)
상품화된 물건으로 풍요를 채우고, 소비자로 주체화되는 과정에 대하여
- 이 의존성을 채우기 위해 똑같은 것들이 더 많이 생산 된다. 즉 상품은 표준화되고 가공되며, 미래의 소비자가 그 물건을 받는 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느끼도록 전문가들이 훈련시킬 수 있게 디자인된다. 이 생산물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재화든, 만질 수 없는 서비스든 산업사회의 필수품을 구성한다. 이 상품에 화폐가치를 얼마나 귀속시킬지는 국가와 시장이 나름의 비율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다양한 문화는 전통적 행동 양식이 씻겨나간 찌꺼기가 되어 전 세계적 규모의 황무지로 쓸려 내려간다. 이 세계는 생산과 소비를 위해 생겨난 기계가 황폐화시킨 불모지가 되었다. 센 강과 니제르 강둑에 사는 주민들은 소를 기르면서 젖을 짜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 하얀 물질이 이제는 식료품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엄격히 규정된 소비자보호법규 때문에 말리보다 프랑스 우유가 더 안전하다.) 실제로 갈수록 더 많은 아이들 이 소의 젖을 먹는다. 부자나 가난한 이나 인간의 젖가슴은 말라 버린다. 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울음을 터뜨릴 때, 아이의 신체기관이 식료품점에 진열된 우유병에 닿기 위해 길들여지고 제 기능을 포기한 인간의 젖가슴에서 등을 돌릴 때, 또 한 명의 중독된 소비자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꽃 피우는 데 필요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은 퇴화한다. (출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일리치 p.25)
내가 가진 물건으로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딜레마를 넘어서
- 후기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소비자로서 하는 선책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하라고 가르친다. 쇼핑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공동체를 찾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 되었다. 따라서 지구의 부량 시스템과 과중한 부담을 주는 과도한 소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이 말을 일종의 공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미래가 불타고 있다>, p.167)
4. 미니멀리즘 어떻게 시작하는가? 실천 방법
<일상을 심플하게> 中, 마스노 슌묘
1.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지 생각한다.
2. 청소로 마음을 닦는다.
3. 하나의 물건을 소중히 여긴다.
4. 원하는 물건을 바로 손에 넣지 않는다.
5. 아침 시간을 소중히 한다.
6. 지각을 하지 않는다.
7.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은 오늘 시작한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 p.15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하다못해 옷을 입으려 해도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알고 있어야만 심플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옷을 통한 내 삶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개성, 취향을 알아야 하고, 자신의 현재를 알아야한다.
의식주를 포함한 내 모든 생활에 단순한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되면,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그동안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신경 쓰며 살았는데, 단순하게 살다보니 나답게 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는 곧 내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타인과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살면 정체성이 확립된다. 사람은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정체성이 확립되어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렇게 습관화되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우울해진다.
단순한 생활을 하다 보면 공간이 비워져서 생각 또한 단순해진다. 인생을 살다보면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해 땅을 치며 후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선인들은 눈뜨고도 허방을 짚는 것이 인생이라 표현하지 않았던가? 때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선의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 니다. 바쁜 일상에 쫓겨 쌓여있는 일만 처리하며 살아가는 하루 살이와 같은 사람들은 할 수 없다. 핵심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정체성이 확립되어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지저분한 주변 환경은 일상도 어수선하게 한다. 마음도 어지럽 게 한다. 지저분한 기운으로 가득 차면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렵 다. 이것이 바로 삶을 단순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심플'을 선택하고, 이에 집중해야 한다. 뭔가를 선택했다는 것은 반대로 뭔가를 버렸다는 뜻이다. 뭔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일을 줄여야 한다는 것 m이다. 심플 라이프는 버리기가 다가 아니다. 물건을 적게 소유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 스님의 말이다. 단순한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비움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내 삶의 의미를 잘 담아내는 그릇으로 성장하게 된다. 단순함을 추구하면 본질이 보인다. 집중력이 생긴다. 이는 업무 능력으로도 이어진다. 단순한 사람은 업무 능력도 탁월하다. 심플 라이프, 그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이다. 나의 삶에 의미가 부여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5. 개인실천을 넘어선 마을의 공유경제 이야기
(1) 사물도서관과 마을 돌봄
강력한 공동체 모델로서 지역 도서관은 소중히 여겨지고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는 또 도서관을 책에 국한하지 않고 더 많은 ‘사물 도서관’을 만들고 재사용과 재분배의 다른 형식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기후재앙이 눈앞에 닥친 시대에 전동 드릴이든 비싼 아이 장난감이든 또는 와플메이커든 간에 일 년에 몇 번 쓰지 않을 물건을 사는 것은 지나친 낭비다.
물건의 수명을 계획하에 한정하는 끔찍한 자본주의 제도를 거부하고 공동체 안에서 물건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결과로 우리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돈을 저축하고, 생물뿐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계발할 것이다.
(2) 1인가구라 가끔 쓰는 미니빔·와플기, '마포 오랑'에서 빌려 썼어요!
합정동에 있는 서울청년센터 마포 오랑은 서울시 청년들을 위해 1인 가구 청년들을 위해 구매하기는 부담되지만 가끔은 필요한 물품들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청년센터 마포 오랑 물품 대여 예약하기(링크 클릭)
(3) 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제안합니다, 돈이 없으면 지혜를 씁시다.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의 룰 대신 찾은 일…다카시마 치아키 씨의 인터뷰
“양복점이라는 게 재고와의 싸움이에요. 시즌 초에는 반짝반짝 빛나던 것이 계절이 바뀔 무렵에는 쓰레기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소비를 점점 부추겨야 하죠.” (…)
치아키 씨는 육아를 하면서도 비슷한 딜레마를 느끼고 있었다. 그림책을 사주면 아이가 그때는 기뻐한다. 하지만 다 읽으면 또 다른 그림책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림책만이 아니다. 거리에 나가면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넘쳐났다. “새 것을 사는 것이 기쁨이 되어선 큰일이겠구나 생각했죠.”
치아키 씨는 콩과 레시피 세트를 소비자에게 정액으로 매달 보내주는 ‘콩요리 클럽’을 생각해냈다.
“폭탄이 떨어지는 아래에도 부엌이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의 생활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치아키 씨 나름의 ‘반전’(anti-war) 표명이었다. 양복점 한쪽에서 ‘오가닉(Organic) & 공생’을 내걸고 콩과 향신료(spice)를 취급하는 ‘라쿠텐도’를 시작한 것은, 소비를 부추기고 부추김을 당하는 관계가 아닌 다른 장사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 나의 미니멀리즘 실천 기록
기후위기 시대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천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지냈다. 결과적으로는 미니멀리즘으로 묶이는 실천들을 기록할 수 있었고, 그 흐름을 공유하고자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나의 실천기록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에 작은 힌트가 됐으면 좋겠다. 또 다른 실천들을 공유해주셔도 좋다.
먼저 고민의 시작점은 <미니멀리즘> 영화를 보고서다. 이 영화에서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미니멀리즘을 소개하진 않지만, 나는 기후위기와 소비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영화를 보고 내가 정의한 미니멀리즘은 '적게 소유하며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그로 인해 생각할 거리가 줄어들고 공허감을 채우기 위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강제성을 띤 소비를 하고 있고, 사람의 정체성이- 하는 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물건으로 정의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나는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누면서도 물건이 많았고, 몇 년 동안 손에 닿지도 않은 물건들을 보면서 나의 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 고민을 시작했을 때는 윤리적·생태적 소비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소비가 주는 선순환을 '상상'했다. 업사이클링 제품, 공정무역 인증 제품, 비건 제품, 사회적기업 제품, 후원과 기부가 되는 제품, 페미니즘·장애·노동인권 등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굿즈들은 나에게 소비해도 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님을 알고, 직접 후원하는 등의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생태적 소비로 착각하게 하는 그린워싱 기업도 경계하기로 했다. 적게 소비 했는데도 과소비가 되는 시대에- 결국 '무엇이든' 소비하지 않기, 그러므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도구가 되는 것들에 유의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들, 무심코 사왔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면 필요하지 않은데 쓰고 있거나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로 들면 빨대가 있다. 한창 플라스틱 빨대를 대신하여 친환경 빨대가 화두에 오를 때 들였던 대나무 빨대나 실리콘 빨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텀블러를 쓰면 빨대가 필요한 경우가 없었다. 다른 예로는 편지지나 다이어리가 있다. 편지지나 다이어리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이면지 사용 등)을 생각하면 굳이 판매되는 제품을 소비할 이유가 없었다. 방에서 휴지를 없애는 것도 좋았다. 휴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휴지의 양을 줄일 수 있다. 이외에도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편리함이라는 이유에서 도구가 되는 물건들이 많았다.
옷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지 않는다. 섬유 산업은 환경 파괴의 세 번째 주범으로 간주된다. 패스트 패션은 대량으로 팔리는 만큼 (입지 못하게 된 게 아니라 유행이 지나서) 대량으로 버려진다. 옷이 필요하다면 세컨드마켓, 아름다운가게 등 2차생산물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자주 입게 되는 옷을 파악하고, 가지고 있는 옷이 한눈에 보이도록 정리하고, 입지 않는 옷은 나누거나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한다. 어떤 결핍으로 인해 소비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다.
물건을 오래 사용하며,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용했던 스탠드를 바꾸고 싶어 했다. 헬로키티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래되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버리지 않고 사용하기 위해 나는 이것을 사랑할 수 있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아크릴 물감으로 스탠드에 그림을 그렸다. 분홍색이 싫었던 나는 초록색으로 풀을 만들어 덮고, 노란 꽃과 파란 꽃을 그렸다. 고쳐 쓰고, 닦아 쓰고, 성능을 잃지 않는 이상 나는 이것을 사랑하며 오래 쓸 것이다. 쓸모가 찾으면 쓰레기는 아니었다.
식사도 미니멀리즘!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자급자족을 한다. 육류 소비가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채식을 하고 있다. 음식물쓰레기도 탄소배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밥을 깨끗이 먹으려고 노력한다. 간단한 채소는 직접 키워서 유통되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월요일은 채식하는 날, 6시 이전까지는 채식하기, 한 주에 세 번 채식하기 등 천천히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꾸밈노동을 하지 않으면 줄어드는 소비가 많다. 렌즈, 화장품부터 화장을 지우는 리무버, 각질제거제, 오일, 솜, 관리를 위한 등등의 물품들은 분리수거도 어렵고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가 된다. 또 치약과 클렌징 등 세안용품에 들어있는 미세플라스틱을 바다에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생활용품에서 플라스틱을 배출하지 않기 위해, 고체치약, 샴푸바, 대나무 칫솔, 생리컵 등을 사용하고 비누로 세안을 하고 있다. 빠르고 편하게 사용되는 기존의 물건보다 시간이 조금은 더 걸리기 때문에 부지런함과 여유가 필요했다.
휴대폰 안에서도 미니멀리즘 하기. 인터넷 접속으로 인한 에너지와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통신사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무의식적으로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쓰고 있었던 나는 통신비를 최저로 줄였다. 이밖에도 메일함은 비우고, 광고는 수신거부를 하고, 사진폴더나 클라우드에서 필요 없는 사진은 지우고, 메모장을 정리하고, 카톡이나 문자 내역을 정리하고, 답장을 정성스레 하고, 사용하지 않지만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어플은 삭제하며, 이미지를 착취하지 않기로 했다. 간결함은 집중도를 높였다! 휴대폰을 의도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니 숨이 차분해질 때도 있다.
이외에도 더 이상 보지 않는 책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쓰일 수 있도록 당근마켓 등 중고어플에 되팔거나 무료나눔 하기, (형식적인 선물 형태의 주고받음이 아닌) 소비와 물건에 마음을 투영하지 않고 마음을 전하는 방법 고민하기, 수납장을 비워두고 소유하고 있는 물건 파악하기,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무언가를 다 쓸 때까지 새로 사지 않기, 팜플랫과 포스트 등을 집으로 가져오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책자를 읽거나 그 상황과 순간에 집중/충실하고, 집에 들여옴으로써 '나중에' = 곧 미루기가 되는 걸 없애기, 도서관 이용하기, 몸도 마음도 적당할 수 있는 약속 가지기, 안 쓰는 콘센트 뽑기,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낮에 활동해서 밤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등이 있다.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되는 부분이 달라지겠지만, 행복이 우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언가를 소비하는 게 행복이면 양보하려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기후위기의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행복이겠다. 합리화하지 않기로 했다. 사고와 실천이 해이해질 때 기후위기 관련 책을 찾아보고 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공부하고 알면 알수록 행동이 구체적일 수 있으니 공부도 꾸준히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절약)을 하면서도, 정부와 기업에 끊임없이 요구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고, 제도를 만들기 위한 단체 행동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었다.
실천기록을 정리하면서 실천이 방법적으로 무엇을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 기후위기에 대응해서 2)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의 사랑을 위해서 3) 소비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될지, 이 문장만 안고 여러 상황들을 부딪혀볼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구체적인 방법이 되었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일상’을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싶다.
<미니멀리즘을 위한 행동 기록 요약>
- 알라딘에 중고책 팔기
- 아름다운 가게에 물건 보내기
- 당근마켓 등 중고어플에 되팔기
- 무료나눔하기, 플리마켓 열기
- 선물 형태의 주고받음을 끝내기
- 서랍장 비우기
- 무언가를 다 쓸 때까지 새로 사지 않기
- 집에 무언가를 들고 오지 않기
- 방에서 거울, 휴지, 쓰레기통 없애기
- 같은 용도를 두 가지 이상 갖고 있지 않기
- 채식으로 몸도 미니멀리즘
- 꾸밈노동 하지 않기
- 쓰레기에서 쓸모 찾기
- 정혈컵 사용하기
- 집으로 물건을 가져 오지 않기
- 나중에 보겠다며 물건 또는 파일을 저장해두지 않기
- 도서관 이용하기
코멘트를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