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내가 이민 와서 처음으로 산 살림이었다. 나도 모르게 정이 붙었는지 그냥 보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왠지 간단하게 고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쉽게 버릴 수 있었지만 꾸역꾸역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다. 그러던 중 나는 ‘리페어 카페’라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고장 난 물건을 무료로 다 고쳐준다고 했다. 유레카! 나는 믹서기와 함께 고장 난 프린터, 밑창이 떨어지기 시작한 구두까지 챙겼다.
자원봉사자의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고장 난 믹서기가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남미 사람 같아 보이는 아주머니도 옆에서 똑같은
믹서기를 고치고 있었다. 고장 난 원인도 똑같았다. 우리
둘은 금새 마음이 통해 ‘이 제품에 대한 리뷰를 당장 가서 오늘 이야기로 써야겠다.’, ‘그 가전회사들은 이 카페를 싫어하겠다.’며 고치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지가 되었다.
리페어 카페(repair café).
토론토에서는 Wai Chu Cheng과 Paul Magder에 의해 이 카페가 태어났다. 이 두사람은 이곳을 통해 두가지 사실을 “고쳐”보고 싶었다. 하나는 우리 주변에 고장 난 많은 것들이 그냥 버려진다는
것이고, 또 다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너무 모르고 지낸다는 것이다. 물론 계속 늘어나는 엄청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이곳에서는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는 자원봉사자와 고장 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난다. 그리고 단지 고쳐주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고쳐야 하는 지 알려주고 함께 고쳐간다. 고장 난 물건을 맡기고 찾으러 만 가는 수리센터와는 다르다. 고장 난 물건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약간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굳이 뭘 고치러 오지 않아도 지나다가 들러 같이 커피도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는 ‘동네 아지트’ 라고 할 수 있겠다.
돋보기를 끼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자원봉사자 할아버지와 이를 옆에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 아빠와 함께 고장 난 세발 자전거를 끌고 와서는 다시 타고 나가며 신나 하는 아이, 뭔가 귀중한 사연이 있어 보이는 아주 오래되어 너덜너덜 해진 책을 가져와 다시 제본해서 가져가는 할머니…. 작고 오래된 물건이지만 다시 생명을 찾아 주인 품에 안겨 나가는 생명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리페어 카페는 한달에 하루
열린다. 2009년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되어 네델란드의 80개
도시로 퍼져 나가고 더 나아가 독일, 프랑스, 벨기에, 라트비아, 영국과 미국에서도 시작되었다. 현재는 1,256개의 리페어 카페가 20개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 내가 사는 토론토에서는 2013년 5월에 시작되어 4년
넘게 한달에 한번 각각 다른 지역의 도서관이나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4시간 정도 정해진 공간에서 이 카페를 운영하고도
있다. 모든 물건을 다 고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진 경력자를
찾던 운영진들은 은퇴하신 분들이 고칠 수 있는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양로원에 가서 이런 고민을 해결했다. 또한 기술을 배우는 대학에 가서 학생들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이처럼
노인에서부터 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더 강한 커뮤니티가 이 안에서 지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동네 수리카페’를 상상해볼만 하다. 우리는 ‘새로운 물건을 사야 너의 가치가 올라간다.’, ‘이 물건을 사면 너가 행복해진다.’라고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매순간 접한다. 이런 기업들의 상술에 맞서 이런 강력한 커뮤니티 안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날려주고 싶지 않을까?
www.repaircafe.org
www.repaircafetoront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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