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서로 돕는다는 것
기획아카이브 / by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 작성일 : 2024.12.12 / 수정일 : 2024.12.16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서로 돕는다는 것 


한국주민운동교육원 대표 한순미


# 빈자천하지대본

(사진: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무실에 있는 표구)

빈자천하지대본(貧者天下之大本). 가난한 사람이 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1970-80년대 재개발 현장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만장엔 이 글귀가 쓰여 있었다. 여기엔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쫓겨 가난이 죄라며 자신의 가슴을 쳐야 했던 철거민의 절규가 담겨있다. 1970년대 한국 사회 가난한 이들은 급격한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먹고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도시빈민들이었다. 당시 주민운동은 국가 주도 산업화 정책과 개발 논리로 도심에서 쫓겨나 판자촌, 달동네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이 협동공동체를 이루며, 스스로 생존권과 주거권을 위해 저항하며 투쟁한 역사이기도 하다. 
이후 50년이 넘게 흐른 오늘, 도시빈민은 ‘지역주민’으로,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사회’가 더욱 중요하게 등장했고, 다양한 정책과 제도화의 흐름 속에 주민운동은 보편적으로 확산하였다. 그러나 ‘빈민’은 여전히 ‘대상자’, ‘수혜자’라는 사회적 시선에 갇혀 있다. 점점 더 차가워진 사회적 시선은 이들을 배제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인간소외와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보는 폭력적 담론은 여전하다. 하지만 오늘 여기,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서로 돕는 이야기가 있다. 


# 동자동공제협동조합 이야기
서울역 고층 건물 뒤로 ‘동자동’이 있다.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는 주민 스스로 서로를 돕기 위해 오천 원, 만 원씩 출자하고, 조합원이면 무담보로 대출해 주는 마을협동은행이다. 은행이지만 여기선 ‘돈’이 아니라 ‘협동하는 관계’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가난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설 필요도 없다. 
2024년 9월 동자동을 찾았다. 코로나로 잠시 중단되었던 추석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민들은 2천 원, 3천 원 모금함에 모금했다. 스스로 재원으로 마을 행사를 치러낸다. ‘왜 외부 지원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주민은 ‘외부 지원을 받다 보면 계속 거기에 매이게 된다’고 말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 함께 만들어내는 재미와 기쁨이 사라진다고도 했다. 최근 동자동에는 한 종교단체가 아침까지 주고 있고, 빵과 음식을 나눠주는 리어카가 동네를 돌고 있다. 손만 뻗으면 받을 수 있는 자선 행위에 맞서 스스로 서로를 돕는 조직된 공동체의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공제협동조합이지만 대출사업만 하는 게 아니다. 주민이 주민을 일상적으로 만나 돌보는 활동도 기꺼이 한다. 폭염에 어떻게 지내는지 찾아가 말 건네는 활동, 쪽방에 선반을 만들어 놓고 물건을 정리하는 활동, 혼자 사는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병원 동행 활동, 무연고 주민의 장례를 치르고 슬픔으로 애도하는 활동, 손잡고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살아가도록 돕는 활동, 아주 구체적이고 꼭 필요한 돌봄을 서로가 서로에게 행한다. 여기엔 서로를 향한 시선과 행동이 평등하다. 그저 같은 처지인 사람을 서로 돕는다는 인간적인 마음이 안전하게 존재한다. 
매주 토요일이면 동자동 주민들은 마을 청소를 한다. 휠체어를 탄 주민도 마을 청소에 참여한다. “그 주민은 쓰레기를 줍지 못하잖아요?”라는 질문에 “그 주민도 우리와 함께 청소한다. 그 사람도 동네 주민이고, 조합원이다. 같이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하신다. 휠체어 뒤에 ‘공공개발 찬성’을 알리는 팻말을 달고 함께한다고. 사람을 기능적으로 보는 관점, 불가능할 거라는 단정지음이 얼마나 당사자에게 폭력적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사진: 2024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총회)

매년 3월이면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총회가 열린다. 250여 명이 넘는 조합원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노란 카드를 손 높이 든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사업으로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역할을 나눠 일을 추진한다. 모든 과정은 조합원에게 매월 소식지로 투명하게 전달된다. 최근 동자동 주민들은 ‘하루라도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의 목소리로 ‘공공주택사업 추진위원회’를 조직해 공공개발주택 쟁취를 위해 오늘의 주민운동 역사를 쓰고 있다.  


# 스스로, 서로 돕는다는 것
1979년 3월 1일, 성남에선 ‘꼴찌 마라톤’이 열렸다. 여느 마라톤과는 달리 어린이, 노약자, 몸이 불편한 장애인 등 다섯 명이 한 모둠이 되어 손잡고 함께 뛰는 ‘주민협동마라톤’이다. 혼자서만 잘 뛰면 이기는 마라톤이 아니라 약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보조를 맞춰 뛰어야 하는 마라톤이었다. 또 가장 빠른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느린 사람에게 맞추어야 하는 마라톤이었다. 가장 늦은 마지막 한 모둠이 다 들어올 때까지 마라톤은 계속되었고, 꼴찌가 가장 많은 박수와 응원을 받으면서 막을 내린 ‘꼴찌 마라톤’이었다.
<「마을공동체운동의 원형을 찾아서」(2017), 경기도 성남 사례 중에서>

여전히 이 사회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차별받고, 주변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보통의 사람들이자 마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이기도 하다. 폭주 기관차처럼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많은 것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한 사람은 그저 실패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진다. 마을에서 사회에서 이들의 목소리와 모습은 음지화되고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주민운동의 역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 역사와 맞닿아 있다.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필요와 문제를 목소리 내고, 저항하고 투쟁한 결과가 주거권 운동, 품앗이 운동, 생산공동체 운동, 의료협동조합 운동 등으로 연결되었다. 같은 처지와 경험을 가진 이들이 공동의 유대감으로 행동한 역사가 제도화와 공공성으로 확장된 역사이다. ‘스스로’ ‘서로 돕는’ 정신은 공동체 운동의 바탕이다. 사회적 약자가 자기 존재의 주인이 되어 목소리를 내는 것. 스스로의 힘을 조직하는 것.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서로 돕는 것. 이럴 때 사람은 가장 사람답게 사는 길이 열린다고 과거와 오늘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작성자 :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 작성일 : 2024.12.12 / 수정일 : 2024.12.16 / 조회수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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