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이들이 첫 시작을 합니다. 활동을 처음 시작하거나, 새롭게 시작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죠. 우리는 이런 ‘새로움’에 주목했습니다.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한 데 모아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시작하는 공익활동가를 위한 내비게이션’은 기초적인 정보부터 실무에 필요한 지식까지 다양하게 담아내어 기록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해 본 사람' 인터뷰는 먼저 이 길을 걸어본 활동가 총 세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두 번째 '번아웃을 극복해 본 사람' 편은 활동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좌절과 번아웃의 감정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 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터뷰이는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입니다. |
* 인터뷰어 : 차종관 기획위원
* 인터뷰이 :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
* 정리 : 김민준
* 사진 제공 : 박은미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업 기간을 보내고 있는 니트 청년들의 커뮤니티, 니트생활자 대표 박은미라고 합니다. 쿵짝이라는 활동명을 쓰고 있어요. 니트 청년들은 무업 기간이 되면 사회적·물리적인 고립 경험을 갖게 되거든요.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스스로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겪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니트생활자를 통해 사회적인 관계 안전망이 되어주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니트컴퍼니라는 백수들의 가상 회사 놀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현재까지 1000명 이상의 니트 청년들을 만나왔습니다.”
- 니트생활자에서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2019년 처음 출범할 때는 작은 커뮤니티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규모가 커져서 단체가 되고 지금은 사단법인이 된 지 2년 반 정도 됐습니다. 무업 기간의 안전망 역할과 함께 다른 방향의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위해 니트인베스트먼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무업 상태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우리의 개별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소화가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최대한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닛커넥트'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을 총괄하는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고요. 사업 기획이나 조직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면서 니트생활자를 꾸려 나가고 있어요."
- 대표님도 번아웃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번아웃을 겪게 됐나요?
“누구나 회사에서 내 존재를 증명하고 싶고,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 받고 싶잖아요. 제 20대를 돌이켜보면 그게 굉장히 중요했던 시절이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을 막 찾아내고 굉장히 열심히 했거든요. 주말이고 뭐고 없이 야근도 굉장히 많이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마음도 몸도 굉장히 지쳐서 더 이상 뭘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더라고요. 건강까지 악화됐죠, 특히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던 조직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어요. 제가 결정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모든 걸 윗사람에게 다 물어보고 컨펌을 받아야 했어요. 그때 2년 정도 너무 무기력하고 번아웃이 심해서 집에 오면 맨날 울었거든요. 근데도 그만두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조직을 떠나면 또다시 어디로 가야 되는데, 제가 어디로 가야 될지도 전혀 몰랐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버텼어요. 정규직이 되려고요.
근데 결국 정규직이 안 되는 상황이 왔죠.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번아웃이 심하게 왔던 것 같아요. 또, 이제 정말 마지막 회사다. 나는 이제 내 나이에 갈 데가 없다. 정말 열심히 일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굉장히 힘들게 들어갔던 조직이 있었어요. 그 조직에서는 부당해고 관련 일들이 있었죠. 그걸 옆에서 경험하면서 허탈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크게 왔어요. 동료가 회사를 떠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심적으로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상담 받으러 가고 그랬던 적이 있어요.”
- 그러면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해보셨는지.
“회사 다녔을 때는 회사를 떠나는 방법도 선택을 해봤고요,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고, 또 그냥 이렇게 누워서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그리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써보거나 아니면 유튜브에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검색을 많이 해봤던 것 같고, 운동도 시작했어요.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을 다 동원해봤던 것 같아요.
그때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것도 정말 어려웠는데, 회사를 다닐 때 어렵고 힘든 일들은 조직 내부의 사람들과 얘기해볼 여지가 있잖아요? 근데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나한테 있는 경우, 그러니까 내가 나를 굉장히 괴롭혀서 생기는 번아웃은 누구한테 얘기하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기 쓰고 유튜브 찾아보면서 어떻게든 그 시기를 헤쳐 나가 보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 번아웃을 겪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시나요?
“니트컴퍼니를 찾아오는 청년들을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있는 건 기본이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도 해요. 관계로 인한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는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이 쌓여서 번아웃으로부터 벗어나곤 합니다. 니트컴퍼니는 이런 사람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데에 관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일상이 망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침을 건강하게 챙겨 먹거나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등 자기돌봄을 통해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서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을 찾아가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자기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면서 번아웃을 극복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결국 자기돌봄과 자기 탐색의 시간, 상호 지지의 경험을 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인 것 같아요.
* 사진 제공 : 박은미
- 번아웃을 겪은 이후에 니트인베스트먼트나 니트컴퍼니를 만드셨더라고요. 계기가 있을까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마지막 회사에서 동료와 함께 퇴사했어요. 그게 제 삶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은데요, 회사가 내 삶을 평생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것, 내가 아무리 잘 해도 내 뜻과 상관없이 조직 밖으로 내쳐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누구에게 선택받는 일자리 말고 내가 스스로 뭔가를 해볼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주목한게 무기력과 소진으로 인해 무업 기간에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에게 활력을 주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니트생활자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거에요. 모여서 서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다음 경로는 뭘 고민하고 있는지 얘기를 나눠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눠보니 오히려 제가 이전까지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어요. 니트생활자 활동은 삶이 이렇게 즐겁고 활기찰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습니다. 그래서 만족스러웠어요.
- 니트생활자를 하시면서 어떤 회복을 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제가 번아웃을 경험한 큰 이유 중 하나가 저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부분이 있었어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고, 더 일하고 싶어도 안 되고 인정도 못 받는 상황이 저를 소진되게 만들었죠. 니트생활자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제가 제 삶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하고, 내가 하는 활동이 내 일이 되는 경험,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는 성과들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상황들이 저로 하여금 활력과 에너지, 그리고 주체성을 많이 가져다 줬어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생긴 덕분에 저는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조직 내에서 일할 때와 조직 바깥에서 일할 때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내가 보호한다고 보호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생각하지 못한 말과 상황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호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스스로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내가 저 사람의 이런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를 입었고 마음이 괴롭구나, 이걸 스스로 알아줄 필요가 있어요. 소진되기 전에 나한테 빨간불이 켜졌다는 걸 인식하고 자신을 돌보면서 예방하는 노력이 마음을 다치고 나서 회복하는 것보다 중요해요. 저는 상처를 잘 입는 편인데, 그런 경우에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 번아웃을 극복한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해보셨을 것 같아요. 그 생각대로 됐나요?
“번아웃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그 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회복되길 기대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평상시 상태보다 그 밑으로 내려가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그냥 원래의 내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가지고 있어요.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서 내 원래 모습대로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고 싶다 그런.
* 사진 제공 : 박은미
- 이런 활동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저도 무업 기간을 경험하면서 느낀 거지만, 다음 스탭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뒤쳐진다는 것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의 감정이 무척 커요. 니트생활자가 그런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은 이들과 함께 이 기간을 같이 보내면서 연결되는 경험이 하나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이 활동들이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꿨으면 좋겠어요. 무업 기간에 있는 사람들이 집에 고립되지 않고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겠죠?
- 번아웃을 극복해본 사람으로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사실 또 다시 제가 번아웃을 경험한다면 너무 힘들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조언이라고 할 법한 건 없습니다(웃음). 하지만 초반에도 말했지만, 힘든 상태가 오기 전에 매일 나의 상황을 체크하시는 건 중요해요.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요. 그렇게 계속 체크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더라도 그 강도와 기간이 줄어들거라고 생각해요. 시선을 외부에 두기 보다는 나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 앞으로 그리는 미래도 궁금해요.
“이전까지 늘 그랬듯 앞으로도 꾸준히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니트생활자라는 조직이 어떻게 하면 무업 기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인데요, 지속가능한 조직 운영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무업 기간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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