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추동하는 권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누가 지배하게 될까요?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앞으로 다가올 국제 질서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은 영상을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글로벌 정치 위험 연구 및 컨설팅 기업인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의 대표 이안 브레머(Ian Bremmer)의 Ted Talk 영상으로, 올해 초에 공개된 영상인 만큼 최근 정치사회 이슈들이 잘 녹아있는 영상입니다.
영상링크
https://www.ted.com/talks/ian_bremmer_the_next_global_superpower_isn_t_who_you_think
해당 영상은 자막이 탑재된 영상으로 ‘설정’에 들어가시면 한국어 자막과 함께 영상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자막을 중심으로 영상의 내용을 갈무리한 것이며, 원활한 이해를 위해 큐레이터가 내용을 추가 및 편집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냉전 시기 국제체제는 미국과 소련이 세계 정치를 지배하는 ‘양극체제’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양극체제가 무너졌습니다. 이후 미국이 국제 질서를 지배하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약 15년 전부터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는데, 미국은 ‘세계 경찰’ 국가로서 민주주의와 세계 질서를 감시하는 역할이나 국제 무역의 설계자 역할 등을 하기를 점점 더 꺼렸습니다. 또한 중국을 포함해서 강하게 부상한 다른 국가들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규칙들을 점점 더 무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사 이안 브레머는 현재 우리가 명확한 ‘리더’가 없는 국제 질서 속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면 좋을까요? 연사는 다음 세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1. 한때 미국과 겨뤘던 강대국 러시아는 쇠퇴하면서 서방 체제에 통합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강대국 자리에서 밀려나 영향력이 줄어든 본인의 현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2. 중국은 더 부유해지고 강대해지면 미국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속 미국 주도의 체제에 통합되었으나 현실 속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위치를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
3. 미국과 다른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의 일부는 자신들이 세계화로 인해 뒤처졌다고 느꼈다. 이 같은 사실은 수십 년간 무시되었는데, 그 결과 해당 국민은 자국의 정부와 지도자에 불만을 품고 이들이 본인들을 대변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연사는 현재 지정학적 긴장과 분쟁의 원인 대부분이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처럼 명확한 ‘리더’가 부재한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향후 10년 동안 형성될 세계 질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연사는 앞으로 우리가 명확한 양극이나 일극, 혹은 다극의 세계질서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신 밑에서 소개할 서로 다른 세 개의 질서가 약간씩 겹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데, 그 중 특히 세 번째 질서가 세계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질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큰 중요성을 띨 것입니다.
2. 두 번째 질서: 다극 체제인 세계 경제 질서
유럽 연합은 가장 큰 공동의 시장을 영위하며 자신들만의 무역 규칙을 내세우는데, 누구든 유럽 연합에서 무역을 하려면 유럽 연합이 만든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EU는 환경, 위생, 노동, 인권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엄격한 수입 규제 제도를 운용합니다. 예컨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의 여부로 우리나라와 무역분쟁을 이어온 바 있으며, 탄소 국경 조정제도(CBAM)가 도입됨에 따라 한국 철강업의 수출이 더욱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인도와 일본 역시 국제 무대에서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간 이들 국가 간의 상대적 경제력은 역동적으로 힘의 중심이 왔다 갔다 할 것이며, 세계 경제 질서는 현재도, 앞으로도 다극 질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미국 주도의 국제 안보 질서(일극 체제)와 세계 경제 질서(다극 체제)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미국이 세계 경제를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도하기 위해 국가 안보 권력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반도체 분야와 광물 분야에서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그룹이 소유한 틱톡 역시 같은 이유로 규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이미 지난해 12월 미국 하원은 공공기관 기기에서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미국 내 여러 주와 정부기관에서도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자신들의 상업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들에 유리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일본, 유럽, 인도, 그리고 여타 국가들은 미국이나 중국 중 그 어느 국가도 확실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 같은 시도는 대개 성공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가지 세계 질서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 번째 세계 질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질서로, 이 질서는 정부가 아닌 첨단기업이 주도하는 질서입니다.
3. 세 번째 질서: 첨단기업 주도의 디지털 세계 질서
참고:
1.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2021.01.06):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인증하기 위한 117차 미국 의회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결과 인증을 저지하고자 국회의사당에 난입하여 폭력시위를 벌인 사건.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에 의해 조작된 선거였다는 음모론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며 폭력시위를 계획하였다.
2. 오타와 트럭 폭동: 2022년에 캐나다 오타와에서 발생한 폭동이다. 미국 국경을 넘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의 형식을 띠었으나, 백신 반대론자와 극우세력이 합세한 형태의 조직적인 시위로 방역 규제 철폐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정부 퇴진을 주장하였다. 집회의 확산과 조직에는 틱톡과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을 통해 퍼진 음모론이 큰 영향을 끼쳤다.
3. 브라질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룰라 대통령 취임에 반대하여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궁을 급습한 사건.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과 유사한 사건으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은 온라인에서 대선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퍼트리며 시위를 조직하였다.
첨단 기업은 개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개인의 정체성은 각자의 천성과 양육방식, 그리고 알고리즘이 결정합니다. 체제에 도전하고 싶다면, 권위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알고리즘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알고리즘을 소유한 몇몇 첨단기업의 권력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이들이 미래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만약 중국과 미국이 디지털 세계 전역에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며 이들 국가에 있는 첨단기업들이 정부 편에 서게 만든다면, 우리는 첨단 기술 냉전을 맞이할 것이며, 디지털 세계는 양극으로 갈라질 것입니다. 반면 첨단기업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고 우리가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 간의 경쟁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세계화, 즉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가 수립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질서가 점점 더 우세해지고 정부가 통치 역량을 서서히 잃는 신호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첨단기업은 국제 무대에서 전방위적인 지배 세력이 될 것이고 인류는 첨단기업 중심의 질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질서가 우리가 끝없는 기회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살지, 아니면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갈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처럼 폭발적인 가능성과 위험을 내포한 첨단 기술에 일시 정지 버튼은 없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새로운 천연두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100명이 넘습니다. 따라서 첨단기업이 강력한 최신 인공지능을 출시할 때 기업이 과연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첨단기업들이 수집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과연 어디에 쓰일까요? 기업들이 시민들의 데이터를 활용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광고 모델을 고수함으로써 시민들을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증오와 허위 정보를 퍼트리고, 이것이 결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나요? 다양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도구들을 생산 및 관리할 수 있는 기업들이 앞으로 이로 인한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를 시민사회가 잘 지켜보고 감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큐레이팅을 마치며: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정치적 소통의 장으로서 너무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정치인들은 그 소속을 불문하고 본인들의 정치적 캠페인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당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사용자들의 행동을 모니터링하고 그들의 반응 및 메시지를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이 같은 분석은 정당이 온라인 전략을 수정하고 사용자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 캠페인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특히 소셜미디어는 대중영합주의자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부재하기에 사실관계와는 거리가 먼, 편향적인 정치적 레토릭을 전파하는데 용이합니다. 누구나 원하는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소셜미디어는 가짜뉴스 및 혐오 메시지를 퍼트리는 자에게는 비옥한 토양이 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포퓰리스트 인물들이 바로 이 같은 소셜미디어의 맹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본인의 프로파간다를 확산해 나갔습니다. 몇 년 전 세간을 놀라게 했던 케임브리지 아날레티카(Cambridge Analytica) 사건의 충격은 오늘날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케임브리지 아날레티카라는 회사는 2016년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약 8천 700만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 이는 유권자의 정치성향 및 개인적 두려움 등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며 이후 이들의 두려움을 극대화할만한, 예컨대 이민자에 대한 가짜뉴스가 선택적으로 표적 집단에게 노출되었습니다. 개인의 성향과 약점을 파악한 이후 ’취약집단‘들에게 선별적으로 전파된 가짜뉴스는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에 유리한 지형을 조성하였습니다. 케임브리지 아날레티카가 한 일은 명백한 개인정보 침해이자 선거법 위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누가, 어떻게 개입했냐는 것인데 사건의 배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영국 독립당(UKIP)의 당수 나이젤 파라지와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러시아가 개입했음이 밝혀지면서 세간이 떠들썩하였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각 정보마다 중요도를 매겨서 정렬하던 기존 미디어들의 기능을 현대 사회에서는 알고리즘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핵심은 소비자를 특정 인터넷 플랫폼에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고자 하는 것으로, 소비자가 해당 미디어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해당 플랫폼은 광고주들로부터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즉,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현 사회에서 정보의 나열 방식은 더 이상 정보의 참과 거짓, 혹은 중요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취향, 약점, 선호, 정체성 등과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소비자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을 통해 운영되는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관건인데, 다른 것보다도 혐오, 공포, 두려움, 불안과 같은 감정을 자극하는 콘텐츠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용자들을 오랫동안 플랫폼에 잡아 두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같은 알고리즘의 속성은 오늘날 극단적인 정치 세력의 선전과 맞물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전세계에서 극우정당의 주요 무기는 난민, 이민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을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입니다.
포퓰리스트 극우 정치인들은 ‘우리’와 ‘나쁜 그들/엘리트들’을 대치시키는 이분법은 통해 사회적 소수자를 배척하며 이것을 곧 ‘우리’를 위한 ‘좋은 정치’로 프레이밍합니다. 이들은 난민이, 혹은 성소수자가 ‘보통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고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와 ‘국가의 안정’을 파괴한다고 이야기하며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자극합니다.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비슷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고, 이 필터 버블에 갇힌 사람은 세상을 무척 극단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예컨대 늘 난민과 이주민이 ‘순수한 국민’을 강간하고, 폭행한다는 글이 온통 소셜미디어 피드를 덮어버린다면, 해당 필터 버블에 갇힌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주민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혐오를 키워나가게 되고,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옹호하는 레토릭에 공감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Jordan Leichnitz, 2022, "What’s really behind Canada’s ‘trucker protests’", (2023년 12월 4일 검색)
김표향, 2022, "캐나다, 코로나 규제 반대 시위로 2주째 ‘몸살’...오타와市 마비 수준" (2023년 12월 4일 검색)
BBC News 코리아, "SNS는 어떻게 브라질 의회 난입을 선동했나" (2023년 12월 4일 검색)
현기호, 2023, 이코리아, "틱톡 규제에 이용자 '형제 앱' 으로 몰려가", (2023년 12월 5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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