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전문가, 봉사자... 그 사이에 서 있는 이들'
'커피 챗은 어디서 해...? 정보는 어디서 봐?'
'비영리 종사자들(내 동료들)의 인생은 어떨까...?'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
'궁금하고 답답하니 내가 한다.'를 모토로 시작한 인터뷰...
1편 보러 가기 >> [활동가 인터뷰 Vol.1] '비영리는 처음이라...' 간호사 N년차, 석사 학위까지... 그런데 국제개발협력은 처음인데요?
2편 보러 가기 >> [활동가 인터뷰 Vol. 2] "세상이라는 물 한 가운데에 작은 돌이 던져졌을 때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셨나요?" 활동가 '작은 돌'님 인터뷰
3편 보러 가기 >> [활동가 인터뷰 Vol.3: 국제개발협력 신입 적응기 A to Z] "이제는 활동가 뿐만 아니라 시민 일반에까지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활동가 '해.마.'님 인터뷰
안녕하세요, 꼬박 반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콜드브루입니다.
2024년 첫 공익활동 아카이브 주제는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작년 세 분에 이어서 네 번째인데요. 작년에 반응이 정말 좋아서, 올해는 최소 두 달에 한 분은 인터뷰해볼까 계획 중입니다. 또, 오랜만에 쓰는 아카이브 글이다 보니 저에게 가장 익숙한 포맷으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주인공은 교사를 꿈꾸다가 문턱(?)에서 개발협력 분야로 진로를 바꿔 활약 중인 '애플이'님입니다. 개발협력 분야는 각양각색의 전공, 다양한 베이스를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실제 경험자를 모시고 어떻게 진로 전환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어렵진 않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전하는 것도 관련 고민을 안고 사는 대학생-주니어 동료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섭외했습니다.
인터뷰를 편집하다 보니 느낀 거지만, 많은 주제로 이야기하려다 보니 내용이 정제가 안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애플이님이 질문도 많이 주셔서 쌍방향 인터뷰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발언 순서나 분량을 수정할까 하다가, 현장감을 위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보시는 데 참고해 주세요.
각설하고, 인터뷰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 현장감을 위해 구어체를 혼용하였음을 서두에 밝힙니다.
콜드브루(이하 'C'): 안녕하세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키워드 통한 짧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애플이님이 요청한 자기소개 사진 / 출처: 애플이 본인
안녕하십니까? 애플이입니다. 혹시 “동물의 숲”을 아시는지요? 제 닉네임은 거기서 나왔습니다. 게임 내에 “애플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이 친구의 가장 큰 특징은 ‘혼자 놀기 마스터’라는 점인데, 저도 마찬가지라서요. 제 닉네임을 애플이라고 지어봤습니다.
A: 제가 최근에 직장 때문에 대구로 아예 이사를 왔어요. 친언니가 이사 선물로 닌텐도를 사줬답니다. 그 이후로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C: 생각해 보니 닉네임은 동물의 숲 출시 전부터 쓰시지 않았어요?
P.S.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와 2021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A: 하하...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 그래도 해볼게요. 저는 초등학교를 한 반에 5명 정도, 규모가 작은 분교에 다녔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학교에서는 나름 영어 인재였거든요. 그래서 학교 대표로 영어 캠프에 나가게 됩니다.
C: 아 스토리 기억나요. 아는 단어가 애플밖에 없어서 그 이후로 이름이 애플이가 됐다는 이야기죠?... 이걸 슬프다 해야 하나, 참 그래도 어떻게 아픔을 승화해서 별명으로 잘 쓰시네요?
A: 그때는 제 이름이 애플인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C: 우린 한국인이잖아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C: 다음 질문입니다. 모든 인터뷰이께 드리는 공통 질문인데요. 제가 택한 네 번째 인터뷰이신데,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선별된 이유는 아무래도 입사 2달 차 신입이기 때문에, ‘신입의 마인드와 고민을 잘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 것 같아요. 또 제가 만만하기 때문 아닌가요? 아무튼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C: 만만한 것도 맞고요. (일동 웃음)
직업 관련 인터뷰가 어색한 분들한테는 요청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요. 저도 지금은 인터뷰어로 자리했지만, 인터뷰이가 된 적도 있는데요. 이게 분량이나 보이는 내용에 비해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잖아요. 깊이 있게 답하려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봐야 하고요. 그래서 앞에 요청했던 분들은 다 저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분들이에요.
또, 그간 제 인터뷰이 풀을 살펴보면, 보건 2명, 청년/정책분야 1명이에요. 그리고 제 주변에 교사 외로 교육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거든요. 때마침 애플이님이 교육 전문 기관에 들어가서 ”잘 됐다, 분량 뽑아야겠다.“ 싶었죠.
오해하실까 봐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아무한테나 요청하지는 않습니다. 나름 철저한 자체 인재 선별 프로세스가 있어요. 평소 이분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일에 열정적인지?' 그리고 '생각(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를 먼저 고려합니다. 또, 주 독자층을 대학생, 혹은 주니어 레벨 실무자로 정한만큼 연령대와 경력도 중요하고요. 주니어 이상분들은 대화를 해보면 아무래도 일을 대하는 자세나 가치관이 조금은 현실적이면서 냉철하다 느낀 적이 많거든요. 반면에 신입은 신입의 무언가가 있지 않습니까? 쉽게 말하면 세대 차이인 것 같아요. 애플이님이 개인적으로 궁금한 분이기도 해요. 저희가 친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는 평소에 잘 나누지 않잖아요.
A: 그렇죠, 만나서 냅다 자기소개를 하진 않죠...(일동 웃음)
C: 마지막 스몰토크 질문입니다. 저만큼(?)이나 동안이신데 업무할 때 이와 관련한 애로사항은 없나요? 저는 종종 곤란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A: 먼저 제가 동안이라는 말씀 동의하고요. 콜드브루님도 동안이라고 넌지시 어필(?)하셨는데, 그 말도 동의합니다. 저희가 오목눈이상이잖아요? 그래서 더 다른 분들이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동안인 게 좋았는데 직장인이 된 지금은 안 좋아요. 비전문적으로, 학생처럼 보일까 봐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동안인 게 또 제 매력이지 않습니까?
C: 저도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동안이 좋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어려 보이는 게 일하는 데 장점은 아닌 것 같아요.
A: 곧 서른이 되시는데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C: (빠른 전환) 네, 이제 본격적으로 인생 전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유아교육과를 나오셨는데, 전공을 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어렸을 때부터 여러 활동을 통해 사람의 잠재력을 보고, 그 잠재력이 꽃 피우는, 다시 말해 역량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게 큰 성취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마다 성취감 기준이 다른데, 저에게는 교육과 성장이 그 기준이었던 거죠. 단순히 교육-평가를 넘어서 교육을 준비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어요. 또, 사람과 대면으로 마주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자연스레 교육과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애정이 보이는 실습 현장 / 출처: 애플이 본인
A: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초등학생 땐 교회 유치부 선생님, 고등학생 땐 유아교육 개선 동아리 창설 및 단장 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아동에 관해 뜻을 품게 된 것 같아요. 또,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죠. 초등교육을 희망하기도 했으나... 성적이 제가 교대를 갈 정도는 아니었어요.
C: 요새는 다르다고 하는데, 확실히 예전엔 성적이 중요했죠.
참, 그런데 초등학생이 유치원생을... 마니또 같아요.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이나 제 눈엔 비슷한 아가들인데요.
A: 아닙니다. 생각보다 그 몇 년의 차이가 커요. 또, 말이 선생님이지 지도 역할보다는 아이들 케어 역할이었어요.
C: 고등학교 동아리 창설도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긴데요?
A: 교육자로서 꿈을 생각하는 와중에, 더 많은 아이가 교육의 혜택을 누렸으면 해서 제가 주도했었어요.
당시 동아리에서 진행했던 캠페인 사진 / 출처: 애플이 본인
C: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더 많은 아이가 교육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은 하거든요. 그런데 실천은 또 다른 문제란 말이죠. 타고난 선함 같은 게 있어야 해요. 그리고 애플이님은 참 선한 사람처럼 보이고요.
A: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선-악 차원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 저의 숙명이라고 느껴졌어요. 항상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죠.
C: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아동에 초점이 집중된 느낌이에요. 그러면 중-고등학생 친구들은요?
A: 앞서 말씀드렸던 것의 연장선에서, 대학에 진학할 때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요. 제가 학생으로서 부족해서 어렵겠다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심리적-예체능 관련은 제가 충분히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뭐, 성적 이전에 제 당시 관심사가 아동교육에 집중이 되어 있었던 것도 맞고요.
C: 유치원 교사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진로를 고민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요.
A: 버킷리스트로 간 해외 봉사가 물꼬가 되었어요. 당시의 작은 바람으로 해외 아이들이 교육을 매개로 꿈과 주체성을 가졌으면 했어요. 그런데 해외 봉사 이후 그 바람이 점점 커지더니 유치원 교사, 교육자라는 제 기존 꿈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죠.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혼란이 더 심해졌고요. '선생님이라는 직업도 생각보다 안정적이지 못하구나...'
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흔히 말하는 2가지 직업 선택 기준을 모두 잡고 싶었어요. 그때 콜드브루님을 해외 봉사에서 만나 NGO에 대해 알게 되었죠.
C: 하하 참 쑥스럽네요. 그때 제 꿈은 국제개발 NGO 활동가였죠. 지금은 모르겠지만요. NGO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A: 당시만 해도 저는 NGO는 긴급구호만 한다는, 일종의 무지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있었어요. 후원 광고도 당시에는 그쪽으로만 보여줬었잖아요? 교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NGO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개발협력 세계에 눈을 뜬 이후로, 제가 좋아하는 교육을 얼마든지 접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진로로까지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콜드브루님은 어떻게 개발협력을 알게 되셨나요?
A: 그래요? 잘 어울려요!
C: 안 그래도 그런 소리 엄청 많이 듣습니다. 아까 애플이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선생-교육자는 분명 남을 돕는 일-사람을 세우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안정감에서 비롯된 직업 요소가 더 부각되어요. 그리고 이를 무시할 수 없고요. 어렸던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소명 의식도 있었죠.
TMI로 제 성적이 재수를 하면서 급등했어요. 어떤 교대를 써도 안정적으로 붙을 성적이 나온 거죠. 이렇게 보니 교대를 쓰기가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일반대학 영문과를 썼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과목이 영어이기도 하고, 교직 이수를 하면 교사 자격증이 나오니까요.
하지만 1~2학년 때 너무 놀아서, 학점 이슈로 정작 교직 이수를 못했습니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할까?'라는 매너리즘도 와서, 도피성으로 입대하고 거기서 NGO를 알게 되었습니다.
A: 어떻게 군대에서 아신 거죠?
C: 당시 군대는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스마트TV 없고, 오직 케이블TV였거든요? 케이블TV는 방송 중간중간 광고가 엄청 많잖아요. 지금 시대처럼 원하는 부분만 골라볼 수가 없으니까,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그대로 볼 수밖에 없었죠. NGO 후원 광고가 특히 많았는데, 그 멘트 아시죠? ‘월 3만 원이면 아동을 살린다...’ 이걸 매일 듣고 보니 어느 날 '정말 실현 가능한가?' 호기심이 생겼어요. 제가 행정병이었기에 인터넷 접근은 상대적으로 쉬웠거든요. 관련 내용을 검색해 봤죠. 자료들을 막 보면서 ‘오 이거 될 수도 있겠는데?’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복학 후엔 그 생각을 실제로 점검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방법도 모르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니까, 제일 비슷해 보이는 이름을 가진 전공을 고른 거죠.
* 인터뷰이는 서강대학교에서 2016년 신설된 ‘한국발전과 국제개발협력’ 연계전공을 선택 수강해 졸업했다.
A: 그때 선택이 참 좋은 선택이었네요.
C: 아무래도 그렇죠. 이론적으로나마 제 현업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A: 하여튼 교육에 참 관심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보건 분야에 계시잖아요. 아직도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을까요?
C: 물론입니다. 딴소리긴 한데요, 사실 보건 분야도 일단 회사에서 뽑혔는데 발령을 그쪽으로 가라 해서 간 거기 때문에... (일동 웃음) 물론 보건이 싫지는 않습니다. 정말 필요하고, 또 재밌는 분야에요.
하지만 분야 전문가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요. 간호사-의사 출신 분들이 많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2년 정도 보건 분야 근무하면서 국제보건이랑 의학이랑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국제보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대학(원)도 생기고는 있지만 아직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모양새예요. 제가 전문가가 되는 가장 빠른 시나리오가 의학 경험을 어느 정도 쌓는 건데, 지금 이 나이에 다시 대학을 갈 순 없잖아요.
A: 아니오, 할 수 있어요.
C: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전공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으신가요?
A: 네, 후회한 적 없어요. 오히려 학부 시절 다양한 이론 학습과 실습으로 얼마나 ‘교육’이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한편으로 얼마나 대담하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C: '조심'은 아이들에게, '대담'은 본인만의 교육관을 말하는 건가요? 조심과 대담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A: 비슷합니다. 아이들 삶의 배경이나 개인의 능력과 선호 등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민해야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표현했어요. 또 교육의 힘과 영향력을 이해하니까, 교육자로서 다른 장애물들에 맞서는, 뚝심 있는 추진력이 필요해서 대담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 겁니다.
C: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교육은 특히 더 복잡미묘한 것 같아요.
C: 이제 회사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많은 분이 현재 계신 기관을 잘 모르실 것 같아요. 저도 이름만 들어봤거든요.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A: 네, 저희 기관은 교육국제개발협력 전문기관으로서, 교육부 ODA 위탁기관 중 하나입니다. 특히 ‘디지털 교육 세계화‘에 방점을 두고 다양한 사업을 개발하고 수행합니다. 제 담당 사업은 ’교원 역량개발‘이에요. 더 깊게 들어가면 기관명이 밝혀지니... 가볍게 이야기할게요. 먼저 협력국 선생님들이 한국에 와서 디지털 선도 교육을 받는 초청 연수 이후 교원분들이 돌아가시고 소속 학교에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면서, 이를 확산하고 전파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로 이어집니다.
C: 외교부엔 코이카가 있듯이, 교육부엔 해당 기관이 있는 건가요? 제가 교육계 시스템을 잘 모르다 보니, 설명을 덧붙여 주시면 이해하기 좋을 것 같아요.
A: 외교부는 코이카가 무상원조를 사실상 단독 집행하지만, 교육부는 여러 지정 기관이 나눠서 수행하는 게 차이입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 기관도 규모가 코이카 급으로 크진 않습니다.
C: 아,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면 일과는 어떻게 보내세요?
A: 일단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구글 시트로 어제 했던 업무와 오늘 할 업무를 작성-정리합니다. 또, 교육부 사업 수행기관이니만큼 공문을 확인하며 업무를 시작합니다. 각자 업무에 집중하다가, 팀원들과 함께 밥 먹고, 다시 오후 근무하고... 그런 반복되는 일과입니다.
C: ’이건 좀 특별하다.’ 싶은 독특한 면은 없나요? 업무라든지 문화라든지요.
A: 해외 출장을 자주 가요. 한 사람당 최소 1년에 1~2회는 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초청 연수에 따른 국내 출장도 정말 많습니다.
C: 앗... 국내 출장하니 제 YP 시절 추억이 떠오릅니다. 대학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기관이니만큼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녔거든요.
C: 혹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A: YP 시절을 꼽고 싶어요. 그때 함께 일하는 모든 분을 존경하고, 또 좋아했어요. 콜드브루님도 아시겠지만, KOCIA 민관협력사업은 1월 말, 8월 말이 엄청 바쁘지 않습니까?
C: 네, 반기 보고 마감이 그때죠.
A: 그 무렵 딱 하루, 야근을 새벽 3시까지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굉장히 뿌듯하고 재밌었어요. 야근을 해서 짜증 난다거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 하나도 없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제 업무 범위 밖인 일에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일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해요.
C: 원칙상 사업수행기관 YP는 야근을 지양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죠. 특히 소규모 기관일수록요. 저는 아직도 새벽 3시까지는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최장 기간은 12시 반? 마감일에 모든 문서를 보내고, 전 회사 팀장님 차를 타고 야근러 동료들과 함께 집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마찬가지로 뿌듯하고 후련했던 것 같아요.
C: 철학적인 질문으로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국제교육협력 분야 종사자로서 가장 높게 두는 가치와, 그 의미는 무엇인지?
A: ‘내가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일은 옳은 일이다.‘ 제 모토이자 가치관입니다. 진로 고민을 하면서 많은 분들께 왜 국제개발협력을 하는지 여쭤본 적이 있어요. YP 당시 한 선임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로 고민을 떠나서, 말씀해 주셨던 그런 경험 자체가 제 안에 있었더라고요, 그 선임분의 말씀이 제 초심을 상기할 수 있는, 일종의 도화선이 된 거죠. 그리고 지금까지 유지 중입니다. 하지만 저도 언젠가 흔들리겠죠?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자문해야 해요. 오늘 인터뷰로 또 한 번 제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C: 사실 이 질문은 매 인터뷰이분들께 고정적으로 하는 질문인데, 그 답변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달라 참 재미있네요.
A: 콜드브루님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C: 저는 ‘재미’라고 생각해요. 이 일은 물질적인 걸 보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정말 선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솔직히 말하면 재미 60%, 가치 지향(선한 의도) 40%에요. 이 일을 누군가는 하겠지만, 그 누군가가 내가 되려면 스스로 재미를 찾아야 해요.
A: 뭔가 굉장히 이기적인 이유로, 이타적인 행동을 하시네요.
C: 정확합니다. 각자만의 동기, 저의 경우 재미가 있어야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이나 주변에서 ‘좋은' 일한다고 표현하면 영 불편해요. 전 ‘좋은’ 일 이전에 이 일이 재미있어요.
A: 하지만 그런 마음 자체가 선해서 나오는 것 아닌가요? 진짜 선한 사람, 이른바 ‘BORN TO BE’는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닙니다. 어떻게 쉽게 말할 수가 없는 게, 물질적인 요소 역시 저희 인생에서 분명 중요한 요소예요, 이 분야에서도 그걸 우선으로 두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니까요. 그리고 돈을 중요시한다고 그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일각에서는 그런 프레임으로 보기도 하지만요.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지네요.
C: 그래도 다들 목적의식이 있는 건 확실해요. 저는 그 각자의 목적의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고 싶어요. 동료들을 볼 때마다 ‘왜 이 일을 하나?’ 너무 궁금하거든요.
A: 콜드브루님 책 한 권 쓰시죠?
C: 책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제 질문에 관한 궁극의 답을 찾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해를 못 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게 책으로서 어떤 가치가 있겠어요? 특히 이런 가치관 문제는 더 그렇고요.
A: 그래도 다양한 소스를 접할 매체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콜드브루님 인터뷰도 그런 면에서는 분명 의미 있어요. 제가 좀 더 어렸을 때 콜드브루님을 알았더라면 혼란도 덜 했을 텐데 아쉬워요.
C: 많은 비영리 종사자분이 금방 떠나거나, 환멸을 느끼며 관성으로 일하는 게 저는 그 분야의 후배-동료-선배로서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서 보기가 힘들었어요. 개인 입장에서 보면 시간 날리고, 안 좋은 기억만 가지게 된 거잖아요? 요새는 이런 문제의식이 필드 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고, 관련 활동을 주도하시는 멋진 선배님들도 계신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문제의식에서는 외부에서부터 어떠한 Input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나 내부자의 소리는 더 퍼지기 어려운 법이거든요. ‘이러이러한 어려움들이 있으니, 솔직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고 이 분야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해라.’ 동네방네 소문 내면 양쪽 다 자원 아끼고 좋은 방안 아닐까요? 개선 사항이 있다면 공론화도 더 쉽게 될 거고요. 그래서 저는 인식개선-가치관 문제는 프로젝트형 사업보다는 광범위 매체 접근으로 하는 게 맞다고 봐요. 분명 예전부터 업계 체질 개선 움직임이 있었지만, 저는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거든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결론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는데요. 올해 10명은 인터뷰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멉니다.
A: 파이팅하십쇼.
C: 앞 질문과 궤를 같이하는데요, 활동가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단호함’이요. 이게 사업인 만큼 들인 가치만큼의 성과를 최소한 내야 하거든요. 귀찮고 반복적인 실무에 있어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 예측불가능-불투명성에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도 필요해요. 예산과 집행 현황을 더 꼼꼼하게 본다든가, 사업의 방향이 명예나 돈, 나에게 익숙한 지역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을 대상으로 하는 것 등등에서요. 저는 이 단호함을 지키는 게 곧 활동가로서 우리들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봐요.
C: ‘단호함’이라는 게 평가할 수 있는 정량적 기술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정말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사업 내-외로 유혹이 많으니까요.
C: 그런 유혹에 흔들린 적은 없나요? 후회나 고민이 있다든지...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어렸을 때 꿈은 화가였어요. 상상력이 풍부하고, 또 그림도 잘 그리거든요.
C: 동의합니다.
애플이님의 그림 / 출처: 애플이 본인
A: 하지만 어느 진로를 선택했든, 역량개발을 우선으로 하는 일을 원했을 것 같아요. 화가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요. 결국 지금 하는 일과 큰 틀에서의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후회라기보다는 제가 좀 더 준비 없이 이 분야에 들어온 것 같아 아쉬워요. 결국 전문성이죠. 아직 신입이고, 제 주관보다는 선임분들의 시선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요.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C: 사실 완전히 준비되어서 이 분야 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신입이던 시절이 있기도 하고요. 전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지금 제가 맡은 사업도 사실 아직 모르겠어요. 또, 제가 어떤 행정-전문 기술을 익히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A: 제 눈엔 전문가인 콜드브루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참 신기하네요.
C: 가벼운 이야기로 넘어 가볼게요. 요새 취미는 무엇인가요?
A: 멍때리기요. 요새 햇살멍, 바다멍, 불멍 등이 유행이기도 하고... 또, 자연을 좋아해서 산책이나 등산을 갔을 때 멍때리면 그렇게 행복한 게 없더라고요.
요가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어깨 서기'를 하면서 멍때리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C: 고급 멍때리기를 구사하시네요. 저는 멍을 잘 못 때려서 그 재미를 못 느끼는 게 아쉽네요.
A: 왜요?
C: 잡생각이 많아서... 그런데 지금 파견 나와 있는 네팔에서는 멍을 때려야만 해요. 전기가 수시로 나가서 전자기기로 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데이터도 느리고요.
A: 생존 멍때리기네요?
C: 네 맞습니다.
C: 요새 ‘업무 외’ 고민은요?
A: 하루가 정말 빨라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걷는 것 같아요. 이 기관에서 2개월 차 이지만, 퇴근-밥-잠-출근 업무가 종종 버겁게 느껴질 때 있거든요. 나를 지키는, 나만의 시간이 사라진 것만 같고... 그래서 나를 지키면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가 고민입니다. 이 생활도 곧 익숙해지겠지만요.
C: 맞아요. 일단 익숙해져야 해요. 그 이후에 짧은 시간 안에서 뭐를 할지 스스로 찾아야 해요. 저도 근데 말만 이렇게 하고, 평일엔 그냥 퇴근하고 놀았어요.
A: 술 마셨죠?
C: 네, 그건 생각 없이 할 수 있잖아요.
A: 콜드브루님은 삶과 일의 분리가 빠르게 되셨나요?
C: 네, 엄청 바쁜 시즌이 아니면...
A: 어떻게 생각이 많은데 그게 되나요?
C: 일 자체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안 하려 해요. 모름지기 일은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끝내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C: 본인이 그리는 미래를 간단히 공유해주세요.
A: 1회 인터뷰를 보니, 수쟈비님께서 주체성을 엄청나게 강조하시더라고요. 되게 많은 걸 느꼈고, 저도 제 주체성을 가진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C: 어떤 ‘삶’을 살고 싶다...이런 생각은 아직 안 하시나요? 전문가가 우리의 삶 그 자체는 아니잖아요.
A: 네, 아직 깊이는 생각 안 해본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커리어에 집중해야 할 시기입니다.
C: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이 글을 보는 미래의 동료분들께 한마디 하겠습니다. 아직 신입이라 부족하지만, 천천히 배워나가고 있는데요.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내가 노력하는 시간이 나를 지켜줄 거라 믿어요. 요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요, 비록 지금은 잘 못해도, 제가 공부한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의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파장이 되고, 더 나아가 파도를 만든다’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천천히 나아가는 자의 삶을 믿고 만족하는 저처럼, 여러분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의 파장을 믿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C: 크... 멋진 표현으로 피날레를 장식해 주셨네요.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ducation is the most powerful weapon which can use to change the world." 애플이님의 신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동교육"을 꿈꾼 애플이님, 비록 그 대상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꿈속에 살아 행복하다고 소회를 전했는데요. 덩달아 저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금번 활동가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활동가 인터뷰도 기대해 주시길 바라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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