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하는 건축이란 무엇일까? : Juhani Pallasmaa의 책소개
현안과이슈 / by 김윤일 / 작성일 : 2024.07.31 / 수정일 : 2024.08.29

 

평소보다 천장이 높은 곳에 머물러 있을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 경험이 있나요? 실제로 천장의 높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이어져서 낮은 곳에서는 분석적인 사고가, 천장이 높은 곳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창의적인 사고가 잘 발휘된다고 합니다. 공간과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저 용도에 따라 구획하는 공간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감각하고 사고하도록 하는 공간을 건축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오직 시각적 감각에 몰두하여 형태에 초점을 맞춘 건축이 아닌, 여러 감각과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통합적인 건축을 들여다보는​ <건축과 감각_The Eyes of the Skin>이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떤 건축이 인간에게 또 하나의 자연으로서 작용할 수 있을지, 팔라스마의 문장을 통해 공간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피부의 눈_건축과 감각


건축과 감각(The Eyes of the Skin_Architecture and the Sense, 1996)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교육자, 평론가인 유하미 팔라스마(Juhani Pallasmaa)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의 1장에서는 기존의 시각에 의존한 건축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는 서구 사상에서 시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특권을 누려왔고, 현대의 건축 역시 관리, 조직, 대량생산의 패턴과 이것을 만드는 힘들이 시각적으로 편향된 건축을 지지해 왔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세계에 대한 경험을 시각 영역에만 국한된 것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감각들의 상호작용을 조사하고 그것을 건축의 표현과 경험 차원에서 제공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건축과 감각, 유하미팔라스마

(사진출처: 알라딘)


2장에서는 주로 이러한 감각적 건축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여러 감각이 관여하는(multi-sensory) 경험
     

건축은 본질적으로 자연의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팔라스마가 지향하는 ‘건축은 격리되거나 자기만족적인 가공품이 아니며, 우리의 관심과 실존적 경험을 더 넓은 지평으로 향하도록’ 하는 건축입니다. 숲속을 산책할 때, 기운이 나고 치료 효과가 있는 이유는 모든 감각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고 이를 ‘감각들의 다성 음악적 성격'이라고 바슐라르가 말한 바 있습니다. 눈은 몸 그리고 다른 감각과 협력하고 우리의 실재성에 대한 감각은 이러한 상호작용에 의해 강화됩니다. 우리 역시 건축된 공간 안에서 감각적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감각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눈 역시 어떤 것을 인지하기까지는 다른 감각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18세기 아일랜드 철학자 조지 버클리는 촉감을 시각과 연계하여, 촉감적 기억의 협조가 없이 물질성, 거리, 공간적 깊이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관점으로 촉각은 단단함과 물러서지 않는 저항, 돌출에 대한 감지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촉각에서 분리된 시각은 거리, 외부성, 깊이를 알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공간이나 몸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좋은 건축은 눈에 의한 기분 좋은 만짐을 위해 만들어진다' p.66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낙수장(fallingwater)은 주변의 숲과 건물의 볼륨감, 표면의 질감, 강물의 소리 등을 포괄하는 생생한 체험으로 낙수장 고유의 충만한 경험을 직조한다. 

(사진출처: By Esther Westerveld from Haarlemmermeer, Nederland - Fallingwater (Frank Lloyd Wright) - Mill Run PA,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6729460)


  • 그림자의 중요성


팔라스마는 선명하게 보이는 시각이 아닌 어둠에 대한 감각을 살핍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감정을 느낄 때 눈을 감는 경향이 있습니다. 짙은 그림자와 어두움이 ‘시각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깊이와 거리를 모호하게 하면서 무의식적이고 주변적인 시야와 촉각적 공상을 불러' 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밝고 빛나는 오늘날의 도시에 비해, 옛 마을의 길거리는 오히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영역을 가져 신비롭고 유혹적이라고 말합니다.


건축에서 빛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요소는 ‘조명’입니다.

그는 현대 시대에서 창은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내면성과 외면성, 개인성과 공공성, 빛과 그림자를 매개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상실하고 단지 벽이 없는 부분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말을 빌어 이를 부연 설명 하는데요. '거대한 평판 유리창은 우리의 건물들로부터 친밀함을 없애고, 그림자와 분위기가 가져오는 효과를 앗아간다. (중략) 친밀한 삶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사라졌고, 공적인 삶, 본질적으로는 집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도록 강요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조명에 의한 균질한 빛의 세기에서 벗어나서 현대의 공공 공간도 빛의 강도를 낮추고, 빛을 균등하지 않게 배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바알토의 새이내트살로 시청사(Saynatsalo Town Hall
)의 다큐멘터리https://www.youtube.com/watch?v=y2pN47LjpZM 

팔라스마는 알바알토의 시의회 회의실이 마치 어두운 고치의 내부 같으며 공동체 의식의 신비롭고 신화적인 측면을 되살린다고 말한다.
(반면 시민을 통제하려는 문화는 감각의 상호작용과 반대로 가는 경향을 보이고 예컨대, 그림자를 없애는 강한 조명을 지속적으로 비추는 것이다.)


 

위대한 건축공간에서, 그림자와 빛은 지속적이고 싶은 호흡을 이어간다. 그림자는 빛을 들이쉬고 조명은 빛을 내쉰다
- p.70

 

  •  청각적 친밀함


시각은 소외시키는 특징을 가지지만 소리는 포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방향이 있는 시각과 다르게 소리는 무지향적이며, 시각은 외면성을 암시하지만, 소리는 내면적인 경험을 창조합니다. 건물에 있을 때 건물은 시선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소리에는 건물에 반향이 되어 우리의 귀로 들어옵니다. 이처럼 소리를 들으면 공간의 이해와 경험이 구조화되고 분명해지는 특징이 있는데 보통은 공간 경험에서 청각의 중요성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상상력 전반에 소리의 힘은 강력합니다. 특히 밤에 들리는 소리는 인간에게 외로움과 누구나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잠에 빠진 도시를 하나의 전체로 의식하도록 합니다. 폐허의 어둠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청각은 어두운 공간에서도 형태의 외곽을 3차원적으로 빚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청각으로 상상한 공간은 마음속에서 직접 주조한 캐비티(cavity)가 됩니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 나는 사근사근한 소리-거주자의 삶을 반영하는 물건으로 굴절되어 부드러워진 소리-와 사람이 살지 않거나 가구가 없는 집에서 나는 거칠고 황량한 소리는 다르다. 모든 건물과 공간은 친밀함, 기념비성, 초대 혹은 거절, 호의 또는 적의를 뜻하는 고유의 특징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다. p.74

(사진 출처: 저자)


우리의 눈은 대성당의 어둡고 깊은 공간을 헤매지만, 오르간의 소리는 공간에 대한 친밀함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또, 항구에서 들리는 갈매기 소리에 대양의 거대함과 수평선의 무한성을 인식합니다. 모든 도시는 그 도시의 패턴과 스케일, 건축 스타일과 재료에 따라 고유한 반향과 울림을 가집니다. 반면 현대의 넓고 개방적인 도시공간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건물의 소리는 흡수되고 검열되며 쇼핑몰과 공공 공간에 울리는 음악 소리는 청각으로 공간감을 파악하는 경험을 생략합니다.  

 

  • 촉각의 형체 


장인의 도구와 사용자의 부단한 손길로 빛이 나고 있는, 오래된 물건의 표면에는 손으로 쓰다듬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 이전에 수천 번에 걸친 다른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광이 나는 문고리를 만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와 같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종류의 마모를 거쳐 형성되는 빛의 일렁임은 환영과 호의의 인상을 남긴다. 문고리를 잡는 것, 이는 건물과 나누는 악수다. p.84


촉각을 이용해서 우리는 둥글둥글하게 마모된 조약돌을 만지는 것처럼 접촉하는 것 사이의 시간과 전통과 이어집니다. 또한 공간의 온도와 느낌의 영역 자체가 공간과 장소의 경험이 됩니다. 노출된 피부와 집에 대한 느낌에는 강력한 동일시가 존재합니다. 집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친밀한 온기를 경험하는 것이어서 벽난로 주변의 온기가 있는 공간은 궁극적인 친밀감, 편안함으로 동일시될 수 있습니다.

  • 행동의 이미지


잔디가 깔린 정원에 놓인 디딤돌은 발걸음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딤돌을 걷는 행위와 같은 행동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점은 건축이라는 분야만의 특이한 점입니다. 즉 건축의 요소들은 단지 시각적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기능의 징조'로서 사람들 행위의 가능성을 내포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집에 대한 경험을 구조화하는 것은 시각적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요리하기, 식사하기, 사회화하기, 읽기, 저장하기, 잠자기, 친밀한 행동들과 같은 분명한 행동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중략) 건물은 행위와 움직임을 일으키고, 연출하며 조직한다. (중략) 따라서 건축의 경험은 기본적으로 정적인 상태보다는 동적인 상태를 가지고 있다. (중략) 문의 시각적 형태보다는 열기라는 행동이, 물질적 대상으로서의 창문 자체보다는 창문 안팎을 내다보거나 들여다보는 행동이, 시각적 디자인으로서의 벽난로보다는 온기의 영역을 점유하는 행동이 건축적 경험을 채우게 된다. 건축적 공간은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삶이 반영된 공간이며, 삶이 반영된 공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형태와 측정가능성의 경계를 넘어선다.’ p.92 

팔라스마는 마지막으로 건축의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을 빌려 ‘통합성 integrity’라고 말합니다. 


거주지는 곧 우리 자신의 몸, 존재의 일부가 됩니다. 건축은 세계와 우리 자신 사이의 조화에 관한 예술이고, 이러한 중재는 감각을 통해 일어납니다. 공간의 경험에서 우리는 공간, 물질, 시간이 하나의 단일한 차원으로 융합되어서 존재의 기본적인 실체로 합쳐질 수 있습니다. 



알마 알토의 파이미오 요양소


알마 알토(Alvar Aalto, 1898~1976)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팔라스마는 감각과 건축에서 알마알토의 건축을 사람들의 감각과 행위를 존중하는 건축으로 여러 번 예시를 들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작품 중 하나인 파이미오 요양소(Paimio Sanatorium, 핀란드, 1933)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모든 병실 방향이 남향으로 지어진 파이미오 요양원

(사진 출처: 파이미오 홈페이지 https://paimiosanatorium.com/sanatorium/history/)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치료약이 발명되지 않은 채 핀란드에서 결핵이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이를 정부가 국가적 재난 사태로 인지해 남서부 시의회에서 특별건축위원회를 열어서 결핵 요양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때 설계 공모에 당선된 서른 살의 젊은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파오미오 요양원입니다. 이는 핀란드 현대건축의 시작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일광욕을 할 수 있는 7층 테라스

(사진 출처: https://paimiosanatorium.com/)


설계 당시 가장 중점을 둔 점은 채광이었습니다. 결핵 환자들의 환기와 일광욕을 위해서 되도록 오래 햇볕을 쬘 수 있도록 병실을 남동쪽으로 위치했고, 테라스도 남쪽을 향하게 설계했습니다. 7층 테라스의 사진은 파이미오 요양원의 유명한 장면입니다. 


그는 외부 설계뿐만 아니라 내부 설계와 바닥, 조명, 가구들을 환자들의 ‘침대 위의 삶'을 고려하여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창의 하단을 최대한 낮추고, 한 번 걸러진 바람이 통하도록 이중창을 두었습니다. 벽지는 울림을 최소화하고 물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도록 세면대를 설계하였습니다. 소나무 숲속에 위치한 요양소의 자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숲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건물과 주변의 자연 그 자체로 치유의 요소가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제가 페이미오 요양원을 설계하기 시작했을 때, 저도 마침 몇 달 동안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환자의 방이 실제로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테스트 케이스로 저 스스로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장기간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선천적으로 더욱 섬세하고, 더 민감합니다." 

1970년대에 결핵치료약이 개발되고 나서 파이미오 결핵 요양원은 요양원이 아닌 종합병원으로 전환되었고, 현재는 건물을 개방하여 공공의 공간으로써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시 공간과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스 방으로도 쓰이며, 관람객이 직접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숙박 서비스도 있습니다. 

근 몇 년간은 파이미오의 정신(Sprit of Paimio)이라는 이름의 컨퍼런스를 열어 건축, 도시, 지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2024년 올해의 컨퍼런스 주제는 지역사회 재구상(Reimagining Community) 입니다. 
 

(진출처: 파이미오 홈페이지 https://paimiosanatorium.com/spirit-of-paimio/spirit-of-paimio-conference-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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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윤일 / 작성일 : 2024.07.31 / 수정일 : 2024.08.29 / 조회수 : 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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