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연민과 진짜 연대의 차이
현안과이슈 / by 콜드브루 / 작성일 : 2024.06.15 / 수정일 : 2024.06.18

​"There's a right way and wrong way to do empathy."


미국의 작가이자 학자, 워렌(Chezare A. Warren)의 말입니다.

사회복지학, 사회학을 전공하신 분들께는 익숙한 이름일 텐데요. 지역사회복지론으로 유명한 그 워렌, 맞습니다. 그 유명세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은데요. 전미 인종, 교차성 정의(Intersectional Justice) 분야 최고의 신진 학자로서, 흑인 교육 문제의 해결책을 연구하고 결과물을 현장에 적용하며, 최종적으로는 정책 입안을 목표로 하는 The Possibilities Project의 수석 연구원 겸 총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말하는 '옳은' 공감과 '잘못된' 공감의 차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2024년 2월, 전 세계에서 선별된 교사-교육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TED의 프로그램인 Ted-Ed Educator Talks에서 워렌은 상기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6월 11일, 일반 대중들에게도 해당 강연이 공개되었는데요. 개인주의, 파편화, 사적 제재 등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강의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한국어 번역 스크립트가 존재하지 않아 제가 직접 번역했습니다.




​화자: Chezare A. Warren


(0:00)

 

혹시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썼던 분 계신가요? 네, 만약 당신이 아니더라도, 아마 그런 사람을 알고 있을 거예요. 저는 제 평생 안경을 썼기 때문에 안경 없이 지낸 시절이 기억나지 않아요. (사진을 넘기며) 자, 증거물(Exhibit) A입니다.

(일동 웃음) 

저 귀엽지 않나요? 그리고 제가 몇 년 전 25살이 되었을 때를 기억하는데, (사진을 넘기며) 아주 멋진 생일 파티가 계획되고 있었어요. 시카고, 호수 옆 펜트하우스에서 열릴 예정이었어요. 정말 멋질 예정이었죠. 그리고 이 사진은 그 사진 촬영 중 하나입니다.

(청중 웃음)


(0:40)
사진을 제대로 찍을 필요가 있죠. 그래서 렌즈를 주문했어요. 안경 없이 멋지게 보이려고 했는데, 렌즈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티에 아무것도 없이 맨눈으로 갔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없었습니다.

(청중 웃음)

노력은 했지만, 결국 실패한 미션이었죠. 그래도 이제는 40대가 되었고, 여전히 멋지고 없어서는 안 되는 코카콜라 병 같은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 안경 덕분에 저는 세상을 명확히 볼 수 있고, 저 스스로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죠. 어렸을 때 귀여웠던 저의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지만 오해하고 있는 개념인 공감에 대해 떠오르게 합니다.


(1:22)
저는 지난 15년 동안 "공감"을 연구해 왔습니다. 공감의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 + '무엇을 보는가'입니다. '어떻게 보는가'는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주관적입니다. '무엇을 보는가'는 보다 객관적입니다. 특정 순간, 상황, 조건을 물리적으로 관찰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는가'는 우리의 개인적인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우리의 기술적 지식에 더 많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공감을 제대로 하려는 진심 어린 시도가 여전히 잘못된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07)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저는 시카고 남부에서 8학년 수학 교사로 풀타임 일했습니다.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밤이 새도록 수업 듣고 연구했습니다.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늘 피곤했어요. 


(일동 웃음)​

어쨌든, 첫 학기에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이다(The Political is Personal)"라는 Eileen O'Brien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그 논문에서 O'Brien은 백인 반인종주의자들이, 도움을 주려는 유색인종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합니다. O'Brien은 백인과 유색인종이 인식의 격차로 인해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백인들은 인종 차별이 196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유색인종이 괜히 불평하고 과잉 반응한다고 여깁니다. 반면 유색인종은 계속되는 인종 차별을 봅니다. O'Brien은 독자가 이러한 근본적 시각의 차이를 인식하도록 돕고 있으며, 이를 법학자 Richard Delgado의 용어를 빌려 거짓 공감(False Empathy)이라고 설명합니다.


(3:10)
기본적으로 거짓 공감은 공감하는 사람이 공감하려는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백인 반인종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공감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그들이 도움을 주려던 유색인종은 그들(백인 반인종주의자)의 선의와 자선을 도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점차 이러한 백인 반인종주의자들은 불만과 좌절감을 느꼈으며, O'Brien은 이 감정을 그들의 거짓 공감의 증거로 설명합니다.

저는 그 논문을 읽고 시카고에서 함께 가르치던 백인 교사 동료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교육 통계 센터에 따르면, 백인들은 교사 인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학생 인구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K-12* 학생 중 백인으로 식별되는 비율은 50% 미만입니다. 이는 공감, 또는 거짓 공감이 제 동료들이 흑인 학생들과 긍정적이고 실질적인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Kindergarten-Grade 12,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의미하며, 미국식 기본 학제를 뜻하는 용어로 널리 쓰임.


(4:18)
저는 흑인 소년들이 더 많은 인내와 관심이 필요하지만 무관심하고 비협조적인 학습자로 잘못 분류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어폰을 벗지 않으려는 학생은 우리가 볼 때 그러한 모습의 전형입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어떻게 보는가'입니다. 공감은 행동으로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하기 위해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O'Brien 연구에 나오는 백인 반인종주의자들처럼, 교사들의 관계는 기껏해야 취약했고, 긍정적인 성인과의 상호작용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과는 관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4:59)
저는 지금 교육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 어떤 산업에 종사하든, 좋은 사람-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 속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거짓 공감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짓 공감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화면 전환) 플린트(Flint), 미시간 출신의 사람을 만나 깨끗한 물이 부족해 본 적이 없는데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한 기분을 알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한 것과 깨끗한 물을 가지지 못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거짓 공감은 망토를 두른 채 영웅 놀이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면 전환) 우리는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고통의 원인을 조사하지 않고 곧바로 행동합니다. 여러분께 나쁜 소식을 전하고 싶지는 않지만, 때로는 그들을 구하는 것이 그들보다 우리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거짓 공감은 이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6:02)

저는 게 다리를 좋아합니다.

(일동 웃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해산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거짓 공감은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한 파운드의 게 다리를 사서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는 파트너에게 주며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는 긴 하루를 보낸 후 소파에서 당신의 관심을 더 원하는 아이에게 비싼 선물을 사주는 것입니다.

예시를 더 들 수 있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짓 공감이 관점의 충돌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반인종주의와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진심 어린 의도가 항상 의도한 결과로 이어지거나 우리 모두 상생하기 위해 필요한 관계를 이루게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6:46)

제가 흑인 소년들과 진정한 교감을 끌어내는 교사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은 매일 공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도하고 실패하고 실수를 합니다. 그들은 겸손을 발휘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합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를 관점 채택(Perspective Taking)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심리적 관점을 자발적으로 채택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관점 채택이 학생-교사 관계를 크게 개선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관점 채택이 보이는 교실에서는 다른 경우에서는 소외되는 흑인 소년들이 존중받고 들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교사들은 그들의 문제에 대한 혁신적이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관점 채택이 흑인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한 배제성 처벌(Exclusionary Discipline) 사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공감 훈련이 암묵적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7:43)

​(화면 전환) 상상해 보세요. 슬퍼 보이는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거나, 당신이 어느 정도 익숙한 문제에 대해 친구가 조언을 구하는 상황을요. 거짓 공감을 피하고 싶다면, 아마도 먼저 멈춰야 할 것입니다. 그 순간 상황을 관찰하려는 것을 멈추라는 뜻입니다. 아시겠죠? 공감은 우리의 자아에 대한 민감성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자아가 우리가 어떻게 보는지를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듣는 동안 자아중심적 사고를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듣는 것은 예술입니다. 또, 그것은 절제이면서, 동시에 관점 채택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듣는다면, 의미 있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겸손을 발휘하고, 그 현장에서 곧바로 무언갈 하려 하지 마세요. 우리는 관점 채택 없이 공감할 수 없습니다.


(8:38)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언갈 해야 합니다. 특정한 행동을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옳은 것이라 기대하지 마세요. 그 행동으로부터 받는 피드백을 바탕으로 이후의 상호작용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8:54)

이해와 해석의 길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시력과 매우 유사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합니다. (과거 사진 화면 전환) 나이가 들수록 변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과에 가서, 그 장치 앞에 앉아 여러 렌즈를 움직여 시력의 명확성을 확인합니다. 그들은 제가 어떻게 보고 무엇을 보는지, 제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9:26)

공감은 이러한 처방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누군가를 돕고 싶거나, 치유하고 싶거나, 지원하고 싶거나 혹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을 때, 올바른 눈으로 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하세요.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출처: Flaticon-Freepik

 

영상을 본 이후 저 자신을 돌아보니, '공감'과 '몰입'을 이유로 누군가 대상으로 가치 판단이나 평가를 일삼던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저는 자기주장이 정 강한 사람이거든요. 건강한 관계에서 중요한 건 제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이라는 것. 귀는 열되, 입은 닫기. 참 알면서도 매번 지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입장-생각 차이로 어려움 겪은 적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 또 부딪히게 된다면, 무심코 이번 강연이 떠올라 해결책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의 시력(가치관)도 변한다는 저자의 말. 이번 한 주는 내 눈이 어떤 상태인가 스스로 점검해 보는 게 어떨까요?

이번 큐레이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 콜드브루 / 작성일 : 2024.06.15 / 수정일 : 2024.06.18 / 조회수 : 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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