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약간의 집중이 필요한 책들 : 대안적 삶과 새로운 시각
현안과이슈 / by 나드 / 작성일 : 2024.07.31 / 수정일 : 2024.07.31



밤늦도록 빛나는 화면을 보다가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찾는 것도 알람이 깜빡이는 작은 스크린인 생활이 대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생활의 한 부분이 된 지 오래라서 더는 문명이나 기술이라는 말로 묶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나날이 변해가는 자연을 보면 설풋 두려운 마음도 든다.

이상 기후라는 말은 단어가 아닌 현실로 체감되고, 매해 가장 더운 여름이 갱신되고 있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채식 메뉴를 고르면서도 막막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이 관계 맺는 법에 대한 남다른 시각들을 접하면서, 자칫 우울해질 수 있을 마음을 환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술술 읽히는 에세이나 소설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더위 안에서 잠시 숨돌릴 겨를이 생긴다면 약간의 집중력을 곁들여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세 권의 책을 세 가지 자의적인 난이도로 분류해 보았다.


(1) 가뿐히 수월하게 읽어볼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저 | 정지인 역 | 곰출판 | 2022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p. 95)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pp. 141-142)

몇 년 전 한국에 번역되자마자 여러 독자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곳곳의 독서 모임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개인적 부침과 고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번갈아 짚으며 인생의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한 기자의 좌절에서 시작된 여정은 어느 저명한 학자를 쫓으며 펼쳐지는 뜻밖의 진실들로 계속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발간 이후 “꼭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읽으라”는 당부와 함께 권해지던 책이다.

이야기를 쫓으며 도달한 삶과 진리에 대한 통찰과 함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아마 벅찬 마음으로 제목을 되뇌이게 될 것이다.



(2)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한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저 | 김하현 역 | 필로우 | 2023
 

한 발짝 떨어지는 것은 여기에 수반되는 모든 희망과 슬픈 사색을 품고 현재의 세계를 미래에 가능한 세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p. 121)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누군가를 보고, 우리의 세상에서 누가 행위 주체성을 가질지를 결정한다. 관심은 사랑뿐만 아니라 윤리의 기반을 형성한다. (p. 255)

장식적이면서도 간결한 인상이 두드러지는 번역본 표지와 달리 원서의 표지는 저자가 거주지 인근의 공원에서 찍은 것으로, 프레임 가득 장미 넝쿨이 흐드러진 사진이다. 제목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뜻밖이다.

짧은 휴식이 아니고서야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능한 많은 것을 빠르게 해내는 게 최고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설파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하지 않으리라는 선언의 여러 의미를 탐사한다. 그의 조언과 발맞추다 보면 마치 노이즈 캔슬링을 끄듯이, 제자리에서도 새로운 세상에 접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3) 문장을 꼼꼼히 따라가 볼 책

계 끝의 버섯 :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저 | 노고운 역 | 현실문화 | 2023
  

진보에 관한 이야기도, 붕괴에 관한 이야기도 어떻게 하면 협력적 생존을 생각할 수 있을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쯤에서 버섯 채집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버섯 채집이 우리를 구원해 주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줄지 모른다. (p. 49)
우리는 시각을 너무 많이 믿는다. 나는 땅을 쳐다보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치맨이 손을 더듬어 찾아낸 것처럼,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보 없이도 헤쳐 나가려면 우리의 손을 이용해 충분히 느껴야 한다. (p. 488)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라는 부제처럼 무게감이 있는 책이다. 쉽사리 도전하기 어려울 법한 두께가 돋보이는 데다 인류학자인 저자가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꼼꼼하고 방대한 주석이 이해를 돕는다.

‘인간’과 인간다운 삶의 바깥이라 여겨지는 영역에서 버섯, 포자, 진균류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함께 살피다 보면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읽는 내내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진미로 여겨지는 송이버섯의 향을 떠올리게 된다.

다가오는 가을, 다시 송이버섯을 만난다면 뜻밖의 반가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것만 같다.


  

 


작성자 : 나드 / 작성일 : 2024.07.31 / 수정일 : 2024.07.31 / 조회수 : 1113

코멘트를 달아주세요!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