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사례] 장애인 수사·재판 절차에서의 옹호인의 역할
재판장에 서본 경험이 떠오릅니다. 한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옹호하는 일이었는데요. 사실, 장애가 있는 피해자 분과 친분이 깊어 '그 분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진술석에 앉으니 재판장님을 한껏 올려다 봐야 하더군요. 판사님과 진술석의 높이 만큼 피해자 분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저도 온 몸이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덤덤하게 한 단어 한 단어를 연결하는 피해자 분이 대단해보이는 것도 잠시, 머지 않아 재판장에서 눈물을 보이고 마셨습니다. 그때 저도 처음 재판장에 서보는 날이었지만, 용기내어 5분의 휴식시간을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우리에게 그 5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장애인 수사, 재판 절차에서의 옹호인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
1. 들어가며
2019년 4월, 검찰 피의자 신문과정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피의자에게 신뢰관계인 동석 등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그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의 피의자는 발달장애 여성으로 길어야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담당수사관은 총 5회에 걸쳐 회당 적게는 7시간에서 많게는 9시간씩 조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발달장애가 있는 피의자의 경우, 「형사소송법」244조의51)에 따라 신뢰관계인 동석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2)에 따라 사법절차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조력의 내용을 고지 받아야 했지만 담당 수사관은 법률에 있는 어떠한 의무도 다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의 피의자는 징역 4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만일 이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장애유형 및 특성을 잘 이해하고,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지원할 수 있는 신뢰관계인이 함께 동석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저지른 죄야 다시 되돌릴 수도, 되돌려서도 안 되겠지만 적어도 수사과정에서의 긴장감과 불안으로 인해 없었던 일이 있었던 일로 뒤바뀌는 일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처럼 수사·재판과정에서의 옹호인 역할은 그 내용과 범위를 떠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당사자와 조사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작은 행동들도 세심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본 교육에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장애인을 둘러 싼 옹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법률에는 어떠한 근거들이 마련되어 있는지, 지원 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논의들을 이어나가보고자 한다.
2. 장애인 사법지원의 근거
장애인 사법지원에 대한 근거는 주로「헌법」,「장애인차별금지법」,「형사소송법」에 명시되어 있으나, 장애유형 및 범죄유형에 따라「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장애인복지법」등에 적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래 내용에서 살펴볼 수 있듯「헌법」에는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 조력권, 평등권이 명시되어 있는 반면「형사소송법」에는 국선변호인 지정과 신뢰관계인 동석이,「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사법·행정절차 서비스와 정보접근·의사소통에 대한 지원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처럼 각 법률마다 사법절차에서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이 상이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따라 옹호인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근거가 되는 법률은 미리 숙지해 두는 것이 좋다.
가. 헌법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
나. 형사소송법
제33조(국선변호인) |
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0조(정보접근에서의 차별금지) |
3. 사법절차지원에서의 옹호인 역할
장애인이 피의자 이거나 피해자인 장애인 사건의 경우, 민·형사적 절차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각 법률에 따른 옹호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
서 말하는 ‘옹호인’이란 권익옹호기관이나 인권센터 활동가가 될 수도 있지만, 배우
자나 형제자매, 직계친족 등의 가족, 변호사, 복지관 및 거주시설 종사자 등 당사자
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지원 가능하다.
사법절차에서 옹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장애인 당사자가 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법률상담이나 소송구조를 받을 수 있는 자원을 연계하는 것부터 신뢰관계인
등의 인적자원 제도 활용, 법정동행, 의견서 및 탄원서 제출, 피해자 지원제도 안내
등 그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장애유형 및 특성
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요청하는 것도 옹호인 역할의 일환이 될 수 있다.
가. 법률상담 기관 안내
장애인 당사자가 법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변호사가 아닌 가족이나 기관 종사자들은 당사자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상담이나 옹호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무료법률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외부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데, 그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법률홈닥터 등을 손꼽을 수
있다. 먼저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법률문제 전반에 대한 무료 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
는 곳으로 필요한 경우 합의·중재, 소송 서류 작성, 소송대리 등의 법률구조 서비스
를 지원하고 있다.
∎ 대한법률구조공단 |
법률홈닥터란 각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기관을 거점으로 상근 변호사를 배치하
여 장애인, 노인, 아동 등의 취약계층을 비롯한 시민들에게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법률상담 및 정보제공, 자문, 조력기관 연계 등을 실시하고 있
다. 법률홈닥터는 지역별로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비해
업무 영역이 특정되어 있어 옹호인이 접근하여 기본적인 법률자문을 받기에는 비교
적 용이한 측면이 있다.
∎ 법률홈닥터
- 주소: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 47 정부과천청사 1동 법무부 내 인권구조과 |
■ 관련사례
<주요 피해사실> |
<옹호인 지원내용> |
<옹호인 지원내용> |
나. 소송구조 제도 활용
만일 장애인 당사자가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나 소송에 소요되는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법원에 소송구조를 신청하여 인지대·송달료, 변호사 보
수4)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해 볼 수 있다. 장애가 있거나 국민기초생
활보장법상의 수급자인 경우 주민등록등본, 장애인증명서, 수급자 증명서 등의 서류
를 해당 지역의 대한법률구조공단 사무실에 제출하여 소송구조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대상자와 장애등급별로 구조를 받을 수 있는 영역이 상이하기 때문에 자
세한 내용은 대한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 관련사례
<주요 피해사실> |
<옹호인 지원내용> |
<진행사항·결과> |
다. 신뢰관계인(인적자원제도) 동석
신뢰관계인 동석이란 연령, 심신 상태 그 밖의 사정에 의해 현저한 불안 또는
긴장을 느낄 우려가 있는 범죄피해자에 대하여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진
술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를 말한다.5)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신뢰관계인
동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직권 또는 참고인, 법정대리인의 신청에 따라 신
뢰관계인 동석을 허용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제도로 ‘진술조력인’이 있는데 이 제
도는 신뢰관계인과 근거법률, 옹호인의 지원내용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혼동하여서
는 안 된다.
옹호인이 수사·재판 절차 과정에서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하게 되는 경우를 대비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조사를 받을 장애인 당사자와
신뢰관계인 간의 라포형성은 필수적이나, 직무상 관계를 맺는 것에 한계가 있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하는 것이 좋다. 신뢰관계인이란 말 그대로 낯선 조사환경에서 긴장감을 풀어주고,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진술오염이 없도록 유의하면서도 서로간의 긍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조사 전 당사자와의 충분한 대화와 관찰을 통해 진술특성을 파악해두는
것이 좋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질문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네’
라고 대답하는 특성을 지녔거나 숫자나 날짜 개념이 부족해 사실에 반하는 엉뚱한
대답을 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당사자의 진술 특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두었다가
수사 과정에서 적절히 설명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조사에 임하기 전 조사실 환경이 적절한지 점검하고 당사자에게 일반적인
조사원리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를테면 질문의 용어 사용이 어려워 이
해를 할 수 없는 경우 ‘이해를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모르겠는 경우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휴식이 필요
하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경우 신뢰관계인에게 신호를 주면 언제든지 도움을 받
을 수 있다는 것 까지 가급적 세세한 사전 정보를 주는 것이 좋다.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이러한 정보를 전달할 시간이 없으므로 꼭 사전에 숙지한 후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넷째, 신뢰관계인의 개입으로 진술이 오염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뢰관계인은 진술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현장에서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예외
적으로 신뢰관계인의 개입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신뢰관계인이
장애인 당사자를 대신하여 짐작하여 말하거나 사적인 의사를 밝히는 행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관련사례
<주요 피해사실> |
<옹호인 지원내용> |
<진행사항·결과> |
라. 의견서 및 탄원서 제출
장애인 당사자의 진술을 보충하고자 하는 경우, 옹호인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의견서 또는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피해·가해사실에 대한 충분한 진
술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해당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옹호인 의견서는 피해자
또는 가해자, 가족, 지인, 지원하는 단체(권익옹호기관, 인권센터, 복지관 등)등이 제출 할 수 있으며 당사자의 장애유형과 진술특성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을 게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성요건에 관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해석을 다루는 변호인 의견
서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의견서 및 탄원서에 특별히 정해진 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①작성인 소개(이름, 연락처, 근무기관, 당사자와의 관계 등), ②의견서 및 탄원서의 제출
경위(제출이유 및 목적, 사건개요, 면담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된 내용 등), ③피해자
진술의 특성(장애유형 및 특성, 의사소통 정도, 심리 및 정서적 상태,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태도 등), ④결론 및 제언(조사 및 재판과정에 대한 요청사항, 정리 및 제언
등)순으로 작성하여 주는 것이 적합하다.
특히 의견서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경찰 또는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
에 제출하는 것으로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하여 최대한 신빙성 있게 작성하는 것이
좋고, 반면 탄원서는 법원에 제출하는 자료이므로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현재 상황
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하되 선처를 바란다는 식의 주관적 입장을 덧붙이
는 것이 효과적이다.
■ 관련사례
<주요 피해사실> |
<옹호인 지원내용> |
<진행사항·결과> |
마. 장애인 사법지원 신청
장애인 당사자가 이동이나 접근, 의사소통 등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제공을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신청하는 방법
도 고려해야 한다. 수어 또는 문자통역, 활동(이동)보조인력 등의 인적지원과 휠체
어, 보청기 또는 음성증폭기, 전자음성파일, 점자자료, 의사소통 보조기구 등의 물적
지원이 필요한지 사전에 파악하고 필요한 경우 조사 전에 미리 요청해두는 것이 바
람직하다. 이는 사건을 담당하는 부서에 구두 또는 서면으로 제출하여 신청하면 된다.
■ 관련사례
<주요 피해사실> |
<옹호인 지원내용> |
<진행사항·결과> |
라. 피해자지원제도 및 연계기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의 경우 옹호인이 사법절차 과정에서의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약 당사자가 피해자
라면 범죄피해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옹호인의 역할이다. 범죄유형 및 대상이 가정폭
력인지, 성폭력인지, 아동학대인지, 노인학대인지에 따라 해당되는 법률과 지원체계가 각각 다를 수 있어 전체적인 내용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법
무부 범죄피해장애인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피해자 지원제도는 현장에서 잘 활용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언급하고자 한다.
∎ 범죄피해자지원센터 |
4. 참고문헌·자료
▌학대피해장애인 전담 진술지원인 교육프로그램 및 교재개발, 2016, (사)장애우권
익문제연구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범죄피해자 지원 길잡이-지역별 범죄피해자 지원기관 안내, 2014, 법무부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 운영매뉴얼 개발 연구보고서, 2017, 보건복지부
▌2017장애인 인권상담 사례집(Ⅰ),(Ⅱ), 2017,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수사절차에서의 장애인 인권 – 신뢰관계자 동석을 중심으로, 2010, 박찬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과 사법, 2016, 장애인법연구회,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조사 가이드, 2017, 경찰청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2017,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권법센터
▌발달장애인 전담 경찰관 교육자료집, 2016,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본 자료는 2018년도 <장애인 사법절차 지원교육> 자료에 반영된 원고입니다. 글 작성 시점을 고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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