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반대.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한 분노.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 이후 쏟아져 나오는 대입 정시 확대론…….
우리 사회에서 큰 화두가 된 이슈들을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능력에 기초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신념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능력주의가 보다 잘 실현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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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양극화된 공공사회를 치유해 나갈 수 있는 해법으로 능력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개념은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풍자소설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지능(IQ)+노력(Effort)=능력(Merit)’이라는 도식에 기초하여 오직 능력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성취와 지위가 결정되는 능력주의 사회를 구현해냅니다. 지위와 권력을 세습하는 귀족주의와 반대되는, 그야말로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작가가 그려낸 능력주의 사회는 디스토피아였습니다. 작가는 능력주의가 결국 ‘능력 없는 자들’에 대한 질타와 배제로 이어져 또 다른 불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비판적 전망을 공유합니다. 이처럼 '능력주의'라는 말은 본래 부정적인 의미로 탄생하였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는 이 단어가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오늘 날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사고방식을 대변하며,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슈화 되는 ‘공정’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자주 쓰입니다.
과연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보다 공정하게 만들어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영상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Ted 동영상입니다.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으로 큰 관심을 모은 마이클 샌델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지요. 샌델 교수는 어떻게 ‘능력주의적 자만심’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성공을 오로지 그들 자신의 업적이라 믿게 만들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얕잡아보게 하며, 분노를 자극하고 새로운 경제에서 ‘승자’와 ‘패자’사이의 분열을 극대화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로에 대한 원한이 가득한 사회가 아닌 서로에게 보다 너그러운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성공의 의미를 재고하고 우리 삶에서 ‘행운’이 주는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영상을 꼭 시청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영상링크: Michael Sandel: The tyranny of merit | TED Talk
* 본 영상은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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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The tyranny of merit') 내용 정리
*본 ted 영상의 자막 번역을 제공한 NaYeun Kim님의 번역(검수: 한솜 이)을 참고하여 영상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 최근 수년간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승자’와 그렇지 못한 ‘패자’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져 정치에 악 영항을 끼치고 시민사회를 분열시켰다. 여기에는 사회적 불평등과 더불어 승패를 대하는 우리의 능력주의적 태도도 영향을 끼쳤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믿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게 된다.
- 능력주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핵심은,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얻는다면 승리는 온전히 승자의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학생 중 상위 1% 소득층의 자녀들은 나라 전체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하위 소득 자녀들보다 많다. 부는 대물림되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후에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 우리 사회의 문제는 능력주의 원칙에 제대로 부응하는데 실패해서가 아니라, 능력주의 원칙 자체의 결함에서 기인한다. 능력주의는 승자를 교만하게 하고 패자에게는 굴욕감을 안긴다. 성공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승리에 심취하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을 도와준 운의 영향을 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 자신보다 운이 없었던 사람을 낮잡아보며 그들이 자신보다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 소위 ‘엘리트’들을 향한 대중적 반발의 핵심 원인은 많은 노동자들이 엘리트 부류가 그들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데에서 온다. 이는 매우 합당한 불만이다.
- 세계화로 인해 불평등과 임금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치인들을 포함한 엘리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충고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졸업장을 따내는 등 배운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은 누군가가 대학을 가지 않는다면, 새로운 경제상황에 발맞추어 스스로 번영하지 못한다면 그 실패의 원인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 가고 성공하면 된다는 엘리트 부류의 충고는 매우 모욕적이며, 왜 수많은 노동자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엘리트에게 적대적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 우리는 시민 생활을 세 가지 측면에서 재고해 보아야 한다. 1) 대학의 역할, 2) 노동의 존엄성, 3) 성공의 의미가 그것이다.
- 1) 대학의 역할: 대학 진학을 장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이들에게 대학 진학의 기회를 넓히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이 불평등의 해결책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인 상황 속 대학 졸업장이 존엄하고 좋은 삶의 필요조건이 되는 경제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경쟁사회의 전장에서 살아남도록 시민들 무장시키는 일에 치중하기 보다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도 존엄하고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 2) 노동의 존엄성: 노동의 가치를 재고하여 그것을 정치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공익에 기여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이 점에서 모든 직업은 고귀하며, 쓰레기 수거 노동을 통해 길거리 위생을 지켜주는 노동자 분들의 직업은 의사만큼이나 고귀하다. 우리는 사람이 버는 돈의 액수를 그가 공익에 기여하는 바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기곤 한다. 이는 명백한 실수이다. 코로나 19는 배달 노동자나 간병인 등 평소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찮게 여겼던 저임금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노동에 우리가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 깨달게 해 주었다. 그들이 받는 임금 및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중요성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 3) 성공의 의미: 내가 성공한 원인이 윤리적으로 볼 때 오로지 나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한다. 타고난 환경이나 재능, 그리고 나의 재능과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 때마침 내가 태어났다는 것에는 전부 운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에서 운의 역할을 감사히 여길 때 우리는 겸손을 배우며, 겸손의 정신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정신이다. 이는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성공에 대한 가혹한 윤리로부터 돌아올 수 있는 길의 시작이며, 능력주의의 횡포를 뛰어넘어 증오심보다 너그러움이 더 많아진 사회로 발전하는 길이다.
앞서 소개해드린 Ted 영상과 함께 센델 교수가 쓴 <공정하다는 착각>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의 능력과 그에 대한 보상을 우선시 하는 사회,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떠받들어지는 사회가 왜 큰 문제인지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하는 책이지요. 우리사회의 능력주의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 것이 과연 공정하게 작동하는 것인지, ‘공정’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목차>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 능력 지표 따내기
1장. 승자와 패자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 ‘테크노크라시’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 능력주의 윤리 | 굴욕의 정치 | 기술관료적 능력과 조직적 판단 | 포퓰리즘의 준동
2장.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왜 능력이 중요한가 | 우주적 능력주의 | 구원과 자기 구제 | 과거와 지금의 섭리론 | 부와 건강 | 자유주의적 섭리론 | 역사의 옳은 편 | 도덕 세계의 궤적
3장.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고된 노력과 정당한 자격 | 시장과 능력 | 자기 책임의 담론 |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 포퓰리즘의 반격 | 과연 “하면 된다”가 맞나? | 보는 것과 믿는 것
4장.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무기가 된 대학 간판 | 불평등의 해답은 교육? | 최고의 인재들 | 스마트해지기 위한 일 | 대중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 학위가 있어야 통치도 한다 | 학력 간 균열 | 기술관료적 담론 |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 | 기후변화 논란
5장. 성공의 윤리
기술관료의 지배냐 귀족의 지배냐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 재능은 자신만의 것인가? | 노력이 가치를 창출하는가? |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 | 시장과 능력 | 시장 가치냐 도덕적 가치냐 | 쟁취한 자격인가, 권리가 인정된 자격인가? | 성공에 대한 태도 | 운수와 선택 | 재능 계산하기 | 능력주의의 등장
6장.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능력주의 쿠데타 | 능력주의의 폭정,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다 | 코넌트의 능력주의 유산 | 돈 따라 가는 SAT 점수 |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 | 명문대가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 | 능력주의를 더 공평하게 만들기 | 인재 선별 작업과 사회적 명망 배분 | 상처 입은 승리자들 | 또 하나의 불타는 고리를 넘어라 | 오만과 굴욕 | 유능력자 제비뽑기 |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 | 명망의 위계질서 | 능력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7장. 일의 존엄성
일의 존엄성 하락 | 절망 끝의 죽음 | 분노의 원인 |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일 | 기여적 정의 |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 ‘열린 어젠다’의 오만 | 금융, 투기 그리고 공동선 | 만드는 자와 가져가는 자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와 관련하여 소개해드리고 싶은 기사가 있어서 함께 가져와 보았습니다. 저서 <(능력주의의 덫(The Meritocracy Trap)/ 한국어판 제목: ‘엘리트 세습’)>으로 유명한 다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와의 인터뷰기사입니다. 그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덫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덫은 부자들만 성공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엘리트 진입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으며, 실질적으로 유리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로 가는 데 거의 모든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덫입니다. 두 번째 덫은 엘리트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머물려면 경쟁 속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덫이지요. 그는 아무도 이 덫에서 진실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아무도 탈출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첨부한 기사 원문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사원문: "당신이 엘리트가 아니라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한겨레, 2021.08.19
링크: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082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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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며 가정형편과 태어난 환경, 그리고 나의 ‘능력’을 진정 ‘능력’으로 인정해주는 사회에 태어나는 것은 전부 운의 영역이라는 샌델 교수의 말에 깊이 공감 했습니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공정하다고 믿었던 능력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을 의심해보고, 샅샅이 분해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참고자료:
1. yes 24, '책소개', [능력주의], 링크: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895602
2. “[강준만 칼럼] 능력주의의 파탄”, 한겨레, 2017년 12월 17일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3884.html
3. “[사설]정시확대론, 총선 앞둔 ‘교육 포퓰리즘 경계해야’”, 경향신문, 2019년 9월 19일
https://m.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1909192036005#c2b
4. “[김윤태 칼럼] ‘능력주의’의 치명적 함정”, 프레시안, 2017년 8얼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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