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가 예측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이번 여름 유난히 짧은 장마와 이상고온, 연이은 폭염과 열대야를 경험했죠.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개개인의 실천은 다양한데요! 그 중에서도 지난해 발발한 코로나19로 마스크와 배달용기 등 일회용품 사용이 급증하면서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35번째 기획아카이브에서는 우리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자리한 “쓰레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보다 나은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로 전환해가기 위해 분리수거와 재활용 등에서 어떠한 기술적, 제도적 노력이 있어왔는지 국내외 사례를 소개합니다.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재, 꼭 필요한가요?
분리수거를 할 때 가장 까다롭게 여겨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비닐과 플라스틱입니다. 성분이나 오염 정도에 따라 재활용이 안 된다고 하기도 하고, 페트병의 뚜껑을 어떻게 배출해야하는 지와 관련해서도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렵죠.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는 세분화 된 분리수거 제도에도 실질적으로 재활용 되는 비율은 여전히 낮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플라스틱과 비닐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가치 소비”의 비중이 늘어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이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는데요.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환경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나아가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입니다. 이러한 소비자의 목소리는 실제로 제품 디자인에 반영되기도 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생수통에 붙어 있는 라벨지 등을 제거 간편하게 바꾸고, 조미김 포장 등에 쓰이는 플라스틱 트레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사용량이 많은 택배 상자를 비닐 테이프 대신 종이 테이프로 포장하거나, 완충재도 플라스틱 소재의 “뽁뽁이” 대신 그물 모양의 종이로 대체해 나가고 있죠. 여름에 자주 쓰이는 보냉포장 역시 재활용이 불가능한 얼음팩을 얼린 생수병으로 대체하거나, 바로 분리수거 가능한 물 충전재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생산자에게 책임을 묻기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들어보셨나요? EPR 제도는 재활용 및 용기 수거 등에 대한 의무를 생산자에게 부여하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처리비용 이상을 징수하는 제도입니다. 빈 병 보증금이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 등을 폐기하거나 새 제품으로 교체할 때 이를 생산 업체가 회수해가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죠. 앞서 이야기 한 포장재와 플라스틱 등도 이에 해당됩니다. 2022년 1월부터는 혼합소재를 사용하는 등 일반쓰레기로 배출하여야 하는 제품에 “재활용 어려움”을 의무적으로 표시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불편을 줄이고, 자원이 보다 제대로 절약, 순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환경을 지키는 데에는 소비자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과 폐기가 쉬운 제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큰 변화를, 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형할인마트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무상제공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장바구니 보증금제 등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요. 이러한 변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일회용 배달용기를 다회용으로 전환해 나가는 논의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데요. 다회용기가 실질적으로 탄소배출 절감효과를 가져오려면 꾸준한 관리를 통한 장기사용은 물론이고 시장 점유율이 높은 주요 배달앱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입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는 플라스틱을 별도 배출하지 않는 특이한 분리수거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닐이든 플라스틱이든 모두 일반쓰레기에 담아서 버리면 됩니다. 한국처럼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고 있지도 않아 장을 보거나 쇼핑하면서 생긴 봉투에 담아 버려도 괜찮습니다. 얼핏 보기엔 환경오염에 무신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개별 포장지의 성분을 구체적으로 알고, 재활용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워낙 어렵다보니 플라스틱을 별도 수거하는 것보다 일반 쓰레기에서 골라내는 것이 오히려 재활용율이 높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는 로테르담의 쓰레기 선별처리 시설이 네덜란드 안에서도 매우 고도화 된 기술을 자랑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쓰레기 종량제 대신 주택 크기, 가구원수 등을 고려한 “오염세”를 부과하여 충당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니레버 등 로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여 포장재 개선 및 플라스틱 보증금제 정착을 위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죠. 이렇듯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하고, 재활용이 쉽도록 라벨 및 용기를 규격화하려는 시도는 유럽 연합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1일부터 회원 국가에 부과되기 시작한 플라스틱 세가 대표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죠.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플라스틱 폐기물과 재활용이 불가능한 미세플라스틱들은 해양으로 흘러가 더 큰 문제를 유발시키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무력감도 커질 수 밖에 없는 문제죠.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업의 그린워싱을 견제하고, 탄소 배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아카이브를 통해 일회용컵, 일회용 비닐봉투, 각종 불필요한 포장재들처럼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자원을 돌이켜보고, 플라스틱이 없는(plastic-free) 도시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를 함께 논의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출처
[한국일보] 플라스틱 사용량 '악명' 한국, 더이상 묻을 곳도 없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2810050002703
[닷페이스] 플라스틱, 이젠 진짜 답이 없습니다. 재활용도 안 된대요.
[환경운동연합] [보도자료] 동원F&B, 환경연합 요구에 “김 트레이 제거하겠다”
[한겨레] 일회용 배달용기, 탄소배출 35배 더 하고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07290.html?_fr=mt2
[한겨레21] 재활용도 ‘완결’이 중요하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0718.html
[네덜란드] Elements of Dutch waste management
https://rwsenvironment.eu/subjects/from-waste-resources/elements-dutch-waste/
[KOTRA] 네덜란드 일회용 플라스틱의 미래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782/globalBbsDataView.do?setIdx=243&dataIdx=184270
[일다] ‘폐기물 1kg당 천원’ EU 플라스틱세를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내가 노력해도 환경 파괴” 기후 우울에 빠진 소비자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2310540001877
더 읽어보기
[한국일보]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기획연재
https://www.hankookilbo.com/Series/S2021010410080002123
[한겨레21] 쓰레기로드 기획연재
https://h21.hani.co.kr/arti/SERIES/2670/
[공익정보아카이브] [해외사례] 대형 슈퍼마켓이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을 감축하는 방법
http://www.snpo.kr/bbs/board.php?bo_table=npo_aca&wr_id=4484
[서울연구원] 사업장·소비자·캠페인 참여자로 구분해 플라스틱 1회용품 모니터링 시행 필요
https://www.si.re.kr/node/63301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플라스틱 관리전략 연구
https://www.kei.re.kr/elibList.es?mid=a10101000000&elibName=researchreport&act=view&c_id=72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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