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권리 03. 안락사 선도국가 네덜란드의 20년 여정
현안과이슈 / by 우엉군 / 작성일 : 2022.05.22 / 수정일 : 2022.05.26

 
“안락사가 도입되면 사망자수가 빠르게 증가할까?”

바다 저 편의 뉴스들이 죽음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간의 권리를 시간 순으로 나열한다면 가장 마지막에 '좋은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위치하지 않을까요? 안락사, 존엄사, 조력사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들을 차곡차곡 정리합니다.

 



콜롬비아와 호주가 연이어 안락사를 합법화 하는 가운데, 어느덧 안락사 제도를 도입한지 20년을 맞이한 국가가 있습니다. 지난 2002년 4월 1일에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요청에 의한 생명종결 및 조력자살법; Termination of Life on Request and Assisted Suicide Act)을 발효한 네덜란드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 20년간 네덜란드의 안락사 인구는 얼마나 증가했을까요?

네덜란드는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모두 허용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네덜란드는 두 개념을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사가 직접 생명을 종결시키는 ‘안락사(euthanasia)’와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마칠 수 있도록 의사가 간접적으로 돕는 ‘조력자살(assisted suicide)’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안락사검토위원회인 RTE에 따르면, 2021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와 조력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총 7,666명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안락사 97.30%, 조력자살 2.47%, 혼합형 0.23%로 나뉩니다. 모든 선택지가 열려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안락사를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안락사로 인한 사망자수는 같은 해 네덜란드 전체 사망자수의 4.5%에 해당합니다. 전년과 비교하면 안락사 사망자수는 10.5%, 전체 사망자수 대비 비율은 0.4%가 각각 증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초 도입 시기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증가한 걸까요? 네덜란드 안락사법이 발효된 2002년에는 9개월간 총 1,882명이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다음 해인 2003년에는 1,815명으로 소폭 감소하는 등 초기 5년간은 다소 안정적인 추세였습니다. 하지만 시행 10년째에 2배를 돌파하고, 20년째에는 4배로 상승했습니다. 전체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초기 2003년에는 약 1.2%였는데 2021년에는 4.5%로 증가했습니다.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망자수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락사가 전체 사망자 인구를 늘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 연구가 필요하겠습니다. 




안락사 대상 질병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암이 80% 내외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2012년부터는 치매와 정신 질환이 추가 질병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치매는 42건, 정신 질환은 14건이었는데, 2017년까지 각각 169건과 83건으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해에 의사들은 중증 치매에 대한 안락사 거부 의사를 표명합니다. 안락사 요청은 구두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치매가 심해질수록 본인 판단의 지속성 등 절차적 요건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해에 중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안락사를 진행한 의사가 최초로 기소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법원은 무죄로 판결했지만 치매와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는 미성년자에 대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어 특별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RTE는 2016년부터 연령을 구분해 보고하기 시작했으며, 12-17세 연령층을 미성년자(minor)로 별도 표기해 추적하고 있습니다. 우려와 달리 미성년자 안락사는 2016년에 1명, 2017년에 3명이 전부였습니다. 오히려 네덜란드 정부는 난치성 희귀질병 아동에 주목해 안락사 가능 연령을 1세로 낮추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참고로 RTE는 2021년 안락사 사례의 89.0%가 60세 이상이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RTE는 2003년부터 안락사가 집행되는 장소에 대한 정보도 계속 보고하고 있습니다. 복지국가 성격상 당연히 병원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뜻 밖에도 집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집(81.19%), 호스피스(6.67%), 요양원(5.19%), 케어홈(3.60%), 병원(1.75%) 순으로 안락사가 집행되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호스피스의 급성장입니다. 2012년에 호스피스가 별도 항목으로 표기되기 시작했는데요, 이 때부터 병원, 요양원, 케어홈을 앞질러 부동의 2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안락사가 집과 호스피스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네덜란드의 의료시스템이 병원이 아닌 집과 마을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같은 해에 RTE가 치매와 정신 질환을 별도 분류해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네덜란드의 20년 안락사 여정을 통해 발견한 키워드는 노인, 집, 암, 치매입니다. 의학 발전으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사회가 병원이 아닌 가정과 돌봄 시설을 중심으로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세계암연구재단은 2015년에 인구 10만명당 암발생율 상위 50개 국가를 발표했습니다. 네덜란드는 304.8로 9위였고 한국은 307.8로 한 단계 높은 8위였습니다. 한편, 치매 환자는 네덜란드가 2020년에 약 28만명, 한국이 2018년에 약 74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완치할 수 없지만 몸의 일부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질병에 대해 새로운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Data for cancer frequency by country, World Cancer Research Fund International, 2015,
2021-2030년 국가 치매 전략(National Dementia Strategy 2021-2030) 발표, 주네덜란드대한민국대사관, 2020.12.30, 


*사용된 이미지는 RTE 연차보고서를 이용했으며 차트는 직접 제작했습니다. 






작성자 : 우엉군 / 작성일 : 2022.05.22 / 수정일 : 2022.05.26 / 조회수 : 12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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