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제주의 다른 결, 재일제주인
현안과이슈 / by khoco / 작성일 : 2022.05.20 / 수정일 : 2022.05.20

 팬데믹이 이제는 끝이 보이는 듯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가 풀리고 이젠 실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도 의무가 아닙니다.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 되었죠. 특히 제주도는 국내에서 매우 인기있는 여행지임이 분명합니다. 제주는 제주특별자치도로서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구분되고 아시다시피 그 지형적인 특성상 다채로운 역사적인 굴곡을 겪어왔습니다. 그중 일제강점기부터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오가며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해방 정국을 맞으면서도 온갖 풍파에 휩싸였고, 국가적 교류가 없는 시기엔 ‘밀항’을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을 오갔던, 역사의 산증인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람들, 재일제주인, 특히 재일제주인 1세에 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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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는 자연 경관 만큼 다양한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들이 존재한다. 필자 역시 제주에 엵힌 역사를 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제주는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근현대 유적들이 많다. 산수유 들판을 품고 송악산이 바로 보이던 알뜨르 비행장도 있었고, 그 외에도 태평양전쟁 때 사용되었던 일제동굴진지, 군사시설이 이 목록에 포함된다. 역사적인 사건도 많았다. 단적으로, 고려 시대 삼별초의 마지막 항쟁, 일제 동굴진지와 군사기지, 광복 후에는 4.3사건이 모두 제주시 함덕과 북촌을 나누는 경계, 서우봉 인근에서 일어났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전 비행장으로 사용되던 제주 알뜨르 비행장. 출처: 미국 내셔널아카이브즈 


 

 

제주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관광명소를 소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곳에 살았던 이들, 그렇지만 현재는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이들, 일명 재일제주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필자 역시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이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려 한다. 재일조선인에 관해서는 지난 글에서 한 번 다룬 바 있는데, 그 때 특별히 조명했던 곳은 우토로 마을이었다. 우토로 마을은 교토시에 위치한 조선인 마을로, 최근엔 우토로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이번에 다룰 재일제주인은 오사카, 오키나와 등을 기점으로 거주지를 형성했다.
 

한인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는 이유

우리 사회에는 단 하나의 공동체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공동체들이 그물망처럼 엮여있다. 우린 그 안에서 몇 가지 복수의 공동체들에 가담하거나 소속되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공동체라는 말에 담긴 함의를 떠올려보면 그리 분명하지 못한 요소들로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사실 그 구성원들은 그리 주체적이지 못하다. 대게는 특정한 소속에 속한 채로 태어난다. 가령 <재일제주인의 생활사1: 안주의 땅을 찾아서>(재일제주인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재일제주인 양애정은 제주도에서의 어린 시절, 특히 해방 후 ‘5월 선거’ 직전의 상황을 회고하며 ‘그 당시엔 국가라는 확실한 형태가 아니었으며 ‘한국’이란 말도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정부 수립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우연히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부여받은 것일 따름이다.
 

필자가 이민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속에 어떻게 ‘우리(Us)’가 ‘그들(Others)’이 되었는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록들과 사람군들에 관심이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또는 언제부터 ‘그들’이 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우리로부터 출발한, 우리로부터 태동한 이들은 이제는 더이상 우리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이미 타인이 되어버린 이들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동일한 바탕을 상기하는 일이다. 그들을 다루는데 있어 영구히 타자화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들이 어떻게 타자가 되었으며, 사실상 누구라도 타자의 범위로 옮아갈 수 있음을 함께 드러내야 한다.
 

재일제주인의 궤적을 따라가보자

재일제주인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볼 수 있다. 다양한 인터넷 기사부터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사이트에서 김동전이 집필한 재일제주인에 관한 개관을 읽어볼 수 있다. 이 개관은 김동전이 쓴 <’재일 제주인’ 사회의 형성과정과 변천, 그리고 미래>-대판과 제주간의 상호교류를 중심으로-(<재일 제주인의 삶과 제주도 학술세미나>, 2005)이란 논문을 참고했음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학 연구센터는 2017년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제주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재일제주인 1세 구술 생애사 연구’를 통해 보고서를 발행한 바 있다. 이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에서 공동 진행한 연구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식민지 시절이던 1900년대 초부터 경제적 문제 등으로 제주도민들은 일본으로 도항했고, 1923년 오사카-제주 간 정기항로가 신설되면서 그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해방을 맞은 1945년 일본으로 넘어가 살던 많은 사람들이 귀향했고, 이 수는 약 6만 명이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맞는 해방정국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경제적 궁핍과 사상과 얽힌 좌우대립의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 도로 일본으로 밀항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4.3사건도 이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다(제주에서 겪은 혼란과 폭력의 기억으로 인해, 재일제주인 양애정은 애꿎은 학살에 빌미를 제공한 ‘산부대’와 공산당에 관해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과거부터 친족들이 자주 왕래하던 뱃길이었으나 ‘밀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제주와 오사카를 오가던 배 군대환. 출처: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제주소리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4646

앞에서 이야기한 김동전의 같은 글에 따르면 1971년 12월 말 일본에 거주하던 제주인은 8만 6490명에 이르렀다. 또 오사카 산업대학 교수인 후지나가 다케시(재일제주인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재일 제주인과 ‘밀항’: ‘재일 제주도 출신자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조사에서>을 통해 1975년 법무성 입국관리국 자료를 살펴보면 1970년부터 4년동안 조사된 한국 불법 이민자 740명 중에 608명이 제주도 출신이었다. <재일제주인의 생활사1: 안주의 땅을 찾아서>에 따르면, 1974년 오사카 부에 거주했던 재일제주인은 63, 972명에 이른다. 이러한 통계들은 재일제주인의 흔적에 대한 개관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재일제주인이 겪은 역사적인 행로와 다양한 경험들이다. 흔히 현대사를 통과했다고 말하는 많은 산증인과 같이, 이들 역시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뚫고 나가며 삶을 구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의 깊이와 넓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관한 역사적 기록 및 연구는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다. 특히 이들에 관해 연구하는 재일제주인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을 포함한 연구자들이 ‘생활사’와 ‘구술사’를 중심으로 이들을 다루고 있는 이유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만한 지점은 본래 재일제주인 사회를 구성했던 이민 1세대가 상당수 세상을 떠났고, 2세대마저 고령화에 접어들면서 재일제주인 사회는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재일도민회 등 공동체의 결속을 통해 이루어온 문화는 세대 교체로 인해 점차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어느 재외 한인들이라도 비슷한 맥락으로 겪고 있는 변화일 테다. 세대에 걸쳐 전승되는 것과 단절되는 것 사이에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들과 다를 바 없다.
 

또 하나는 ‘재일제주인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의 존재다. 한겨례 기사(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443339.html)에 따르면 1998년 제주도에서 열린 ‘4.3항쟁 50돌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만난 일본인 연구자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모임이다. 당시 일본인 학자들과 재일동포 연구자들이 모였고 그 후 10여년 넘게 연구를 지속했다. 그 결과물이 <재일제주인의 생활사 시리즈>다. 1권은 ‘안주의 땅을 찾아서’이고 2권은 ‘고향의 가족, 북의 가족’이다.
 




 

출처: 알라딘




 

특히 1권의 총론에는 제일재주인을 다뤄온 과거의 관점과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퍽 인상깊어 옮길 만 하다. 그것은 ‘그간의 연구가 재일한국인을 일률적으로 일본 국가 내의 소수자로 파악해 왔다’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차별 당하는 자’ 혹은 ‘맞서 싸우는 자’ 둘 중에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분화되어 다뤄졌다. 그러나 이들은 동적이며 다채로운 생활을 구가했고 다양한 층위에서 생활사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9년 9월 제주시에 위치한 갤러리 ‘포지션 민 제주’에서 초대전 <이카이노>를 개최한 바 있다. 재일제주인 사진 작가 故 조지현(1938~2016)이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촬영한 오사카 이카이노의 모습들이 전시되었다. ‘이카이노’는 현재 일본에서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다. 그 이유는 오사카 시가 1973년 이카이노로 인해 토지와 집값이 낯아진다는 현지인들의 요구를 수용해 이카이노를 근처 지역인 ‘나카가와초, 모모다니초메’로 통합시켰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지역 소멸이 이전에 다룬 바 있는 우토로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외 재일조선인과 관련한 자료가 궁금하신 분에겐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사이트를 추천한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재일100년연표를 비롯하여 다양한 출판물, 기록물들을 열람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관장 이성시)에서 운영하며, 2005년에 도쿄에 설립되어 올해 15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전국의 재일조선인들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공개, 전시 등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으며,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역사, 문화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사이트 대문 이미지. 현재 도쿄에 소재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 운영 중이다.



 

참고 기사
 

제주의 소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본 안의 제주 ‘이카이노’,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06573

한겨례, ‘재일 제주인’ 생활사 기록합니다’,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443339.html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재일제주인’ http://jeju.grandculture.net/jeju/search/GC00711476?keyword=재일제주인&page=1

제주의 소리, '[어떤밀항이야기] 아방은 병원에서 잘 퇴원했다'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4646



참고 자료
 

제주학 연구센터, ‘재일제주인 1세 구술 생애사 연구’, 2017

재일제주인의 생활사를 기록하는 모임 ‘재일제주인의 생활사’ 시리즈 중 1권: 안주의 땅을 찾아서​, 2012




 


작성자 : khoco / 작성일 : 2022.05.20 / 수정일 : 2022.05.20 / 조회수 : 8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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