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난민 정책
현안과이슈 / by 윤삐삐 / 작성일 : 2022.06.10 / 수정일 : 2022.06.14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현재 사상 최고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유엔 난민기구(UNHCR)는 지난 달 전세계 피난민이 1억명이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는 독일에서는 관공서나 기차역 등 곳곳에 연대의 의미를 담은 우크라이나 깃발이 걸려있습니다. 독일을 필두로 EU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정착 시켰는데요, 오늘은 EU의 난민정책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들어가며

1970년대 중반부터 유럽 내 국경관리를 위한 국가 간 협력이 시작된 이래 유럽은 이민·망명분야에서 지속적인 협력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이민·망명 관련 정책은 유럽 공동 차원에서 결정되었으며, 이는 국제협력의 선구적 모델로 인식되어왔습니다. 그러나 2010년 ‘아랍의 봄’과 2015년 난민 위기를 거치며 이 같은 공동정책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EU가 수십 년 간 발전시켜온 EU 공동 출입국 정책에 역행하는 조치들이 회원국들 사이에서 발표되었고,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와 난민 유입에 불만을 품은 국가 사이의 갈등이 첨예화되었지요. EU의 공동이민망명정책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회원국 간의 정책 통합을 이뤄냈기에 쉽게 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해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극우 정당의 영향력과 반 난민 정서의 확대가 EU의 공동 정책을 사실상 개별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평가 역시 존재합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여전히 이어지는 시리아 내전과 아중동 정세 불안의 지속으로 인해 난민들이 향후에도 유럽으로 꾸준히 유입될 것이라는 것과, 그만큼 EU의 공동이민망명정책이 앞으로도 많은 진통을 겪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EU 이민∙난민 정책의 전개과정

EU의 이민∙난민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EU의 내무·사법정책(JHA: Justice and Home Affairs)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EU의 내무·사법 분야는 개별 주권국가가 독자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공동체 차원의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자 꾸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EU 회원국 국민이 역내 어디서나 동일한 자유와 안전, 정당한 법의 지배를 받을 수 있도록 EU를 ‘공동의 자유, 안전, 정의지대(common area of freedom, security and justice)’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U의 내무·사법정책에 따라 체결된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쉥겐조약더블린 조약입니다. 쉥겐조약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국경 간 인적 교류 증가와 외부 국경관리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서유럽 10개국(현재 26개국)간 상호 국경개방을 위해 1985년에 체결되었습니다. 혹시 유럽을 여행하면서 국경을 넘을 때마다 검문을 하지 않아도 되어 편안함을 느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쉥겐조약은 가입국가 사이에 출입국 심사와 체류에 필요한 비자 면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EU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가입국가 내에서 최대 90일까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지요. 

더블린 조약은 쉥겐 조약으로 인해 외국인들 또한 EU 내에서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되자, 외부에서 EU에 진입할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용할 공통 규칙을 수립하고자 체결된 조약입니다. 더블린 조약의 핵심은 망명 신청자들이 그들이 발을 디딘 첫 번째 EU 국가에서 망명이나 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난민 인정에 유리한 국가를 골라 찾아다니는 ‘난민 신청지 쇼핑(Asylum shopping)’ 방지를 위해 제정되었으나 난민 발생 지역과 인접한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특정 국가에 난민 부담을 지우는 부작용을 초래하였습니다.   

아중동 정세불안의 지속으로 발생한 2015년의 난민위기 당시 난민이 처음 진입하게 되는 국가인 이탈리아와 그리스 당국의 능력이 약화됨에 따라 모든 이민자가 처음 도착한 EU 국가에서 개별적 망명 신청 검토를 완수하는 더블린 조약의 이행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이후 난민의 거주지 재배치와 불법 이민자 재송환 정책 등을 둘러싼 EU 회원국 간 갈등이 첨예화 되었고 EU 공동이민망명정책에 대한 회원국들의 불만 역시 심화되었지요. 이 와중 독일의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더블린 조약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관계로 모든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겠노라 발표하여 다른 EU 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당시 독일로 수많은 이민자와 난민이 몰려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독일은 전쟁과 탄압을 피해 온 난민과 경제 이민자들을 구분하여 걸러내는 데에 실패하였다고 평가됩니다.1)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 인파에 많은 EU 회원국들이 출입국을 통제하기 시작함으로써 쉥겐 체제가 위태로워졌는데, 독일의 압력 속 EU 집행위는 각 EU 회원국의 GDP, 인구, 실업률 등을 기준 삼아 각국이 난민을 분산 수용 하도록 결정 하였지요. 그러자 동유럽 국가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고, 우익 정당 집권 및 반 난민 정서의 확산 등으로 인해 EU 역시 사실상 난민 유입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EU는 2016년 열린 터키와의 정상회의에서 터키 내 난민 수용을 확대하는 것에 합의하게 되었고, 터키는 EU로부터 총 60억 유로의 지원과 터키의 EU 가입 협상 개시 및 터키 국민의 EU입국 비자 면제를 대가로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터키는 EU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며 터키 내 체류 중인 난민의 유럽행을 막지 않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EU와 마찰을 빚어왔습니다.

터키는 난민 문제를 볼모로 EU를 압박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장기 집권에 대한 EU의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난민 문제를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터키가 자신의 지리 전략적 위치를 활용하여 유럽 연합과 미국, 러시아와 이란의 갈등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는 투트랙 전략의 수단으로써 난민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존재합니다.​2)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 난민문제 

난민 문제를 둘러싼 EU와 터키의 마찰에서 드러나듯 난민 문제는 여러 국제정치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점에 놓여있습니다. 예컨대 시리아 내전의 경우 중동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지속되고 있는 대표적 전쟁으로 정부군은 러시아가, 쿠르드족은 미국​이, 반군은 터키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럽 내에서는 이러한 강대국들의 패권싸움으로 인한 난민 발생의 피해를 유럽이 왜 떠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시리아 내전의 발발이 프랑스의 식민통치 시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서 EU가 난민 발생의 책임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일부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반 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극우 정당들이 부상함에 따라 EU 차원의 공동 이민•난민 정책이 휘청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EU 집행위에서는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하여 EU 회원국 간의 협력을 통한 유럽 공동이민망명제도에 대한 안건을 꾸준히 발의하는 중입니다. 이 같은 집행위의 행보는 무엇보다도 EU에서 핵심 권력을 행사하는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난민 유입률이 높은 나라들의 굳은 의지를 대변한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EU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일의 경우 이민•난민 문제로 국경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는데, 바로 쉥겐조약과 난민문제에 대한 독일의 주요 관심사가 서로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자국에게 큰 이득을 안겨주는 쉥겐 조약의 기능을 지키고 복구하고자 하는 동시에 독일에 이르는 이민자들의 흐름을 어떻게든 막고자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표를 조화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쉥겐 조약을 포기하고 국경에 영구적인 장벽을 세우거나 국경 통제를 하지 않는 한, EU로 들어온 난민이 독일 영토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은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EU의 이민•난민문제는 고도로 복잡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 EU는 인구 감소 대비 및 기술 혁신을 위한 숙련 인력 유치의 필요성과 역내 안정을 위한 불법 이민 관리의 필요성에 동시에 직면해 있습니다. 난민의 유입이 장기적으로 수용국 사회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결국 난민이 해당 사회에 얼마나 잘 통합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EU가 모의 실험한 바에 따르면 2018년경 EU에 유입된 난민들로 인해 EU의 경제성장률은 단기적으로 0.1~0.2%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난민 유입이 가장 많았던 독일의 경우 그 수치가 0.4~0.8%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3)
즉, 난민의 유입이 수용국에 각종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인력의 증가를 의미함으로 저출생과 노동인구 저하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난민 문제와 대한민국

2018년 제주도에 예멘 출신 난민이 오는 것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격렬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는데, 단일문화 국가의 성격이 강한 한국에서 난민에 대한 경계심이 유독 많이 표출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분쟁과 기후위기의 심화로 난민의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어엿한 선진국으로서 앞으로 난민 보호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난민의 유입이 사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는 가운데 앞서 소개해드린 EU의 모의 실험​ 결과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한국이 직면한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노동인구의 감소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난민의 유입이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위 실험의 결과는 한국 사회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꼭 참고해야만 하는 지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난민 문제는 정치, 안보, 경제, 윤리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입니다.
일찍이 난민 문제로 인한 수난과 갈등을 경험하였고 이민, 난민 정책과 관련하여 쉽지 않은 협력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EU의 정책은 한국에게도 적지 않는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pixabay

각주
​1)
폴 레버 저 • 이영래 역,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2019), p. 50 참고
​2) "EU-터키 '난민협정' 4년 만에 폐기 위기... 갈등 해법은?", JTBC 아침&, 2020.07.09
​3) 박복영, 『난민이 해외 수용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제사회보장리뷰 2018 가을호 Vol. 6, pp. 86-94


참고문헌 및 자료

- 폴 레버 저 • 이영래 역,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메디치, (2019)

- 외교부 유럽국 서유럽과. 『EU 개황』, (2020)
- 오영은, 『난민사태 이후 유럽공공이민망명정책의 변화』, IOM이민정책연구원 이슈 프리프 No. 2016-06
- 박복영, 『난민이 해외 수용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제사회보장리뷰 2018 가을호 Vol. 6, pp. 86~94
- 이형석, 『EU 난민위기와 EU 공통법제 변화에 관한 연구-schengen협약과 유럽공통 망명제도를 중심으로-』, 유럽연구 제 303호 (2019)
- 이현진, 『EU 신(新)이민·난민 협정안의 주요 내용 및 전망』, KIEP 세계경제 포커스, 2020년 11월 26일 Vol. 3 No. 35

- “[코로나19 국제뉴스] 갈 길 끊긴 유럽 난민들…코로나19 속수무책”,KBS NEWS. 2021. 01.2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23049
-  “EU-터키   '난민협정'   4년   만에   폐기   위기…갈등   해법은?”, JTBC 아침&, 2020.07.09​, https://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958780
- "특정국에 난민 몰리게 하는 '더블린 조약' 바뀌나", 한겨레, 2020.09.24,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63442.htm

 



 


작성자 : 윤삐삐 / 작성일 : 2022.06.10 / 수정일 : 2022.06.14 / 조회수 : 8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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