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책 ‘호모 루덴스’는 놀이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읽어보고 싶어지는 고전입니다.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론을 담고 있죠. 하지만 역사와 철학이 버무려진 내용인만큼 진입장벽이 있는 책이기도 하지요. 본 글에서는 ‘호모 루덴스'의 1,2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소개하며 놀이에서 시작되어 형성된 사회와 문화의 흐름을 짚어내 보고자 합니다. |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노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라틴어로 ‘놀다'라는 뜻의 Ludens를 써서 1938년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9145)라는 네덜란드 학자가 1938년에 출간한 책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즐기는 모든 문화와 철학까지 인간의 놀이에 의해 생기고 발달했다는 가설로, 고대의 노래하고 춤추던 행위에서 종교 의식과 제례가 발달하고, 끄적이던 낙서를 통해 미술이 발달하며, 무리지어 노는 행위에서 스포츠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출처 : https://ytn.co.kr/_ln/0103_201502220204085138
1. 놀이는 문화적 현상이다: 그 본질과 의미
1) 놀이의 본질
놀이는 그 행동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며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fun(재미)의 요소다. 또한 하나의 총체적 현상인 만큼, 그 총체성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음’이 흘러들어와 우주의 절대적 결정론을 무너뜨릴 때 비로소 놀이는 가능해지고,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다.
2) 놀이의 기능
놀이를 동물이나 어린아이의 생활에 나타나는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기능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생물학과 심리학의 경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놀이의 일차적 의미는 놀이하는 사람이 놀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웃는 동물(animal ridens)”이라는 개념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확실하게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분해 준다.
3) 놀이의 형태
우리가 ‘놀이’라는 형태를 그와 관련되어 보이는 다른 형태로부터 떼어놓으려고 애쓸수록, 놀이 개념의 절대적 독립성이 더욱 현저하게 드러난다. 놀이는 생활의 한 기능이지만 논리적·생물적·미학적 정의들 중 어느 하나로 포섭되지 않는다. 놀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그것을 주로 다루기로 한다. 이것을 놀이의 가장 높은 형태라고 부를 수 있다. (문화 -> 사회)
4) 놀이의 특성
무엇보다도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며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기능이다.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만족감을 얻는 일시적 행위이며 그것으로 놀이의 소임은 끝난다(무사무욕). 놀이는 먼저 질서를 창조하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하나의 질서가 된다. 또한 아름다워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놀이 그 자체는 선과 악을 초월하지만, 놀이에 내재된 긴장의 요소는 놀이하는 사람의 심성 즉 용기, 지구력, 총명함, 정신력, 공정함 등을 시험하는 수단이 되므로 특정한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모든 놀이는 규칙을 갖고 있다. 규칙을 위반하거나 무시하는 자는 ‘놀이 파괴자’이다. ‘떨어져 있으면서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놀이와 클럽의 관계는 모자와 머리의 관계와 비슷하다. 경계는 놀이가 비밀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 가장 잘 예증된다. 일상적 세상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며 놀이-계절(play-season)을 만들기도 한다. 놀이의 ‘남다름’과 비밀성은 ‘가장극’에서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Piteter Brugel, the Edler - Children’s Games(1560)
2. 놀이와 문화, 그리고 사회
1) 고등의 문화 - 놀이
고등 형태의 놀이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경쟁이고, 어떤 것의 재현이라는 두 가지 양상을 가진다. 재현은 전시를 의미한다.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기쁨에 넘쳐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러는 중에서도 ‘일상적 현실’에 대한 감각을 유지한다. 외양의 실현(imagination).
2) 놀이와 사회 - 의례
의례의 효과는 행동을 ‘실제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 사건을 놀이함으로써(재연함으로써) 그 사건의 발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레오 프로베니우스가 말한 것처럼 원시인은 그의 정신 속에 새겨진 자연 질서를 ‘놀이’했다. 우리는 변화라는 필연적 심리 과정과 대면하게 되었고 먼저 놀이가 있었고 의례는 그 다음에 왔다. 놀이 개념의 의미를 지나치게 넓게 잡으면 그것은 말장난이 되지만 예식이 곧 놀이라는 주장은 말장난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 되어야 한다. 성스러움(진지함)이 ‘재미’로 축소되는 하한선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고정하기가 어렵다. 원시 부족 사회가 ‘초자연적 능력’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행동은 ‘그 능력의 연기’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원시인은 이 존재와 연기(놀이)를 개념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또 ‘동일성’, ‘이미지’, ‘상징’ 등의 단어를 알지 못했다. 놀이라는 한 단어에 이 모든 것이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이해된 놀이 안에서 믿음과 믿는 “체하기”의 구분은 사라져 버린다. 신성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놀이는 인간 노력의 최고봉이다. 의례 행위 혹은 그 행위의 중요한 부분은 언제나 놀이 범주에 남아 있다.
3. 놀이와 언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놀이를 하며 그 각각의 놀이 방식들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문화권마다 놀이 개념을 표현하는 어휘는 매우 다르다. 일반적인 놀이 범주는 각각 언어들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하나의 일반적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이는 놀이-기능 자체가 더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것이어서 여러 문화권에서 일반적인 놀이 개념의 추상화는 비교적 뒤늦게 발달한 부차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어 속 놀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널리 알려진 놀이 개념으로 시작해야한다.
특히 이 장에서는 놀이와 경기를 구분하여 이해하였던 기존의 놀이에 대한 이해를 반박하여 놀이와 경기가 다른 개념이 아님을 설명하고자 한다. 더불어 놀이와 음악, 에로스에 대한 설명과 놀이와 진지함의 상보적 관계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려 한다.
1) 놀이와 경기를 구분하는 언어
(1) 그리스어
① ~inda : '어떤 것을 놀이하다'라는 뜻의 불변 접미사.
어린아이의 놀이를 지칭하는 접미사가 문법적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이-개념의 불변적 성격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
② 놀이를 지칭하는 또 다른 세 단어
- 파이디아(παιδιά) : '어린아이의 혹은 어린아이에게 속하는'. '아'를 세게 읽으면 놀이, '디'를 세게 읽으면 '유치함'. 플라톤의 '법률'에서 말했던 가장 고상하고 신성한 놀이를 가리키며 가벼움, 경쾌함, 즐거움의 함의
- 아두로(άδύρω), 아두르마(άδύρμα) : '사소하고 무익한'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으나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 아곤(άγών) : '경기 혹은 경연'. 경기는 '의례'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경기는 축제의 영역에 속하며 축제는 곧 놀이이다.
(2) 산스크리트어
① 놀이를 지칭하는 네 개의 동사 어근 크리다티, 디뱌티, 라스, 릴라의 공통점 : 빠른 움직임
② 산스크리트어에서 경기는 놀이 관련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고대 인도에는 다양한 경기가 있었으나 경기만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다.
(3) 중국어
① 완(刓) : 어린아이의 놀이, 확장되어 '바쁘다, 무언인가를 즐기다, 장난치다. 깡충거리다, 익살떨다, 농담하다, 흉내내다'. 공통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다,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무언가를 다루다는 의미가 있다.
② 쟁(爭): 그리스어 아곤과 동일한 개념. 새(賽) : 상금을 걸고 조직한 경기 대회
(4) 원시언어 알공킨 그룹의 블랙풋 부족 언어
① 동사 어근 코아니(koani) : 모든 어린아이의 놀이, 남녀 불륜 관계
② 칵치(kachtsi) :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조직된 놀이. 기량과 힘을 다투는 게임이나 사행성 게임. 이기기, 경쟁하기
③ 코아니와 칵치는 그리스어 파이디아와 아곤의 관계와 유사
④ 이기기를 뜻하는 스케츠(skets) 혹은 스키치(skits)는 놀이영역과 아곤 영역이 완벽하게 융합
2) 놀이와 경기 개념이 융합되어 있는 언어
(1) 일본어
① 명사 아소비(ぁそび), 동사 아소부(ぁそぶ) : 놀이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 어떤 연기하기, 바퀴 도구, 구조물 등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 아소부의 경우 학교, (찻잔을 손에서 손으로 돌리는 일본의) 차회
② 무사도는 놀이 형태의 재연
③ 아소바세고토바(遊び言葉, 놀이-언어) : 존칭어법, 귀족 계급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놀이의 기분으로 행동한다는 의미 함축, 귀족 계급은 즐거움과 겸양만이 행동화하는 고상한 영역에서 살고 있다고 보는 것.
④ 마지메(まじめ) : 놀이와 반대되는 단어. 진지함, 엄숙함, 심각함, 정직함, 근엄함, 웅장함, 조용한, 예의 바름, '좋은 형태'를 의미
(2) 셈어
① 히브리어 어근 라압(la'ab) : 놀이, 웃음과 흉내, 라이바(la'iba/흉낸내다, 놀려대다)
② 라틴어 루두스(ludus) : 놀이 전영역을 아우르는 하나의 단어
- 어원은 '진지하지 않음' 물고기의 뛰어오름, 새들이 날개를 퍼덕거림, 물의 흐르는 소리, 어린아이의 게임, 오락, 경기, 전례와 연극적 재현, 사행성 게임, '춤', ~체하기, ~인 척하기 등을 의미, 다양한 언어로 전승되지 않고 소멸
③ 요쿠스(jocus) : 루두스를 대체하여 로망스 언어에 전승된 단어. 놀이 전반으로 의미가 확대(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칼, 루마니아, 카탈로니아, 프로방스, 라에토-로망어에서 발견됨)
④ 로망스어와 게르만어의 놀이 지칭 단어 : 놀이 자체와 무관한 움직이나 동작을 등을 의미하는 다양한 개념 그룹에 분포
(3) 게르만어와 영어
① 놀이를 포괄하는 공통 단어를 갖고 있지 않고 있으나 언어가 분화되며 다양한 단어를 생성
② 고대 고딕어의 laikan : 놀이, 뛰어오르다(재빠른 움직임은 많은 놀이-단어들의 구체적인 출발점)
③ 고대 노르웨이어 leika : 자유롭게 움직이다. 붙잡다. 원인 혹은 효과를 가져오다, 다루다. 어떤 일에 몰두하다. 시간을 보내다. 실천하다 등의 의미.
④ 앵글로색슨어 plega(놀이), plegan(놀이하다) : play, to play의 어원. 재빠른 움직임, 제스처, 양손을 잡기, 박수치기, 악기를 연주하기, 모든 종류의 신체적 행동을 의미
3) 놀이와 경기(아곤)의 관계
(1) 놀이=경기=투쟁 : 모든 게르만 언어와 많은 다른 언어들에서 놀이-단어들은 규칙적으로 무장 투쟁에 적용
① 앵글로색슨의 시 : 무장 투쟁 heado-lac 또는 beadu-lac은 전투-놀이, 서프랑크의 왕루트비히 3세의 루트비히의 노래에서 프랑크족을 물리치는 과정을 '거기서 프랑크족들이 놀았다'고 표현
② 구약성경 사무엘서 : 2장 14절 '부하들을 내세워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를 라틴 어역 성경으로 보면 '아이들이 우리들 앞에서 일어나 놀았다'. 경기는 살육적 놀이라는 뜻으로 경기와 놀이는 분리할 수 없다.
4) 음악과 에로스
(1) 아랍어와 다수의 유럽언어들은 놀이라는 단어를 악기의 취급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게르만 언어와 일부 슬라브 언어에서 두드러진다. 음악 만들기는 처음부터 놀이 그 자체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제한 아래 시작되고 끝나며, 반복 가능하며, 질서·리듬·교대로 이루어지며, 관중을 황홀하게 만들어 '일상' 생활을 벗어나 기쁨과 평온함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 음악은 사람은 '매혹'하고 '황홀'하게 한다.
(2) 다양한 언어권에서 에로스와 관련된 단어가 놀이를 뜻하는 어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관찰되나 이는 놀이가 성적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적 행위는 생물학적 과정으로 보아야하며 오히려 '놀이가 성적 행위로 표현되는 것은 사회적 규범 바깥에 있는 에로틱한 관계에만 적용된다 할 수 있다.(블랙풋족의 언어 참고) 놀이 용어를 에로스에 적용하는 측면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비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놀이와 진지함의 상보적 관계
(1) 어떤 단어의 개념적 가치는 언제나 그 반의어에 의하여 조건화된다.
(2) 언어에서 놀이 개념이 그 반의어(진지함)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 같다.
(3) 놀이는 긍정적인 반면 진지함은 부정적이다. '진지함'의 의미는 '놀이'의 부정에 의해 정의되고 파악된다. 진지함은 '놀이하지 않음' 일뿐이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반면 '놀이'의 의미는 '진지하지 않음', '심각하지 않음'이라고 정의해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놀이는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놀이 개념 그 자체는 진지함보다 더 높은 질서 속에 있다. 왜냐하면 진지함은 놀이를 배제하려고 하는 반면, 놀이는 진지함을 잘 포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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