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은 [I DO, DO I?] 시리즈의 제2장으로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한국 사회의 대표 키워드로 제시되는 혼인율 저하를 주제로 삼아, 예비부부의 결혼 준비를 힘들게 하는 웨딩업계의 정보 비대칭성과 '결혼 준비엔 응당... 를 해야 한다'는 우리 주변 속 잔소리를 꼬집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시리즈의 배경, 취지에 관한 정보는 프롤로그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분명하게 볼 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명문장으로 꼽는 문장이지만, 스드메 챕터의 마지막인 웨딩 메이크업을 이야기할 오늘 만큼은 어린 왕자의 입을 막고 눈을 살포시 가려줄까 한다. 웨딩 메이크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눈에 보이는 것을 가꾸고 다듬는 데 집중한다. 이에 결혼식 준비 과정과 당일의 보이지 않는 감동과 마음의 준비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나고, 무결점 피부와 인형 같은 체형, 화보 속 유명인사와 견줄만한 스타일링 연출에 모든 게 집중된다. 예비 신랑 신부의 시간과 돈부터, 전문가의 손길과 예술 정신, 그리고 (이제는 빠지면 섭섭할 법한) 스드메(웨딩 패키지) 속 끼워 팔기까지 모든 게 동원된다. 정신없다. 그런데 예뻐지긴 한다(K뷰티의 힘).
일반적으로 웨딩 메이크업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신부 화장을 떠올리지만, 스드메가 일반화된 지금은 스튜디오 촬영의 메이크업(촬영 메이크업)과 결혼식 당일의 메이크업(본식 메이크업), 이렇게 두 번의 서비스로 나뉘곤 한다. 두 서비스는 대게 패키지로 묶어 예비부부가 웨딩 플래너 혹은 컨설팅 업체와 일괄 계약을 체결하곤 하지만, 예비부부의 성향이나 개인 사정에 따라 별도의 메이크업 숍을 따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메이크업 숍을 선택하는 과정은 스튜디오 촬영의 콘셉트와 장소를 선택하는 과정보다 다소 난해할 수 있다. 스튜디오 촬영은 사진작가의 화보집 포트폴리오를 참고자료로 하면서 예비부부의 분위기나 취향을 물어가며 영업을 하는 반면, 메이크업 숍들은 뷰티 광고에 나올 법한 모델의 피부 화장 화보 사진만 보고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평소 알고 지내는 또는 소개받은 메이크업 숍이 있거나 뷰티에 일가견이 있는 예비부부라면 이야기가 쉽겠지만 말이다).
진한 화장과 연한 화장처럼 육안으로 곧바로 구분이 가능한 메이크업이 아니고서야, 각 숍들의 메이크업 실력을 사진만으로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 이를 테면, '깨끗한 느낌이 살아나는 메이크업'과 '봄날의 햇살을 담은 메이크업'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해당 메이크업을 한 모델이 내 눈앞에 마네킹처럼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모델의 사진첩을 보는 것 만으로! 때문에 메이크업을 받지 않고서 결혼식을 치를 게 아니라면, 이에 관한 상담을 받거나 결정을 독촉받기 전에, 예비 신랑 신부가 스스로의 피부나 뷰티 스타일링에 대해 잠깐이라도 공부하거나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런 시간을 잠깐 가진 것만으로도 플래너에게 자신의 취향을 전달할 수 있고, 그 덕에 어울리지도 않을 메이크업 숍의 포트폴리오를 살피는 시간(과 그 숍에서 끼워 팔 어떤 상품들과의 접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부부간의 셀프 컨설팅으로도 충분하지만, 혹 서로의 안목이 못 미덥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필수는 아니다). 심리테스트나 MBTI테스트를 하듯,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받는 이미지 컨설팅, 퍼스널 컬러 진단, 체형 진단이 유행이지 않는가, 웨딩 컨설팅과 스드메 계약 전에(반드시 전에!) 그런 트렌드를 활용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MTN뉴스 21.02.08 보도). 해당 서비스들은 예비 신랑 신부의 피부 톤과 외모/외형의 분위기, 그를 보완하거나 극대화할 방법을 메이크업 제품과 옷 태, 헤어 스타일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주어, 예비부부가 스드메 계약 시 참고할만한 지표들을 여럿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해당 지표들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끼워 팔기가 성행하는 웨딩 업계를 생각하면 꼼꼼한 사전 조사는 든든한 정보력이 되고 그럴싸한 취향의 탑(이는 곧 스드메에서의 선택지를 줄이는 데 일조한다) 쌓기로 이어진다.
"본식 메이크업의 경우에는 가족과 친인척들 가까이에서 신랑과 신부가 결혼의 예를 갖추는 자리이기에 신랑·신부의 얼굴이 거부감이 없도록 하는, 자연스러운 예식메이크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영남일보 22.05.20 보도)."
물론, 제 눈에 안경이라고, 스스로 마음에 드는 대로 입고 꾸미면 그만이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생각과 고집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는가,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이 (애석하게도) 어린 왕자의 눈과 귀를 잠시 가리고 닫아 주고 싶을 정도로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행사로 유명하다는 것을! 별다른 메이크업 로망이 없던 예비부부 일지라도 피부 위 자그마한 뾰루지의 유무에 일희일비하는 게 바로 결혼 준비 과정이다.
촬영 메이크업은 사진작가와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 분위기에 맞춰 진행하기 때문에 본식 메이크업보다는 가볍고 다양한 변주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융통성이 있는 편이다). 메이크업의 대상 또한 사진을 찍을 예비부부로 한정하기에, 절차도 피부 화장, 색조 화장, 헤어 스타일링으로 간단하다. 반면 본식 메이크업은 얼마든지 규모를 키울 수 있고, 그에 따라 과정도 복잡해질 수 있다. 신부 메이크업과 신랑 메이크업, 양가 혼주 메이크업,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들러리 메이크업, 직계 가족 메이크업까지 모두 아우르곤 한다(영남일보 22.05.20 보도).
본식 메이크업의 규모가 가격 면에서 부담이 된다면 스튜디오 촬영 메이크업처럼 예비부부만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란 의미가 큰 한국 결혼식을 감안했을 때, 나를 비롯한 결혼 선후배들은 '그래도 양가 혼주 메이크업까진 챙기는 게 좋다고' 입을 모으는 편이다. 그런 조언에는 보이는 데 집중하는 결혼식이란 행사가 남기는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또 사진인 점도 한 몫한다. 양가 가족과의 단체 사진, 직계 가족과의 단체 사진... 의외로 '찍어야 하는' 사진이 수두룩하다. 화장을 질색하는 양가 아버지들도 묵묵히 입을 닫고서 메이크업숍이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하하).
실제 웨딩 업체들은 정가제를 도입하지 않고 각종 추가비용을 예비부부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 꽃 추가, 드레스 변경, 메이크업 수정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항목이 워낙 많다 보니 웨딩플래너의 설명만으로는 어디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광주일보 23.08.09 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드메의 끼워 팔기 관행이 메이크업 숍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 보지 못했던 얼굴, 모습으로 변해가는 스스로를 보면, 메이크업에 쉬쉬했던 예비 신랑과 신부도 '오, 꽤 괜찮은걸?' 하며 스스로에게 취할 수 있다. 얼굴 위 결점이 가려지고 평소 보지 못했던 분위기를 연출하는 헤어 스타일링까지 착착 진행되면, 메이크업 숍 스태프들이 이런저런 제안으로 추가 결제를 유도하는 일이 잦아진다.
"기왕 이렇게 이쁘게 메이크업했는데, 화장 무너지면 속상하잖아요? 이거(픽서)인 당 3만 원 추가 요금이 드는데, 신부님과 어머님들 모두 뿌려드리면 어떨까요(필자가 실제로 들었던 멘트다)?" 안 넘어갈 것 같은가? 하지만 막상 친절한 서비스 멘트와 눈에 띄게 달리지고 있는 거울 속 얼굴을 보면 충분히 혹할 만한 상황이 조성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숍 안은 기본적으로 정신줄을 붙들고 있기 어려운 환경이다(정신없이 움직인다). 때문에 억지로 "아, 예. 해주세요." 하고 덥석 추가 비용의 찌를 물어 버리기 쉽다. 어떤 상황에 놓였건 간에, 부디 예비부부가 세워두었던 웨딩 예산 안에서 추가 비용 지출 여부를 결정하길 바란다(그렇지 않으면 결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눈물이 터지고 땀범벅인 얼굴로 마무리할 결혼식이라면 울고 땀을 흘리기 마련이다. 애초에 잘 받지 않고 무너질 화장이라면 무너지게 되어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고 생각하면 완벽한 신랑 신부가 되겠다는 욕심이 사그라들지도 모르겠다. 또 완벽해지지 못하더라도 믿을만한 구석이란 게 있다. 사진이란 기록물에는 포토숍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질 않은가.
사실, 메이크업과 관련된 결정 사항을 마주할 때 은근슬쩍 상담 테이블 위로 올라오는 추가 비용은 메이크업 숍 바깥에서 더 많이 목격된다. 웨딩 관리라고 불리는 피부와 체형 관리 서비스인데, 그 종류도 쇄골 관리, 전신 마사지, 피부 속에 물광을 채워주는 상품, 색소 침착 완화 레이저, 얼굴 솜털 제모, 승모근 보톡스, 미백 관리 및 보톡스 케어 등 다양하다(중앙일보 23.09.27, 메디컬투데이 23.09.12, 조선일보 23.07.11 보도). K뷰티 산업의 상품 및 시술 박람회가 따로 없다.
내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추가 비용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예비부부들이 해당 서비스를 제안하는 플래너나 컨설팅 업체의 논리("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돋보여야죠")에 굴복하고서 예기치 못한 추가 비용을 감수한다고 한다.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하자. 예비부부로서 세워둔 웨딩 예산에 부합하는 추가 결제인지, 정말로 결혼식에 꼭 필요한 비용인지, 결혼식이 어땠으면 좋겠는지(어떠해야 한다는 기준 말고!), 결혼식과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위 내용과 관련하여 웨딩 비용에 관한 기사를 수집하던 중,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구매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한국경제 23.09.22 보도). 메이크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평이지만, 나는 이 교수의 진단에서 앞으로 웨딩업계의 타깃층이 될 일이 많을 MZ 예비부부가 끼워팔기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들만의 결혼식을 꾸려나갈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웨딩 패키지(a.k.a. 스드메)를 통틀어 '함정'이라 요약하고, 각 항목 별 끼워팔기와 가스라이팅 관행을 설명하는 내내, 내심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는 진단이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투어, 메이크업. 무엇이 되었건 간에 결혼식이 예비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를 반영한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긴 여행의 출발점이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 혼란스럽지 않았으면 한다. 두 명의 소비자가 관련 업계의 존중받으면서 합리적인 결혼식을 계획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이 아닌 즐거운 결혼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고민 끝에 치른 스드메와 결혼식이라면, 제아무리 어린 왕자라 하더라도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까.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을 먼저 확실히 한다면 보이는 것들 또한 반짝이고 멋져 보일 거다.
[참고 자료]
1) 중앙일보 23.09.27
단기간에 예뻐질 수 있는 웨딩 케어 시술 추천해 주세요
2) 한국경제 23.09.22
MZ세대 예비부부, 결혼식 시간 '오후 4시'로 잡은 이유
3) 메디컬투데이 23.09.12
4) 경상일보 23.09.07
오띠모웨딩, '유튜브 채널 개설' 결혼준비 잘하는 방법 동영상 제공
5) 광주일보 23.08.09
6) 조선일보 23.07.11
[결혼 비용 명세서]② “아직도 쇄골, 승모근, 솜털 관리 안 했다고요?” SNS가 부추기는 몇 백만 원대 ‘신부 관리’
7) 메디컬투데이 23.03.14
8) 더퍼스트미디어 23.02.23
웨딩클럽, 결혼웨딩클럽, 결혼준비 무료 동영상 강의 서비스 제공준비 무료 동영상 강의 서비스 제공
9) 보건뉴스 23.02.21
10) 영남일보 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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