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큐레이팅 시리즈③] 말과 행위로 나를 세계에 드러내기, <민주적 공공성>
현안과이슈 / by khoco / 작성일 : 2023.08.25 / 수정일 : 2023.08.28

 북 큐레이팅 시리즈 연재를 시작합니다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책의 내용을 충실히 요약해 전달하기보다는 추천 글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긴 호흡으로 한 주제에 얽힌 다양한 스펙트럼에 관해 저자의 사유에 따라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다양한 사회문제를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매 순간 우리는 특정한 화두에 대해 함께 숙고해볼 수 있는 유용한 계기를 만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고통공공성문화 연구기록연대 등 다양한 주제와 관련한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이번 소개할 책은 지난 글에서 다뤘던 조한상의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와 하승우의 <공공성두 권에 이어 사이토 준이치의 <민주적 공공성: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었는데, 이번 편에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공공성 담론에서 자주 회자되는 책이니만큼 공공성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필독서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말과 행위로 나를 세계에 드러내기


 지난 시간부터 공공성에 관한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성'(publicness)는 분명한 개념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공공성이란 이론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공간 혹은 권역圈域
​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까요. 공공성에 대한 사상가들의 논의가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 더 자주 회자되고 있는 까닭은, 함께 공존하는 사회 안에서 개인과 개인이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오랜 인류의 고민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칸트와 위르겐 하버마스, 한나 아렌트 등 주요 작가들의 공공성론을 두루 다루며 현대, 특히 현대 일본에서의 공공성을 조명하고 있는 사이토 준이치의 저작은 비슷한 근대적 발전 과정을 공유하는 한국의 상황에도 조응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왼쪽은 <민주적 공공성> 사진, 오른쪽은 이 책을 쓴 저자 사이토 준이치이다. 
(출처: 왼쪽 예스24, 오른쪽 사진 뉴스1
https://www.news1.kr/articles/?1247115​ )


"공공적 공간이란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대하여 응답을 받는 공간이다"(p.16 <민주적 공공성> 중에서)

 이 책의 서두에서 공공성을 세 가치 차원에서 해설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공적인(official) 의미, 둘째는 모든 사람들과 관계된 공통적인 것(common)이라는 의미, 셋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open)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위 세 가지 차원이 서로 항쟁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저자 말마따나 공공성 논의에서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저자는 기존 공공성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감을 언급하면서, 공공성이 과거 국가가 독점한 일종의 헤게모니에서 점차 탈각해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국가(국익) 혹은 시장의 공공성과는 다른, 혹은 그들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공공성의 조건을 밝히기 위해 무엇이 공공성이 아닌가 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활용합니다.

 

 

공공성

공동체

특성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

닫힌 영역을 형성

가치

이질적인 가치

균질한 가치

통합 매체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일, 공통의 관심사

구성원이 가지는 애국심, 동포애, 애사심 등의 정념

조건

차이

동일성

 

복수의 집단이나 조직에 다원적으로 관여

일원적, 배타적인 귀속을 요구

정체성

다의적 정체성

집합적 정체성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작성)


공공성 그리고 공동체, 시장, 국가

 엄밀한 의미에서 공공성은 공동체와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단적으로 공동체는 닫힌 영역임에 반하여 공공성은 개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공동체를 단일한 가치와 문화로 엮어줄 균질한 코드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가치와 코드를 토대로 동화와 배제가 동시에 발생하지만, 공공성은 구성원들의 가치가 이질적이라는 조건 아래 각자의 관점에서 공통의 관심사에 접근하는 공간입니다. 한편 저자는 시장도 공공성과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시장은 화폐 가치라는 동일한 코드, 특히 비인칭적 코드가 지배하는 곳이며, 공공성은 그와 달리 이질적인 가치인간의 관점들이 통용되는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자체와도 구별됩니다. 애초에 칸트가 논의에서 알 수 있듯 공공성에는 국경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협의의 정치적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로 환원할 수도 없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본래 공중이란 세계시민사회의 구성원을 의미하며, 이성의 공공적 활용 역시 공동체의 이해에 헌신하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게다가 저자가 정치적 의사결정의 뜻이 농후한 공론장이란 번역어 대신 공공성혹은 공공권이란 번역어를 채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담론(discourse) 자원

 저자는 담론 자원에 관해서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공공의 공간에 말과 행위로서 '현상'하는데 작용하는 주요한 요소가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담론 자원, 특히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사적인 것이 포함됩니다. 특히 공사를 구별하며 공적인 장에 어울리는 말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범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공공성이 많은 영역을 사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스스로를 정의해왔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공사의 구별은 담론에 의한 유동적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러한 담론에 대해서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를 함께 설명하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은 사적인 것으로 여겨진 영역을 공적인 담론으로 부상시키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입니다. 즉 공공성, 특히 공공의 공간이란 공사 구분을 둘러싼 담론이 행해지는 곳이지, ‘공공적인 테마만을 이야기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이야기되는 주제는 참여하는 복수 주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선험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친밀권과 공공권

 아렌트에 의하면 공공성은 현상의 공간세계 그 자체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현상의 공간은 공약 가능한 표상의 공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각자가 각자 그대로 스스로를 내보이며 현상하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은 대체로 잠재적이라 현상의 공간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이 공공권에 현상하기까지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아렌트가 현상을 위해서는 시민적 덕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나, 이 덕성이 길러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디에선가 긍정되고 있다는 감정이 필요하고, 이 감정은 친밀권(intimate sphere)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저자는 책에서 친밀권이 공공적 공간을 향한 커밍아웃을 지지하고, 발화하는 사람을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함을, 우리는 예를 들면 종군위안부여성들의 행위 등을 통해 알게 되었다”(p.111)고 쓰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친밀권이란 당사자 간 연대의 형태를 포함한 사랑과 지지의 공간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공간에서는 타자에 관한 판단 혹은 결정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이상 이 책에서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 중 아주 일부 논의를 간략히 소개해보았지만, 이 외에도 하버마스의 공공성론을 포함한 많은 논의들을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다루고 있습니다. 모두의 관점이 각각 그대로 존중되는 담론의 장을 만들기란 매우 까다로운 일입니다. 게다가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모두가 대체 가능한 '무엇'이 아닌 '누구'로 존재하는 공공의 공간, '현상의 공간'에 온전한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이 함께 뒷받침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공공성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나와 사회의 문제 혹은 관계를 두고 내리는 판단, 그리고 이에 대한 태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공공의 공간은 완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새로 시작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재심 가능성'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작성자 : khoco / 작성일 : 2023.08.25 / 수정일 : 2023.08.28 / 조회수 : 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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