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은 [I DO, DO I?] 시리즈의 제3장으로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한국 사회의 대표 키워드로 제시되는 혼인율 저하를 주제로 삼아, 예비부부의 결혼 준비를 힘들게 하는 웨딩업계의 정보 비대칭성과 '결혼 준비엔 응당... 를 해야 한다'는 우리 주변 속 잔소리를 꼬집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시리즈의 배경, 취지에 관한 정보는 프롤로그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날을 앞두고 있으니 숨을 고르며 마음 준비를 하고 가급적이면 숙면을 취하라는 말. 놀랄 게 없는 조언이지만 은근히 지키기 어렵다. 결혼식 전 날까지도 예비부부는 결혼식의 세부 사항들을 챙기느라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 위 뾰루지를 톡 하고 건드렸다가 후회를 하고, 설렘 혹은 긍정은 없는 떨림 그 자체로 밤잠을 설친다. 그 원인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이들 아래 사항들을 이유로 꼽는다.
결혼식을 잘 시작하고 마무리 짓기 위해 투입된 여러 사람들과의 소통이 마지막까지 예비부부의 관심을 요한다. 그중에는 웨딩 플래너와 결혼식장 관계자, 스냅 작가, 부케 업체, 헬퍼처럼 계약과 사례로 맺은 인연이 있는가 하면, 혈연이든 지연이든 예비부부의 개인적 삶과 연이 닿은 사회자, 축가 담당자, 가방순이, 축의금 데스크 담당자 등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선 예비부부가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그러기에)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이미 전달했던 내용들이라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리마인드를 하는 게 불필요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최종 점검을 하면서 잊었던 부분을 체크할 수 있기에 번거롭지만 권장하고픈 D-1 일과 중 하나다.
D-Day
결전의 날, 축제의 날. 오후 예식이라 하더라도 시작 네다섯 시간 전부터 메이크업 숍으로 바쁘게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날 움직이는 건 예랑, 예신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양가 부모님과 경우에 따라서는 직계 가족(예: 예랑의 여동생, 예신의 오빠 등) 모두가 함께 메이크업 숍으로 가 꽃단장에 들어간다. K-뷰티의 힘을 입어 새사람으로 변신하는 도중, 드레스숍에서 파견 나온 헬퍼(a.k.a. 이모님)를 만나 인사를 나눈다. 주문했던 부케도 숍으로 도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본식 스냅사진작가도 촬영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순식간에 '소통, 소통, 소통'을 끊임없이 이어왔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시작한다. 예랑, 예신은 그제야 "오늘이군!" 하며 결혼을 실감하게 된다.
메이크업을 완료 후 예복으로 갈아입은 후에는 예신의 활동성에 크게 제약이 걸린다. 드레스란 옷의 특징상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혼자 힘으로는 할 수가 없게 된다. 헬퍼의 도움 없이는 옷매무새가 망가지고 신부 폼이 나질 않는다. 준비를 마친 예신이 잘 웃는 마네킹처럼 신부대기실에 앉아 하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반면, 예랑은 활동성을 자랑하는 예복에 힘입어 두 다리에 의지하며 이리저리 인사를 하러 다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부대기실에 갇혀(?) 있는 예신과의 소통을 위해 뛰어다니기도 하는데, 이때 가방순이가 있다면 신랑, 신부 간의 소통에 중간다리가 놓여 정신이 덜 사나워진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 예랑, 예신은 자연스레 예의를 차리기 시작한다. 좋게 시작해서 좋게 마무리 짓는 결혼식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겠지만, 예비부부가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중 하나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확실한 호불호 의사 표시다. 시간과 돈, 마음이 많이 쓰인 이벤트인 만큼, 자그마한 불편사항도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 때문에, 예를 들어, 본식 스냅사진 기사가 본인의 작품 세계에 취해 예신의 취향과 어긋나는 사진 연출을 무리하게 요청한다면 곧바로 의사 표시를 전달해 유한 분위기 속에서 결혼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헬퍼 분이 드레스가 뒤집어지건 말건 멀뚱멀뚱 옆을 지키고만 있다면 곧바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내 경우엔 식장의 모두가 주목하는 신부 입장을 아빠와 미리 연습을 해보지 않았던 게 가장 아쉬웠다. 평상시에 손을 맞잡고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풀메이크업에 구두, 드레스 차림으로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 웨딩드레스는 부피도 크고 무게도 나가서 다루기 어려운 오셔서 평소처럼 걸었다간 제 발에 밟혀 넘어지는 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치마를 살짝 손으로 잡아 올리고선 캉캉 춤이라도 추듯 발로 치마를 탕탕 걷어차면서 걸어 나가야 속도도, 안정감도, 품위 있는 걸음도 챙기면서 버진로드를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를 가장 잘 알고서 도움을 줄 법한 분은 본식 당일에 랜덤 박스하듯 만날 헬퍼 분이신데, 신부대기실에서 내내 함께 있는 분이니 모르겠는 부분은 그때그때 꼭 물어서 익혀두도록 하자.
결혼한 또래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돌이켜 보면 놀랍게도 너도 나도 비슷한 경험담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까지 진행될 본식이 예비부부와 하객 모두에게 즐겁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벤트라는 것. 세대를 아우르며 치러야 하기에 적당히 엄숙하고 적당히 축제다워야 해서 어렵다는 것. 앞뒤로 다른 이의 예식이 예정되어 있다면 시간 약속도 잘 지켜줘야 하며, 카메라 앞에서 몸이 굳어버리는 사람일지라도 평생 두고 볼 사진을 찍는 날이니 무조건 웃고 봐야 한다는 것... 이처럼 ‘해야 한다’ 리스트로 가득한 이벤트가 바로 결혼식이다. 그런 결혼식을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고 편하게 준비하고 싶다면 누구를 또는 무엇을 돋보이게 하는 예식을 준비할지 예랑과 예신 간의 충분한 대화가 선행해야 한다.
예랑과 예신이 부부의 연을 맺어 새 출발을 하는 자리라는 걸 강조할 건지, 오늘날의 예랑과 예신을 있게 해 주셨던 양가 부모님께 감사를 표하는 자리를 만들 건지, 예신 (또는 예랑)이 버킷리스트처럼 품고 있던 꿈의 웨딩을 실현시키는 자리가 될 건지, 예랑과 예신을 축하하는 또래 친구들과의 축제의 장으로 만들 건지, 한 가정으로서의 새 출발을 기념하며 감사의 의미를 담아 사회 참여적인 캠페인이나 후원 행사가 돋보이게 할 건지 등… 어떤 마음 가짐으로 결혼식을 준비할 건지, 결혼식 당일에 누구를 가장 돋보이게 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면 ‘메이크업과 예복의 스타일’부터 ‘사진 기사에게 요청할 사항(예: 부모님께서 하객 인사하시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찍어주세요, 또는 축가를 불러주는 친구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어주세요)’과 ‘예식장 내부에 울려 퍼질 음악과 화면에 띄울 슬라이드 내용’까지 정리와 결정이 은근히 편해진다.
이와 별개로 덧붙이고 싶은 조언이 하나 있다면, 결혼식 중에 억지로 울음을 참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기쁜 날이자 묘하게 아련한 감정이 들기도 하는 날이다. 가족이란 존재가 도드라지고 가족의 확장이 눈앞에서 이뤄지는 날이다. 원 가정을 떠나 나만의 가정을 일구기로 결심하는 날, 어른이었지만 다시 한번 정말 어른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눈물이 날 수 있는 상황들이 연달아 조성되는 날이다.
"이렇게 좋은 날 울면 안 되지! 화장 다 무너져!" 하면서 억지로 울음을 참다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카메라에 남기는 것보단,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울다가 웃다가를 뒤죽박죽 섞어가는 예랑, 예신이 되는 게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을까. 옛말로 인륜지대사라고 적을 만큼의 이벤트, 그런 날만큼은 나를 향하는 시선이 얼마나 적든 많든 간에 충분히 웃고 울고 사랑한다 말하면 좋겠다. 그럴 때 예랑, 예신은 새신랑, 새신부로 반짝하고 빛나는 행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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