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청년들 역사로 잇다, 만나다. 는 한국의 청년들과 재일동포 청년들과의 교류 모임입니다.
같은 말, 같은 글을 쓰지만, 살아온 땅도 삶도 다른 이삼십대 청년들이 모여, 서로를 더 많이 알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첫 모임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재일동포들의 아픈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함께 배우고 나눴습니다. 아래는 그 때 모였던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종합하여 정리한 후기입니다.
1. 첫 만남 : '조선학교'를 아시나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본격적인 역사 탐방을 하기 앞서, 재일동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모임 구성원 중 재일동포 친구들 몇몇이 고등학교까지 일본의 '조선학교'를 다녔고, 한국 친구들 역시 영화나 매체를 통해 '조선학교'를 접하고 '재일동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학교에 대한 관심이 사실 우리를 이렇게 모이게 했습니다.)
수년 전, TV 뉴스에서 '일본에 있는 민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칼로 찢는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일본에도 재일동포들이 세운 우리 학교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잊어버렸지요.
2006년, 극장에서 '우리학교'라는 독립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그 때,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곳에 그대로 남아 학교를 세우고 삶을 이어오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감동했지요. 그러나 또 금새 잊었습니다.
2011년, 일본에서 아주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상최대의 모금액이 모였다는 뉴스도 있었지요. 그런데, 인터넷 뉴스 한 켠에 작게 실린 소식 하나. 재일동포들이 직접 세우고 가꿔왔지만 지진으로 교사가 무너지고 운동장이 갈라져버린 '조선학교'에는 정작,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의 지원이나 관심이 하나도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마음은 계속 쓰였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2015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바로 그 '조선학교 출신'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일본의 조선학교에서 다니고, 더 나아가 한국에서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에도 가보고, 한국의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혼자서 서울로 날아온 친구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스무살이 된 지금까지 줄곧 일본에서 살아왔는데도 술술 우리말을 아주 잘 쓰는 친구들, 하지만 묘하게 어조나 말투가 일본말과 우리말 그 중간 즈음에 걸쳐 있는 느낌.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제주도'라거나 '경상남도'라고 대답하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 속에 피어나는 물음표.
하양 저고리, 검정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볼 때면 흐뭇한 웃음과 함께 드는 궁금증들.
그것들을 같이 나누고, 풀고, 배워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알음알음 모인 재일동포 유학생들, 그리고 서울, 인천, 파주, 고양, 춘천과 전주까지, 다양한 곳에서 모인 한국의 청년들이 함께 할 수 있었고, 첫 번째 모임으로 '역사'를 배우자고 생각했습니다.
2. 첫 모임 : 우리나라의 고통의 역사에서 시작된 재일동포의 역사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학살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곳을 통해, 식민지 시기의 역사, 해방 전후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이나 징병을 통해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방만을 기다리며 고단하고 비참한 일본땅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찾아온 해방, 그러나 쉽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조국은 해방되자마자 분단과 전쟁의 화마에 휩싸였고, 일본은, 돌아가려거든 지금까지 힘들게 일구어놓은 살의 터전과 재산을 거의 내놓다시피 하고 가라는 요구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탄압과 한국의 무관심, 소외 속에서 재일동포들은 다시, 일본 땅에서 삶을 일으켰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땅을 일구고 집을 짓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역사와 사람들, 독재정권 때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그 때 한국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배웠는지, 그 때 재일동포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함께 나눴습니다.
3. 만남 잇기 : 지속 가능한 교류를 위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돌아보며 서로의 역사를 배운 후,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앞으로의 만남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계속' 만나는 것이었지요.
'재일동포 유학생'이라는 신분은 사실 좀 특별합니다. 보통의 '외국인 유학생'과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오는 국적 문제에서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일본에 있는 많은 재일동포 중에서 '국적' 문제 때문에 '한국'에는 입국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국적 문제라기 보다는 국적에 대한 정치적 해석에 대한 문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재일동포들은 '대한민국'이 생기기 전 '조선'의 국민이었습니다. 일본 땅에서 식민지 시기를 보냈고,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재일동포들에게 조국은 그 때도 '조선'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상황이 모든 것을 흐트러뜨렸습니다. '조선'은 사라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새로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들의 국적인 '조선'을 '한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기호'로서 표시할 뿐이었습니다.
지금, 재일동포들 중에서는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많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보다는 적지만 여전히, 하나인 조국으로 돌아가고싶은 마음으로,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은 거의 '무국적자' 취급을 받는 '기호로서의 조선'을 국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씁쓸한 것은,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들 '조선'을 국적으로 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처우도 매번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07년까지는 큰 제약없이 올 수 있었던 한국행이, 2008년부터는 완전히 막혀버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뿐 아니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재일동포 유학생들 역시, 돌아갈 집은 일본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모임을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튼튼한 다리가 놓아지면, 그 다리를 한 사람, 두 사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건너게 되리라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알리고, 배우고, 공부하고, 나누고, 즐기고, 만나는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일동포들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이 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으로 -역사 탐방 뿐 아니라 가벼운 나들이, 소풍, 함께 영화 보기, 밥 먹기 등- 우리들의 진짜 생활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연락처를 공유하고, 앞으로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이 교류에 더해질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활동을 늘려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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