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생산계획모임 후 발췌요약 한 텍스트와 대화내용을 함께 요약하여 블로그 포스팅으로 공유할 예정입니다.
빈곤은 표백되었다.
패스트푸드점과 영화관 출구 옆에 놓은 쓰레기통에는
'분리수거는 저희가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친절한 문구만큼 편리함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아무 죄의식없이 음료와 음식이 뒤섞인 쓰레기를 배출하고 자리를 떠난다.
'저희가 하겠다'는 친절함의 자리는 유니폼을 입은 할머니가 몫으로 남는다.
저 노인이 감당해야하는 노동의 품넘어 빈곤은 읽히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멀끔한 유니폼은 노약자의 일해야 하는 사연을 느껴야
할 연민이나 불편함이란 감정들이 사라지도록 해주었다.
멀리 아프리카 아동이 식량부족을 호소하는 광고만큼의 극빈한 모습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쩌면 '빈곤'이란 단어에 단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모녀의 죽음과 한 예술가의 고립사 청년의 주거문제 그리고 최저임금까지.
나름 기본복지망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는 여전히 다양하다.
다양한 범주와 문제로 분류되고 정의되지만 사실 '빈곤'을 바탕에 두고 있지 않을까?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는 노동윤리가 이제는 각자도생 처럼 차갑게 들리기도 한다.
이미 우리 옆에 흐릿하게 표백 된 이 '새로운빈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을지.
지그문트 바우먼의 책 '새로운 빈곤'을 바탕으로 나누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