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한 달, 공모사업에 지원하다.
모든 것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내 몹쓸 성격에서 시작되었다. 새 회사로 이직한 지 이제 한 달,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생소한 분야와 업무에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보게 된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크라우드펀딩 지원 사업 공고에 눈길이 갔다.
집중실험실 [2023 공익활동 퍼어어언딩] 사업 공고문
몇 달 뒤 내가 펀딩 캠페인을 기획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단체가 계획하는 펀딩 캠페인의 성격과 딱 맞아떨어지는 시기와 지원 내용이었다. 사내 메신저의 팀 방에 공고 링크를 공유했고, 팀장님은 바로 신청해 보자는 답을 주셨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몸담게 된 조직이 매우 유연하고 혁신적인 곳이라는 것과 함께, 수습 기간도 끝내기 전에 스스로의 업무를 늘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어찌저찌 접수를 마친 이후에도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사업에 지원한 팀이 예상보다 많아졌다고 했다. 그 말은 우리가 선정될 가능성은 더 낮아진 셈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여기서 사업에 선정되면 교육과 과제를 수행하느라 내 업무는 배가될 것이고, 사업에 떨어지면 입사하자마자 실패 사례를 남기니 내게는 좋을 게 없었다. 그런 복잡미묘한 마음으로 나는 면접에 갔다.
밖에서 전해져 오는 따뜻한 마음
면접에는 팀원 1인과 함께 참석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 팀 참석자는 나뿐이었다. 아직 사람들과 친해지기 전이라 먼저 함께 가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었다. 홀몸으로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심정이었다. 단체의 정체성도, 구성원들도 낯설어 급조된 지식이 필요했다. 팀장님께 속성으로 정기후원자 수와 기관이 편성한 예산, 연혁 등 주요한 사항들을 교육받고 암기하며 면접장에 도착했다.
면접 대기실로 들어가니 이미 다른 팀에서 두 사람이 와있었다. 연차도 나보다 많아 보이는 데다 두 팀원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면접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보니 더 위축됐다. 이대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면접 전 모든 팀이 진행했던 실무자와의 사전 인터뷰 당시 들었던 사업 담당 매니저님의 말이었다.
해당 사전 인터뷰는 센터와 지원 단체 상호 간 의견을 나누는 다소 가벼운 자리였던지라 아무 준비 없이 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더듬더듬 암기한 것을 복기하며, 사실 제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니 다음에 확인해서 오겠다고 답변하던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담당 매니저님은 입사 한 달 만에 조직에 대한 애정이 가득 차 공모 사업에 지원한 내 모습에 오히려 호기심이 든다고 했다. 펀딩 경험이 많은 팀앤팀의 이야기보다, 초보 담당자의 새로운 시도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누군가 부족하기만 한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이 보이는 것 같았다. 실제 면접에서 비슷한 결의 질문을 받았고, 사전 인터뷰 피드백을 토대로 준비한 덕에 나는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대답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당시 회사에서는 결과에 큰 기대가 없었던 것 같다. 교육 일정 중 전사 워크숍을 잡아두었으니까. 그리고 나조차도 아무도 모르게 그저 발표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 주 주말, 나는 선정 연락을 받았다.
동료, 라고 불렀다.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바로 다음 주부터 교육이 시작되었다. 졸지에 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 입사 후 야근 파티가 시작되었다. 교육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두 시간씩,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해 총 5번이었다.
면접과 마찬가지로 모든 교육에 다른 팀원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고, 실제로 다른 팀은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했다. 매번 참석자가 바뀌는 팀도 있었다. 우리 팀의 경우 모금 담당자님께 어렵게 동행을 부탁드린 한 번의 회차를 제외하면, 모든 내용을 듣고 팀에 전달해 실제 캠페인에 반영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내가 펀딩 담당자이기도 했고, 다른 팀원들에게 퇴근 후 황금 같은 저녁 시간 중 2시간이나 내어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쓸쓸하게 혼자 교육에 참여하다 보니 의외의 장점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먼저 평소 산만하던 주의력이 치유되었다. 내가 아니면 교육 내용을 조직에서 알 수 없다는 위기감 덕분에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강의에 몰입할 수 있었다. 또 매번 혼자이다 보니 다른 팀과 소통하고 서로를 응원할 기회가 쉽게 생겼다. 비슷한 규모의 작은 공익 활동 조직이 모여 있으니 추구하는 방향이나 생각하는 목표가 거의 비슷했다. 시간과 돈, 노동력이 늘 부족한 비영리 단체의 애로사항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고, 매번 교육에 혼자 참석하는 나를 보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몇 번의 교육으로 서로 얼굴을 익히고, 각자의 프로젝트를 들으며 내적 친밀감이 쌓인 사람들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의견도 제시했다. 공익 활동에 대한 이해는 깊지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집단의 피드백을 청취하고 즉각적으로 프로젝트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서도 접하기 힘든 귀한 기회였다.
교육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캠페인 교육을 담당했던 젤리장 선생님의 태도였다. 일상 속 사소한 불편함과 문제의식을 지나치지 않고 캠페인을 기획해 확산시키는 기발함과 에너지도 대단했지만, 공익 활동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이쪽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그 분야에 함께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까지 뿌듯해지곤 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강의 끝에 본인의 SNS를 공개하며, 우린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공익 활동가 동료라 칭했다. 그렇게 젤리장 선생님이 나(교육에 참석한 우리)를 동료라고 불러준 순간, 나는 그에게로 가 동료가 되었다.
비영리, 영리와의 맞닿음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도 펀딩 지원 사업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러 변수가 발생했다. 또 예상한 것이 무산되기도 했지만,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와 생각지 못한 소득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상세 페이지 촬영 지원이었다. 상세 페이지 디자인 작업은 물론 촬영부터 스튜디오 대관, 모델 섭외까지 모든 것이 센터에서 섭외한 업체를 통해 진행됐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도 했지만, 실제 상업 페이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중실험실 펀딩 상세 페이지 촬영 현장
무엇보다 센터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낯선 것에 도전할 용기였다. 팀앤팀은 그동안 ‘선물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해피빈 펀딩에서 열두 차례의 다이어리 펀딩을 진행해 왔는데, 계속되는 펀딩률 하락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센터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새로운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란 곳에서의 펀딩 성공과 새로운 펀딩 아이템인 양말을 선정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팀앤팀 와디즈 페이지 구경가기
초기 와디지 펀딩용 인스타그램 광고 VS 시내 대표님의 조언을 반영해 수정한 광고
특히 실제 펀딩 전 과정을 함께 했던 스몰브랜더의 김시내 대표님은 광고 이미지부터 문구, 집행 금액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함께 체크하며 팀앤팀이 와디즈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걸음마를 뗄 수 있게 도와주셨다. 대표님은 공익성을 띤 펀딩을 진행해 본 적은 없어서 이번에 시도하는 것이 다 처음이라고 하셨었는데, 오히려 모두 새로운 걸 함께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팀앤팀은 대표님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여 새로운 인스타그램 운영 방식을 도입했고, 그 방식은 이후 다른 캠페인을 운영할 때도 적용되는 기준이 되었다. 그 외에도 캠페인 홍보를 위해 릴스와 인플루언서 섭외, 선착순 이벤트 등의 다양한 수단을 시도했다. 그때 도입된 여러 방법은 지금도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또 굿즈를 와디즈 스토어나 다른 판매 플랫폼에 업로드하여, 상시 판매를 진행하는 등의 활동도 진행 중이다. 종종 공격적인 홍보나 판촉 활동 등도 제안받지만, 시간과 예산 등 인풋 대비 괄목할 만한 아웃풋 혹은 효과를 고민하고 있다. 상시 판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리 양말 업체와 경쟁을 하다 보니 가격과 제품, 구매 결정 요인 등 차별화된 타깃 설정과 접근 방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감동의 정점을 찍은 경험공유회
면접 때부터 든든한 힘이 됐던 담당 매니저님들은 늘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고민했고, 사업은 물론이고 멘탈까지 케어해 주시면서 전 과정을 함께 했다. 그러는 과정에 나 혼자만의 동료애 비스무리한 끈끈한 것이 생겨났다. 펀딩이 끝나면 볼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운하고 아쉽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많았던 펀딩이 무사히 끝나고, 배송까지 마무리된 시점에서 마지막 경험 공유회 시간이 다가왔다. 펀딩 시점도, 방식도 단체마다 제각각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초기 계획과는 달리 경험 공유회도 팀 별로 진행하게 되었다. 경험 공유회를 위해 팀앤팀에 방문한 매니저님들은 빈손이 아니었다. 센터 근처의 맛집에서 공수한 브라우니에 직접 만든 토퍼로 장식한 케이크는 단언컨대 내가 그 해 받아본 케이크 중 최고였다. 단순히 직업에 대한 사명감만으로 이렇게까지 진심일 수 있을까.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의 매니저님들이 사업 기간 보여준 진심 어린 응원과 공익 활동에 대한 애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든든하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고향처럼, 센터는 내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마음의 고향이다.
펀딩은 끝나지 않았다.
펀딩 캠페인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다는 단순한 기대로 시작했던 이번 사업은 내가 속한 비영리라는 분야,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익 활동에 대한 나의 인식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덧 나는 팀앤팀과 사계절을 함께한 홍보 담당자가 되었고, 몇 달 뒤면 다시 시작될 열네 번째 펀딩 캠페인을 앞두고 있다. 작년 와디즈에서 목표한 수량만큼 펀딩률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다시 해피빈 펀딩으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우리는 작년의 도전이 결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년 펀딩 이후로 조직 내의 많은 것이 변했고, 전체적으로 사업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측면에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비영리 단체지만, 영리와의 싸움에서도 어느 정도 제 목소리를 냈었던 경험은 우리 안에 제법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오래되고 익숙해져 더 이상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된 문제,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팀앤팀의 활동에 든든한 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을 거치며 나 역시 한 명의 어엿한 공익활동가로 거듭나는 중이며, 팀앤팀 역시 세상을 어제보다 나은 오늘로 바꿔가고 있다.
아프리카 현장에서 아이들과 촬영한 양말 모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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