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철展 / CHOIHOCHUL
2019_0111 ▶︎ 2019_0228 / 주말,설연휴 휴관
서울시 NPO 지원센터
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39 부림빌딩 1층 품다
Tel. +82.(0)2.734.1109
서울이 편평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굴곡의 도시, 주름마다 저장된 기억 ● 화가는 스쳐가는 사람들을 종이 위로 옮기는 일을 좋아했다. 수십 년 간 그 일 하나로 수백 권의 스케치북을 채워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서 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화가는 그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더 큰 무엇을 그리게 되었다. 그것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얼굴, 그리고 주변으로 뻗은 손들. 화가는 그 얼굴의 굴곡, 무수한 손들의 주름을 그리지 않고서는 배겨 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큰 화폭이 필요했다.
최호철은 오랫동안 서울과 그 주변을 그려온, 로컬 그 자체의 작가다. 그는 「와우산」이라는 평화로운 동네에서 자라나, 「을지로 순환선」이라는 복작이는 생명력의 길을 오갔다. 그리고 이제는 「동자동 쪽방」 「한남동 골목」 「경기광주송정동」라는 공간의 파노라마, 「1970년 청계고가도로」 「2005년 판교택지개발지구」 그리고 지금 이순간의 「동호대교」라는 시간의 스펙터클 속을 헤엄치고 있다.
화폭 앞에 선 사람들은 금세 마법의 퍼즐 속으로 빠져든다. 그 안에서 자신의 거처를 확인하고, 자신이 아는 장소를 호명하고, 매일 지나치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낸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논밭, 개울, 건물에 얽힌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림은 그들의 눈과 접촉하자마자 줄줄이 사연의 실을 뽑아낸다. 그리하여 최호철의 그림은 저마다의 증강현실, 증강하여 현재를 만들어내는 실이 된다.
사람들은 이 도시의 집단적인 체험, 그러니까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청계고가의 그림자 아래엔 저렇게 허리 숙인 자들의 생태계가 있었구나. 판교의 소나무 밭은 땅과 돈의 불륜 속에 불도저로 뒤집혔구나. 도시를 성형한다며 올라갔던 고층 빌딩들은 간판을 덕지덕지 붙인 흉물이 되어 버렸구나. 그런데 어디에도 직선은 없네. 높은 곳에 서서 명령하던 자들의 반듯한 계획은 속절 없이 무너졌구나. 세상은 여전히 꼬부라진 언덕길 투성이인데, 모두가 올라가기 싫어하는 그 길이 가장 아름다운 주름이구나.
「동호대교」는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스펙터클이다. 경기도로 거처를 옮긴 화가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서울로 들어설 때마다 이 장면들을 보게 된다고 한다. 동호대교 건너편에서 바라본 도시는 폭염에 녹고 폭우에 비틀리고 폭풍에 뒤집어진 뒤 스스로 재접합한 듯하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어지럽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질서가 있다. 그의 충실한 리얼리즘이 끝없이 변화하는 도시와 만나 만들어낸 절경이다.
최호철의 그림은 VR 파노라마 증강현실 풍속화다. 그는 드론, VR, 액션캠, CCTV가 없었을 때에도, 수만 개의 렌즈를 장착한 채 하늘을 날고 버스에 매달리고 지하철에 숨어 그림을 그렸다. 다중적인 시점, 산개하는 프레임, 그러면서 기묘하게 접합되어 충실하게 재현되는 원근은 다음과 같은 장면들을 위화감 없이 섞어 놓는다. 한가롭게 옥상에서 빨래 터는 할머니, 점심 직후 건물 옥상에 모여 담배 피는 직장인들, 청계천 변의 공장에서 촌각을 다투며 마감을 치는 패션 노동자들... 그의 그림은 유치원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손 안에 카메라와 모니터를 들고 있는 이 시대의 정서적 재현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게 오랜 회화의 정위치라고 한다. "마음의 눈으로 평면에 그린다." ■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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