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O가 만난 아키비스트 첫번째_전지 <오후시장>
by NPO지원센터 / 2019.03.26



[오후, 시장에 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해였니까 여섯 살이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중랑천 인근의 모습은 지금과는 한참 틀렸었습니다.
장마가 지면 뚝방 근처 낮은 공터는 꼬맹이들 허리까지
물이 차올라 물놀이장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아마도 그 주변 집들은 밤새 물을 퍼내는 수고를 해야 했을 겁니다.

다리를 건너면(지금의 이문동쯤이라 생각됨)
'도깨비시장'이 있다고 했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에 종종 등장하던 '도깨비시장'은
요즘 아이들이 동화책에서 만나는 괴물들의 나라처럼
나만의 '상상거리'였었죠.
대낮에 도깨비들이 시장을 열다니!
도대체 어떤 물건을 파는지...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아줌마들은 그 무서운 도깨비들이 있는 시장엘
왜 몰려가려 하는지...
무엇보다도
도깨비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엄마를 따라 도깨비시장에 갈 수 있는 날이 왔습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졸음을 참으며 다리를 건넜습니다.
어마무시한 도깨비시장에 들어서는데도 아줌마들은 즐겁기만해 보였습니다.
호기심에 따라나섰지만 시장 입구에서 혼자 조용히 후회를 했습니다.
도깨비가 얼마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심기라도 거스르면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당당하게 엄마 손 잡고 다리를 건널 때와는 달리 시장에 들어서면서 
점점 엄마 치맛자락 을 붙들고 뒤쪽으로 뒤쪽으로 숨었더랬습니다.
처음엔 멀쩡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보통의 시장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더군요.

조금 더 걸어들어갔을 때!
드디어 도깨비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 속으로 뿔도 솟아있고,
우락부락한 얼굴에 깊은 주름이 여러개 패여있었습니다.
사람과 똑같이 말을 하긴 했지만
엄청 크고 쉿소리가 좀 났던 거 같습니다.
의외였던 거는 그 도깨비가 배추를 팔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엄마는 겁도 없이 도깨비에게 배추값을 물었습니다.
도깨비가 뭐라고 대답을 한 거 같은데 
거기서부터는 머릿 속이 온통 백짓장 같아져서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도깨비에게 배추값을 묻는 순간 
마치 도깨비가 엄마를 잡아먹을 것 같은 상상에 
너무나 무서워서 그 뒷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도깨비시장은 아침나절 잠깐 서던 난전 시장이었고,
제가 봤다고 확신했던 도깨비는
이른 아침 삐쭉삐쭉 솟은 머리카락을 정리도 못한채
배추를 팔러 나오셨던 서울 변두리 작은 밭주인 할아버지였던 겁니다,
'도깨비시장'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저 혼자 상상하고 
저 혼자 충격에 빠졌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가끔 떠올려져 혼자 웃곤 합니다.

...전지 작가님은 오후에 시장엘 나갔습니다.
제 기억 속의 도깨비시장 보다는 좀 더 젊은 명학시장에서
곧 사라져버릴 그곳을 구석구석 기록했습니다.
담백하게 드러내는 글과 그림은
오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하게 합니다. 

아마도 전시를 보고난 후, 명학시장을 찾지 않고는 못배길 겁니다.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3.26, 조회수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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