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가 묻고 작가가 답하다>는 전시를 이어가는 작가들이 릴레이 형태로 다음 전시 작가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 모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보는 프로젝트입니다.
인간이 물고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김유나 : 작품을 봤을 때 폭력적인 이미지가 있다. 숨을 쉬지 못하는 물고기의 모습이라던가... 그런 물고기의 모습에 감정을 이입해서 작업을 시작한 건지?
박영호 : 때때로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아니다. 단순했다. 일상에 있는 공간이었는데 어느 날 어떤 기억과 어떤 생각과 어떤 순간이 맞아 떨어졌고 물고기를 만났을 때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먹는 것, 소비하는 것, 일상에서 관심 갖지 않고 지내던 것인데 어느 순간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게 있지 않나. 이번 전시 <아쿠아리움> 작업이 나한테 그랬던 것 같다.
김 : 수족관은 현대 사회에 비유한 건가? 시스템 안에 갇혀서 소비되어지는 우리 개개인 한명 한명을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 언제 잡혀서 소비될지 모르는, 그런 걸로 보신건지...
박 : 그렇게 해석하면 너무 고맙긴 하다. 사진은 이미지고 이미지는 열린 언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어떻게든 해석될 수 있는... 그런 의식을 갖고 얘기했다면 차라리 글을 썼을 거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차피 모호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그런 거니까 여러 가지 생각들과 의미를 담고 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복합적인 것들을 한꺼번에 사진으로 표현한 거라고 본다.
김 : 이 작업을 보면서 이 작업, 작품 안에 작가가 있는 건지, 아니면 작품 바깥에 작가가 있는 건지, 이 세계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런 게 궁금했다.
박 : 작업하는 사람은 예술을 대하는 본인의 관점이나 시각이 존재한다. 작가님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재밌고 의미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해석은 재미있지만 반면에 이미지가 너무 과장되는 건 불편하다. 이미지는 상징성 있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그걸 내가 제한해버리면 나머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막힌다. 작업에서 관심 있게 생각했던 것들은 일상에 있는 이미지고 항상 봐오는 것들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한 거다.
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을 잡으신 것 같다. 생선이 비닐 속에 들어가서 숨막힐 것 같은 느낌, 칼 등의 도구, 무의식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게 재밌었다.
박 : 살인이나 큰 사고나 그런 것만 잔인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잔인함들이 있다. 나무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데 스스럼없이 죽이고 자르는 일상화된 폭력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런 일상화된 폭력들이 흥미로웠다. 무덤덤하게 표현한 것 같다.
김 : 저는 특히나 표정 없는 것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표정이 없는사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작품 설명에 써놓으신 것처럼 표정이 없기 때문에 더 가볍게 여겨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갑고 흥미로웠다.
박 : 인간이 물고기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 표정을 감추고 비인간화 되어가는 것도 현실이니까.
하찮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싶었다
김 : 무용가와 함께 한 작업은 어떤 의도인지
박 : 나도 물고기가 낯설다. 교감이 안되니까 물고기라는 생명에 대한 존중감을 갖기 힘들었다. 동작이나 몸짓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하다가 무용가를 떠올렸고 힘든 과제를 요구했다. 물고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주제, 사진 영상을 보여 주고 표현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힘들어 하다가 음악을 들으면서 짧은 순간 몰입해서 표현한 것들이다. 칼라로 찍었지만 너무 정보를 많이 주는 것 같아서 단순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채도를 뺐다. 이미지는 블러로 뿌옇게 흐린 다음에 원하는 부분만 드러나도록 했다. 물속에 있는 느낌처럼.
김 : 칼라로 작업한 것은 흐르는 피나 이런 걸 보여주고 싶어서 채도를 빼지 않은 건가.
박 : 포트레이트라고 생각했다. 물고기 얼굴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물고기들이 몰려있을 땐 개성이 안 보인다. 그냥 물고기이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그 정도의 구별밖에 안되고 다 비슷해 보인다. 얼굴을 확대해서 눈을 보면 각 객체의 개성이 드러나 보인다. 하찮은 물고기지만 누군가 의미 있게 주목해주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클로즈업한 것들을 따로 추려서 배치했다.
김 :너무 슬펐다. 이게 내 모습이구나 싶어서. 작품 보면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어서, 슬프다거나 기쁘다는 감정을 보는 편이다. 이게 나인가 봐, 이렇게 되어 버린다. 이 전시는 수족관이라는 컨셉도 재미있고 작품 배치도 물고기가 헤엄치는 거라고 혼자 상상하면서 작품을 봤다.
김 :왼쪽 벽면 작업은 어떤 의도인가. 맞은 편 벽이랑 좀 다른, 더 날 것같은 모습이 많이 느껴진다.
박 : 포토에세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에세이가 사진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건데,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문장도 있고 단어도 있고 조사도 있지 않나. 여기 사진들은 어절 정도라고 할까. 그런 개념을 프라그멘트라고 하는데 사진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피칼이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가 있는데 그 분이 이런 식의 시도를 처음 해서 감명 깊게 봤다. 그 사람은 소설가이기도 한데 소설을 쓰다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미지화 해서 전시에 글이 있고 사진도 있고 이미지도 있다. 굉장히 인상깊어서 포토에세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낼 때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가이다.
김 : 전시장 바깥부터 사진을 보면서 들어왔는데 다큐멘터리, 시, 소설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업을 봤을 때 자세히 서술하는 부분들이 느껴졌다.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함축적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느꼈다. 피 때문에 그런지 강하게 확 들어오는 잔인한 느낌이 들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를 보는 것 같은...
박 : 오프닝 퍼포먼스 때 우리나라 1세대 재즈 트럼페터인 최선배씨와 재즈 피아니스트 이한나씨가가 즉흥연주를 했는데 화면에 그 음악을 깔았다. 영상이랑 음악을 같이 들어보면 더 흥미롭다.
깊이와 소통의 발란스가 중요하다
김 : 작품 활동을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이 작업들을 왜 해야 하는 지, 이 사회 시스템이 말하는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데 왜 계속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어떻게 계속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 그런 것들도 궁금하다.
박 : 사실 나도 그게 고민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 하는지 모르면 다른 사람들은 더 관심 없고 모른다. 작품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보상이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오프닝 때 어떤 학생이 와서 자기 기억을 떠올리면서 울기도 했다. 작업하면서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니까 오히려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서로 교감하면서 얻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만족감도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많은 사람이 투잡 쓰리잡을 갖는데 작가라고 왜 안 되겠는가.
김 : 관람객이 전시를 본 후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이 있기를, 어떤 느낌을 갖길 바라는가.
박 : 사진은 현실에 있는 걸 찍은 것, 실재성이 있는 거니까 일상에서 뭔가를 봤을 때 내가 하는 주제에 대해서 한 번 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김 : 좋아하는 작가는.
박 :너무 많다. 각 분야에 다 있는 것 같다. 타이포그라피 안상수 선생이나 사진계에서는 이강철, 노순탁 작가 등. 자기 활동을 치열하게 하는 예술가들은 다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김 : 오프닝 때도 재즈 뮤지션들과 퍼포먼스 했었는데 다른 장르와 협업을 할 계획이 있는지...
박 :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컨셉이라고 생각한다. 컨셉은 재료인 것 같다. 컨셉,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필요한 건 다 갖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이스는 사진이다. 사진이 주는 여러 가지 특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는 건 지금 현재인데 현재를 가장 잘 기록할 수 있는 매체는 아직까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김 :언제부터 렌즈와 렌즈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박 : 사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늦었다. 25살 무렵부터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쪽에 관심 있었는데 계획했던 대로 안 되었고 독일에서 사진을 처음 접했는데 하다 보니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왜 흥미 없었나 생각해 보니 너무 한쪽으로 쏠려있었던 것 같다. 사진이 감성을 표현한다, 시대를 표현한다, 이런 식으로 한쪽으로 몰려 있었는데 독일에서 느낀 사진은 아주 다양했다. 그런 다양함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독일에서 본 사진들은 건조하고 딱딱하고 재미없고 기계적인 사진인데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여기에 뭘 더 추가하면 순수함이 오염될 것 같은 그런 느낌들이 좋았다. 작가주의로 빠진 사람들은 깊이는 있는데 소통이 안 된다. 깊이와 소통의 발란스를 맞추면 좋을 것 같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자기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를 할 필요가 있다.
김 : 작가로서 답답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에 걸려 있는 작품과 우리나라 작품과 큰 차이가 뭔지, 그것을 결정짓는 지점은 뭘까 하는 것이다.
박 : 다들 그런 고민을 할 것 같다. 역사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인정을 받는 게 우리 안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유명한 사람이 인정하거나, 상을 받아야 유명해지는 게 때로는 아쉽다. 안에서 이야기가 되고 안에서 중요한 것들이 쌓이면 역사가 될텐데...
김 : 감정 없이 작업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감정이입을 시킨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박 : 감정을 가지고는 못 찍는 사진들이 있다. 오히려 감정 없이 찍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지만 하나의 주제로 파고드는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적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기회인 것 같다. 집중해서 한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이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박 : 전시를 설치하면서 인상 깊은 얘기를 들었다. 저 물고기들이 갇혀있는 게 아니라 내가 갇혀있는 것 같다고,
김 : 저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답답한 느낌, 내가 갇혀있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작품이 얘기하는 것 같은.
김 : 약간 폭력적일 수 있는 이 사진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회가 가상 세계로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박 : 이 작업을 하면서 남자들이 생명을 다루는 것에 대해 더 무감각하다는 걸 알았다. 한국 남자들은 지나치게 강한 거 좋아하고 약한 것에 대한 배려가 없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약한 생명에 대해 존중하지 않는 게 사회적으로 학습되어지는 것 같다.
김 : 작업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부분은
박 : 계속 자기만족, 자아도취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보다 펼쳐놓았을 때 다른 사진과 조화를 이룰 때 더 만족한다.
김 : 전시를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경험했다. 내가 작업하고 있는 회화와 이미지와, 이 시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시민아트프로젝트 <엮다> 김유나 작가가 묻고 <아쿠아리움>의 박영호 작가가 답했습니다.
박 영 호
2017. 1 최선배 하모니카앨범 프로젝트
2016. 9 가수 남궁송옥 앨범 프로젝트
2016. 4 가수 심수봉 앨범 및 공연 프로젝트
2015.12 마을활력소프로젝트 보고서 작업(프리키디자인)
2015. 8 시흥갯골축제 기록작업(최게바라 기획사)
2015. 3 ‘다시 봄’ 공연 및 라이브 기록 프로젝트(책의 노래 서율)
2016.8.19.~9. 9 그룹전 ‘낭만적 인간:질병의 사회사’ : 작품명 ‘맹인의 초상’
/ 서울혁신센터, 프로젝트C / 서울혁신파크 7 동폐수처리장
2016.8.2.~8.14 2016 아시아프(ASYAAF)& 히든아티스트페스티벌 : 히든아티스트 200인 선정
/ 조선일보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둘레길
2015.7.7.~8.31 그룹전 ‘마주하다’
/ 서울시NPO지원센터 / 서울시NPO지원센터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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