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장면
by NPO지원센터 / 2019.09.20
2016년 1월,

서울시NPO지원센터는 거대한 망명자의 공간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먼 나라에서 온 이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의 보금자리에서 자꾸만 내몰리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주의 기억'을 증언해내는 자리였습니다.

2017년 5월,
서울시NPO지원센터는 이제 '보통의 장면'을 연출합니다.
그곳은 '보통'사람들이 '보통'으로 만나는 재난의 현장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입법을 공약으로 제시하셨던 대통령님께도 '보통의 장면'을 목도할 기회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보통의 장면 1. 펜스

 

 가림된 장면은 곳곳으로 무심코 놓여 있다.

 시작과 끝은 동강나버린 마치 방치된다.

  뒤론 경험되지 못한 공포가 감춰져 있다.

  없음은, 자체로 음모다.

 

보통의 장면 2. 강제집행

 

 피와 땀으로 일궈온 시간의 공간은, 잔인하게 도려내어 지워졌다.

 무수한 만남의 사건이 이름을 잃는 순식간이다.

 간판은 떼어지고 집기들은 내동댕이 쳐진다. 부서지고 박살 난다.

 사람들이 밟힌다. 비명이 울린다.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강제집행이라는 합법적 폭력이다.

 

보통의 장면 3. 모자이크

 

 지워진 풍경은 기억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있지만 없다.

 없어도, 분명 있었다.

 잔혹한 익명성만이 그것을 증명할 뿐이다.

 

보통의 장면 4. 현수막

 

 들어내어 드러난 것은 쓸데없이 선명하다.

 가려져 감춰진 것은 하릴없이 흐릿하다.

 쓸모 있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강제된다.

 그것을 드러내어 알린다.

 동시에 쓸모없음의 폭력으로부터 쓸모를 되찾는다.

 

보통의 장면 5. 다시, 펜스

 

 어떠한 장면도 이상 허투루 지나칠 없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장면의 장벽 너머,

 모든 이면은 이제 의심처럼 작동된다. [1]

 









 
/작가 노트


 

요즘 말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나름 따끈따끈한 골목/어느 블로거의 글 중

 

 서울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그야말로 대유행이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무려 50여 년 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의 논문에서 처음 제시된 단어다. 하지만 단지 차용하듯 소환된 그 오래된 단어는 한국의 현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주기는커녕 외려 헷갈리고 어렵게 만든다. 전혀 젠틀하지 못한 이 현상을 마치 젠틀한 듯한 뉘앙스를 탈바꿈시키고 마는 것이다.

 

 용역 깡패의 폭력을 용인하는 강제집행이라는 악법

 약탈을 담보로 하는 투기인 투자에 대한 절대적 신봉

 타인의 삶조차 유린할 수 있는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적 문화

 연예인을 필두로 한 기획 부동산과 금융자본, 방송 매체의 골목 유린

 거대 프랜차이즈의 밀어내기

 소유욕을 추종하는 이중적인 임대차 법

 무자비하도록 무수한 악플들, 고소와 소송들.

 

 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에서 비명을 듣는다. 쫓겨남에 내몰린 곳곳의 현장을 마주하며 경험한 현실은 실로 야만이자 공포였다. 그것은 사람과 공간, 시간을 익명으로 지워버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된 현실 잔혹사는 작년 서울에서만도 수차례였다. 삶은 반인권적 작태에 완전히 무너졌다. 잔인한 폭력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검은 옷의 무리들이 다녀간 자리엔 어김없이 차가운 가림막이 세워졌다. 펜스가 때론 합판이었고 때론 화단이었을 뿐, 모두 같았다. 그것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마치 거기엔 아무것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봉인해버리고 나자 공간은 속절없이 이름을 잃어갔다.

 

 펜스가 채워진 건물은 골목마다 세워져 있다. 동네는 온통 공사판이다. 너무나도 흔해서 그것은 눈 요깃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자주 지나다녔던 길이었음에도, 순간 그 자리가 원래 무엇이었던 건지는 쉬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며칠 혹은 몇 주 후 펜스가 거둬지고 나면 자리의 이름은 완전히 대체된다. 기억은 동시에 단절된다. 이미 있었던 것은 아무렇지 않게 가려지고 지워진다.

 

 보통의 장면은 일상적으로 마주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지나쳐버리고 마는 펜스다.

 보통의 장면은 일상적으로 마주 하긴 어렵지만 실상 매우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폭력적 쫓겨남이다.

 

 이젠 더 이상 보통의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가림막은 가림막 이면에 대한 의심이 된다.

 

 전시 <보통의 장면>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일상 속에 파고든 비일상의 일상에 대한 의심, 바로 그것이다.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폭력에 대한 고발이자 알림이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신사동 우장창창,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와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북촌 장남주 우리옷·씨앗에서 함께 경험한 고통의 장면은 가림막의 장면 뒤로 배치된다. 그렇게 대치된 드러난 장면과 들어낸 장면은 공간적으로 확연한 대비를 만든다. 폭력은 모자이크 되어 그 자체로 익명성을 증명하고, 선명한 가림막은 그 뒤로 감춰졌을 무수한 사건에 대한 의심을 확장시킨다. [2]

 

 전시는 현수막의 형태로 펼쳐진다. 무언가를 알리거나 선전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쓸모 있음을 쓸모없음으로 강제하는 폭력을 드러낸 후, 전시된 현수막은 <보통의 장면> 에코백으로 재제작되어 쓸모없음의 폭력으로부터 쓸모를 되찾는다.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9.20, 조회수 : 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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