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가 묻고 작가가 답하다>는 전시를 이어가는 작가들이 릴레이 형태로 다음 전시 작가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 모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보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길을 묻는다.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어떤 상황인지.
그들은 목적지는 있지만 길을 모른다
달여리 2006년 23살이었을 때 영월 동강에서 작가님 수상 기념 전시를 봤다. 당시에 한국에도 이런 사진을 찍는 분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어 감명 받은 기억이 있다. 작가님께 직접 설명을 듣는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까지 이어지는 작품 세계와 작업의 배경에 대해 듣고 싶다.
성남훈 유민에 관련된 작업들을 쭉 해왔다. 어렸을 때는 그림에 관심이 있었는데 시골에서는 불가능했고 대학에서 연극하다가 사진을 알게 되었다. 나는 81학번, 그때는 시대의 격변기였다.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시대적인 빚 같은 게 있었다. 사진으로 그런 일을 하면 어떨까 고민하다 프랑스에 갔을 때가 80년대 후반이었다. 동서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계가 생기는 시점이었다. 전쟁으로부터 자신의 근거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하자, 촌놈이 카메라 한 대 둘러메고 갔으니 세상을 두루 공부하러 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시작했다.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한국사회에서 시골 출신에 지방에서 대학 나오고 예술적 열망은 있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해갈할 수 있는 작업이었고 그 결과로 ‘유민의 땅’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2006년, 10여 년 전이다. 그 후 유민 작업의 두 번째 시기로 달라진 전쟁의 요건, 환경, 기후변화, 자원의 확보 등으로 발생한 유민들에 대해 작업했다. 3월 22일에 서소문 대한항공에서 마무리 전시를 하고 패(FAIT)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사실 NPO센터에서의 전시는 많이 작업했던 난민 전시이기 때문에 뒤로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최근의 유럽에는 우리가 규정할 수 없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유럽에서의 난민과 전쟁에 관련된 나의 작업은 발칸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지금 발칸 지역에는 이전에 전쟁에 휩쓸렸던 길에 다시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기록해야겠다 싶어서 이 전시와 관련된 내용을 다시 작업했다.
달여리 사람이 중심에 있는 작품들인데 어떤 사진들은 객관적인 시선, 어떤 사진들은 심정적으로 결합된 시선들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현장의 경험을 함께 한다는 것은 작업자로서 너무 힘든 일일 것 같다.
성남훈 보편적으로 사진은 예술적 분야에 속한다고 본다. 예술적으로는 창의자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사진으로 없는 것들을 생산해낸다고 보는 경우다. 사실 나는 창의적 형태보다는 해석적 형태, 어떤 사안을 어떻게 해석하고 카메라에 담아서 펼쳐놓는가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해석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사진이 시각적 예술의 틀에 갇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예술적 감성을 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와 관련된 것들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개인이 객관화되고 객관화 된 개인과 개인의 작업들이 부딪히게 되면 어떤 문제들을 볼 때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는다. 개인은 미적인 구조, 철학적 사고, 삶의 편력 이런 것들이 합쳐진 종합적 우주다. 나는 그런 것들 안에서 해석되고 보여 지는 것들을 교묘히 섞기를 원한다. 객관적 사실에 대해 충분히 전달하고 심층적인 부분에서 작가가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그 부분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통해서 전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배합하느냐가 현장 안에서 항상 고민하는 것들이다.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현장이 우리를 끌고 갈 때도 있다. 우리가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현장 안에서 내가 충분히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사진으로 얘기해야 한다. 가져와서 사진을 펼쳐봤을 때 느껴지는 것을 보완해서 어떻게 내 언어로서 사진을 쓸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리 윗세대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면서 보람을 느꼈지만 우리는 상처와 상처의 틈 안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굳어진 부분이 많다. 권력적으로 굳어지고 사회적 체계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달여리 난민과 우리가 사실 동일한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관찰자의 입장과 그들과 동일한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간극을 어떻게 느끼는지
성남훈 작업한 사진은 작가 혼자 보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혹은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보여 진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현장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다. 사진 속의 유럽 난민들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들 모두 독일로 향하는지 비난한다. 그건 외부의 이성적 시선이고 현장에 가서 그들의 삶을 봤을 땐 다르다. 모든 사람은 유민이고 모든 사람이 현실 안에서 정착지를 찾지 못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처럼 순식간에 가족을 잃거나, 극한의 두려움 속에 있지는 않다. 어차피 목숨을 걸고 빠져 나왔으니까 가장 안정적인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어렵다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의아해 한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행로를 찾는다. 어느 국경을 막았고 어느 국경이 열려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폰이 없으면 알 수 없다. 다른 건 없어도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외부에서 보면 알 수 없다. 내가 여기에서 최대한 조사를 한다고 해도 현장에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달여리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있는 이야기이면서도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성남훈 그들이 나에게 길을 묻는다.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어떤 상황인지. 내가 어떻게 아나. 그들은 목적지는 있지만 길을 모른다. 어느 날 열려서 갈 수 있을 때도 있고 어느 날 닫혀서 돌아서야 할 수도 있고.
달여리 ‘불완한 직선’이라는 제목에서 직선의 이미지가 방향성을 내포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시작과 끝이 없는 불완전함을 의미하는가.
성남훈 그래서 ‘불완한’이라고 했다. 불안(不安)의 느낌도 있고 불완(不完)이기도 하다. 집을 떠난다는 것, 걸음을 옮긴다는 것은 목적을 정하고 가는 거다. 그게 어떻게 보면 직선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섞여 있다. 시리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넘어와서 같이 합류해서 가는 경우도 있고 이라크 사람들도 있고 아프가니스탄 쪽에 있던 사람들도 있다. 역사라는 것은 국내적 역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책적 실패라든지 미국이 패권적 행태를 통해 그 지역을 어떻게 바라봤는가에 따라 발생된 것이다. IS의 발생 과정에서 보듯이 이라크를 잡으면 다 해결될 줄 알았지만 이라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정권을 가져봤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다른 나라를 만든 것이다. 아주 복잡하고 전혀 예상 못한 결과들이 나타난다.
달여리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의 작업을 사진집에서 봤다. 저는 당시에 대학생이었고 서울에 있으면서 복잡한 기분이었다. 작업을 하면서 그 순간 가장 힘들었던 감정을 느꼈던 에피소드 같은 게 있는지
성남훈 나는 되도록 잊어버리려 한다. 잊어버려야 또 가니까. 어떤 사람들은 한번 갔다 와서 3-4년 근사하게 포장해서 얘기하기도 하더라. 지역에 가면 여성과, 아이들의 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남자들은 최대의 피해자일 수 있지만 가해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과 여성들은 세대를 이어서 피해를 당한다. 우리가 미래를 책임질 수 없지만 변화를 줄 수 있다. 사진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바꿀 수 있는 화두를 던질 수는 있다. 마음을 모으는 데는 글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인상적인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자구적 교육열이 굉장히 높다. 다른 나라를 보면 전쟁이 끝나고 나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잡아 놓더라도 체계가 없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은 굉장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있고 굉장히 자존심이 세고 아이들도 적극적이다.
사진이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싶고 그러한 무기력이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나는 틈이 조금씩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기력하다고 해서 사진도 안 찍을 수는 없다. 그렇게 물러나면 아무것도 없다. 기록도 없고, 기억도 없고. 남겨 놓는 행동은 가치 있다.
달여리 젠트리피케이션 관련된 기록을 하면서 강제 집행 현장에 있다 보면 제가 어려서인지 트라우마가 남는다. 분명히 기록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는데 심정적으로 당사자와 동일시 되어서 심한 경우에는 검은 색 옷 입은 사람만 봐도 놀라는 그런 트라우마가 드문드문 나타난다. 작가님 사진들을 보면서 혹시 그런 부분에서 힘든 게 없었는지 궁금했다.
성남훈 사실은 모든 게 다 힘들다. 인간은 축적적 존재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축적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상처투성이다. 우리 윗세대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면서 보람을 느꼈지만 우리는 상처와 상처의 틈 안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굳어진 부분이 많다. 권력적으로 굳어지고 사회적 체계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엉뚱한 것들이 발생되는 거다. 아무 보상 없이 그냥 밀려나가는 그런 나라가 어디 있나. 그것이 두 번 세 번 반복된다면 사실은 전쟁터에서 총탄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고 힘들다. 계속해서 패배하고 상처 입는 거고 법적, 제도적으로도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무기력할 수 없다. 사진이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싶고 그러한 무기력이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나는 틈이 조금씩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기력하다고 해서 사진도 안 찍을 수는 없다. 그렇게 물러나면 아무것도 없다. 기록도 없고, 기억도 없고. 남겨 놓는 행동은 가치 있다. 우리가 생각지 못했으면 다음 세대가 생각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놔야 한다.
달여리 사진집을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미지가 있다. 투명한 창이나 비닐 뒷면에 있는 사람, 그리고 배경이 멀리 있고 사람들이 작게 나와 있는 실루엣 같은 이미지. 현장은 다른 데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남훈 여러 가지 카메라 회사에서 다양한 기술적인 것들을 만들지만 우리가 꺼내 쓰는 건 몇 개 안된다. 그걸 이용하는 시각적 표현이나 형태도 많지 않다. 우리는 사진이라는 상징적 기호를 갖고 이야기를 하는 거다. 한동안 함축적 다중적 기호를 많이 썼다. 미학적 구조 보다는 다양한 서사들을 연극적 구조의 다중적 느낌으로 재밌게 읽힐 수 있도록 했던 것 같다.
달여리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후에 고민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이 있는지
성남훈 세 번째 작업인 도시 유민에 대한 작업이 유민 작업의 마지막이다. 10년 정도 더 작업할 계획이다. 도시 유민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관련된 것들까지 포함해서 작업하고 있다. 거대한 도시화와 세계화 안에서 발생되는 상황은 곧 현실적 전쟁터다. 그와 관련된 작업을 앞 작업과의 연장에서 계속 하고 있다. 한국적인 작업에 대한 계획도 있다. 역사의 중첩성에 흥미를 갖고 있다. 지리산 가까이에 내 작업실이 하나 있다. 지리산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빨치산은 시대에 항거했던 사람들, 일본에 항쟁했던 사람들이 시대 안에서 뭘 선택할까 하다가 그런 이데올로기를 선택하게 됐던 것이다. 땅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고조선의 무기를 만들었던 곳들이 빨치산들이 머문 곳이고 우리가 지금 여행을 하는 굉장히 아름다운 계곡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깊고 사람이 오지 못하는 곳이어야 숨을 수 있으니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의 삶과 죽음의 장소이지만 실제로 보면 엄청나게 아름답다. 그 역사적 배경을 담아서 사진으로 찍는 게 어렵다. 그런 중첩된 관계의 문제들. 그런 것들이 어차피 땅과 관련된 작업이기 때문에 그런 작업에 관련된 것들을 고민하고 있다.
달여리 어떻게 보면 불완전한 직선이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세상 안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씩 찾아가면서 연결고리를 선생님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 같다.
성남훈 세상을 다 담을 수는 없고, 내 관심에 관련된 유민적인 것들, 땅과 그 근거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담는다. 크게 보면 많이 벗어날 수 없다. 대신 보여 지는 형태라든지 이런 건 변할 수 있다. 방법을 확장하고 재미있게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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