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센터] 당신의 소비가 시민단체를 키운다

당신의 소비가 시민단체를 키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반려동물 사료 및 용품을 판매하고 판매 이윤을 후원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petme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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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금 일부 소비자가 지정한 단체에 기부하는 ‘굿바이 사업’ 자립과 연대의 새 돌파구 기대

 

1년 넘게 싸웠다. 케이블·통신 설치·수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노숙투쟁과 고공투쟁을 이어갔다. 이들의 원청은 씨앤앰, 티브로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다. 간접고용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왜곡된 노동조건을 만들었다. 설치·수리 기사들은 원청이 할당한 각 지역센터의 지표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돈으로 상품에 가입해야 했다. 가입한 지 6개월이 안돼 고객이 해지하면 영업비를 토해내야 했다. 점심시간 보장, 고용 보장, 노동자성 인정, 대량해고 철회 등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 이들이 원청에 내건 요구조건이었다.
 

  투쟁 결과, 2차 하도급 업체에 재위탁한 업무를 환수하는 등의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상처도 남았다. 4억원에 이르는 벌금폭탄이었다. 김진억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의 말이다. “케이블·통신 노동자들은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진짜 사장인 원청은 대화나 교섭에 나오지 않고, 파업을 해도 원청에 의해 교체인력이 합법적으로 투입된다. 교섭권과 쟁의권 자체가 제한된 상태에서 싸우는 것이라 싸움이 쉽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손해배상 등으로 내야 할 벌금도 많아 싸움이 쉽지가 않다.” 벌금은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위축시킨다. 


  김 국장은 벌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재정사업을 진행하던 중 얼마 전 작은 돌파구를 찾았다. ‘굿바이(Goodbuy)’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하면 판매자에게는 이윤이 남는다. ‘굿바이’는 그 이윤의 일부를 소비자가 지정한 사회운동단체에 기부하는 사업이다. 김진억 국장은 “이 사업을 사회운동단체의 재정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업으로 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의미를 담은 후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망의 기반도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는 굿바이에서 운영하는 휴대폰 판매사이트 ‘피플모바일’에 광고를 올렸다. 홈페이지 상단에는 ‘벌금 4억 폭탄! 우리 동네 케이블통신 노동자들을 지켜주세요!! 피플 모바일에서 휴대폰 구매하고 우리 동네 케이블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후원하세요’라는 희망노조의 광고가 뜬다. 이 사이트에서 소비자가 휴대폰을 구입하고 후원단체란에 희망연대노조를 입력하면 판매 수익금이 희망연대노조에 기부된다. 후원가능한 단체는 희망연대노조 외에 환경단체, 여성단체, 성소수자단체, 동물보호단체 등 다양한 단체가 있다. 사회운동단체의 회원 이탈, 재원 고갈, 부익부빈익빈 문제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굿바이’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선애 NPO센터장의 말이다. “최근 시민단체에 회원은 정체돼 있거나 감소되는 추세이고, 의욕적으로 거리캠페인을 추진해도 어떤 단체는 한 달에 500명씩 회원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경기침체 등으로 개인·기업의 후원이 모두 감소되는 추세다. 이걸 타개하기 위해 내부 인력을 교육하거나 여력이 있는 단체에서는 외부에서 파트너 전문기관을 통해 모금 및 홍보역량을 강화시키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금환경 자체가 열악한 상황에서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홍보가 재원 확보로 이어지는 데까지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의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사회운동단체의 재원으로 연결되는 굿바이 사업은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운동단체의 자립과 연대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굿바이는 ‘능동적 소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 중이다. 정경섭 굿바이 대표의 말이다. “운동조직이 있다면, 사업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지자체·기업의 지원사업에 의지하며 버티는 단체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재원을 외부에 의지할 때 단체들이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하기가 힘들다. 부족한 재원은 사회운동가들의 생계와도 직접 연결된다. 박봉의 현실에서 사회운동가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능동적 소비’는 소비자가 물건에 대한 이윤을 인지하고 그 이윤의 배분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능동적 소비’를 통해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도 돈독해질 수 있다. 굿바이는 창출된 수익을 어떻게 공익적 성격에 맞게 배분하느냐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사업 내용도 기존의 사회적 기업처럼 공익적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윤리적인 부분에 어긋나지 않으면 모든 걸 사업영역으로 포괄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굿바이가 처음 판매한 것은 ‘우리동생 수제간식’이다. 반려동물 간식을 판매하고 남은 수익은 유기동물의 입양을 지원하거나 동물병원 협동조합인 ‘우리동생’을 지원하는 데 쓴다. ‘우리동생 수제간식’은 생협 등을 중심으로 판매되면서 2016년 4월 기준으로 1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고세진 굿바이 전략기획본부장은 “반려동물 간식의 경우 지난해 아이쿱생협의 판매량과 올해 신규협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두레생협 등 협동조합 판매량을 추산해 볼 때 올해 안에 약 6000만원의 순이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굿바이가 두 번째로 시작한 사업은 휴대폰 판매다. 지난해 11월 공공운수노조복지협동사업단과 함께 통신 3사 휴대폰 판매대리점인 온라인 매장 ‘피플모바일’을 열었다.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개통하면 10만~30만원의 수수료가 남는다. 굿바이는 이 수수료의 70%를 소비자가 지정하는 사회운동단체에 기부하고 나머지 20%는 굿바이 운영기금, 5%는 공공운수노조 복지협동사업단 사업기금, 5%는 지역기금으로 사용한다. 2016년 3월까지 50여개의 사회운동단체와 기부협약을 체결했는데, 단체의 수는 곧 20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개월간 ‘피플모바일’이 휴대폰을 판매해 협약 단체에 후원한 금액은 2400만원이다. 굿바이는 하나은행과 제휴해 공동체 신용카드인 ‘피플카드’를 만들었다. 카드 사용금액의 0.1%를 공동체 기금으로 적립할 수 있는 카드다. 또한 반려동물의 사료, 간식 등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반려동물용품 온라인 종합쇼핑몰 ‘펫미’의 문을 열 예정이며, 자동차보험 판매사업과 부동산 중개사업도 계획 중이다.
 


  정선애 NPO센터장은 ‘굿바이’가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능동적 소비를 통해 시민단체·운동단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회운동단체들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능동적 소비’를 통해 작은 단체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능동적 소비’가 일회적인 관계맺기로 끝나지 않고 소비자와 판매자, 소비자와 후원단체 간의 지속적인 관계맺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를 통한 후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단체에 대해 알리고, 성과를 보고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한 번 상품을 구입하고 마는 관계가 아니라 회원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능동적 소비가 확산되고 사회운동단체와 시민 간의 지속적인 관계맺기가 가능하다.”

[기사 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021614481&code=940100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6-04-05 09:42, 조회수 : 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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