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며칠 전이었던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올해로 제44회를 맞는 장애인의 날은 단지 하루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분명 ‘장애’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 생각, 인식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배려나 동정의 시선 혹은 새로운 차별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심을 놓지 않고 지속적인 변화를 위한 시도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배려와 접근성 제공을 넘어, 장애인의 일상과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실질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이 바로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를 보여주는 본보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도시 공간이나 생활, 법과 제도, 제품의 설계에서 '정상 사용자'인 일반인 중심의 기준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야말로 가장 먼저 재고되어야 할 사회적 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권리는 단지 물리적 접근성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들의 선택권, 정보 접근권, 사회 참여권까지 포괄해 나가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세 가지 캠페인은 그런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기술과 디자인, 감각과 공감이 하나가 되어 장애인들이 겪었을 기존의 불편을 다시 설계하고, 장애인에게 단지 '도움'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의 도구'를 제공한 시도들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물 인식 앱과 서비스가 좋은 예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가 흔히 지나치던 장애인분들의 일상 속 불편을 개선하고, 사회의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된 이 캠페인들을 통해, '공익'이라는 가치가 기술과 디자인의 언어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 "길 위의 언어를 다시 쓰다" – 점자블록의 새로운 이름, SIGHTWALKS
점자블록은 수십 년 동안 도시 곳곳에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을 점자블록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점자블록이란 시각 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 발바닥이나 지팡이의 촉감으로 가는 위치와 방향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유도하는 블록으로 ‘노란색 블록’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그 노란 블록은 사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판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경고’ 이상의 정보를 줄 수는 없을까?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 캠페인이 페루에서 등장했습니다. 보도블록이 정보를 품기 시작한 겁니다.
그전에는 어땠을까요? 과거 1960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위한 획기적인 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이 지나 현재까지 점자블록의 기능은 단순한 '진로 안내'와 '위험 경고'라는 제한된 역할에 머무르고 있으며, 사회가 발전되면 될수록 시각장애인이 목적지를 파악하고 찾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며, 시각장애인의 자립과 도시 내 이동권을 제한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페루의 시멘트 회사 Sol Cemento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라보며, 점자블록의 본질적 목적 즉, 단지 '안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이동과 정보 접근'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SIGHTWALKS' 프로젝트입니다.
SIGHTWALKS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단순히 표면에 돌기를 새긴 블록을 넘어서,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의 점자블록을 구현한 것입니다. 블록의 돌기(막대) 수를 달리함으로써 병원, 약국, 공원, 버스 정류장, ATM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다양한 목적지를 블록으로 나타내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즉,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로 블록을 감지한 뒤 손끝 촉각으로 막대 수를 확인함으로써, 주변 시설의 존재와 방향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개발된 블록은 시범적으로 페루의 리마 미라플로레스 지역 75,000㎡ 도로에 진행되었으며, 현지 시각장애인 단체와 협력해 실제 사용자 중심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그 이후 각 블록의 의미는 표준화된 지침으로 구성되어 향후 전국 단위 확장도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후 SIGHTWALKS 프로젝트는 시각장애인의 보행 안전뿐 아니라, 도시 정보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은 단순히 방향을 따라 걷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정보의 주체로서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고 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SIGHTWALKS는 간단한 기술과 디자인이 결합해 장애인의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이 모델은 페루 전역 및 해외 공공기관에 소개되고 있으며, 점자블록의 국제 표준화 논의에 영향을 주게 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지갑 속의 독립권" – 터치로 구분하는 Touch Card
지갑 속 카드를 몇 장이나 가지고 계시나요? 2024년 기준으로 성인 평균 카드 4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디자인 혹은 혜택을 기준으로 카드를 보유하고 따지면서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게는 그 모든 카드가 '똑같은 직사각형'일 뿐입니다. 그래서 쇼핑할 때도, ATM 앞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었습니다. 대부분의 카드는 동일한 크기와 재질, 형상으로 제작되어 육안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결제 수단이 점차 비대면·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속도에 비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용자 경험 설계는 매우 미흡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카드 브랜드인 마스터카드는 'Touch Card'라는 명칭의 새로운 촉각 기반 결제 카드를 개발했습니다. 이 카드는 상단 가장자리의 일부를 사각형, 원형, 삼각형 등으로 파내어 각 카드의 기능을 구분할 수 있게 디자인했습니다. 신용카드는 둥근 홈, 체크카드는 사각형, 선불카드는 삼각형으로 명확히 구분한 것입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도 카드 종류를 식별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소비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디자인은 영국의 왕립시각장애인연구소(RNIB)와 실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의 자문과 함께 진행되었으며, 개발 초기 단계부터 사용자 테스트를 반복적으로 진행하여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단순히 카드에 표시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ATM과 카드 리더기와의 호환성, 내구성 테스트, 사용자 습관의 변화까지도 고려된 포괄적 UX 디자인이 적용된 사례인 것입니다. 이후 2021년 UAE 아즈만 은행이 세계 최초로 이를 정식 도입한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 국가 은행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이 카드의 상용화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개선을 넘어서, 전체 금융 시스템에 ‘접근성’이라는 기준을 재정의하게 만든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용자가 동등한 정보에 접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이 캠페인은 포용적 금융 디자인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세상을 조용히 바꾸는 앱" – 자폐인을 위한 Unfear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의 소리, 예를 들면 공사장의 작업소리, 식당의 음악,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참 많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상당수의 소리는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 모든 소리는 고통이고 공포일 수 있습니다. 바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입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소리나 주파수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이렌, 경적, 음악, 동물의 울음소리 등 일상적인 소리는 이들에게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 반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일상의 소리는 사회와의 단절을 만드는 장벽이 되어 점차 외출이나 사회적 참여를 꺼리게 만들고, 나아가 사회와의 단절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기술로 그 벽을 허물고자 했습니다. 소리를 줄이고, 삶을 넓히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AI 기반 청각 제어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앱 ‘Unfear’를 개발했습니다. 이 앱은 실시간으로 주위 소리를 감지하고,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특정 주파수를 인식해 이를 차단하거나 부드러운 대체음으로 전환해주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사용자는 본인이 민감하게 느끼는 소리를 사전에 설정할 수 있으며, 앱은 이어폰이나 헤드폰과 연동되어 언제 어디서나 개인화된 청각 환경을 제공합니다.
개발된 이후에도 다양한 테스트 환경에서 사용자 그룹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집중이 필요한 상황과 긴장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 따라 소리 필터를 다르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었고, ‘집중 모드’, ‘진정 모드’ 같은 기능도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 사회공헌팀과 비영리 자폐인 협회가 협업하여, 사용자의 실제 감각 특성을 반영한 알고리즘을 고도화했습니다.
Unfear앱은 자폐인의 외출 및 대중 환경 적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도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Play 스토어를 통해 배포되었으며, 출시 이후 국내외에서 수천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Unfear는 단순한 기술 도구가 아니라, 자폐인을 위한 '사회 참여의 매개체'로 기능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기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한층 확장했습니다.
불편을 기술로 극복하는 이 세 가지 캠페인은 모두 기존에 존재하던 일상적 요소(점자블록, 신용카드, 소리)를 재해석해,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공감'과 '기술'의 접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동정에 머무르지 않고, '기능'과 '디자인'을 통해 권리를 되돌려준 캠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위의 사례를 통해 공익 캠페인은 이제 이벤트성 프로젝트를 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은 배려가 아닌 기본이 되어야 하며, 기술은 효율이 아닌 평등을 향해 작동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한 사례들은 '소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비로소 도시와 사회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준값'을 다시 쓰는 일. 그것이 바로 공익 캠페인이 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자료 및 사진 출처
1. "길 위의 언어를 다시 쓰다" – 점자블록의 새로운 이름, SIGHTWALKS
1) 정보 출처
- 자료 출처 :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럭, 시멘트 회사가 디자인 바꾸자 새로운 길이 열렸다. 뉴데일리 경제. 231228
- 출처 링크 :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3/12/28/2023122800003.html?utm_source=chatgpt.com
- 자료 출처 : 60년 역사의 점자블록의 새로운 진화. 세상 모든 캠페인. 250102
- 출처 링크 : https://maily.so/everycampaign/posts/10z3p8lkolw?utm_source=chatgpt.com
2) 사진 출처
- 자료 출처 : youtube@brand-news : SightWalks di Grey Peru e Cemento Sol 캡쳐
- 출처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IRuDOllWc-E&t=97s
2. "지갑 속의 독립권" – 터치로 구분하는 Touch Card
1) 정보 출처
- 자료 출처 : "손 끝으로 만져서 구분"… 시각장애인을 위한 마스터카드의 '터치 카드', 브랜드브리프, 22039
- 출처 링크 : https://www.brandbrief.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23&utm_source=chatgpt.com
- 자료 출처 : 배려를 위한 혁신, 마스터카드의 ‘터치 카드’, 스톤브랜드 컨설팅
- 출처 링크 : https://stonebc.com/archives/29781
2) 사진 출처(1,2,3)
- 자료 출처 : 마스터카드 미국웹페이지 캡쳐
- 출처 링크 : https://www.mastercard.us/en-us/personal/find-a-card/touchcard.html
2-1) 사진 출처
- 자료 출처 : 디지털시놉시스, mastercard creartes a brilliant ad to launch their accessible cards for the blind
- 출처 링크 :
https://digitalsynopsis.com/advertising/mastercard-touch-card-for-the-blind/
3. "세상을 조용히 바꾸는 앱" – 자폐인을 위한 Unfear
1) 정보 출처
- 정보 출처 : 브랜드브리프, 삼성, 특정 소리에 공포 느끼는 전세계 '우영우'들을 위한 앱 내놨다. 230418
- 출처 링크 : https://www.brandbrief.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58
- 정보 출처 : [2024 클리오 광고제 수상작] 삼성의 Unfear
- 출처 링크 : https://blog.naver.com/ewhacism/223615054988
2) 사진 출처(1~3)
- 정보 출처 : youtube@LLLLITL : samsung - Unfear (case study)
- 출처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DwO74zYr2b0&t=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