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30.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은 어디일까
스토리 / by NPO지원센터 / 2019.04.23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내 집은 대체 어디 있을까 


오늘도 도시 곳곳엔 수많은 집을 짓고 있습니다. 20층을 넘나드는 고층 아파트 한 동에 과연 몇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를 지나다 보면 새로 짓는 아파트와 이제 갓 지은 아파트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시나요?


<친절한 미분양>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청년 한 명이 아파트 벽을 기어오릅니다. 수상할 정도로 황량한 아파트 단지.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입니다. 분양이 다 되지 않은 아파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2017년 기준, 전국의 아파트는 천만 가구를 넘었습니다. 그중 빈집은 112만 채입니다. 현재 20대의 수는 400만에 못 미칩니다. 네 명이 한 채씩 공유해도 될 만하네요. 그런데 왜 지금의 청년들은 집이 아닌 곳에서 살아야 할까요?



남가좌동 민달팽이유니온


 

수도권의 집 한 채는 지금부터 10년을 꼬박 일해 매달 100만 원씩 저축해도 살 수 없습니다. 10년을 모으면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니겠죠. 민달팽이유니온은 포기할 건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합니다. 아파트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정도의 패기! 청년만이 말할 수 있는 대안주거의 방법을 찾기로 합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한다  

2011년 5월 5일 '민달팽이유니온'이 출발합니다. 집이 없는 민달팽이처럼 천천히 벽을 기어오른다는 의미입니다. 

 


[청년들의 대안 주거를 위한 노력]




2010년에는 '청년주거협동조합 모두들'이 있었습니다. '모두들'은 "모여라 두더쥐들"의 줄임말입니다. 반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에서 살아보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모두들'은 부천에서 대안주거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3년 두더지하우스 1호를 시작으로 현재 5호까지 있습니다. 16명의 청년이 모여 집을 같이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단독주택을 빌려서 1인 1실의 쉐어하우스 형태로 운영합니다. 월세와 조합비를 포함해 한 달에 내야 할 돈은 20만 원에서 30만 원입니다. 이 비용이 가능한 것은 500만 원 이상을 출자한 연 3% 이상의 이자를 받는 공급자조합원과 '모두들'의 활동을 후원하는 후원자조합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는 민달팽이협동조합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주거취약 대학생을 선발해 주거보조금을 지급하는 민달팽이 주거 장학금이 첫 사업이었습니다. 2012년에는 대학 예산으로 대학 기숙사를 지어달라는 '응답하라 착한 기숙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동시에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를 발족하고 청년주거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청년의 주거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 나갔습니다.


 

함께주택 1호


비슷한 형태로는 마포구의 '함께주택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성미산 마을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택을 같이 공유하면서 조합원이 1인 1실을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달팽이주택과 모두하우스는 집을 빌려서 다시 구성원에게 빌려주는 형태이지만,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조합이 주택의 소유자라는 점이 다릅니다. 일반조합원과 거주조합원의 출자금, 입주자의 보증금으로 돈을 마련하고 서울시의 사회투자지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서울의 땅값과 집값은 만만치 않아서 공공지원금을 받아도 이를 어떻게 갚느냐가 관건입니다.


쉬지 않고 짓지만 계속 모자라는 집


현재 우리나라의 대안주택 실험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형태는 하나의 집을 얻어 공유하는 정도입니다. 그 역시 서울시의 경우 집값이 비싸 몇 백만 원씩 모아 영구적으로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집을 빌린다면 재개발이나 집주인의 요구에 어느 날 갑자기 모두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택문제가 심각하다고 얘기한 것은 1, 2년 사이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방이래 계속되어 왔습니다. 모든 정권은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실제로 집도 많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집값은 우리의 삶 전반을 뒤흔드는 문제입니다. 부자가 아니고서야 90%의 국민들은 집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분배의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집은 계속 짓고 있고 집값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고, 누군가는 집을 수 십 채씩 가지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볕 한줌도 소중한 쪽방촌 내부 (사진 : 이하나)


주거 빈곤의 문제는 삶의 근간을 흔듭니다. 주거가 불안정하면 주민들이 한곳에서 오래 살지 못합니다.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은 지역에 정착하고 주도적인 삶을 꾸리기 어렵습니다. 정부의 수많은 복지지원정책도 집값이 들썩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주거문제로 인한 갈등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입자와 집주인의 갈등부터 사회적 박탈감과 계층의 차별 등 땅을 딛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는 수두룩합니다. 


주거빈곤은 집이 아닌 곳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거빈곤가구를 조사하는 항목을 보면, 전용 입식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이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201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1.6% 가구가 전용 부엌이 없는 곳에 살며, 전국의 4.5%가 전용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2009년 OECD 통계에 기준해 보면 기본위생시설이 없는 주택에 사는 가구가 많은 나라는 터키, 에스토니아, 칠레에 이어 한국입니다.


그래도 계속 가자 민달팽이들아


"왜냐하면 원룸은 현관문 밖에 나를 위한 다른 공간이 없잖아요. 쉐어하우스는 방문 밖으로 나가면 거실인 게 좋았어요. 기본적으로 주거 환경이 쾌적해졌어요. 그리고 이 동네에 나를 아는 사람이 족히 10명은 넘는다는 게 이렇게 안심되는 일인지 저도 처음 알았어요. 아는 사람이 늘고 가까이에 친한 사람이 있으니까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어요" - 쉐어하우스 달팽이집에서 생활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


2000년을 기점으로 서울의 1인 청년 가구 주거빈곤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서울의 1인 청년 가구 중 37.2%가 최저기준 미달 주택, 고시원, 옥탑방, 비닐하우스, 지하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만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민달팽이협동조합을 비롯한 청년주거를 고민하는 공익단체들은 끊임없이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처럼 계속해서 대안주택의 방향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 땅을 사는 것, 빌리는 것, 빌려서 나누는 것, 빌려서 쪼개 나누는 것,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현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청년주거를 넘어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수도권 외곽으로 벗어나 도시보다 넓은 땅에 집을 짓고 대 여섯 가구가 공동으로 생활하며 공동육아와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곳도 있습니다. 


  

민달팽이협동조합 1주년 행사

그러나 이런 대안주택도 정작 조합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으며 집값이 계속 상승한다면 수년 후에는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집은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만, 과연 우리는 어디쯤에 서 있는지 궁금합니다.

누군가와 공간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청년주거를 고민하는 이들은 새로운 실험을 통해 집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구조의 병폐가 사라지길 바란다면 계속해서 말해야 합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의 문제, 우리의 민달팽이들이 지치지 않게 힘을 보태주세요. 내 삶이 나아져야 옆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나도 잘 살고 친구도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민달팽이들은 아파트의 벽을 열심히 기어올라갑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강세진 (민달팽이유니온)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한국사회주택협회 : http://socialhousing.kr/
 서울특별시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 : http://www.socialhousing.site/
​ 민달팽이유니온 : http://minsnailunion.tistory.com 
 청년주거협동조합 모두들 : http://modoodeul.blog.me/
​ 함께주택협동조합 : http://cafe.daum.net/housingco-op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퍼스트펭귄' 기획 연재가
30화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이나
사회의 정책들이 실은 오랜 기간 동안 변화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노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작성자 : NPO지원센터,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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